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없이 작아지기-2023 서호주 개기일식 알현기

2023. 5. 9. 18:501. 별과 하늘의 이야기/하늘앓이 - 별지기의 이야기들

1. 서호주 초보.

별지기들은 누구나 남반구에 가서 머리위에 걸려 있는 미리내를 보고 싶어하죠. 

그래서 호주, 특히 서호주는 예전부터 별지기들이 많이 찾는 곳이기도 합니다. 

 

하지만 저는 서호주는 물론 호주조차도 한 번도 가보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포스트 팬데믹의 첫 개기일식이 서호주에서'만' 일어난다는 것은 
저에게는 서호주를 꼭 다녀오라는 계시와 같았습니다. 

 

서호주 노스웨스트 케이프에 살짝 걸쳐 있는 개기일식대.



그런데 막상 서호주 여행을 준비하는데 맘에 걸리는 것들이 많았습니다.
인터넷이나 유튜브를 통해 접한 서호주 여행 정보들은 대개 '오지', '외딴 곳', '모험', '연락두절'과 같은 
부정적 분위기를 풍기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상당히 많은 준비를, 그것도 촘촘하게 해야 했습니다. 
안쥔마님을 모시고 가야했기 때문에 더더욱 많은 준비가 필요했죠. 

그렇게 여행이 시작되었습니다. 

제 여행의 목표는 서호주 엑스머스에서 개기일식을 알현하는 것. 
그리고 서호주에서도 오지라고 평가받는 카리지니 국립공원에서 
남반구의 미리내를 만나고 오는 것이었습니다. 

 

서호주의 관문 퍼스에서 엑스마우스까지, 그리고 카리지니까지의 여정 계획표



2. 호둥이 

서호주의 관문 퍼스공항 - 오리온자리 장식이 멋지긴 했지만 좀 생뚱맞게 느껴지더군요.

 

퍼스에 도착한 후 제일 먼저 한 일은 운전석이 오른쪽에 달려 있는 호주의 도로상황을 익히는 것이었습니다. 
워낙 운동신경이 둔한지라 저에게는 필수조건이었죠


마침 퍼스에는 '캣버스'라는 무료 대중 버스 시스템이 있었습니다. 
그 버스를 타고 퍼스 시내를 누비며 완전히 뒤바뀐 좌회전, 우회전 개념을 익혔죠. 

 

퍼스 시의 무료 버스 캣버스 : 시내를 돌아다니며 우리나라와는 정 반대의 좌회전, 우회전 개념과 신호들을 익혔습니다.

 

그렇게 온전히 하루를 썼습니다. 

그리고 드디어 1년 전에 예약해 놓은 캠핑카를 만나러 갔습니다. 

랜트카 회사 - 그 유명한 Apollo나 Maui를 놔두고 내가 왜 이곳을 찾아갔는지는 알다가도 모를 일입니다.

 

르노 마스타를 개조한 캠핑카 - 화장실과 샤워실, 취사시설과 침대를 모두 갖춘 캠핑카를 Motorhome이라고 하더군요.

차를 인수받기까지 한 시간이 넘게 걸렸습니다. 
렌터카 직원인 호주 할머니께 혼나가면서 사용법을 익혀야 했죠. 

 

영어도 잘 못하고 비상 통신 수단도 준비하지 않은 제가 여러가지로 미덥지 못했나 봅니다. 

어쨌든 그 덕에 한국에서조차 전혀 접해 보지 않은 캠핑카에 대해 속속들이 알게 되었습니다. 

 

할머니의 여러가지 경고 중에 귀에 남는 경고가 있었습니다.
"비포장 도로 들어갔다가 사고나면 우린 일체 책임 안 진다. 그런 경우에는 네가 첨부터 끝까지 알아서 다 해야 해!"

사실 서호주의 비포장 도로에 대해서는 걱정이 많았습니다.
나름 찾아본다고 찾아봤지만 포장 도로와 비포장 도로가 구분된 정보는 찾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게다가 제가 잡은 숙소 중 한 곳은 입구까지 3Km구간이 비포장도로였습니다. 

 

그렇게 불편한 마음을 안고
호주 할머니께 차키를 하사(?) 받았습니다. 

