칠레일식여행 1. 프롤로그

2019. 7. 14. 17:471. 별과 하늘의 이야기/2019 칠레 일식 여행기

유럽남부천문대(European Southern Observatory, 이하 ESO)에서 발표하는 천문뉴스를 

제 블로그에 처음으로 포스팅한 것이 2013년 8월 14일이었습니다. 

 

ESO의 천문대들은 과학연구시설이고 일반인의 출입은 엄격하게 통제되고 있는 곳이긴 했지만

ESO의 천문 뉴스와 사진들을 접하면서 ESO 천문대에 꼭 가보겠다는 꿈을 갖게 됐죠. 

 

한 번은 한국천문연구원에 계시는 지인께서 한국이 10%의 지분을 가지고 참여하고 있는 거대마젤란망원경 건설 관련하여 

건설 예정지인 칠레 아타카마의 라스 캄파나스 천문대를 방문한 적이 있다는 얘기를 한 적이 있었습니다. 

그 얘기를 듣고 또 한 번 갈일이 있으면 내 경비는 내가 낼 테니 방문자 명단에 내 이름만 넣어 달라는 얘기를 한 적이 있었습니다. 

물론 가능한 얘기는 아니었고 농담으로 한 말이긴 했지만 그만큼 가고 싶은 마음이 굴뚝 같기도 했죠. 

 

그러던 중 뜻밖의 기회가 찾아왔습니다. 

 

2018년 7월 4일이었죠. 

 

여느때처럼 ESO 사이트에 접속하여 천문뉴스를 살펴보았는데 

이 때의 천문뉴스는 평소와는 다른 뉴스였습니다. 

 

2019년 7월 2일 개기일식이 칠레를 지나가는데, 바로 그 경로에 ESO의 천문대 중 하나인 라실라천문대가 자리잡고 있고

라실라천문대는 이를 기념하여 일반인을 대상으로 한 일식방문 티켓 300장을 판매한다는 내용이었죠. 

 

 

 

 

사진 1> 개기일식을 맞아 라실라천문대 방문 티켓을 판매한다는 내용을 담은 ESO의 2018년 7월 4일 뉴스(부분 캡처).

         ( ESO 뉴스링크 : https://www.eso.org/public/news/eso1822/ )

 

고민을 할 이유가 없었습니다. 

 

온라인 티켓판매가 개시된 2018년 7월 13일 금요일 저녁. 

ESO Shop에 접속한 채로 대기하고 있다가 20시가 되자마자 1인당 200유로짜리 티켓 두 장을 확보하는데 성공했습니다. 

 

하지만 막연하게나마 가고 싶다고 생각만 했던 티켓을 구입한 기쁨은 정말 잠시였습니다. 

 

지금 생각해보면 그 당시 저는 그 티켓을 구했던 거 하나만으로도 충분했던 것 같습니다.

2018년 7월 13일에 바라본 2019년 7월 2일은 제게는 너무나 먼 미래였습니다.

어떤 일을 그렇게 미리미리 준비해 본 적이 없었기 때문에 뭘 어떻게 해야 하는 건지도 몰랐습니다. 

 

더군다나 회사에서 제가 맡고 있는 일은 월말 월초에 상당히 많은 일이 몰리는 일이었습니다. 

7월 2일이면 한창 바쁜 그 월말 월초에 딱 걸리는 때인데 내 자리를 비우고 어디를 다녀온다는 생각은 할 수도 없었죠. 

 

그렇습니다. 

저는 ESO 천문대에 가고 싶었던 게 아니라, 그냥 가고 싶다는 꿈을 꾸는 것만으로 충분했던 것이었습니다. 

라실라천문대 방문 티켓을 손에 넣은 것은 그 꿈을 좀더 리얼하게 꾸는 수단 이상도 이하도 아니었던 것이죠.

 

그랬기 때문에 티켓을 손에 넣은 이후 칠레 여행준비는 일체 진행되지 않았습니다.

 

2018년 12월 24일. 

ESO의 미첼 매튜(Michele Mathieu)라는 친구로부터 메일이 한 통 왔습니다. 

 

특정 사이트 주소를 알려주면서 해당 주소에 참가자 인적정보를 등록해 달라는 요청이었습니다.

 

 

 

 

사진 1> 참가자 정보를 등록해달라는 ESO측의 메일.

        라실라천문대에 가기 위해 뭔가 해야 하는 첫번째 일이었습니다.

        그냥 꿈만 꾸고 있을 것인지, 그 꿈을 현실로 만들기 위해 움직이기 시작할 것인지를 결정해야 하는 순간이었죠. 

        

 

ESO 천문대에 가고 싶다는 것은 꿈이었습니다. 

이 메일을 받은 순간은 여전히 꿈만 꾸고 있던 그 상태가 깨지는 순간이었습니다. 

이젠 더 이상 꿈만 꿔서는 안되고 그 곳에 가기 위해 구체적으로 무언가 해야 하는 순간이 다가온 것입니다. 

 

정말 당황하지 않을 수 없었죠. 

라실라천문대는 가고 싶었던 곳이지, 가야 하는 곳이라고 생각해 본적이 없었던 것입니다. 

