칠레일식여행 11. 빛의 향연

2019. 11. 2. 20:441. 별과 하늘의 이야기/2019 칠레 일식 여행기

2019년 7월 2일, 아침 5시. 

드디어 저의 첫 일식을 영접할 날이 시작되었습니다. 

 

 

 

사진 1>I오늘 라실라 천문대에 메고 올라갈 짐입니다. 

         카메라를 비롯한 간단한 촬영장비, 방한용품, 간단한 먹거리와 물을 챙기고 태극기를 달아 마무리했습니다. 

        

 

 

 

 

사진 2> 차를 몰고 100킬로미터 거리에 있는 라실라 천문대로 출발합니다.

          이른 새벽의 발레나르는 아직 어둡고 아침 안개가 자욱했습니다. 

        

숙소가 있는 발레나르는 개기일식 띠에서 벗어나 있습니다. 

그 얘기는 오늘 발레나르를 비롯하여 코피아포 등 칠레 북부 도시에서 개기일식을 보려는 많은 사람들이 판아메리칸 하이웨이를 통해 남하할 거라는 얘기였죠.  

제가 움직이는 바로 그 방향으로 길이 무척 많이 막힐 거라는 걸 짐작할 수 있었습니다.

이른 새벽 서둘러 길을 나선 이유이기도 했는데요. 

다행히 길은 전혀 막히지 않았고, 약 1시간 반만에 라실라 천문대 입구인 캠프 팰리카노에 도착할 수 있었습니다. 

 

 

 

사진 3> 제 앞으로 10여대의 차들이 먼저 도착해 있었습니다. 

 

 

사진 4> 어제의 피로와 이른 새벽 출발에 피곤하신 안주인 마님은 차에서 주무시고

        

 

 

 

사진 5> 오늘의 선물을 안겨줄 구름 한 점 없는 하늘에 찬란한 아침 햇살이 쏟아지고 있습니다. 

 

아침 8시에 캠프 팰리카노의 입구가 열렸습니다. 

어제의 우려와 달리 수월하게 입구를 통과할 수 있었습니다. 

 

주차장에 차를 대고 접수대로 향했습니다. 

 

 

 

사진 6> 접수대에 줄 서 있는 모습. 

          저 앞에 써 있는 알파벳이 Last Name의 첫글자 인 걸까요? 아님 First Name의 첫 글자인 걸까요?

          옆에서 안주인 마님께서 Last Name의 첫 글자는 L이고 First Name의 첫 글자는 K이니 그냥 이 줄에 서면 된다고 얘기해 주더군요.

          아...그렇지!  이렇게 간단한 걸 생각 못합니다. ^^

        

배낭에 태극기를 달고 줄을 서 있자니 칠레 학생들이 수드 꼬레에서 온 사람이 있다며 아는 체를 하더군요. 

우리 나이 또래, 혹은 그 이상의 남미와 유럽 사람들에게 대한민국은 그다지 잘 알려지지 않은 나라인지 모르겠지만 K-Pop 덕분에 10대 들에게 우리나라는 이미 세계 주요 나라 중 하나가 된지 오래입니다. 

우리나라의 Top이 곧 세계 Top이 되는 경우가 하나둘씩 나오고 있죠. 

모든 분야에서 이런 경우가 늘어났으면 좋겠습니다. 

 

접수대에서 이름을 확인했습니다. 

어제 걱정을 한 번에 날려버리듯이 참여자 명단에 제 이름이 고스란히 있었습니다. 

 

 

 

 

사진 7> 접수대에서 받은 비품들. 

          우선 일식 안경. 일식 안경은 앞으로 두고두고 쓸 기념품이 되기에 충분했던 것 같습니다. 

          Raytan이라고 적힌 네모난 포장은 자외선 차단 크림입니다. 

          역시 전혀 사용하지 않고 고스란히 기념품 상자에 들어가 있습니다.

