별자리를 찾아서 2. 누가 선을 그었는가?

2022. 11. 16. 12:072. 별자리 이야기/별자리 이야기

예전에 '별자리가 형태와는 아무 상관이 없다는 오해에 대해' 쓴 적이 있습니다. 
그 이야기를 조금 더 해 보고자 합니다. 

별자리가 형태와는 아무 상관이 없다는 오해를 하게 만드는 원인이 어디에 있을지 생각해 봤습니다. 
제가 생각했을 때 그 원인은 두 가지로 정리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첫째는 별자리를 시기 별로 구분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둘째는 별자리를 인식할 때 별자리 선에 무의식적으로 얽매이기 때문입니다. 

우선 첫째. 별자리를 시기 별로 구분하지 않는 점에 대해 살펴보겠습니다. 


혹시 '프톨레마이오스자리'라는 단어를 들어보셨는지요?

사진 1. 표준국어사전 스크린샷 : '프톨레마이오스자리'라는 단어는 표준국어사전에 등재되어 있는 어엿한 표준어입니다.

 

프톨레마이오스자리란 고대의 별자리로서

프톨레마이오스의 저서인 알마게스트를 통해 전하고 있는 별자리입니다. 

 

제가 앞서 글에서 소개한 '아모르포토이'라는 단어는 

바로 이 프톨레마이오스자리에 대해서만 성립되는 개념입니다. 

따라서 '별자리의 형태'를 논할 때는 반드시 그 대상을 프톨레마이오스자리에 한정하여 이야기해야 합니다. 


그럼 어떤 별자리들이 프톨레마이오스자리인 걸까요?

프톨레마이오스자리에 속하는 별자리들은 다음과 같습니다.

표1. 프톨레마이오스자리 목록 : 알마게스트에 등재된 순서이며 표준국어대사전에 등재된 별자리명칭을 사용하였습니다.

 

여기 등장하는 48개 별자리 중 아르고자리 하나만 빼면 모두 오늘날 우리가 알고 있는 별자리와 동일합니다.
아르고자리는 18세기 프랑스 천문학자 니콜라 루이 드 라카유(Nicolas Louis de Lacaille, 1713~1762)에 의해 고물자리, 용골자리, 돛자리로 삼분할되었습니다. 
따라서 오늘날의 별자리 88개 중 역사와 전통을 가진 별자리는 50개로 오히려 더 많아지는 셈입니다. 

 

대한민국의 밤하늘에서 프톨레마이오스자리를 구분하는 방법은 아주 쉽습니다. 
프톨레마이오스자리가 아닌 별자리는 일부이기 때문입니다. 

 

기린자리

머리털자리
도마뱀자리
방패자리

비둘기자리
사냥개자리
살쾡이자리
여우자리

외뿔소자리
육분의자리
작은사자자리

이 열한 개  별자리를 빼고 나머지는 프톨레마이오스자리라고 생각하면 거의 맞다고 보면 됩니다. 

(고도 10도 상관에 몇몇 남쪽 별자리들이 보이긴 합니다만 어차피 알아보기 힘든 별자리들이니 무시하셔도 됩니다.)

참고로 IAU가 지정한 별자리 88개를 만든 이를 기준으로 분류하면 다음과 같습니다. 

표2. 현대 88개 별자리 구분(제작자별)


이렇게 프톨레마이오스자리를 구분할 줄 안다면 별자리의 형태를 찾아가는 여행에서 첫 번째 조건을 충족한 것입니다. 

두 번째는 별자리의 연결선에 대한 것입니다. 

별자리의 별들을 연결한 선은 관측현장에서 매우 요긴하게 쓰입니다. 
별지도를 인식하기 쉽게 만들어 줄뿐만 아니라 빛공해로 얼룩진 밤하늘에서 대상을 찾아갈 때도 유용하게 쓰이죠.

사진 2. SkyAtlas의 한 부분

사진 2는 SkyAtlas의 한 부분입니다. 

언뜻봐서는 이게 어느 별자리 부분인지 판단하기가 쉽지 않습니다.

 

사진 3. SkyAtlas의 한 부분 - 사진 2와 동일 부분.

하지만 어느 정도 별자리에 익숙한 분이라면 별자리 선을 긋는 것만으로 어느 별자리인지 확실히 구분할 수 있습니다.

우리가 알게 모르게 별자리 선에 익숙해져 버렸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이 선은 전혀 공식적인 선이 아니며, 그저 관행에 불과합니다. 

그 누구도, 어느 단체에서도 어떻게 긋자고 확정하거나 합의한 적이 없다는 것입니다. 

따라서 누가 그었느냐에 따라 선은 다르게 그려집니다. 

