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TAR TALES 1장 - 별을 기록하다 6. 애드먼드 핼리의 남반구 별목록

2024. 9. 19. 15:491. 별과 하늘의 이야기/STAR TAL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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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77년 2월, 스무 살의 옥스포드 학생이었던 에드먼드 핼리(Edmond Halley, 1656~1742)는 남대서양에 위치한 영국령 세인트 헬레나 섬에 도착하였습니다. 
그의 목적은 남반구의 별을 관측하는 것이었죠.
그 결과물은 남반구 하늘을 처음으로 망원경으로 관측하여 제작한 신뢰도 높은 별목록이 되었습니다.

 

이때, 이미 존재하던 남반구 별자리 사이에 핼리가 집어넣은 새로운 별자리가 있는데 그 이름은 로부르 까롤리눔(Robur Carolinum)으로서 당시 영국의 왕이었던 찰스 II세를 기리는 목적의 별자리였으며 '찰스의 참나무'라는 뜻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핼리는 왜 남쪽으로 갔던 것일까요?

이전 세기 말에 티코 브라헤(Tycho Brahe)가 북유럽에서 거의 1,000 여 개에 달하는 별의 좌표를 공들여 제작하였습니다.
티코 브라헤의 관측은 단순한 장비의 도움을 받아 맨눈으로 이뤄낸 것이었습니다. 
티코 브라헤가 죽을 때까지 망원경이 발명되지 않았기 때문이죠.

핼리의 멘토이자 1675년 찰스 2세에 의해 그리니치의 첫번째 왕실 천문학자로 임명된 존 플램스티드(John Flamsteed)는 
망원경을 이용하여 북반구 별을 좀더 광범위하고 정밀하게 관측하였습니다.
그러나 남반구 하늘은 여전히 잘 알려지지 않은 상태였고 핼리는 플램스티드의 관측을 남반구 극점까지 확대하여 천문학에 기여할 수 있는 기회를 포착한 것이었습니다.

당시 남반구 별을 관측한 자료는 네덜란드의 항해가 피터 디르크스준 케이저(Pieter Dirkszoon Keyser)와 프레데릭 드 후트만(Frederick de Houtman)의 75년 전 관측자료를 기반으로 한 불완전하고 세밀하지 못한 목록이 전부였습니다.

 

핼리는 동인도회사 선박의 도움을 받아 남위 16도에 있는 세인트 헬레나 섬에 가기로 결정했죠.
핼리의 생각에 그곳은 남반구 하늘을 관측할 수 있는 최적의 장소였습니다.
핼리는 이미 1677년 세인트 헬레나 섬에서 일식과 월식, 그리고 태양의 전면을 가로지르는 수성의 통과 현상까지 모두 볼 수 있을 것이라는 걸 알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학위를 마치기도 전에 옥스포드를 떠나 목적한 시간 내에 세인트 헬레나 섬에 도착했죠.

세인트 헬레나 섬에서의 핼리

핼리가 런던을 떠난 것은 1676년 10월 말에서 11월 초였습니다. 

그는 망원경에 부착된 거대한 육분의와 작은 사분의, 여러 개의 굴절망원경을 함께 준비했습니다. 
이 모든 비용은 런던에서 비누 공장을 운영하는 핼리의 아버지가 지불했습니다.
핼리가 준비한 장비는 모두 훌륭한 장비였고 핼리는 이들 모두를 능승하게 다룰 줄 알았습니다. 
그는 이미 옥스포드에서 이 장비를 이용하여 플램스티드와 함께 관측을 하곤 했었죠.

그러나 다른 한편에서는 준비가 제대로 되지 않은 측면도 있었습니다.
우선 핼리는 세인트 헬레나 섬의 지형과 기후에 대해서 아는 것이 많지 않았습니다.
나중에 판명난 대로 그곳의 기후는 핼리의 소망과는 달리 구름이 끼는 날이 많았으며 하루 밤에 관측가능한 시간은 한 시간이 채 되지 않았습니다.
비교적 맑을 때에는 장비와 공책이 이슬을 잔뜩 뒤집어 써 축축해 지곤 했죠.

핼리는 천문대를 세운 위치를 정확하게 언급하지 않았습니다. 
다만 섬 중앙에 지금은 '핼리의 산'이라 부르는 능선에 세웠을 것으로 추정되고 있습니다.
지금 그곳에서는 두 개의 방을 구획한 낮은 돌담을 볼 수 있죠.
서쪽에 있는 두 개 방(박스글 사진 오른쪽)이 핼리가 관측을 진행한 곳이었을 것으로 추정되며 지금은 이를 기리는 기념비가 서 있습니다.
다른 방은 이곳에 신호소가 들어선 19세기에 추가된 것으로 보입니다.

