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 나홀로 메시에마라톤

2021. 4. 10. 14:391. 별과 하늘의 이야기/하늘앓이 - 별지기의 이야기들

봄이 왔습니다. 
별지기는 망원경을 접기 전 떠오르는 미리내로 봄이 온다는 것을 알게 됩니다. 

그 봄의 한복판에 별지기들이 함께 어울리는 파티가 있습니다. 
바로 메시에마라톤입니다. 

하지만 작년에 이어 올해도 메시에마라톤은 열리지 못했습니다. 
아직 코로나19가 한창입니다. 
모든 별지기 분들의 건강한 별보기를 간절히 기원드립니다. 

작년 춘분 때 설마, 내년에도 메시에 마라톤을 하지 못할 것이라고는 생각하지 못했습니다.
그리고 올해 춘분, 내년에 메시에 마라톤을 과연 할 수 있을지 의문스럽습니다.

그러다보니 마냥 손 놓고 있을 수만은 없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메시에 마라톤을 해야 되겠다. 
나 혼자만이라도, 
그렇게 나홀로 메시에 마라톤이 시작되었습니다. 

3월 13일 토요일. 
중부지방은 미세먼지와 구름이 잔뜩 낀 밤을 예보하고 있었지만
남부지방은 미세먼지가 없는 맑은 밤하늘을 예보하고 있었습니다.

예전에 이정양 전남지부장님께서 소개해 준 관측지 생각이 났습니다. 
그래서 짐을 챙겨 전남 보성으로 떠났습니다.
코로나 시국에 함부로 누군가를 방문드린다는 것도 참 죄송한 일입니다.
그래서 딱 한 분 이정양 지부장님께만 연락을 드렸습니다. 
먼 길 찾아가는데 인사는 드리고 싶은 마음이 간절했습니다. 

사진 1> 전남 보성 관측지 풍경

남도땅은 봄이 가득했고, 미세먼지 없는 새파란 하늘이 넘쳐났습니다. 
망원경을 설치하고 음악을 들으며 느긋하게 남도의 햇살을 즐기는데 이정양 지부장님이 오셨습니다. 

 

사진 2> 이정양 지부장님과 소주 한 잔.

           코로나 시국에 찾아뵌 것도 죄송한데, 이렇게 융숭한 대접도 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이윽고 밤이 찾아왔고, 메시에 마라톤이 시작되었습니다.

 

 

사진 3> 메시에 마라톤 목록
         : 접안부가 하단에 달린 복합굴절망원경의 특성을 반영하여

          대상이 중위도 지역에 있을 때 관측하도록 설계된 목록입니다. 
          장점은 계획대로만 된다면 목과 허리가 아프지 않다는 것입니다만,
          단점은 마치 컨베이어벨트에 오른거 같다는 것입니다. 
          한 번 시작되면 쉴틈이 없고, 시간을 놓치면 과감히 다음으로 넘어가야 합니다. 
          

 

사진 4> 관측지 별풍경

 


그런데 막상 별지도를 펼쳐놓고 대상을 찾아보니 큰 문제가 생겼습니다. 
별지도가 보이지 않는다는 것이었습니다. 
노안? 말로만 듣던 '노안'이 찾아왔나 봅니다. 
별지도가 보이지 않으니 다소 정밀한 찾기가 필요한 대상들을 찾아보기가 너무나 어려웠습니다. 

별을 찾아다니며 저보다 나이 많으신 선배 별지기들을 많이 만나뵈었습니다. 
새삼 그 분들이 묵묵히 겪어내고 있으셨던 어려움이 이런 것이구나 느꼈고, 존경심이 생겼습니다. 
머리가 나쁘다보니 이렇게 경험하지 못하면 알 수 없는 일 투성입니다. 

22시가 지날 때, 동네 아저씨 두 분이 올라오셨습니다.
전남지부장님의 초대로 오신 말 그대로 정말 별이 보고 싶은 동네 아저씨 분들이셨습니다. 
전남지부장님으로부터 이것저것 들으시고 관측하시고 하시다가 내려가시더니 
후라이드 치킨, 양념 치킨 등 푸짐한 한 상 거리를 마련하여 오셨습니다. 

