칠레일식여행 10. D-1 라실라 답사

2019. 10. 19. 20:481. 별과 하늘의 이야기/2019 칠레 일식 여행기

제가 지금 칠레에 있는 이유, 

그것은 오직 딱 하나, 2019년 7월 2일 개기일식을 라실라 천문대에서 맞이하기 위해서입니다. 

 

오늘은 2019년 7월 1일, 그 목적을 이루기 하루 전 날입니다. 

따라서 오늘 하루는 라실라 답사에 완전히 사용될 예정입니다. 

 

칠레로 향하는 비행기가 한참 대서양 상공을 날고 있었던 지난 6월 28일, 

ESO로부터 IMPORTANT라는 말머리를 달은 메일이 한통 왔습니다. 

 

라실라 천문대의 접근 경로를 안내하는 메일이었죠. 

 

일식 당일 라실라 천문대로 들어오는 경로에 아타카마 주정부에서 주관하는 일식 행사가 열릴 것이고 

따라서 교통체증이 심할 것으로 예상되므로 이러이러한 경로로 우회하여 들어오라는 메일이었습니다. 

 

 

 

 

 

사진 1> ESO로부터 온 우회경로 안내 메일 

        아타카마 주정부의 일식행사가 진행될 CAMP BASE를 우회하여 진입하는 방법, 

        그리고 일식이 끝난 후 돌아갈 때 선택해야 할 루트가 안내되어 있습니다. 

        

 

따라서 오늘의 답사에서 반드시 확인해야 할 사항은 다음과 같았습니다. 

 

첫째, 판아메리칸 하이웨이에서 C541 루트를 이용하여 라실라 천문대 집결지점을 확인한다. 

둘째, C541루트로 판아메리칸 하이웨이로 복귀한 후 C542루트를 이용하여 라실라 천문대 집결지점을 다시 확인한다.

셋째, 발레나르에서 오늘 저녁과 내일 온종일 문제가 없도록 부식과 식수를 충분히 준비한다. 

넷째, 일찍 자고 충분한 휴식을 취한다. 

 

 

라세레나에서 라실라 천문대까지는 약 160킬로미터입니다. 

 

 

 

 

 

사진 2> 또 다른 풍광을 보여주는 라실라 천문대 가는 길

        라세레나를 지나 라실라 천문대를 가는 길에 드디어 코킴보 주를 벗어나 아타카마 주에 입성하게 됩니다. 

 

 

 

동영상 1> 판아메리칸 하이웨이는 라세레나 외곽에서 남태평양 바다를 벗어나 내륙으로 이어집니다. 

             그리고 아타카마 사막 평원이 나타날 때까지 계속 고도를 높여가죠. 

 

 

 

사진 3> 아타카마 사막 평원의 풍경 

          판아메리칸 하이웨이에서 동쪽으로 마치 거대한 언덕들이 첩첩이 쌓여 있는 듯한 산맥의 풍광이 나타납니다. 

        

 

5번으로 표시되어 있는 판아메리칸 하이웨이를 따라 북쪽으로 꾸역꾸역 1시간 반 정도를 달리자 C-541 분기지점을 쉽게 만날 수 있었습니다. 

라실라 천문대로 가는 길이라는 안내판도 크게 설치되어 있어 걱정과 달리 길을 쉽게 찾을 수 있었죠.

그리고 C-541로 들어서자마자 ESO 메일에서 알려준 것처럼 아타카마 주정부가 준비한다는 일식 행사장을 만날 수 있었습니다. 

 

 

 

사진 4> 판아메리칸 하이웨이를 벗어나 C-541도로에 접어들어 1 킬로미터 남짓 들어간 지점에 일식 행사장 준비가 한참이었습니다. 

 

 

 

 

사진 5> 행사장 베이스 캠프

          판아메리칸 하이웨이가 전반적으로 인터넷이 잘 잡혔는데 이상하게도 C-541이 분기되는 지점 위 아래 20Km 구간에서는

          인터넷이 잡히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행사장 베이스 캠프에 전파시설이 있어서인지 이곳에서는 인터넷을 잡는데 아무런 문제가 없었습니다. 

 

 

 

사진 6> 행사장 한켠에 멋지게 설치된 일식행사 알림판. 

 

 

사진 7> 캠핑을 준비하는 사람들. 

 

행사장에서 라실라 천문대까지는 약 30킬로미터였습니다. 

행사장 준비 때문에 화장실도 다 설치가 되어 있겠다 여기서 하루를 묵어도 좋겠구나 싶었습니다. 

무엇보다도 밤이 되면 밤하늘을 가로지르는 은하수와 쏟아지는 별빛을 맞을 수 있는 위치였습니다. 

미리 알았으면 좋았을텐데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사진 8> 라실라 천문대 방향으로 다시 들어가는 중

         C-541도로에서 동쪽으로 이동을 계속했습니다. 

        한적한 도로 한켠에 칠레 국경수비대의 검문소인듯한 건물이 보였습니다. 