우리와 호주 여행을 함께할 캠핑카에 '호둥이'라는 이름을 지어줬습니다. 
대한민국에 있는 제 차 '흰둥이'의 이름을 빗대어 '호주 흰둥이'를 줄인 말입니다. 

 

호둥이를 살살 끌고 나와 인근에 있는 코스트코를 제일 먼저 들렀습니다. 

우리나라에서 만든 코스트코 맴버십 카드를 그대로 쓸 수 있었습니다. 

 

코스트코에서 3주간의 여행에 필요한 기본 물품들을 구입했습니다.



3.  서호주의 오토 캠핑장

호둥이와 함께 찾은 첫번째 오토 캠핑장은 퍼스 외곽 미드랜드에 있는 BIG4 Midland Tourist Park였습니다. 
처음 모는 큰 차에, 운전석은 반대 방향에, 게다가 생판 처음 겪는 오토 캠핑장에 
여러가지로 익숙하지 않을 것을 예상하여 가까운 거리의 캠핑장을 정했죠. 

 

그 가까운 거리조차 엉금엉금 운전했습니다.

빠르지 못한 속도에 제 뒤로 차들이 줄줄이 이어졌죠. 

하지만 누구 하나 경적을 울리지 않았습니다. 

 

확실히 사람들은 느긋하고 여유있어 보였습니다. 

캠핑장에 도착한 후 매니저에게 오토 캠핑이 내 인생에서 처음이니 좀 도와줬으면 좋겠다고 말했습니다. 

덩치큰 노란눈썹 아저씨가 혼쾌히 따라와서 전선 따는 법,  상수도관 따는 법, 하수도관 연결하는 법을 친절하게 가르쳐줬습니다. 

 

전선과 상수도, 하수도 배관연결 - 첫번째 오토 캠핑장에서 확실하게 배워뒀습니다.

 

서호주 오토 캠핑장의 구조는 대부분 비슷했습니다. 

공동 화장실에 공동 샤워장이 함께 있고

보안을 위해 열쇠를 따로 주거나 키패드의 비밀번호를 알려주거나 했습니다.

화장실과 샤워장은 무척 깨끗했고 뜨거운 물도 아주 잘 나왔습니다. 

 

세탁실도 항상 있었고 가격은 대부분 4달러였습니다.

동전을 미리 준비해야 할 필요가 있는 부분이었습니다. 

리셉션 룸에서 캠핑장 내 지도와 위치를 배정받습니다. 이러한 기본 구조는 어디나 동일했습니다.
공동 바베큐 시설 : 바베큐 시설은 어디서나 무료로 이용할 수 있었습니다.

 

4. 서호주의 하늘

개기일식을 알현드리는 게 가장 큰 목표이긴 하지만 서호주의 밤하늘을 만나는 것 역시 뺄 수 없는 목표입니다. 

그래서 서호주에서도 오지라고 하는 카리지니 국립공원 내의 숙소도 예약했습니다. 

그런데 서호주의 하늘은 이미 도시 근교에서도 그 위력을 뽐내고 있었습니다. 

저희가 경유한 두 번째 오토 캠핑장은 퍼스에서 불과 100여 킬로미터 밖에 떨어지지 않은 
레지 포인트라는 작은 도시의 오토 캠핑장이었습니다. 
캠핑장에는 주말을 즐기려는 퍼스 시민들이 가득했고 그만큼 잡광도 많이 있었습니다. 

하지만 밤이 찾아왔을 때 하늘에는 이미 미리내의 남쪽 자락이 위엄을 떨치고 있었습니다. 

 

초저녁에도 미리내의 남쪽 띠가 선명하게 눈에 보였습니다.


대마젤란 은하와 소마젤란 은하는 맨눈으로도 선명하게 보였습니다. 

그 모습이 너무나 황홀하여 사진을 찍고 있자니 
호주 아이들이 다가와서 호기심 많은 눈을 반짝였습니다. 

 

사진에 담긴 은하의 띠를 아이들에게 보여주며 말했습니다. 

"이거 우리 은하야! 너희들은 좋겠다 이런거 볼 수 있어서. 아저씨가 온 한국에서는 볼 수 없는 장면이야!"