결국 어르신들과 한 잔 하게 됐습니다. 
그렇게 이날 메시에 마라톤을 접게 됐네요. 
사람들과 함께 어울리며 별보는 것만큼 즐거운 것도 없죠.
그러고보니 제가 메시에 마라톤을 그렇게 기다렸던 것도

사람들과 함께 음식을 나누는 즐거움이 그리웠던 것도 같습니다.

 

사진 5> 33개로 접은 메시에 마라톤.
          별지도가 보이지 않으니 대상을 찾아보는 것 하나하나가 너무나 스트레스였습니다. 
          

 

바쁜 하루하루가 지나고 다시 4월의 월령이 찾아왔습니다. 
4월 6일, 조경철 천문대를 찾았습니다. 
역시 제목은 '나홀로 메시에마라톤'이었습니다. 
그리고 가장 중요한 장비, 바로 '돋보기'를 챙겼습니다. 

 

사진 6> 다이소에서 구입한 2천원짜리 돋보기.
          시원시원하게 보이는 별지도로 스트레스가 몽땅 날아갔습니다.

 

          
조경철 천문대에서 별 보는 것은 거의 한 3년 만인것 같습니다.
사진 찍으시는 분들이 내뿜는 플레쉬 불빛으로 별보기가 어렵다고 생각했는데 
평일이라서 사람들이 없을거라 생각했습니다. 

몇 가지 계산 착오가 있었네요.

평일임에도 많은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그리고 또 하나, 남쪽 하늘이 완전 대도시 하늘처럼 밝아져 있었습니다. 

 

사진 7> 저 하늘 어쩔...

           빛공해 넘치는 조경철 천문대 남쪽 하늘

 


지도 상으로는 골프장이 있던데, 야간 골프 때문인가요?
낮은 고도에 있는 별들은 파인더로도 안 보일 지경입니다. ㅜㅜ;;;

그냥 느긋하게 자정이 지나기를 바랐습니다.
자정이 지나 새벽으로 가면 어쨌든 어두워는 질거라고 생각했고,

생각대로 자정이 지나자 사람도 줄어들고 하늘도 제법 제가 알고 있던 강원도의 그 하늘로 돌아가는 것 같았습니다. 

이미 순서를 놓쳐버린 메시에 마라톤을 계속 할 수는 없었지만
그 대신 보고 싶은 것을 집중적으로 찾아보고 관측하는 시간을 가질 수 있었습니다.          

 

사진 8> 그냥 내 맘대로 찾아보고 기록한 하늘의 별들. 

백조와 독수리가 미리내를 끌고 올라옵니다. 
이렇게 2021년의 미리내도 첫 알현을 드렸습니다. 

 

 

사진 9> 월령 25일의 달과 미리내가 어우러진 풍경. 

 

무수한 별들이 빛나는 하늘은 언제나 그곳에 있습니다. 

빛공해인들 사람공해인들 뭐가 방해가 되겠습니까?

중요한 것은 그것을 찾아가려는 제 마음일 뿐입니다. 

 

하지만 메시에 마라톤의 분위기는 메시에 마라톤이 아니면 느낄 수 없는 것 같습니다. 

내년에는 또 예전처럼 메시에 마라톤이 열릴 수 있기를 간절히 기원드립니다. 

 

봄 향기가 가득했던 산청의 그 밤이 그립습니다. 
밥상 가득 봄을 담아내오셨던 들국화 선생님의 식탁도 그립습니다.
다같이 컵라면을 먹던 자정의 휴식 시간도 그립습니다. 
행사의 준비와 진행을 맛깔나게 진행하셨던 경남지부 지부장님과 회원분들, 
전국에서 달려와 자기 소개를 하던 별지기들의 그 시간들이 그립습니다. 
그렇게 사람과 별이 함께 넘치고 빛났던 그 시간들이 그립습니다.

 

 

사진 10> 2019년 메시에마라톤 풍경.

그리운 그 순간들이 더이상 추억이 아닌 현실로 살아날 수 있기를 간절히 기원드립니다.  
          



                    



'1. 별과 하늘의 이야기 > 하늘앓이 - 별지기의 이야기들' 카테고리의 다른 글

울산바위가 해 준 말.  (0) 2022.07.31
두 번째 망원경을 갖기로 했다.  (0) 2021.12.18
별과 기다림  (0) 2020.07.13
황매산 3  (0) 2020.07.13
채울집에 볕든 날  (0) 2020.06.2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