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 10. 24. 13:52ㆍ4. 끄저기/끄저기
2021년 10월 11일 이른아침.
사랑하는 하늘이가 무지개 다리를 건너 내 곁을 떠나갔습니다.
하늘이는 이첨판 폐쇄 부전증이라는 심장병과 다엽성 뼈종양이라는 악성 종양을 앓고 있었습니다.
최근 들어 몸이 급격히 쇠약해졌습니다.
심장병의 특성상 밤에 잘 때 자세를 이리저리 바꾸어야 했습니다.
다리에 더 이상 힘이 없어 화장실을 갈 수도 없었습니다.
그래서 바로 옆에서 하늘이가 뒤척일때마다 자세를 바꿔주었고
배변여부를 확인하여 그때마다 자리의 패드를 바꿔주고 몸을 닦아 불편함이 없도록 각별히 신경썼습니다.
매일 밤을 그렇게 함께 했습니다.
이 날도 새벽까지 하늘이의 자세를 바꿔주고 똥오줌을 치우고 몸을 닦아주었습니다.
그러다가 새벽 4시경 저도 모르게 깊은 잠에 빠져들었습니다.
아침 6시에 잠시 잠에서 깼을 때, 하늘이는 언제나처럼 엎드려 있었습니다.
하늘이가 여전히 잠을 자고 있다고 생각했지만, 이미 무지개다리를 건넌 뒤였습니다.
얼마 되지 않은 듯, 몸은 여전히 따뜻했습니다.
이첨판 폐쇄 부전증은 말티즈에게서 흔히 나타나는 심장병으로 발병 후 평균 3년을 생존한다고 합니다.
하늘이가 이 병을 진단받은 것은 2018년 12월이었습니다.
진단 전 발병시기로 추정해 보건대 의사선생님께서 말씀하신 평균 생존 기간을 채운 것 같습니다.
다엽성 뼈종양은 정식 진단을 받은 것은 아닙니다.
올해(2021년) 1월 오른쪽 무릎이 부어오르는 것이 확인되었고,
관련 자료를 찾아보니 다엽성 뼈종양으로 의심되었습니다.
예후가 좋지 않은 무서운 병이었고, 이런 경우 무조건 다리를 절단해야 하며, 절단 후에도 오래 살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고 합니다.
하지만 하늘이는 절단 수술을 받을 수 없었습니다.
심장병 때문에 마취 후 깨어나지 못할 확률이 크다고 했습니다.
결국 수술은 하지 못했고, 내 곁을 떠날 때까지 강심제와 이뇨제, 진통제로 투병을 해야 했습니다.
정말 고맙게도 한쪽 다리를 쓰기 어려움에도 하늘이는 씩씩하게 산책을 하고 밥도 잘 먹었습니다.
부쩍 몸이 안 좋아진 건 두 달 전 함께 지내던 강아지 하나가 무지개 다리를 건넌 후 부터였습니다.
더 이상 걸어서 산책을 할 수 없어, 산책을 시키려면 슬링백에 넣어 안고 다녔습니다.
그렇게라도 밖에 나가 콧바람을 쐬면 무척 즐거워 했습니다.
하늘이가 우리 집에 막 왔을 때의 모습.
하늘이는 저에게는 첫 번째 강아지입니다.
제가 직접 샵에 가서 데려왔습니다.
그때가 2008년 12월 24일이었습니다.
아버지가 돌아가시고 얼마 되지 않았을 때였고, 회사에서는 늘 밤 10시가 넘어서야 업무를 마칠 때였습니다.
문득 강아지가 키우고 싶었는데
제 머릿속에 '강아지' 하면 떠오르는 이미지와 가장 비슷한 모습의 강아지가 말티즈였기 때문에 말티즈를 선택했습니다.
당시만 해도 반려견에 대한 지식이 충분치 않았고
저는 여전히 멍청한 사람이었기 때문에 강아지를 데려올 당시에는 아무런 생각 없이 그저 유명하다는 판매점에 가서 제가 생각했던 '수컷 말티즈'를 선택했습니다.
당시 그 판매점의 수많은 케이지 속에 '수컷 말티즈'는 딱 한 마리 있었습니다.
그게 바로 '하늘이'였습니다.