 

아이들과 함께 온 호주 아저씨가 묻더군요.
"한국에선 왜 못 보냐? 미세먼지 때문이냐?"

헉... 이 사람들이 대한민국 미세 먼지를 어떻게 알아...ㅜㅜ;;;

"아냐아냐 미세 먼지 때문이라기 보다는 위도 때문이야.
 울 나라에서는 이 부분은 지평선 아래 있어서 볼 수가 없어."
 
"너 천문학자냐?"

"아니, 난 아마추어 천문인이고 일식 보러 왔어."

"일식?"

"담주에 엑스머스에서 개기일식 있어."

"아 그래? 그런데 거기 지금 싸이클론 지나가는데"

"일기예보에서 담주엔 맑아진다고 했어."  

한창 그런 얘기를 나눴습니다. 
옆에서 보던 안쥔마님이 그러더군요. 
평소에는 어눌한 영어가 막 터져서 아주 신나게 말하더랍니다. 

사랑하는 일이라면 누구나 그렇게 되는 거 아닐까요? ^^

 

아름다운 저녁노을을 보며 즐기는 저녁식사

 

아직 어둠이 오지도 않았는데 터져나오는 별빛들

 

초저녁부터 위용을 뿜내는 용골자리 은하수 띠와 오른쪽의 대마젤란 은하와 소마젤란 은하.

 


5.  밤운전

여행 준비 때 느낀 서호주의 살벌한 이미지는 실제 서호주를 몸으로 겪으며 완전히 불식되었습니다. 

잘 포장된 도로망, 군데군데 수도 없이 포진해 있는 오토 캠핑장과 깔끔한 시설,
중간중간 적절하게 위치하고 있는 화장실과 휴게소 등 서호주의 인프라는 생각 이상으로 훌륭했습니다. 

물론 땅이 너무 넓고 인적이 드물어 통신이 안되는 지점이 있고 

곳곳에 갑작스럽게 홍수가 흐르는 지점이라는 경고판이 있는 등 분명 조심해야 할 점이 있긴 했지만 
서호주에 대해 강요되는 거친 느낌은 다녀온 사람들의 모험담이 과장되며 만들어진 거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정말 조심해야 할 게 딱 하나 있는 것 같습니다.

그건 바로 밤운전입니다. 

서호주에서의 밤운전은 금기시 되는 항목입니다. 
특히 로드킬이 많이 언급됩니다. 

안그래도 서호주를 다니며 로드킬 당한 캥거루를 수도 없이 많이 봤습니다.
야생동물이 로드킬 당하는 것도 문제지만 자칫 덩치가 큰 캥거루가 차에 부딪히면 사람까지도 위험할 수 있다고 합니다. 

이러한 점들을 미리 들었음에도 불구하고 
하루는 시간 안배를 하지 못해 해가 완전히 떨어진 상태에서 150킬로미터를 이동해야 했습니다. 

사실 개인적으로 밤운전을 워낙 많이해서 대수롭지 않게 생각했던 것 같습니다.
깜깜한거야 이미 알고 있는 거고
로드킬도 어쩌다 한 번 생기는 것이니 그것 때문에 지레 겁먹을 필요가 없다고 생각했죠. 

하지만 다른 위험요인이 있었습니다.
바로 너무나 좁은 도로폭이었죠. 

 

덩치도 크고 하나같이 거대한 차를 몰고 다니는 애들이 도로는 왜 이리 좁은지 모르겠더군요. 아마도 비용 문제겠죠.



중앙선이라고는 흰색 실선과 점선이 전부인 그 폭 좁은 도로 맞은편으로 거대한 트럭들이 돌진해왔습니다. 
심리적인 부담감이 어마어마했죠. 

특히 도로가 워낙 광활하게 뻗어 있다보니 
맞은편에 나타난 자동차 전조등의 거리가 가늠조차 되지 않았고 그 차의 규모도 알 수 없었습니다. 
가뜩이나 폭좁은 도로에서 중앙선에서 어느 정도 거리를 벌리고 있어야 할지 계속 신경을 쓰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그러다가 자칫 한쪽 바퀴가 노견을 벗어나면 차가 크게 흔들렸습니다.
이래서 사고가 나는구나 싶었죠. 