 

도대체 어떻게 칠레에 가야 하는 걸까요?

칠레에 가면 비행기가 착륙하는 곳은 어디인 걸까요?

그곳에서 목적지까지는 얼마나 떨어져 있을까요?

잠은 어디서 자고 밥은 어디서 먹어야 하는 걸까요?

과연 대한민국에서 언제 출국해야 하고 귀국은 언제 해야 하는 걸까요?

 

결국 이 모든 것을 하나하나 해 내야 했습니다. 

 

이미 일찍부터 칠레 원정을 준비했던 지인분들의 페이스북 타임라인에는 간혹 칠레에 숙박이 동났다는 글이 올라와서

가뜩이나 심란한 기분을 휘저어 놓았습니다. 

 

저는 정말 칠레에 갈 수 있을까? 갈 자격이 있긴 한 걸까?

아니 칠레에 가고 싶긴 한 걸까?

별별 생각이 다 들었죠. 

혼란스러운 생각이 계속 이어져 해를 넘기면서까지도 아무것도 결정을 하지 못했습니다. 

 

혼란이 정리된 것은 2019년 1월 11일이었습니다. 

출국할 날짜와 귀국할 날짜를 결정하여 여정의 첫번째 기준점을 마련한 것이죠. 

 

처음에는 이왕이면 그 멀리 칠레까지 가는데 이것도 해야하고 저것도 해야하지 않나? 하는 생각을 많이 했습니다. 

 

아타카마 사막에서 별을 보는 일정도 넣어야겠고, 볼리비아의 우유니 사막을 가는 일정도 넣어야 할 것 같고

이스터 섬에 가서 모아이 석상을 배경으로 은하수 사진도 찍어야 하지 않을까 싶었고

칠레 남부 파타고니아의 절경도 즐겨야 하는거 아닌가 싶었고, 가능하다면 남극까지 가야 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도 했습니다. 

 

하지만 이런 생각을 하다보니 일정은 무한정 늘어나고 수집해야 할 정보는 밑도 끝도 없었습니다. 

게다가 "왜 일식이라는 것을 보러 그 멀리까지 가야 하는지" 도무지 이해하지 못하는 안주인마님도 고려해야 했죠. 

 

그러다보니 일정의 기본적인 틀조차 잡을 수 없었습니다. 

 

출국일자와 귀국일자의 결정은 이런 혼란스러운 생각들을 정리했기 때문에 가능한 것이었습니다. 

딱 두 가지만 생각하기로 했죠. 

 

첫째. 2019년 7월 2일, 나는 반드시 라실라 천문대에 있어야 하고, 그 날 라실라 천문대에서 일식을 보아야 한다.

      이번 여행은 이것을 위한 여행이고, 이것을 할 수 없으면 이번 여행은 아무 의미도 없다.

둘째. 그 외의 일정은 동행하는 안주인 마님을 위한 일정으로 구성한다. 

 

사실 아타카마에서 남반구의 밤하늘과 은하수를 만나고 싶은 마음이 간절했습니다. 

하지만 과감하게 포기했죠. 

그 대신 나중에 나 혼자 반드시 남반구의 밤하늘을 만나러 칠레에 다시 가겠다는 다짐을 했습니다. 

 

이 두 가지 원칙 하에 

월말 월초에는 인터넷이 안정적으로 작동하는 숙소에서 회사 업무를 처리할 수 있도록 한다는 점.

안주인 마님의 일정에 맞추어 대한민국에 다시 돌아온다는 점을 명확히 하자 출국일자와 귀국일자가 결정될 수 있었습니다. 

 

7월 2일, 대망의 일식이 있는 그 날 당일과 그 전날의 숙소는 

구글 지도 상에서 라실라 천문대에서 가장 가까운 도시로 보이는 발레나르에서 어떻게든 해결하는 것으로 정했습니다. 

 

이렇게 기준점을 잡고보니 소소한 어려움이 없진 않았지만 전반적인 여행 준비가 대체로 잘 풀려나갔습니다. 

 

지금 생각해보건대, 이번 여행을 준비하는 데 있어서 가장 중요했던 사항은 여행의 목적을 명확히 하고 

근본이 되는 것과 주변이 되는 것을 분리해서 정리한 일이었습니다. 

 

그렇게 여행이 착착 준비되었고, 드디어 예정된 출국날이 다가왔습니다. 

저로서는 한 번도 해 본적이 없는 꿈을 현실로 바꿔 나가는 여정이 시작되는 순간이었죠. 

 

'꿈을 이루려면 움직여야 한다.' 

 

이번 여행을 준비하면서 깨닫게 된 사실입니다. 

 

 

 

 

 

사진 2> 집을 나선 순간부터 다시 집에 도착하는 순간까지 모든 예약 사항을 출력하여 모은 문서.

         종이 문서로 출력하여 빠진 것은 없는지, 문제가 될 사항은 없는지, 두 번, 세 번 확인하는 자료로 활용했습니다.

        

 

 

 

        

사진 3> 일식을 맞기 위해 지구 반대편 대한민국에서 온 사람이 있다는 것을 알리고 싶어서

         라실라천문대에 오를 때 배낭에 꽂을 태극기를 준비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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