나도 나만의 별을 정해야겠습니다 - 사자자리별비 관측기

2022. 11. 25. 01:101. 별과 하늘의 이야기/하늘앓이 - 별지기의 이야기들

 

지난 주 목요일(17일), 사자자리별비가 내린다기에 조경철 천문대에 향했습니다.

 

저는 하늘에서 벌어지는 여러 일 중에 별똥별을 제일 좋아합니다.

그러다보니 유성우는 특별히 챙기는 편입니다.

 

저로서는 특별한 일이 하나 더 있었습니다.

바로 제 망원경 첫눈이의 보정판을 청소한 일입니다.

 

제 망원경은 슈미트카세그레인 11인치 망원경입니다. (셀레스트론 C11)

 

보정판 청소가 뭐 대단한 일이냐고 하시겠지만

워낙 손재주가 없다보니

기계나 공구를 만지는 일은 저에게는 꿈도 꾸지 못할 일입니다.

 

그런데 언제부턴가

보정판에 기름띠 같은 얼룩이 생기기 시작했습니다.

 

급기야는 이것 때문에 별상 한쪽이 터지는 것 같아

더이상 뭉개고 버틸 수가 없는 상태였죠.

 

결국 큰 결심을 하고

이곳 별하늘지기를 비롯한 각종 유튜브 방송을 통해 정보를 모은 후

보정판 청소를 했습니다.

 

즉, 이 날은

사자자리 유성우 관측도 관측이지만

보정판 청소 후 처음 망원경 점검을 나가는 날이기도 했죠.

 

이윽고 밤이 오고

설레는 마음으로 관측을 시작했습니다.

 

그런데 이게 왠걸...

보정판 청소 전에는 한쪽만 터지던 별상이 이제 사방팔방 터지고 있었습니다.

그제야 보이더군요.

제가 보정판의 증류수 얼룩을 제대로 제거하지 못했다는 걸 말입니다.

 

결국 망원경 관측은 포기해야 했습니다.

제 망원경 첫눈이와 함께 멍하니 하늘만 바라봤습니다.

 

 

멍하니 앉아 하늘을 바라보고 있자니 맘이 편치 않았습니다.

혹시 제 잘못으로 보정판이 망가진 것은 아닌지 걱정됐죠.

 

마음을 가다듬을 겸

자리에서 일어나 조경철 천문대를 한바퀴 돌았습니다.

 

그날 조경철 천문대에는

평일 저녁임에도 많은 분들이 나오셨었습니다.

 

앞마당 쪽에도 여러 팀이 있었는데 한켠에 미드 라이트브릿지 12인치 돕소니언이 있더군요.

 

관측지에서 안시 관측을 하시는 분을 보면 너무 반갑습니다.

눈동냥을 할 수 있어서인데요.

그날도 돕소니언 주인께 인사를 드리고 실컷 눈동냥을 했습니다.

 

돕소니언 주인은 설악의봄 님이셨습니다.

그리고 인상적인 일이 생겼죠.

 

설악의봄 님께서 자기가 정말 좋아하는 이중별이라면서

카시오페이아자리의 이중별 하나를 보여주셨던 것입니다.

 

그 이중별은 정말 멋진 이중별이었습니다.

북극성처럼 다이아 조각이 깨져나간듯한 작은 별을 거느린,

으뜸별과 짝꿍별이 확연한 크기차이를 보이는 이중별이었죠.

심지어 짝꿍별의 색은 붉기까지 했습니다.

터져나오는 듯한 빛을 뿜어내는 으뜸별과

은은한 붉은색으로 빛나는 작은 짝꿍별의 모습은 황홀함 그 자체였습니다.

 

제가 그 이중별을 너무나 마음에 들어하자

설악의봄 님도 아주 흐뭇해하셨습니다.

 

설악의봄 님 덕분에 한바탕 밤하늘 여행을 신나게 할 수 있었습니다.

제 망원경에 대한 걱정도 사그라들었죠.

자리에 돌아와 달이 어느 정도 뜰때까지 차분히 하늘을 바라볼 수 있었습니다.

 

그날 사자자리에서 떨어지는 것이 분명한 별똥별을 네 개 봤습니다.

순전히 제 느낌인데

사자자리 별비에 속하는 별똥별은 다른 별똥별과는 확연히 달랐습니다.

마치 날카로운 면도칼로 밤하늘을 쓱 베어내는 듯 했죠.

아마 그 속도가 매우 빠르고 별똥별 궤적이 길어서 그랬던 것 같습니다.

 

이날 광각으로 열어놓은 카메라에는 사자자리 유성우가 전혀 잡히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사진 전처리 연습용으로 걸어놓은 협각 카메라에 운좋게도 별똥별 하나가 잡혔습니다.

 

 

사진에는 초록빛이 선명한 별똥별 궤적과 그 별똥별 때문에 붉게 타는 대기의 기운이 함께 잡혔습니다.

그 배경을 플레이아데스가 화려하게 장식해 주고 있었죠.

이 사진을 보고 얼마나 행복했는지 모릅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자 이 사진보다 진한 여운을 남기는 것이 있었습니다.

 

바로 설악의봄 님께서 보여주신 그 이중별이었습니다.

난 왜 설악의봄 님께 그 이중별 이름조차 여쭤보지 않은걸까...

 

문제가 된 보정판 세척을 다시 시도하느라 주말을 보낸 후

보정판 세척이 제대로 됐는지 확인할 겸,

그리고 설악의봄 님께서 보여주신 이중별의 정체를 확인할 겸,

일요일 저녁 다시 조경철 천문대로 향했습니다.

 

다행히 세척이 제대로 되어 관측을 다시 할 수 있었고

이전보다 훨씬 쨍한 하늘을 보여주는 제 망원경을 이용하여

설악의봄 님께서 보여주신 그 이중별이 카시오페이아자리 에타별이라는 것도 알게 되었습니다.

 

그 아름다운 이중별의 모습을 맘껏 즐기면서

이 별을 맨처음 저에게 보여주시면서 즐거워하시던 설악의봄 님의 모습이 떠올랐습니다.

 

그래서 저도 결심했습니다.

저도 저만의 천체를 하나 만들어야겠다고 말입니다.

누군가 망원경을 보여달라고 했을 때

마치 꽁꽁 숨겨놓은 소중한 보석상자를 열어 자랑하듯

그렇게 자랑할 수 있는 밤하늘의 보석 하나를 저도 가져야겠습니다.

 

이미 그런 별 하나를 가지고 계신 설악의봄 님이 참 부러웠습니다.

더 많은 하늘을 만나다보면

저도 선물처럼 보석 하나 받을 수 있겠죠?

 

일반인들에게는 그저 밤하늘이지만

우리는 거기서 보석을 캐낼 수 있으니

별지기가 된다는 건 참 멋진 일인것 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