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9. 11. 9. 21:19ㆍ4. 끄저기/끄저기
이제서야 아버지를 보내드렸다.
2009년 11월 3일,
천주교 서울대교구 공원묘지의 한 자락에 위치한 참사랑 묘역에서
아버지를 비롯한 160여분의 시신기증자 분들을 위한 위령 미사가 있었다.
작년 9월 28일,
아버지가 소천하시고, 장례를 치뤘을 때,
그리고, 3일장을 마치고 돌아나오는 길에
아버지는 여타 시신기증자 분들과 함께 가톨릭 의과 대학에 남으셨다.
시신 기증에 동의한 모든 유가족들의 심정이 마찬가지였을 것이다.
사랑하는 사람이 떠났지만,
아직 이 사회 어딘가에서 편히 쉬지 못하고 있을것이라는 생각에
저려오는 가슴 한구석을 계속 지니고 있어야 했을 것이다.
결국 1년여의 시간이 흘러 아버지와 동료분들이 함께 영면을 누리시게 된 것이다.
참사랑 묘역에서 위령미사가 진행되는 동안 인상깊었던 장면은
기증된 시신으로 해부학 실습을 진행했을 의학과 1학년 학생들이
미사를 집전하시는 신부님들 뒷편에 도열해 있는 모습이었다.
위령미사를 집전하는 신부님들 뒤에 도열해 있는 의학과 1학년 학생들의 모습이 인상깊었다.
사진출처 : 가톨릭 대학교 성의교정 소식지.
이 학생들이 앞으로는 훌륭한 의사들이 되겠지...
그리고 아버지를 비롯한 모든 시신 기증자 분들이 거룩한 뜻이 의학발전에 밑거름이 될 수 있겠지...
그러나 사실 그러한 것들은 아무것도 중요하지 않을 것이다.
중요한 것은 시시때때로 마음 속에 떠오르는 아버지의 모습, 그리고 아버지와 함께 한 기억들이다.
이제 나도 중년의 나이에 접어들고,
하루하루의 사회생활에서 우리 아버지가 얼마나 강철같은 사람이었을지,
아니 가족에게 얼마나 강철같은 사람이어야 했을지,
그로인해 때로는 얼마나 외롭고 힘드셨을지를 느끼고 있다.
하늘나라에 있기 때문에 사람은 영생을 하는 것이 아닐 것이다.
그 사람과 하루하루를 함께했던 사람들의 기억속에 얼마나 소중히 간직되느냐에 따라,
그리고 이 세상을 살다 간 사람의 삶이 '정의'라는 틀로 평가될 수 있다면
그가 이 세상에서 마지막으로 짓고간 매듭이 얼마나 아름다운지에 따라
그 사람의 영원한 삶이 결정될 수 있을 것이다.
아버지와 동료 시신기증자분들이 함께 묻힌 참사랑 11번 묘역
사진출처 : 가톨릭 대학교 성의교정 소식지.
이 세상에 당연한 것은 단 하나도 없습니다.
내가 들이쉬는 한 터럭의 숨자락도,
살짝 스쳐가는 한 자락의 바람도,
그것마저도 누군가의 배려라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너무나도 당연한 것으로 여겼던 아버지의 사랑이,
아버지를 떠나보낸 지금 결코 당연한 것이 아니었음을 알게 되었기에,
쉽게 당연하다 말하는 그 당연함이라는 것이
이 세상에 그 무엇하나에도 해당되지 않는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아버지 편히 잠드시고,
아버지께서 그토록 사랑하셨던
하느님, 예수님의 품속에서 항상 기쁜 나날 보내시기를 바랍니다.
사랑합니다. 아버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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