칠레일식여행 12. 발레나르 - 칠레에 남겨진 작은 마음 조각 하나.

2019. 11. 5. 11:031. 별과 하늘의 이야기/2019 칠레 일식 여행기

일식이 있던 2019년 7월 2일 전후로 라세레나의 숙박은 완전히 동났습니다. 

준비가 늦었던 저는 라세레나에 숙소를 마련할 수 없었습니다. 

 

하지만 ESO 안내에 따르면 방향은 완전히 반대이긴 했지만 라실라 천문대에서 라세레나보다 가까운 곳에 도시가 하나 있었죠. 

바로 발레나르(Vallenar)라는 도시였습니다. 

 

자연스럽게 일식 전날과 일식 당일의 숙소는 발레나르(Vallenar)에서 잡았습니다. 

 

하지만 이 작은 도시에 대한 정보는 인터넷 상에서 찾기가 쉽지 않았습니다. 

각종 여행 사이트에 등장하는 호텔 정보도 거의 없었죠. 

다행히 익스피디어를 통해 그나마 평점이 괜찮은 숙소를 하나 잡을 수 있었습니다. 

 

7월 1일, 라실라 천문대 답사를 마치고 100 킬로미터를 북으로 달려 발레나르에 입성했습니다. 

 

발레나르는 도시 경계에 들어설 때부터 독특한 모습을 보여주는 도시였습니다. 

마치 협곡에 도시가 들어선 듯 했죠. 

 

 

 

 

 

사진 1> 계곡 사이에 자리잡은 발레나르의 독특한 모습

          이 사진은 발레나르의 공식 사이트(http://www.vallenar.cl/)에서 가져온 것입니다. 

 

 

아타카마 주의 대부분의 도시가 그렇듯 이곳 역시 19세기 초 광업으로 발생하고 성장한 도시라고 합니다.

 

발레나르에 도착해서 가장 먼저 한 일은 슈퍼마켓에 들려 오늘과 내일의 부식거리를 마련하는 일이었습니다. 

특히 7월 2일은 하루종일 라실라 천문대에 있을 예정이었기 때문에 도시락으로 먹을 부식거리와 늦은 귀가 후 지친 상태가 분명할 상황에서 먹을 식사거리도 마련해야 했죠. 

 

발레나르는 아담한 도시이긴 했지만 제법 현대적인 시설도 많았습니다. 

 

발레나르 입구에 있는 또뚜스라는 슈퍼마켓에서 장을 보고 계산을 할 때였습니다. 

앞 사람의 카드에 문제가 있는지 줄이 빠지지 않더군요. . 

 

 

 

 

사진 2> 계산이야 되든말든 심드렁한 계산원

        

직원들의 역할이 철저히 나뉘어져 그런지 문제가 있음에도 계산원은 스마트폰을 보기만 할 뿐 문제를 해결할 생각이 전혀 없었습니다.

마스터 키를 가지고 있는 매니저인듯한 사람이 뭔가뭔가 얘기를 할 때는 문제가 해결될 것 같았지만 자리를 비우고 나면 문제는 해결되지 않았고, 줄은 전혀 빠지지 않았죠.

 

재밌는 것은 그곳에 줄을 선 칠레 사람들 어느 누구도 그 상황에 대해 불평을 하지 않는다는 것이었습니다. 

 

결국 그 줄에서 30분 이상을 오도가도 못하고 서 있었어야 했죠. 

우리 나라에서는 상상도 못할 일이었습니다. 

사람들의 성향이 이렇게 다르구나 싶었죠.

 

그렇게 다소 아까운 시간을 보내고 오늘 예약한 숙소로 향했습니다. 

 

 

 

사진 3> 일식 전날과 당일의 숙소로 예약한 발레나르의 호텔 아타카마. 

          아담한 도시답게 아담한 숙소입니다. 

        

 

하지만 이 호텔은 여러가지로 놀라운 숙소였죠.

 

우선 주차장이 이곳에서 두 블럭 떨어져 있었습니다. 

처음 온 저 같은 손님은 당연히 그 주차장이 어디인지 모릅니다. 

 

안주인마님께서 먼저 차에서 내려 카운터에서 직원을 데리고 나왔습니다. 

주차장 안내를 요구하자, 이미 익숙한 듯 젊은 직원 하나가 튀어나왔다고 하더군요.

 

그 직원의 안내를 받아 두 블럭 떨어져 있는 커다란 창고 같은 곳으로 주차를 하러 갔습니다. 

