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빌로니아의 말자리(the Horse)는 오늘날 별자리 기준으로 페가수스자리와 도마뱀자리 사이에 있는 별자리였습니다.
이 별자리는 페가수스자리의 원형이긴 합니다만 두 별자리는 상당히 다릅니다.
페가수스자리의 이미지는 날개를 가진 말입니다.
하지만 별지도 상에서는 여러 뒤틀린 요소를 가지고 있죠.
위아래가 뒤집힌 채로 그려질 뿐만 아니라 하반신은 완전히 사라져버렸기 때문입니다.
이와 달리, 바빌로니아의 말자리는 똑바로 선 온전한 모습의 말로 그려집니다.
페가수스자리와 겹치는 부분은 앞다리 뿐이죠.
수메르인들은 말을 '산당나귀'로 불렀습니다.
이 이름을 통해 말이 메소포타미아의 동쪽 지역에서 전달되었음을 알 수 있습니다.
말이 메소포타미아에 유입된 것은 기원전 3천년 대 중기입니다.
이때 실린더 형 인장의 장식으로 처음 등장하죠.
장식에서 말은 다양한 모습으로 그려져 있습니다.
짐마차를 끄는 말도 있고, 사람이 직접 타고 있는 말도 있습니다.
말의 지구력과 속력을 이용할 줄 알았던 첫 번째 사람들은 아마도 전령들이었을 것입니다.
가장 놀라운 것은 우주적 대잔치를 그린 인장에 말이 원숭이와 사자, 황소와 함께 등장한다는 것입니다.
이 인장에서 말은 술을 마시고 음악을 연주하며 춤을 추는 모습으로 등장합니다.(그림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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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 1 동물들의 축제와 춤 |
수메르어로 말자리는 물 안셰-쿠르-라(Mul Anše-kur-ra)로 표기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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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카드어로는 '시수(sisû)'로 읽습니다. 이 단어 역시 '말'을 뜻합니다. |
'안셰(Anše)' 표기는 당나귀의 머리를 그린 것입니다. 이 표기는 당나귀와 노새, 낙타와 야생당나귀를 표기할 때 가장 먼저 표기되는 기호입니다. '쿠르(Kur)'는 '산'을 의미합니다. 이 표기는 '동쪽'을 의미하기도 합니다. 자그로스 산맥이 메소포타미아의 동쪽 국경선을 형성하기 때문입니다. 마지막으로 '라(Ra)' 기호는 소유격 문법 표기입니다. 따라서 전체 의미는 '산의 당나귀'가 됩니다. |
바빌로니아의 말자리는 여러 세기 후 중세 아라비아에서 완전한 형태의 말자리로 재등장하는 원천이 된 것으로 보입니다.
알수피는 '우라노메트리(Uranometry)'에서 말자리를 익히 잘 알려진 별자리인 페가수스자리 및 조랑말자리와 나란히 두었습니다.
알수피는 또한 이 별자리를 구성하는 별의 좌표도 상세하게 기록하였습니다.
따라서 이 별자리는 충분한 신뢰도로 재구축할 수 있죠.
이 별자리의 대략적인 위치와 방향은 또다른 아라비아의 필사본에도 등장하는데 여기서 말자리는 안드로메다자리 및 아라비아의 낙타자리와 이어져 있습니다.(그림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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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 2 중세 아라비아의 필사본에 등장하는 낙타자리와 말자리 및 안드로메다자리 |
말자리와 직접적으로 연관된 신화가 기록된 점성술 문서는 아직 발견되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말자리는 신아시리아 시대(기원전 10세기~7세기)까지 태양신 샤마쉬(Šamaš) 및 날개를 가진 원반과 함께 그려졌습니다.(그림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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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 3 말자리와 날개를 두른 원반 |
말자리와 태양신의 연관성은 아주 오래된 전통이 확실합니다.
청동기 시대 유럽 예술작품에서 태양의 마차를 끄는 말이 등장하기 때문입니다.
또한 인도 베다 문학에서도 말은 불 및 태양과 동일한 정체성을 가진 짐승으로 등장합니다.
베다 문학에 등장하는 말은 태양을 상징하는 여러 개의 신화적 속성을 가집니다.
말은 물에서 태어났고 몸통은 태양 그 자체이며, 말의 영혼은 태양의 새로 식별되죠.