 

세인트 헬레나 섬의 핼리 천문대




세인트헬레나 섬 중심 근처, 핼리의 산(Halley’s Mount)이라 부르는 능선에 낮은 돌담들이 이 섬에 남아 있는 핼리 천문대의 잔해 전부입니다.

관측은 오른쪽 방에서 이루어졌습니다. 
왼쪽에 있는 담은 1803년 이곳에 신호소가 설치될 때 추가된 것으로 추정됩니다.

사진 중앙의 기념비는 1977년에 세워졌습니다.
비문은 다음과 같습니다.

"이곳은 에드먼드 핼리의 관측소입니다.
 그는 1677년부터 1678년 사이에 이곳에서 남반구 하늘의 별을 기록하였습니다."

 (사진 제공 : 폴린(Pauline), 존 그림셔(John Grimshaw))


핼리는 세인트 헬레나 섬에서 1년 이상 관측을 진행하였습니다.

 

1678년 런던으로 돌아온 핼리는 재빨리 자신의 기록을 인쇄했죠.
핼리는 1678년 7월까지 별지도를 그렸습니다.
그리고 11월에 로버트 후크(Robert Hooke)에게 별목록표를 선물하고 완성된 목록을 왕립학회에 제출했죠. 
이로서 핼리는 같은 달 왕립학회 회원으로 선출되었습니다.

 

핼리의 목록은 1679년 초 <남쪽 별목록(Catalogus Stellarum Australium)>이라는 제목에 '티코 브라헤의 별목록을 보충하며(Supplementum catalogi Tychonici)'라는 부재를 달고 출판되었습니다.
플램스티드는 핼리에게 '우리의 남반구 티코 친구(our southern Tycho)'라는 별명을 달아주었습니다.

핼리목록(Halley’s catalogue)

핼리의 별목록에는 341개 별이 담겨 있습니다. 
핼리가 애초에 목표했던 것보다는 아주 적은 수였죠.

그러나 1677년 2월부터 1678년 2월까지 고작 일년의 기간에 그처럼 많은 별의 위치를 측정할 수 있었던 것은 티코 브라헤가 가장 정확하게 측정한 별을 기준점으로 삼아 측정했기 때문입니다. 

핼리의 관측에는 망원경이 동원됐기 때문에 티코 브라헤의 관측보다는 좀 더 정확한 것으로 간주되고 있습니다.
그러나 목록의 전반적인 신뢰도는 몇몇 참고 별의 위치에 오류가 있어 한계가 있습니다.

플램스티드의 조수인 아브라함 샤프(Abraham Sharp)는 나중에 플램스티드의 개선된 목록표에서 몇몇 참고지점을 뽑아 핼리가 목록에 담은 별의 좌표를 다시 계산했습니다. 
그리고 그 결과를 1725년 플램스티드 사후 그의 별목록에 보충자료로 출간했습니다.
이로서 플램스티드의 자료는 처음으로 모든 하늘의 별을 담은 목록이 되었습니다.
(이 보충자료에는 플램스티드에 의해 이미 목록화된 것은 제외한 나머지 별 265개가 추가되었습니다.)

비록 이 와중에 핼리와 플램스티드의 사이가 나빠졌고 1712년, 플램스티드의 목록이 본인의 허락없이 발행되는 등, 이런 저런 사건이 있었지만, 이로써 플램스티드의 위대한 작업을 남반구까지 확장시키려 했던 핼리의 목표는 완성되었다고 할 수 있습니다. 

핼리의 별지도와 별목록에는 영국에 대한 애국심이 포함되어 있습니다. 
로부르 까롤리눔(Robur Carolinum)이라는 이름의 '찰스의 참나무자리'가 바로 그것입니다.

이 별자리는 1651년, 찰스 2세가 우스터 전투에서 의회파에게 패한 후 도망치는 와중에 몸을 숨긴 나무를 기념하기 위해 만들어졌습니다.
핼리는 아르고자리의 일부 별을 이용하여 이 별자리를 만들었죠.
비록 이 별자리는 핼리와 친분이 있었던 요하네스 헤벨리우스(Johannes Hevelius)의 별지도에도 등장하지만 이 별자리를 받아들이는 천문학자는 많지 않았습니다.
핼리가 기록한 그 외의 별자리들은 모두 이미 존재하는 것들이었습니다. (아래 표 참고)

핼리가 머물던 당시 세인트 헬레나 섬은 날씨가 좋지 않았기 때문에 남쪽물고기자리에서는 오직 별 하나(1등급의 별 포말하우트)만을 관측할 수 있었고,  인디언 자리에서는 별을 하나도 볼 수 없었습니다. 
이리자리의 별들은 바다에 있는 동안 - 아마도 집에 돌아오는 중에 - 관측할 수 있었기 때문에 정확성이 떨어집니다. 