사진 4. 스텔라리움에서 별자리 선 옵션을 변경한 모습(스카이앤드텔레스코프 별선 적용시)

 

사진 5. 스텔라리움에서 별자리 선 옵션을 변경한 모습(일반)

이처럼 별자리 선은 아무런 근거도 없는 것인데 

문제는 바로 이 선이 별자리의 실제 형상을 볼 수 있는 상상력을 제한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또 한가지 재미있는 것은 근본도 모를 이 별자리 선이 서양 사회에 등장한 것이 비교적 최근이라는 것입니다. 

 

희한하게도  별들을 선으로 연결하는 전통은 아래 사진 6과 7에서 볼 수 있듯이

동양에서는 아주 오래전부터 존재했음에 반해 

서양에서도 근대시대까지 전혀 존재하지 않았습니다. 

 

사진 6. 너무나 유명한 천상열차분야지도 - 모든 별들이 선들로 촘촘히 연결되어 있습니다.
사진 7. 돈황성도 갑본(8세기 당나라) - 역시 별마다 선이 연결되어 있습니다.

 

사진 8. 2세기 석상 파르네스 아틀라스(Farness Atlas)의 천구 부분 투사도 - 별은 물론 일체의 선도 보이지 않습니다.

 

사진 9. 뒤러의 천구도 목판화(1515) - 별은 기록되어 있지만 선은 존재하지 않습니다.

사진 6, 7과 사진 8, 9를 비교해 보시면 아시겠지만 동양과 서양의 별자리 전통은 확실히 차이를 보입니다.

동양의 별자리가 선에 치중되어 있는 반면 서양의 별자리는 그림에 치중되어 있죠. 

 

특히 사진 9 알프레크트 뒤러의 별지도는 알마게스트의 별목록을 가장 충실하게 구현한 별지도로 평가받고 있습니다만,

여전히 선은 나타나지 않습니다. 

 

이후 유럽은 우라노메트리아(Uranometria, 요한바이어 1603),  소비에스키의 창공(the Firmamentum Sobiescianum, 헤벨리우스, 1690),  우라노그라피아(Uranographia, 보데, 1801) 등 별지도사의 이정표가 되는 유명한 별지도들이 연이어 출판되었습니다. 

하지만 그 어떤 별지도에도 별자리 선은 사용되지 않았습니다.

이러한 전통은 현대까지 이어져  IAU가 88개 별자리를 처음으로 공식화하고 처음으로 발행한 별지도에도 별자리 선은 담겨 있지 않았습니다.

사진 10>  '별자리의 과학적 경계( Delimitation Scientifique des Constellations, 1930)' - 88개 별자리를 담은 최초의 별지도로 별자리 선은 없습니다.

그러면 서양 사회에서 별자리 연결선은 도대체 누가 만든걸까요?

 

유럽에서 별들을 선으로 연결한 별지도는 1786년에 처음 등장했습니다. 
파리천문대에서 조수로 일했던 알렉산드르 루엘레(Alexandre Ruelle)가 발행한 누벨레 우라노그라피에(Nouvelle uranographie)라는 별지도를 통해서였죠. 

 

사진 11> 누벨레 우라노그라피아의 오리온자리 - 오늘날의 오리온 연결선과는 사뭇 다릅니다.


이 별지도의 부록에는 다음과 같은 루엘레의 주장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저는 삼각형이나 사각형, 다각형을 비롯한 어떤 기하학적 형태를 긋는 것이 하늘에 대한 지식을 가르치는데 훨씬 더 단순하고 쉽다고 생각합니다. 물론 이 기하학적 형태는 각 별자리를 구성하는 가장 밝은 별들을 모아 다양한 선을 긋는 것으로 실현시킬 수 있습니다."

 

이러한 루엘레의 아이디어는 이후 프랑스의 지도 제작자들에 의해 이어졌습니다.

당시만 해도 별지도를 만든다는 것은 유명한 화가를 고용하고 화려한 그림이 들어가는 값비싼 일이었기 때문에 

루엘레의 시도를 프랑스 혁명기의 사회 분위기와 무관하지 않다고 보는 의견도 있습니다만

저는 예전에 박한규 선생님이 말씀해 주신대로 여기에는 동양의 전통이 영향을 끼쳤을 가능성도 있다고 봅니다. 

 

이상을 보시면 아시겠지만

별자리에 선을 긋는 것은 공식화 된 것도 없고, 규정도 없고 더더군다나 전통과는 아무 상관이 없는 일입니다. 

 

따라서 별자리가 형상을 모사하는 것인지 아닌지를 이야기할 때는 

반드시 '그 대상을 프톨레마이오스자리에 한정해야 한다'는 점과 '별자리 선은 머릿속에서 제거하고 이야기해야 한다'는 점을 고려해야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