칠레일식여행 4. 이슬라 네그라 - 마리오의 녹음기

2019. 7. 27. 22:321. 별과 하늘의 이야기/2019 칠레 일식 여행기

첫째, 이슬라 네그라 종루의 바람 소리. 

     (바람 소리가 일분쯤 계속된다.)

 

둘째, 제가 이슬라 네그라 종루의 큰 종을 울리는 소리. 

     (종소리가 일곱 번 울린다.)

 

셋째, 이슬라 네그라 바윗가의 파도 소리. 

     (아마도 폭풍우가 치던 날에 녹음한 듯, 바위에 거세게 부서지는 파도 소리를 편집한 것이다.)

 

넷째, 갈매기 울음소리. 

     (이 분간 기묘한 스테레오 음이 난다. 

      녹음한 사람이, 앉아 있는 갈매기들 쪽으로 살금살금 다가가서 새들을 놀래 날려 보낸 듯하다.

      그래서 새 울음소리뿐만 아니라 절제미가 담긴 무수한 날갯짓 소리 역시 들을 수 있다.

      중간에 사십오 초 지날 즈음에 마리오의 목소리가 들린다.

      "염병할, 울란 말이야."라고 소리 지른다.)

 

다섯째, 벌집.

       (거의 삼 분간 윙윙 거리는 위험천만한 주 음향이 들리고 배경으로는 개 짖는 소리와 무슨 종류인지 모를 새들의 지저귀는 소리가 녹음되었다.)

 

여섯째, 파도가 물러가는 소리.

       (녹음의 절정의 순간으로, 큰 파도가 요란하게 모래를 쓸어 가다가 새로운 파도와 뒤섞일 때까지의 소리를 마이크가 매우 가깝게 쫓은 듯하다. 

        마리오가 내리 쏟아지는 파도 옆을 달리다가 바다로 뛰어들어 파도끼리 절묘하게 섞이는 것을 녹음했을 수도 있다.)

 

그리고 일곱째, (분명히 긴박함이 깃든 격앙된 음성이었고 침묵이 뒤를 잇는다.)

       파블로 네프탈리 히메네스 곤잘레스 군. 

      (갓 태어난 아기가 쩌렁쩌렁 우는 소리가 십 분쯤 지속된다.)

 

- 네루다의 우편배달부 p122.

 

 

 

 

                                    동영상 1> 이슬라 네그라 가는 길.

 

산티아고 공항에서 약 100킬로미터 서쪽으로 달리면 장대한 남태평양 바다를 끼고 있는 작은 마을 이슬라 네그라를 만나게 됩니다. 

이슬라 네그라는 칠레의 시인 네루다의 작업실이 있는 곳으로 유명하죠. 

 

무려 6천 킬로미터 이상의 남태평양 해안선을 가진 나라 칠레에서 처음 남태평양을 만나볼 곳으로 이슬라 네그라를 선택하였습니다.

참으로 적절한 선택이 아닌가 합니다. 

 

파블로 네루다는 이미 20세에 두 권의 시를 출간하면서 칠레에서 가장 유명한 시인이 된 천재시인으로 평가받습니다.

제가 파블로 네루다를 알게 된 것은 1970년 칠레에서 출범한 그 유명한 아옌데 정권을 통해서였습니다. 

 

1971년 노벨문학상을 수상했을 정도로 유명한 시인이지만 사실 네루다의 시는 쉽게 읽혀지지 않습니다.

오히려 네루다를 세계인들에게 유명하게 알린 작품은 네루다 본인의 시보다는

네루다와는 전혀 인맥을 갖지 못했던 후배 문인인 안토니오 스카르메타의 소설 "네루다의 우편배달부"를 통해셔였죠. 

 

저 역시 이 작품을 보고 이슬라 네그라에 가보고 싶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사진 1> 소설 네루다의 우편배달부.

         네루다가 정말 행복한 사람이라면 바로 이처럼 훌륭한 작품을 쓴 후배 문인이 있기 때문 아닐까 싶습니다. 

         물론 네루다 스스로가 사람들과 스스럼 없이 어울리는 사람이었다고 하지만 

         제3자 입장에서 쉽지 않게 느껴질 수 있는 네루다를 민중의 곁으로 돌려보낸 사람이 바로 이 소설의 저자 안토니오 스카르메타입니다. 

         이 작품은 이슬라네그라를 배경으로 시인 네루다와 우편배달부 마리오의 이야기를 

         당시의 칠레 상황과 함께 아름답게 그려내고 있는 걸작 중의 걸작입니다. 

 

 

 

 

사진 2> 이슬라 네그라의 종루

         소설 네루다의 우편 배달부 표지에 실린 그 종루 입니다. 

         표지의 네루다가 그랬듯이 이 곳에 서서 남태평양을 바라다보고 있자니 무척이나 감격스러웠습니다. 

 

 

 

사진 3> 이슬라 네그라 전경 

 

네루다가 이슬라 네그라에 자리를 잡은 1938년 당시 이슬라 네그라에 있었던 가구는 딱 두 가구가 전부였다고 합니다.