간혹 핼리가 캔타우루스자리 오메가 구상성단을 발견했다고 얘기되곤 하는데 이는 사실이 아닙니다.
핼리는 이 천체를 캔타우루스자리에 21번째 천체로 등록하면서 성운으로 기록했습니다.
하지만 이 천체는 비록 성운기에 대한 언급은 없어도 이미 알마게스트에 5등급 별로 기록되어 있던 천체입니다. 

그러나 핼리는 용골자리 에타별로 알려져 있는 4등급의 특이한 변광성을 처음 기록하였습니다. 
이 별은 찰스의 참나무자리 중 하나를 구성하고 있죠
핼리의 목록에 대해 보다 자세한 정보를 보고자 한다면 프랑크 베어분트(Frank Verbunt)와 로베르트 반 겐트(Robert van Gent)가 쓴 <남쪽 하늘의 초기 별목록(Early star catalogues of the southern sky>이라는 논문을 참고하세요.

 

핼리의 남반구 별자리 목록표
숫자는 핼리가 각 별자리에서 관측한 별의 수입니다.
괄호 안의 숫자는 플램스티드 별목록에서 보충된 별의 숫자입니다.
전갈자리(Scorpius) 29  (9)   남쪽왕관자리(Corona Australis) 12  (12)
궁수자리(Sagittarius) 21  (4) 두루미자리(Grus) 13  (13)
에리다누스강자리(Eridanus) 30  (15) 봉황자리(Phoenix) 13  (13)
큰개자리(Canis Major) 5  (0) 공작자리(Pavo) 14  (14)
남쪽물고기자리(Piscis Austrinus)  
[각주 1]
1  (0) 극락조자리(Apus Avis, Indica)
[각주 4]
11  (11)
비둘기자리(Columba Noachi) 10  (10) 파리자리(Musca Apis) 4  (4)
아르고자리(Argo Navis) 46  (42) 카멜레온자리(Chamaeleon) 10  (10)
찰스의 참나무자리(Robur Carolinum) 12  (12) 남쪽 삼각형자리(Triangulum Australe) 5  (5)
바다뱀자리(Hydra) 5  (0) 날치자리(Piscis Volans) 8  (8)
켄타우루스자리(Centaurus)  
[각주 2]
35  (30) 황새치자리(Dorado, Xiphias) 6  (6)
이리자리(Lupus)  [각주 3] 23  (19) 큰부리새자리(Toucan, Anser Americanus) 9  (9)
제단자리(Ara, Thuribulum) 9  (9) 물뱀자리(Hydrus) 10  (10)

 

각주 
1. 포말하우트는 큰개자리의 별로 추가되어 있습니다. 
2. 여기에는 오늘날 남십자자리에 속하는 별 네 개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3. 이리자리의 별 중 마지막 여섯 개는 바다에서 관측한 것입니다. 
4. 별자리 목록표에 쉼표가 등장합니다.
   이는 명백한 오타이며 이 별자리의 이름은 '아푸스(Apus)', '아비스 인디카(Avis Indica)'로 읽어야 합니다. 
   이 오류는 아브라함 샤프가 별자리 목록의 새로운 버전을 만드는 중에 교정되었습니다.

이 별자리표에 등장하는 별의 총 수는 341개이며 모두 22개 별자리에 걸쳐서 등장하고 있습니다.
핼리는 케이저와 드 후트만이 설정한 12개의 남반구 별자리를 모두 받아들였습니다. 
그러나 핼리의 별목록에는 11개의 별자리만이 등장하는데 이는 날씨 문제로 인디언자리를 관측하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그럼에도 핼리의 남반구 별지도에 인디언자리가 있긴 합니다. 
그 외의 별자리 중 11개는 프톨레마이오스 목록에 등장하는 것이고 하나(비둘기자리)는 플란키우스가 만든 것이며 찰스의 참나무자리는 핼리 자신이 만든 것입니다.

존 플램스티드의 조수였던 아브라함 샤프(Abraham Sharp)는 핼리의 별자리 위치를 다시 계산하여 플램스티드 별자리 목록에 남쪽 별자리로 보충하였습니다. 
샤프가 추가한 것에는 플램스티드가 관측을 하지 않은 총 265개의 별이 보충되어 있습니다. 
그러나 핼리가 최초 관측자임을 따로 적시하지는 않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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번역자 주석 :
1. STAR TALES는 영국의 천문작가 이안 리드패스(Ian Ridpath)의 별자리 개론서입니다. 
2. 원문은 이안 리드패스가 운영하는 홈페이지에서 확인하실 수 있습니다.     
3. 본 글은 저자의 허락을 받아 포스팅한 글입니다. 
   원문과 번역문 모두 저작권법에 의하여 보호받는 저작물이므로 무단 복제 및 배포를 금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