말의 거룩한 마구는 '질서의 수호자들'에 의해 관리됩니다.
단어 자체로는 신화의 수사슴을 연상시키는 갈기는 '황금빛이며 발굽은 청동으로 되어 있고, 생각의 속도보다 빠르다'라고 묘사됩니다.
말의 갈기는 수사슴의 황금뿔처럼 태양에서 뻗어나오는 빛줄기를 상징합니다.
태양빛과 갈기의 관계는 태양신을 찬양하는 베다의 시에 명백하게 나타납니다.
일곱 마리의 갈색 암말이 당신을 마차에 싣고 갑니다.
갈기와 화염을 휘날리는 태양신께서
멀리서 바라보고 계십니다.
말자리가 갖는 태양의 상징은 이 별자리의 위치도 반영합니다.
말자리는 열 번째 달(오늘날의 12월 ~ 1월) 동지 직후에 태양과 함께 떠오릅니다.
말자리는 여러 측면에서 수사슴자리(the Stag)보다 후대 버전으로 이해할 수 있습니다.
수사슴자리 역시 하늘의 강물과 재탄생한 태양, 그리고 훨씬 더 고대 시대의 열 번째 달과 연관이 있습니다.
점성술문서에서 말자리는 종종 폭풍을 권능을 가지고 사자머리와 독수리 몸통으로 묘사되는 안주자리(the Anzu-bird)와 동일시됩니다.
이는 말자리의 수메르어 이름인 안셰(Anše)와 안주라는 아카드어 이름의 발음이 유사하기 때문인 것 같습니다.
비슷한 발음을 활용한 언어유희 현상은 다음의 예언에서 명백하게 나타납니다.
만약 야생 양이 안주에게 가까이 다가가면
안셰가 죽을 것이다.
이처럼 밀접한 연관성 때문에 저는 기원전 3천 년기 중반, 별자리가 재정비될 때, 안주자리가 사라지고 그 자리에 말자리가 놓였을 것이라고 추정한 적이 있습니다.
하지만 지금은 안주자리가 표범자리(the Panther)로 대체되었다고 생각합니다.
안주자리의 천둥새가 가지는 물과 관련된 특성을 표범자리가 품고 있기 때문입니다.
오늘날 안주자리의 유산은 백조자리로 그 명맥을 유지하고 있습니다.
결국 말자리의 기원과 이 별자리가 어떤 별자리를 대치한 것인지는 여전히 수수께끼 속에 남아 있으며 아직까지는 만족할만한 답을 찾지 못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말자리와 안주자리의 밀접한 연관성은 페가수스자리를 둘러싼 고대 그리스의 별자리 상징을 이해할 수 있는 단서가 될지도 모릅니다.
고대 그리스 신화에서 페가수스자리는 샘물과 밀접한 연관성이 있습니다.
어떤 자료에서 페가수스는 서쪽 멀리 있는 '대양의 샘물'로부터 탄생했다고 하죠.
페가수스라는 이름 역시 '샘'을 의미하는 그리스어에서 파생된 것이라는 의견도 있습니다.
또다른 신화에서 페가수스는 땅에 발굽을 굴려 헬리콘 산에 히포크레네(Hippocrene), 즉 '말의 샘'을 만들었다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또한 페가수스는 제우스의 번개를 실어 날랐다는 이야기도 있죠.
이상의 내용은 안주자리가 갖는 천둥과 물이라는 상징이 날개달린 말로 변하여 오늘날의 별자리가 되었다는 추측을 가능하게 만듭니다.
(번역자 주석 : 고대 그리스 신화에 등장하는 페가수스에 대한 다양한 이야기는 STAR TALES 페가수스자리 포스팅을 참고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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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 4 이란에서 출토된 기원전 4천년 기 중반의 접시. 말과 망아지 형상이 새겨져 있습니다. |
참고 별자리 : 수사슴자리(the Sta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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번역자 주석
1. 이 글은 천문작가 Gavin White의 책으로 고대 메소포타미아의 별자리와 천문전승을 담은 에세이집 Babylonian Star Lore (ISBN-13 : 978-0955903748)를 번역한 것입니다.
2. 별자리 이름이 현대 별자리 이름과 혼동할 가능성이 있는 경우 고대 메소포타미아의 별자리는 '이탤릭체'로 표시하였습니다.
3. 본 글은 저자의 허락을 받아 포스팅한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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