저는 강아지는 그저 먹을 것만 주고 귀여워만 해주면 되는 줄 알았습니다.
강아지가 생명이라는 생각을 하지 못했던 것이죠.
하지만 저는 이 아이에게서 큰 깨닳음을 얻었습니다.
하늘이는 어렸을 적부터 잔병치레가 많아 병원에도 더 많이 다녀야 했습니다.
사회성이 부족하고 입질이 있어서 산책을 나가면 늘 다른 강아지와 사람들을 신경 써야 했죠.
하지만 하늘이는 일반적으로 강아지들에게 바라는 기본적인 일들은 잘 했습니다.
예를 들어 간식을 사주면 함께 있었던 다른 강아지들은 가리는 간식이 있었습니다.
하지만 하늘이는 무엇을 주든 잘 먹었습니다.
그렇게 뭐든 잘 먹는 이 아이가 더 이뻐보였습니다.
하늘이는 물을 자주 마셨습니다.
물을 자주 마시는 건 대단한 일이 아님에도 그 모습 때문에 이 아이가 더 이뻐보였습니다.
하늘이는 어느 곳에 여행을 가든 화장실에 대한 개념이 확실했습니다.
그래서 생소한 숙소로 여행을 가면 하늘이가 제일 먼저 그 숙소의 화장실에 가서 일을 보고 나서야
다른 강아지들도 거기가 화장실인줄 알게 되었습니다.
그렇게 화장실을 제대로 구분할 줄 아는 모습 때문에 이 아이가 더 이뻐보였습니다.
그렇습니다.
저는 하늘이를 통해 삶에서 중요한 것은 복잡한 일이 아니라 기본에 충실한 것이라는 걸 배울 수 있었습니다.
인생의 낭비였던 회사를 그만둔 후 하늘이, 그리고 2개월 먼저 떠나간 하나와 함께 정말 행복한 시간을 보냈습니다.
산청 채울집에서 늘 함께 있었던 소중한 순간들.
황매산에서 밤을 함께 보내며 별을 바라봤던, 다시 못올 소중한 순간들.
산청 채울집에서 좌식 책상에 앉아 작업을 할라치면 하늘이와 하나가 늘 제 무릎에 함께 있었습니다.
신정동 필마루에서는 입식 책상에 앉아 작업을 하다보니 제 무릎 앞에 있을 수는 없었지만
대신 뒤를 돌아보면 언제나 이 두 녀석이 항상 같이 있었습니다.
이제 뒤를 보면 이 사랑스러운 캐스퍼들은 더 이상 없습니다.
떠나간 것은 다시 돌아오지 않습니다.
인생은 어찌보면 이별에 익숙해져야만 하는 과정인 것도 같습니다.
하늘이를 떠나보내기 전에 반려견 등록을 마쳤습니다.
나와 하늘이가 가족이라는 것이 공식 서류에 남아 있게 된 것입니다.
그렇게 기록에 남게 되어 너무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410160010954407 : 우리 하늘이의 등록번호
이제 얼마 후면 신정동 필마루를 떠납니다.
제주도 땅도 팔았습니다.
제주도 땅은 언젠가 집을 지어 하늘이와 하나가 맘껏 뛰놀게 해 주고 싶었던 곳이었습니다.
아이들이 여전히 함께 있었다면 팔지 않았을 것입니다.
하지만 이제 아이들이 없으니 아쉬움도 크지 않았습니다.
이렇게 제 인생의 한 마디가 저물고 있다는 생각이 듭니다.
새로운 마디에는 어떤 일들이 있을까요?
그 곳에 어떤 일들이 있을지는 모르겠지만
저에게 이런 천사들은 다시 오지 못할 것 같습니다.
이 아이들을 만날 수 있었다는 것에 감사드립니다.
그리고 자신있게 말씀드릴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제게 이 천사들을 보내주셔서 감사합니다.
이 천사들을 통해 저의 미련함을 깨우칠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미약하나마 이 아이들을 최선을 다해 돌보았습니다.
저에게 보내주신 이 소중한 영혼들을 돌려드립니다.
공만 있으면 충분히 행복했던 나의 사랑 하늘이.
하늘아, 하나와 잘 지내고 있으렴.
머지않아 다시 만날 수 있을거야.
그때 또 멋진 산책 함께 하자꾸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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