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자놀이 - '약자를 공격하는 약자' 시스템

2023. 1. 17. 15:584. 끄저기/끄저기

 

자료조사차 읽은 책.

 

나는 2009년 여름 쌍용차에서 일어났던 사태의 내막을 잘 모른다. 

다만 노동자들이 점거 중인 공장에 식량과 의료지원은 물론 물조차 반입을 금지한다는 소식을 접하고 

분노했던 기억은 있다.

사형수나 전쟁포로에게도 당연하게 주어지는 권리가 차단당하는 것을 보고 이런 생각을 하게 됐다.

 

'우리나라에서 노동자는 사형수보다도, 전쟁포로보다도 못한 존재구나...'

 

이 사건은 내 인생에 큰 방점을 남겼다. 

나는 이때 어떻게든 회사를 그만두어야 되겠다는 생각을 했고, 

시간이 오래 걸리긴 했지만 결국 회사를 그만둘 수 있었다. 

 

그래서...

그러면 내 지위는 저 바닥의 노동자를 벗어나

최소한 사형수나 전쟁포로보다 높아지긴 한 걸까?

 

대답은 당연히 'No'다. 

나는 여전히 위태로운 일이 닥쳤을 때 살아남기 어려운 약자로 남아 있다. 

 

나는 괜찮을 수 있을까?

 

이 책을 통해 몰랐던 것을 알게 됐다. 

 

회사를 살리고자 했던 쌍용차 노동자들의 구체적인 노력을 알게 됐고

그들이 왜 옥쇄투쟁을 했는지, 왜 자살이 이어졌는지 이해할 수 있게 되었다. 

 

또한 정부와 산업은행, 회계법인, 경찰, 검사, 판사 등

이 사회의 강자들이 저지른 범죄를 구체적으로 알 수 있었다. 

 

그리고 정말 제대로 이해할 수 있었던 게 하나 있다. 

'약자와 약자를 싸우게 만드는 시스템'을 볼 수 있게 된 것이다. 

 

최근 온라인에서 화제가 된  '딸배헌터'를 바라보는 관점의 변경을 예로 들 수 있을 것 같다. 

'딸배헌터'란 오토바이 배달 운전자들의 교통법규 미준수 사례를 수집,

신고하는 것으로 유명세를 떨친 유튜버를 말한다. 


이 경우를 보면,

오토바이 배달 운전자들도 약자이고 

그들의 불법 운전에 피해를 보는 이들도 약자이다. 

그들의 불법행위를 촬영하여 신고하는 '딸배헌터'도 약자이고

이에 열광하는 이들도 약자이다. 

약자가 약자와 싸우는 전형적인 현상이다. 

 

나는 이러한 현상이 내내 불만이었지만 

딱히 왜 이게 불만인지 말로 정립할 수는 없었다. 

 

하지만 이제 보인다. 

이 모든 현상 뒤에서 웃음짓고 있는 권력자들의 모습이 말이다. 

 

그 권력자들에게

오토바이 배달원들이 불법 운행을 하지 않도록 예방하고 계도하고 처벌해야 할 책임이 있다. 

그러라고 위임한 권력을 쥐고 있으니 말이다. 

하지만 그들은 움직이지 않는다. 

그 권력자들이 팔짱을 끼고 제 할일을 하고 있지 않기 때문에 

약자가 약자를 처벌하고 또 그 모습을 약자들이 박수를 치며 바라보는 아수라장이 만들어진 것이다. 

 

비난해야 할 것은

약자인 오토바이 배달원들도,

그들을 딸배라 부르며 비하하는 또다른 약자도,

그들의 불법을 촬영하여 신고하는 또 다른 약자도,

거기에 열광하는 또다른 약자도 아니다. 

 

비난받아야 할 이들은 오직 하나!

권력을 위임받고도 시스템을 개선하지도 않고 

그렇다고 예방이나 처벌도 확실하게 하지 않는

권력자들인 것이다. 

 

나는 이러한 현상이 자연스럽게 벌어진 일이 아닌 의도된 거라 생각한다. 

그리고 이 모든 의도의 시작점에 쌍용자동차라는 리트머스지가 있었다고 생각한다. 

 

그런 결심이 들었다. 

 

이들의 추악한 민낯을 할 수 있는 한 최대한 까발려야 되겠다. 

앞으로는 그에 대한 글을 써야 되겠다라고 말이다.

 

이 책을 읽는 날은 술을 마셔야 했다.

내용 하나하나가 내가 감당할 수 있는 수준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하물며 글을 쓰신 분은 어떠셨을까?

촘촘한 기록을 남겨주신 공지영 선생님께 감사드릴 따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