 

 

 

 

사진 9> 조금더 들어가자 포장한 지 꽤 오래된 너덜너덜한 도로가 나왔습니다. 

 

 

 

 

사진 10> 드디어 저기 멀리 라실라 천문대가 보입니다. 

 

 

 

 

사진 11> 라실라 천문대 입간판 앞에서 기념 촬영 한장. 

 

드디어 오고 싶었던 그곳 라실라 천문대가 눈에 보입니다.

눈에 선명하게 보이고 제가 잠이 든 것도 아니니 지금 이 순간은 더 이상 꿈이 아닌 현실임에 틀림 없습니다. 

정말 감격스러운 순간이었습니다. 

 

입간판은 스페인어로 씌어져 있는데 뭐...내용은 그리 낭만적인 내용은 아닌 것 같습니다. 

제한, 금지...비슷한 그런 내용이 있는 것으로 보아 빛공해를 유발시키는 행동이나 개발 행위를 하면 안된다는 그런 내용이 아닐까 싶습니다. 

어쨌든 라실라 천문대를 묘사한 단순 스케치는 상당히 심플하면서도 예술적으로 보입니다. 

 

 

 

사진 12> 조금을 더 들어가서 드디어 라실라 천문대의 입구 캠프 팰리카노에 도착하였습니다. 

           아래쪽, 나무가 모여 있는 지점이 바로 캠프 팰리카노입니다. 

 

 

 

사진 13> 드디어 도착했습니다. 라실라 천문대의 입구 캠프 팰리카노 입구. 

         

캠프 팰리카노는 한산했습니다.

차는 제가 몰고 온 차를 포함하여 세 대가 주차해 있었고 사람이 좀 있긴 했지만 입구는 굳게 잠겨 있었죠.

몇 몇 분들이 경비와 무슨 얘기를 하고 있길래 저도 가까이 다가가 봤습니다. 

 

얘기를 들어보니 앞에 오신 분들 역시 저처럼 내일 라실라 천문대 일식 행사에 참여할 분들이었습니다. 

경비로 보이는 철문 안쪽의 땅딸막한 아저씨에게 명단 확인을 요청하시더군요.

저도 잘 됐다 싶었습니다. 혹시 모르니 제 명단도 확인해 달라고 했죠. 

 

하지만 경비 아저씨는 영어를 할 수 없었습니다. 

제 앞에 오신 분들은 능숙하지는 않지만 스페인어를 대충 알아듣는 것 같았습니다. 

손짓 발짓을 해가면서 무슨 얘기를 하긴 하더군요. 

잠시후 경비 아저씨가 건물 안에 들어가서 무슨 리스트를 들고 나왔는데 제 이름도 없었고 앞서 확인을 요청하신 분들도 명단은 없었습니다. 

 

뭔가 불안한 생각이 들었습니다. 

여기까지 왔는데 명단에 우리 이름이 없는 사고가 나면 어떡하지 하는 생각이 덜컥 들었습니다. 

그러자 마음이 초조해지기 시작했죠. 

 

경비실에서 경비 아저씨 한 분이 더 나왔습니다. 

앞서 오신 분들과 이런 얘기 저런 얘기를 하더군요. 

혼란스러운 얘기가 오가기를 한 5분 여가 됐을까... 나중에 나오신 경비 아저씨가 '노 프라블럼'을 연신 이야기하기 시작하시더군요.

 

노 프라블럼이라는 말을 듣자 초조하던 마음이 금방 안심 모드로 바뀌었습니다. 

'그래 별 문제 없겠지....'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C-541 도로도 확인했겠다,  캠프 팰리카노까지 오는 길도 확인 했겠다. 

이제 다시 판아메리칸 하이웨이로 돌아가서 C-542 도로만 확인하면 되겠다 싶어 차를 몰고 판아메리칸 하이웨이로 돌아왔습니다. 

 

ESO에서 보내준 메일에는 분명 C-541에서 북쪽으로 1.6킬로미터 지점에 C-542도로가 있고 입간판이 있을 거라고 안내되어 있었습니다만 1.6킬로를 이미 한참 지났을 것이 분명한데도 샛길은 전혀 보이지 않았죠. 

 

다시 불안한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러고보니 제 대처가 너무 안일했던 것 같습니다. 

경비 아저씨가 말한 노 프라블럼이 도대체 뭐에 대한 노 프라블럼인지도 모르고 그냥 아무 일 없을거라는 안일한 생각으로 길을 되짚어 나온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죠. 

 

우회해서 들어오라는 C-542 도로도 보지 못했습니다. 

캠프 팰리카노에서는 제가 내일 참석 가능한 사람인지 명단도 확인하지 않았습니다. 

 

결국 오늘 해야 할 네 가지 항목 중 첫째와 둘째는 완료되지 않았는데도 나는 발레나르로 향하고 있었던 것이었습니다. 

차를 돌려야 겠다는 생각을 했죠. 