          손목에 찬 것은 커피와 스낵을 바꿔먹을 수 있는 쿠폰입니다. 현지에서 알뜰하게 써줬죠. ^^

          사진에는 없지만 ESO로고가 새겨진 물통도 받았습니다. 

          하나같이 모두 소중한 기념품이 되었습니다. 

        

 

 

 

 

사진 8> 셔틀버스를 타기 위해 이동 중입니다. 

 

 

 

        

사진 9> 라실라 천문대로 올라가기 위한 셔틀버스입니다. 

          캠프 팰리카노에서 라실라 천문대까지는 그렇게 먼 거리는 아니었지만 길이 좁고 경사가 있는 산길이라서 셔틀버스로 4~50분 정도를 

          이동해야 했습니다.

 

 

 

        

동영상 1> 라실라 천문대에 오르는 길.

            높은 고도로 올라가면서 나타나는 새로운 풍광, 그리고 저 멀리 점점 제 앞으로 다가오는 라실라 천문대. 

            모든 것이 새롭고, 설레는 멋진 길이었습니다. 

          

 

 

 

 

사진 10> 그렇게 드디어 라실라 천문대에 입성했습니다.

           오른쪽 가장 앞에 보이는 것이 방문자 센터, 그 위로 NTT 망원경 천문대가 보입니다. 

           NTT 망원경 왼쪽으로 보이는 건 물탱크구요. 

           이어서 왼쪽(북쪽)으로 1미터 슈미트 망원경 천문대, MPG/ESO 2.2미터 망원경 천문대, 덴마크 1.2미터 망원경 천문대 등이 이어져 있습니다. 

         

 

 

 

사진 11> 라실라 천문대의 트레이드 마크인 3.6미터 망원경 천문대 돔입니다. 

 

올해 50주년을 맞는 라실라 천문대는 ESO가 칠레에 처음으로 설치한 천문대입니다. 

뛰어난 입지조건으로 바로 북쪽으로는 라스 깜빠나스 천문대가 연이어 들어섰습니다. 

지금 이 연구시설들은 현대 천문학을 이끄는 한 축이 되고 있죠. 

라스 깜빠나스 천문대 바로 옆에는 우리나라가 10%의 지분을 가지고 있는 대마젤란망원경도 설치될 예정입니다. 

 

정말 감격이 이만저만이 아니었습니다. 

막연하게 꾸어왔던 꿈이 드디어 현실이 되는 순간이었죠. 

더군다나 이곳에서 제 생애 첫 달그림자를 맞을 수 있다니, 그것도 정말 꿈만 같았습니다. 

이런 꿈들이 이렇게 한꺼번에 막 이뤄져도 되는 건가요? 

눈물이 날 정도였습니다.                    

 

 

 

 

사진 12> 자리를 잡고 있는 사람들.

            라실라 천문대에 올라갔을 때 이미 많은 사람들이 부지런히 자리를 잡고 있었습니다. 

         

 

 

 

사진 13> 난간 가득 줄지어선 망원경과 카메라들. 

 

 

 

사진 14> 제가 잡은 자리는 뒷편입니다. 

 

이번 일식은  저로서는 처음 맞는 일식이라서 사진 촬영에는 별 관심이 없었습니다.

다만 동영상 하나와 인터벌 릴리즈를 걸어 풍경은 남기려고 했죠.

일식도 일식이지만 그 일식을 맞는 사람들의 풍경을 함께 담고 싶어 뒤쪽으로 자리를 잡은 것인데 시야도 넓고 사람들의 모습도 함께 볼 수 있어 좋은 선택이었던 것 같습니다. 

 

오른쪽으로 보이는 안테나는 직경 15미터의 스웨덴 서브밀리미터 전파망원경입니다. 

 

 

 

 

사진 15> 스웨덴 15미터 서브밀리미터 전파망원경 앞에서 설정샷 한 컷. 

                           

이 전파망원경은 지금은 사용되고 있지는 않습니다.  

그러나 사진에서 알 수 있는 바와 같이 전파망원경의 반사도가 매우 높아 하늘과 땅의 풍경이 그대로 담겨 들어오죠. 