 

편도가 아니라 왕복차선입니다. 하얀 점선이 중앙선이죠. 노견이 비포장인 도로도 상당히 많아 야간 운전은 결코 쉽지 않았습니다.


목적지에 거의 접근해서 긴장이 약간 풀렸을 때 길 바로 옆에 캥거루가 나타났습니다.
지금 생각해도 정말 가슴 쓸어내리는 순간입니다. 
차도로 안 달려든 캥거루가 얼마나 고마왔는지 모릅니다. 

그렇게 야간 운전을 한 번 한 후 정말 다시는 해가 떨어진 다음에는 운전하지 않아야겠다고 다짐했습니다. 


6. 엑스머스 입성.


2023년 4월 19일.
드디어 목표로 했던 서호주 엑스머스에 입성했습니다. 

 

드디어 엑스머스에 입성했습니다.

 

 


서호주의 작은 휴양도시 엑스머스는 일식 이벤트 준비와 관광객들로 붐비고 있었습니다. 

 

우리는 엑스머스 동쪽 외곽, 비교적 한적한 곳에 자리잡은
엑스머스 골프 클럽 주차장에 자리를 잡았습니다. 

많은 관광객이 몰려 기존 인프라로는 관광객을 모두 수용할 수 없을거라 판단한 서호주 관광청에서는

엑스머스 주민들의 협조를 받아 임시 카라반 파크를 여러 곳에 설치했습니다.

엑스머스 골프 클럽도 그 중 하나였고 운좋게 그곳에 자리를 잡을 수 있었죠. 
엑스머스의 아름다운 바다가 보이는 그곳에서 편안하게 일식을 기다릴 수 있었습니다. 

 

엑스머스 골프클럽에 마련된 임시 카라반 파크

 

고즈넉한 엑스머스만의 바다풍경

 

 

7. 한없이 작아지기 - 4년 만에 알현드리는 개기일식


2023년 4월 20일. 
드디어 개기일식이 예고된 그 날이 되었습니다. 

 

아침부터 바람이 강하게 불고 하늘엔 정말이지 구름 한 점이 없었습니다. 

 

저는 아침 일찍 짐을 싸들고 바닷가 모래 언덕에 자리를 잡고 일식을 기다렸습니다. 

떠오르는 해를 바라보았습니다.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약속된 장소에 제가 왔습니다.
해님보다도 
달님보다도 
제가 더 먼저 나왔습니다.

당연한 일입니다. 

제가 당신들보다 훨씬 작으니까요. 

 

달그림자를 내려줄 4월 20일의 해가 장엄하게 떠올랐습니다.



그 생각과 함께 눈물이 왈칵 쏟아졌습니다. 

저는 딱히 이런 삶을 살기 위해 목표를 세운 것도 아니고
사명감이 있는 것도 아닙니다. 
저는 그저 이리저리 떠밀려 살아온 보잘것 없는 사람입니다. 
그런 제게 이런 순간이 허락된 게 너무 고마웠습니다. 
너무 고마와서 눈물이 쏟아져나왔습니다. 

그 하늘에 말했습니다.

 

저는 얼마든지 작아질 수 있습니다. 

해와 달은 물론 우주를 가득 채우고 있는 모든 것들보다 
훨씬 더 작아질 수 있습니다. 

너무너무 고마와서

제가 아무리 작아져도 아쉬울 게 하나도 없습니다. 

"부탁드립니다.

 그저 지금처럼
 하늘만 바라보면 
 행복한 사람으로
 남게 해 주세요."


4년 만에 알현드린 개기일식의 장관

 

 

개기일식을 알현드린 후 최대한 편안히 쉬었습니다. 

 

2023년 4월 20일. 빛과 어둠이 함께 넘쳐났던 그 하루가 저물었습니다.


빨래줄을 걸고 빨래도 했습니다.

정신없이 달려오느라 지친 몸과 마음에 휴식을 주며 그 다음 일정을 준비했습니다. 

 

엑스머스의 밤하늘을 장식하는 미리내.