이미 저처럼 일식을 보러온 관광객들이 많은 듯 주차장은 거의 꽉차 있었고 제가 도착했을 때 또 다른 한 팀이 차를 주차하러 왔습니다. 

 

저는 다음날 새벽 일찍 라실라로 출발할 예정이었기 때문에 제 차를 제일 앞에 주차하게 해 달라고 요구했습니다. 

몇 시에 나갈 거냐고 묻길래 아침 5시에 나가겠다고 했죠.

그동안 여러 나라에 출장을 돌아다니면서 얻은 경험에 의하면 그 시간부터 움직이는 사람은 우리나라사람 아니면 일본 사람들밖에 없습니다. 

 

직원이나 차를 대러 온 다른 관광객들이 군말없이 입구에서 가장 가까운 곳에 차를 댈 수 있게 해 주었습니다. 

그렇게 차를 세우고 캐리어를 꺼내어 끌고 호텔로 돌아왔습니다. 

 

 

 

 

사진 4> 호텔로 들어가는 길.

 

 

 

 

사진 5> 숙소로 들어가는 미로같은 길.

 

벽이 원색으로 칠해져 있다보니 사진은 이쁘게 나옵니다만, 한 눈에 문제가 있는 숙소라는 것을 알 수 있었습니다. 

지나치게 따닥따닥 붙어있었죠. 

원색의 페인트만 아니면 딱 우리나라의 벌집 수준입니다. 

 

 

 

사진 6> 객실은 딸랑 이게 전부. 

 

문을 열고 들어가니 말이 안나오더군요.

숙소의 공간은 딸랑 더블 침대 하나가 전부를 차지하고 있었습니다.

사람 하나 서 있으면 끝나는 공간, 협소한 화장실, 정말 작은 탁자 하나가 전부였습니다. 

차가운 타일 바닥에서는 냉기가 올라오고 있었고 너무 구석이라서 그런지 이 추운 겨울에 습기마저 느껴졌습니다. 

 

어디에 캐리어를 풀어놓을 공간도 없었습니다. 

 

일식 전날인 7월 1일과, 일식 당일, 즉 하루 종일 라실라 천문대에서 시간을 보내고 어마어마한 교통체증에 시달리며 귀가할 것으로 예상된 7월 2일의 숙소였으니 선택지는 많지 않았지만 나름 중요하게 생각하고 잡은 숙소였습니다.

그래서 충격이 이만저만이 아니었죠. 

라세레나의 널찍한 숙소에서 하루를 보내고 와서 그런지 비참한 생각까지 들 정도였습니다. 

 

하지만 선택의 여지가 없었죠. 

협소한 공간을 최대한 활용하여 짐을 풀고 간단한 저녁식사를 하고 일찍 잠자리에 들었습니다.

 

 

 

 

사진 7> 발레나르의 호텔 아타카마에서 2박을 하는 동안 우리의 난방기구가 되어준 핫팩.

          넉넉히 준비한 핫팩을 풀어 침대 이불 곳곳에 파묻어두었습니다. 

          역설적이게도 그 덕에 오히려 가장 따뜻하게 잘 수 있었던 것 같습니다. 

        

일식이 있었던 7월 2일 새벽 4시에 일어나 짐을 정리하고 출발할 때 젊은 청년 하나가 카운터를 지키고 있었습니다. 

주차장을 열어달라고 하니 아침식사를 하고 가야하지 않겠느냐면서 아침식사를 챙겨주겠다고 했습니다.

자기가 셰프는 아니지만 이 호텔에서 셰프 역할을 하고 있다고 하더군요. 

기대하지 않은 아침식사를 하게 되니 고마웠습니다. 

이왕 아침 식사를 하는거 달걀 프라이도 해달라고 하고, 햄도 구워달라고 했죠. 

 

 

 

사진 8> 뜻하지 않게 받아든 새벽의 아침식사 

         그렇게 일식이 있었던 7월 2일을 고마운 마음으로 시작할 수 있었습니다. 

 

 

7월 2일 밤에는 예상대로 추위와 교통체증에 지친 채로 호텔 아타카마에 돌아왔습니다. 

호텔이 워낙 좋지 않아 돌아오는 길의 마음이 가볍진 않았지만 어쨌든 그날 저녁 좁은 숙소에서 뜨끈한 라면국물에 밥을 말아, 상당히 안 맞는 조합이긴 하지만 와인에 건배를 하며 칠레에 온 목적을 이룬 7월 2일 밤을 자축했습니다. 