이러한 구도 때문에 이 망원경은 수많은 천체사진 작가들의 촬영대상이 된, 라실라 천문대에서 가장 유명한 망원경 중 하나가 되었습니다. 

 

 

 

 

 

사진 16> ESO에서 마련한 프로그램들 

           개기일식은 16시 39분에 단 2분간 발생합니다. 

           이 자리에 모인 사람들은 오로지 그 시간을 위해 모인 것이죠. 

           오랜 동안의 기다림이 지루하지 않도록 ESO에서는 이런저런 다채로운 프로그램을 마련하고 있었습니다. 

 

 

 

사진 17> 추위를 피하고 쉴 수 있도록 마련되어 있는 임시 매점 풍경입니다. 

           손목에 착용한 커피쿠폰과 스낵쿠폰으로 한쪽에서 커피와 스낵을 바꾸어 먹을 수 있었고, 식사도 할 수 있었습니다. 

 

 

 

 

사진 18> 스웨덴 서브밀리미터 전파망원경 아래에서는 초대 밴드가 공연 준비에 한창이었습니다. 

           와~ 저 분들이 어떤 분들인지는 모르겠지만 오늘 같은 날 초대 받아서 노래를 부를 수 있다니~

           만약 제가 저 밴드 멤버 중 한 명이었다면 웸블리 스타디움에 선 퀸보다 훨씬 더 감격적이었을 것 같습니다. ^^

         

 

 

         

동영상 2> 초대 밴드의 공연과 주변 풍경. 

            안주인마님께서 음악과 풍경이 어우러진 멋진 동영상을 찍어 주셨습니다. 

 

 

 

 

 

사진 19> 일식을 기다리며 셀카 놀이 중

           일식 안경이 얼마나 성능이 좋은지 안경을 쓰면 아무것도 안 보입니다. 

 

 

 

         

사진 20> 일식 안경을 통해 본 태양, 그냥 태양만 이렇게 보이죠.          

 

 

 

 

사진 21> 방문자 센터에서는 강연이 계속 있었습니다. 

           스페인어로 한 번, 영어로 한 번씩 교대로 진행되었죠. 췟~ 한국어가 없으니 가볍게 패스~ ^^

         

 

 

 

사진 22> 일식을 기다리는 사람들

           개기일식 시간이 다가오면서 사람들이 저마다 자리를 잡고 앉기 시작했습니다. 

 

 

 

사진 23> 확연히 어두워진 하늘. 

           6시 방향 난반사로 발생한 빛무리 속에 태양의 모습이 아주 작게 보입니다. 태양이 얼마나 가려져 있는지를 알 수 있죠. 

           저 멀리 왼쪽으로 노을에 물들어가는 하늘이 보입니다. 

 

그리고 드디어 달 그림자가 우리를 완전히 감싸버린 개기일식의 순간이 다가왔습니다.

 

 

 

 

사진 24> 개기일식의 감동을 뭐라 표현할 수 있을까요?

 

많은 사람들이 인터넷 상에서 화려한 천체사진들을 보고 아마추어천문계에 발을 들입니다. 

하지만 눈으로 본 대상은 스택과 후보정을 거친 화려한 천체사진과는 전혀 다르게 보이죠. 

너무나 단순해 보이는 은백색의 천체를 접안렌즈 너머로 처음 접하고 여기서 그냥 실망만 하고 말지, 내 눈으로 직접 본 대상의 매력에 빠져들게 될지의 여부가 아마추어천문계에 발을 내디딘 분들의 첫번째 시험대가 됩니다.           

 

일식은 정 반대입니다. 

제가 지금까지 봐온 그 어떤 사진도 현장에서 직접 느낀 개기일식의 감동을 100만분의 일도 살리지 못하는 것 같습니다.  

 

 

 

사진 25> 안주인 마님이 핸드폰으로 찍고, 일체 후보정이 가해지지 않은 이 사진이 오히려 일식 현장의 그 느낌을 가장 잘 살려주는 것 같습니다. 