 

 

8. 개미왕국의 밤하늘 

 

엑스머스에서의 일식 알현을 마친 다음날.
서호주에서도 오지라 일컫는 카리지니 국립공원에 다녀왔습니다. 

카리지니 국립공원의 관문 도시인 톰 프라이스에서 1박, 
카리지니 국립공원 내에 위치한 에코 리트리트라는 친환경 오토 캠핑장을 표방하는 숙소에서 2박을 했습니다. 

다녀오는 길에 우여곡절이 많았습니다. 

최단거리를 잡아주는 구글 지도 기반의 네비게이션
포장도로 경로를 우선 보여주는 서호주 관광청 지도

 

우선 구글지도에는 표시되지 않은 비포장 도로를 우회하느라

애초에 8시간으로 예상했던 운전 시간은 9시간으로 늘어났습니다.

아침에 일찍 출발하지 않았다면 또 야간 운전을 할 뻔 했습니다. 

 

톰 프라이스에서는 호둥이의 한쪽 타이어가 주저 앉아 
이탈리아 청년의 도움을 받아 타이어를 갈아 꼈습니다.

 

평크난 타이어

 

캠핑장 스태프로 일하는 이탈리아 청년과 함께 메뉴얼을 보며 스페어 타이어로 교체하는데 성공했습니다.


스페어 타이어를 써버렸으니 새로운 스페어 타이어를 마련해야 했지만 

주말을 맞은 서호주의 가게들은 그 어디도 문을 열지 않았습니다. 

 

연장 근무야 당연히 바라지도 않습니다만, 규정된 근무시간보다 한 시간이나 먼저 문을 닫아버리는 건 좀 야속하더군요.

 

길에서 만난 엄한 호주 공무원들에게 왜 가게들이 이렇게 문을 빨리 닫냐, 어디 다른 타이어 가게 없냐고 따지는 중.

 

주말이 지나 월요일이 되어 타이어 가게들이 문을 열긴 했습니다. 

하지만 내가 원하는 사이즈의 타이어는 재고가 없다고 하더군요. 

결국 우려했던 비포장 도로가 가장 많은 구간들은 물론 돌아오는 길에는 스페어 타이어 없이

조마조마한 마음을 안고 이동해야 했죠. 
하지만 천만다행으로 타이어는 더 이상 우리를 속썩이지 않았습니다. 

그 덕에 잡광이라곤 거의 없는 에코 리트리트에서 남반구 하늘의 은하수를 만끽할 수 있었고,
카리지니 국립공원의 장엄한 협곡들도 즐길 수 있었습니다. 

 

 

카리지니 협곡 트래킹.

 

카리지니 협곡 트래킹 - 서호주에 수영복을 가져간 이유는 바다 때문이 아니라 협곡 트래킹 때문입니다. ^^
골든 아웃백의 붉은 모래 - 이 붉은 모래들이 석양을 받으면 황금색으로 빛나기 때문에 골든 아웃백이라 합니다.

 

에코 리트리트에서 만난 개미집과 밤하늘



 

 

9. 대안 - 별보기 좋은 카라반 파크.

아마 서호주 천체관측 여행을 준비하시는 별지기라면 
아마 저처럼 카리지니 국립공원과 그 안에 있는 에코 리트리트를 비롯한 오토 캠핑장을 떠올리실 수 있으실 겁니다.
저 역시 그런 정보를 사전에 조사해서 다녀왔으니까요. 

물론 카리지니를 저는 절대 강추합니다. 
시간이 되신다면 꼭 가보시기를 권합니다. 

다만 카리지니는 들어가고 나오는데 각 하루씩, 꼬박 이틀을 써야 하는 문제가 있습니다. 

 

그런데 이번에 카리지니 못지 않은 괜찮은 하늘을 가진 오토 캠핑장을 정말 우연히 하나 만났습니다. 
돌아오는 길에 들른 '불라라 스테이션 스테이'라는 오토 캠핑장입니다. 

 

Bullara Station Stay 오토 캠핑장 입구


서호주에서 만난 모든 오토 캠핑장이 저마다 독특한 특징들을 가지고 있었지만
불라라 스테이션 스테이야말로 그 중에서도 가장 독특한 곳이었습니다. 