 

 

 

사진 9> 발레나르 아타카마의 좁은 호텔에서 가진 일식 자축 파티상. 

          너무나 좁은 객실에 침대 위에는 짐들이 널부러져 있습니다. 

 

 

7월 3일 아침. 

일식알현을 성공적으로 마쳐서인지 마음은 한결 여유로웠습니다. 

 

 

 

사진 10> 호텔의 시설은 상당히 안 좋았지만 

           한 가족이 운영하는 듯한 이 호텔의 직원들은 모두 친절했습니다. 

           커피를 한 잔 하며 소박한 식당의 벽난로도 즐기고 일식의 장관을 보도하는 칠레의 아침 뉴스를 만끽했습니다. 

           뭐든 즐기기 나름이죠. 

 

 

 

 

 

사진 11> 아침뉴스로 보도되고 있는 라세레나 터미널의 풍경

           TV를 통해 보는 간밤 라세레나 터미널의 풍경은 전쟁터가 따로 없더군요.

           시설은 좋지 않았지만 핫팩과 벽난로, 친절한 사람들로 훈훈하게 데워진 호텔을 가장한(?) 여인숙에 있다는 것도 감사하게 느껴졌습니다. 

         

아침식사를 하고 간단하게 발레나르 시내를 둘러보았습니다. 

 

 

 

 

사진 12> 소박하고 아담한 도시였지만 이제 갓 만들어진 것으로 보이는 슈퍼마켓의 크기는 어마어마했습니다. 

 

 

 

사진 13> 진열장 가득한 칠레의 와인들, 

           칠레 여행 내내 저를 행복하게 한 칠레의 와인들. 

           보기만 해도 좋고, 구입하면 저렴한 가격 때문에 더 좋고, 맛을 보면 더더욱 좋은 칠레의 와인들입니다. 

         

 

 

 

사진 14> 매장 한 켠에 있는 치즈, 햄코너에서 치즈 사기에 도전했습니다. 

 

 

 

사진 15> 훈남의 기운을 풍기는 젊은 청년직원이 자기는 영어를 조금 할 줄 안다며 치즈 고르기를 도와 주었습니다. 

           할프 킬로그램(500그램)만 잘라내는 중입니다. 

 

 

 

 

사진 16> 어디서나 만날 수 있는 칠레의 명물, 

           늘어지게 주무시고 계시는 개님들. 

 

 

 

사진 17> 그렇게 이른아침 간단한 발레나르 걷기 여행을 마치고 호텔로 돌아왔습니다. 

         

이런저런 불편함이 없지 않았지만 발레나르는 일식 전후의 이틀동안 이 낯선 이방인들을 따뜻하게 품어주었습니다. 

 

일식 당일 새벽에 아침식사를 차려준 호텔 아타카마의 젊은 청년 직원 안드레아는 베네주엘라에서 온지 4개월밖에 되지 않는 어린 청년이었습니다. 

베네주엘라의 극심한 사회 불안 탓에 남미 곳곳에 마치 난민처럼 떠밀려나온 베네주엘라 사람들이 있는 것 같았습니다. 

 

지금도 간혹 순진한 얼굴로 수드 꼬레는 어떤 나라인지, 그곳에 가면 괜찮은 일자리를 얻을 수 있는지 묻던 안드레아의 얼굴이 떠오릅니다. 

국가가 어려워지면 그 나라의 힘없는 서민들이 그 짐을 고스란히 떠안게 됩니다. 

그런 사람들이 이 지구상에는 여전히 어마어마하게 많습니다. 

 

지금 대한민국은 난민과 다른 인종을 증오하는 발언이 포털 사이트에 버젓이 달리는 나라입니다. 

하지만 우리 나라는 역사적으로 난민을 가장 많이 발생시킨 나라 중 하나이고 지금도 여전히 한순간의 실수로 그러한 나락에 떨어질 가능성이 높은 나라입니다. 

우리나라 사람들도 결국 난민과 외국인에 대한 혐오와 두려움이라는 잘못된 인식에서 빨리 벗어날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언제나 그래왔듯이 지금의 우리나라는 잘못된 것들을 빨리 고치며 발전해 왔으니까요.  

그 날이 하루빨리 오기를 바랍니다. 

또한 베네주엘라의 청년 안드레아가 하루빨리 어머니 지구의 품 어느 한켠에 안정적인 자리를 잡고 평온한 나날을 보낼 수 있게 되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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