그만큼 한적한 시골 마을이었던 거죠.    

그 이후 지속적으로 새로운 건물을 올리고 리모델링을 하면서 공간을 넓혀갔고 수집벽이 많았던 네루다가 모은 수집품들이 그곳을 채워나갔죠. 

 

 

 

사진 4> 이슬라 네그라 박물관에 소장되어 있는 네루다의 수집품 중 하나인 황동 천체망원경

         원래 사진을 못 찍게 되어 있는데 천체망원경을 보자 저도 모르게 그만 한 장 찍고 말았습니다. 

  

제가 이곳에서 특히 눈여겨 보고 싶었던 곳은 죽은 친구들의 이름을 서까래에 새겨 넣었다는 공간입니다. 

소설 네루다의 우편배달부에서 비틀스의 '우체부' 멜로디가 나올 때 네루다의 모든 수집품들과 함께 서까래의 죽은 친구들이 덩실덩실 춤을 춘다는 인상적인 묘사가 나오죠. 

 

그 서까래들은 종루 바로 옆에 자리잡고 있는 짙은 녹색 건물 1층의 카페에 있었습니다. 

안타깝게도 이곳은 오픈 공간이 아니어서 전면유리로 너머로만 들여다볼 수 있었습니다.

눈으로는 볼 수 있었지만 사진으로는 담을 수 없어 안타까웠습니다.

 

 

 

사진 5> 이슬라 네그라 파블로 네루다 박물관 입구 풍경

 

 

 

사진 6> 파블로 네루다 박물관에서 내려다보이는 남태평양 바다와 고즈넉한 마당.

         한켠에 보이는 물고기 문양은 1986년 설립된 네루다 재단의 상징문양입니다. 

 

 

 

 

사진 7> 네루다 박물관을 방문한 칠레의 학생들.

        

칠레는 1973년부터 15년간 미국을 등에 업은 독재자 피노체트의 악랄한 독재를 견뎌내야 했습니다. 

칠레는 다른 중남미 국가와 달리 세계 최초로 합법적인 사회주의 정권을 출범시킬만큼 정치적으로 성숙한 나라입니다.

물론 칠레도 다른 중남미 국가들과 마찬가지로 식민지 시대로부터 내려온 사회적 부조리를 안고 있습니다. 

하지만 칠레는 그 어느 나라보다 이러한 문제들을 잘 극복해 낼 것입니다.

이처럼 이 나라의 학생들이 네루다를 통해 아옌데 정권의 붕괴 당시를 끊임없이 복기하고 있기 때문이죠. 

 

 

 

 

사진 8> 이슬라 네그라의 종루 아래에서.

        소설 '네루다의 우편배달부'에서 최고의 장면은 우편배달부인 마리오가 프랑스 대사로 부임한 네루다의 향수병을 달래주기 위해 

        이슬라 네그라의 각종 소리를 녹음기로 담는 부분입니다.

        본 포스팅의 가장 앞에 인용한 글이 바로 마리오가 담은 이슬라 네그라의 소리들이죠.  

        이슬라 네그라의 종루 아래에서 마리오가 담았을 칠레의 소리를 눈을 감고 함께 느껴 보았습니다.     

        저로서는 정말 감격의 순간이었죠. 

        

 

이슬라 네그라에 올 때 네비게이션이 안내하는 길을 따라 오다가 시장을 만나서 차를 멈춰 세워야 했습니다.

차량을 통제하는 할아버지께서 뭐라뭐라 하시는데 아마도 시장이 섰기 때문에 차가 통과할 수 없다는 얘기 같았습니다.

그러니까 저희가 만난 시장은 상설 시장이 아닌 임시장, 우리로 치면 5일장 같은 거죠.

 

 

 

사진 9> 이슬라 네그라에서 만난 시장 풍경

 

차량을 통제하고 있는 할아버지께서는 제가 네루다 이름을 얘기하자 알겠다는 듯 이렇게 저렇게 돌아가면 된다는 설명을 손짓 발짓을 통해 설명해 주었습니다. 

그건 그거고 이렇게 만난 시장 풍경을 놓칠 수 없어 차를 세우고 시장을 한바퀴 돌았습니다. 

 

 

 

사진 10> 이슬라 네그라 시장 풍경, 칠레가 블루베리가 유명하다는 데 그 블루베리를 만날 수는 없었습니다. 

           지금 칠레는 한창 겨울이기 때문이죠. 

 

 

 

사진 11> 이슬라 네그라 시장 풍경

 

이곳에서 운좋게 시장을 만나고 네루다가 사랑했을 칠레 시골의 순박한 사람들을 만날 수 있었던 것도 큰 행운이었던 것 같습니다. 

 

이렇게 이슬라 네그라에서 네루다와 장대한 남태평양 바다에 인사를 마치고 첫날 우리의 숙소가 있는 발파라이소로 향했습니다. 

 

 

칠레일식여행 5. 발파라이소 - 칠레의 속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