 

 

 

         

동영상 3> 7월 2일 라실라 천문대의 풍경을 6분 분량으로 편집한 동영상입니다. 

            개기일식 순간은 정상속도로, 그 이외의 시간들은 빠른 속도로 처리되었습니다. 

            동영상 오른쪽에 보이는 커다란 돔이 라실라의 대표 망원경인 3.6미터 망원경 돔입니다. 

            찬란한 햇살 가득한 한 낮에서 달 그림자가 지는 광경과 양옆으로 펼쳐지는 붉은 노을, 

            불의 고리가 빛난 후 다시 밝아오는 하늘, 그리고 저무는 태양과  다시 붉은 노을이 드는 하늘까지!

            이 날은 하루종일 말 그대로 빛의 향연을 즐겼던 것 같습니다. 

          

 

 

 

사진 26> 첫일식을 맞은 후 

           왜 일식이라는 걸 보러 그 멀리 칠레까지 가야하는지 궁금해하던 안주인마님의 궁금증이 완전히 풀렸습니다. 

           저 역시 일식을 만나기 이전과 이후가 달라졌음을 느꼈습니다. 

         

 

 

 

 

사진 27> 오늘 하루는 온통 빛이 가득한 하루였습니다. 

 

 

 

사진 28> 하루 종일 묵묵히 수고해준 카메라도 한 컷.

 

 

 

사진 29> 빛의 향연이 펼쳐졌던 하루의 마지막 태양빛을 받아 빛나는 라실라 천문대

 

 

 

 

 

사진 30> 그 어마어마했던 하루가 지나고 아타카마 사막에 밤이 내리고 있습니다. 

 

 

 

 

사진 31> 서쪽 하늘을 가득 채우는 아름다운 그라데이션이 오늘 하루 찬란했던 빛의 향연을 마무리하고 있습니다. 

 

 

 

 

사진 32> 해가 완전히 가라앉기 전 이곳까지 머나먼 여정을 함께 해 준 안주인마님과 기념사진 한 장 찍었습니다. 

 

아마추어 천문인들 사이에서는 이런 말이 있습니다. 

 

세상에는 두 부류의 사람이 있다. 

일식을 본 사람과 일식을 보지않은 사람.          

 

그만큼 일식은 직접 봐야만 그 느낌을 알 수 있는 멋진 사건이라는 점을 강조한 말인 것 같습니다. 

 

과연 일식은 그 자체로 충분했습니다. 

하지만 이 일식이 저에게 더더욱 특별했던 건, 이 일식이 그저 쉽게 만나는 일식이 아니었기 때문인 것 같습니다. 

제가 늘 방문하기를 희망했던 ESO 천문대를 올 수 있는 기회를 잡았고, 

그 기회를 현실화하기 위해 머나먼 길을 돌아왔기 때문에 그 일식이 더더욱 진한 감동을 주었던 것 같습니다. 

지금 돌아보면 2019년 칠레에서 개기일식을 영접하겠다는 생각을 처음 했을 때 너무나 엉성했지만 첫 걸음을 내디뎠기 때문에 바로 이곳 아타카마 사막에 자리잡은 라실라 천문대에서 인생 첫 일식을 만나는 행운을 거머쥘 수 있었던 것 같습니다. 

         

라실라 천문대에 밤이 내렸습니다. 

그리고 하늘에는 라실라 천문대의 위용을 말해주는 찬란한 별들이 가득 들어차기 시작했습니다. 

22시에 마지막 셔틀이 내려간다는데 내심 더 있고 싶었지만 해가 지자마자 곤두박질치는 기온에 안주인마님이 무척 추워했습니다. 

미련없이 짐을 정리하고 서둘러 셔틀버스를 타는 곳으로 이동하였습니다. 

그렇게 영광스러운 하루를 선물해준 라실라 천문대와 작별을 고했습니다. 

 

괜찮습니다. 

 

저는 언젠가 이곳에 꼭 다시 올거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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