우선 오후 다섯 시에 캠핑장 사람들이 함께 보여 댐퍼 빵을 나눠 먹고 얘기를 나누는 시간이 있었습니다. 

오후 5시 캠핑장 사람들이 함께 모여 인사를 나눕니다.
댐퍼빵을 나눠주는 아주머니 - 멀리서 온 이방인에게도 친절하게 웃으며 빵을 나누어 주셨습니다.

 

잘 들을 수는 없었지만 이곳은 은퇴한 노인분들 몇몇이 뜻을 모아 만든 캠핑장인 것 같더군요. 
빈티지 넘치는 곳곳의 장식과 소품들도 충분히 매력적이었지만 
제게 가장 큰 매력은 바로 이곳의 한적한 위치와 그로인해 갖게 되는 검은 밤하늘이었습니다. 

 

불라라 스테이션 스테이의 위치 : 바다에서도 어느 정도 떨어져 있고 도시의 잡광에서도 떨어져 있어 밤하늘이 상당히 괜찮았습니다.

 

빈티지 감성 가득한 불라라 스테이션 스테이의 풍경

 

빈티지 감성 가득한 불라라 스테이션 스테이의 풍경



전날까지 에코 리트리트에서 배터리를 모두 써버린 바람에 
이곳에서 밤하늘 사진을 찍지 못한 것이 지금도 내내 아쉬움으로 남습니다. 

서호주의 밤하늘을 즐기고자 하시는 별지기 분들 중 카리지니까지 진입하기에 시간 제약이 있으신 분들은 
이곳 불라라 스테이션 스테이도 충분한 대안이 될 수 있을거라 생각합니다. 


10. 서호주에 두고 온 마음 한 자락. 

시간에 얽매이지 않은 백수가 된 덕분에 
학생 시절에도 하지 못했던 3주간의 긴 여행을 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서호주는 너무나 넓어 제가 다녀본 곳은 극히 일부에 지나지 않습니다. 

퍼스로 돌아온 후 호둥이를 반납했습니다.


호주 할머니께서 무사히 돌아온 우리를 무척 반겨 주셨습니다. 

중간에 스페어 타이어 구매 관련 돈 내는 문제로 옥신각신한 터라 더더욱 걱정이 컸나 봅니다. 

어쨌든 우리는 스페어 타이어 없이 무사히 잘 돌아왔습니다. 

우리가 무려 4,800 킬로를 이동했다며 놀라워 하시더군요. 

접대성 발언이었겠지만 다음에 또 오면 특별 할인을 해 주겠다는 말씀을 하셨습니다. 
절대 잊지 않고 잘 기억하고 있다가 또 오겠다고 대답했습니다. 

그런데 사실 정말 또 가고 싶긴 하네요. 
그 곳에서 만난 대자연과 사람들이 지금도 눈앞에 어른거립니다. 

 

우리 부부에게 안녕하세요? 라며 한국말로 먼저 인사를 거낸 호주 사람들도 있었습니다. 

음주 측정을 하겠다며 우리를 세운 경찰 아저씨도 한국말로 인사를 하더니 

음주 측정을 하기위해 쓴 플라스틱 빨대를 기념이라며 주시더군요. 

물론 얼마 안가 버렸지만 유쾌한 경험이었습니다. 

 

파리왕국 - 우리 나라 시골 장터에서 사간 양봉 모자는 서호주에서 가장 요긴한 필수품이었습니다.

 

개미왕국 - 들판을 가득 채우고 있던 붉은개미 집들.

 

식탁에 날아든 앵무새 (톰 프라이스)

 

사람을 구경하러 온 듯한 몽키미아의 돌고래 모자.


비록 팬데믹이 세상을 바꾸어 놓았고 
그 사이 저는 인생을 바꾸었지만 
언제나 그렇듯
모든 것들은 성큼성큼 앞으로 걸어가고 있습니다. 

저역시 그렇습니다. 

비록 똑똑치 못한 발걸음 때문에
여전히 넘어지고 여전히 상처를 입고 있지만 
어제보다는 하나 더 배운 오늘을 살아가고 있습니다. 

값진 배움과 소중한 시간을 허락해준 서호주의 모든 순간순간에 감사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