우회로는 40킬로를 더 간 지점에서야 나타났습니다. 

망설임 없이 차를 돌려 아타카마 주정부의 일식 행사장으로 다시 돌아왔죠. 

 

거기서 ESO 담당자에게 컴플레인 메일을 썼습니다. 

"내가 방금 전에 캠프 팰리카노에 갔었는데 내가 내일 출입가능한 사람들 명단에 들어가 있는지 확인이 되지 않는다.

 경비 아저씨하고 전혀 대화가 안된다. 

 그 아저씨가 들고 있었던 명단이 있었는데 그 명단에 내 이름은 없었다."라고 썼죠. 

 

그리고 다시 판아메리칸 하이웨이로 돌아가 북쪽 방향으로 속도를 줄이고 서서히 이동하면서 1.6킬로미터 지점에 있다는 C-542도로를 주의깊게 찾았습니다. 

그제서야 보이더군요. 

깔끔하게 포장되어 있는 C-541과 달리 C-542는 입간판도 전혀 없고 주변 사막과 구분도 쉽게 되지 않는 흙길이었습니다. 

빠른 속도로 이동하면서는 볼 수 없는 길이었죠. 

 

그 길로 접어 들어 라실라 천문대로 다시 향했습니다. 

그러자 C-541과 연결된다는 지점도 확인할 수 있었고 라실라 천문대에 다시 도착할 수 있었습니다.

 

 

 

사진 14> 내 이름을 출입자 명단에서 확인해 주기 전에는 절대 돌아가지 않으리라. 

 

정문에 도착했을 때 아까 저와 같이 이름을 확인하던 분들은 더 이상 보이지 않았습니다. 

잠바를 벗고 정문에 딱 붙어서서 아까의 그 전혀 대화가 되지 않던 경비 아저씨와 대화 따위야 되든말든 내 이름을 확인해 달라고 떼를 썼습니다. 

경비 아저씨는 아까 손에 들었던 것과 같은 명단으로 보이는 종이를 여전히 손에 들고 어깨를 으쓱하고 고개를 절레절레 하기를 반복했습니다. 

 

한참 그렇게 전혀 통하지 않는 대화가 오가는 사이 한쪽 구석에서 나이 지긋하신 아주머니 한 분이 걸어오셨습니다. (사진 철문 안쪽 오른쪽에 보이는 분)

뭔가 이분과는 말이 통할 것 같다는 느낌이 들어서 그 분께 명단 확인을 요청드렸습니다. 

 

아주머니께서는 제 말을 찬찬히 들으시더니 경비 아저씨께 스페인어로 무언가 질문을 하시더군요.

사람이 말을 못 알아 들어도 어투만으로도 상대방에게 이렇게 큰 신뢰를 줄 수 있다는 것을 그 때 처음 알았습니다. 

이 아주머니께서는 나에게나 경비에게나 나긋나긋하고도 느린 템포로 말씀하셨는데 그 말투에서부터 마음이 차분해지는 느낌이었습니다. 

 

경비와 대화를 마치신 아주머니가 저에게 걱정하지 마세요라고 말씀하시며 경비원이 가지고 있는 명단은 오늘 천문대를 방문하는 사람들의 명단입니다. 

내일 행사와는 다른 명단이니 걱정하지 마세요. 

ESO에서 번호를 받으신게 있죠?

그 번호가 있다면 내일 이곳을 출입하는데 정말 아무런 문제가 없을거에요. 라고 천천히 말씀하셨습니다. 

 

그제서야 모든 게 안심이 됐죠. 오늘 목표로 했던 답사 항목 중

첫째, 판아메리칸 하이웨이에서 C541 루트를 이용하여 라실라 천문대 집결지점을 확인한다. 

둘째, C541루트로 판아메리칸 하이웨이로 복귀한 후 C542루트를 이용하여 라실라 천문대 집결지점을 다시 확인한다.

이상 두 가지 항목이 한꺼번에 본질적인 부분까지도 해결되었다는 느낌이 드는 순간이었습니다. 

 

편안한 마음으로 차를 몰고 

셋째, 발레나르에서 오늘 저녁과 내일 온종일 문제가 없도록 부식과 식수를 충분히 준비한다. 

넷째, 일찍 자고 충분한 휴식을 취한다.

이상의 두 개 항목을 달성하기 위해 발레나르로 향했습니다. 

 

인터넷이 터지는 지점에 오자 ESO에서도 답메일이 와 있었습니다. 

 

"걱정하지 마세요. 내일 행사는 완전히 다른 기관에서 진행됩니다. 

 내일은 영어를 하는 사람을 만나게 될 거에요. 

 걱정일랑 붙잡아 두세요.

 친애하는 미첼로부터. "

 

발레나르로 향하는 마음이 한결 가벼워졌고, 내일에 대한 기대가 몽글몽글 피어오르기 시작했습니다. 

 

 

칠레일식여행 11. 빛의 향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