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 9. 21. 04:04ㆍ4. 끄저기/끄저기
속초는 내가 너무나 사랑하는 동해바다가 넘실대는 곳이다.
하지만 속초도 이제는 많이 변했다.
예전에는 속초 여행을 가면 반드시 아바이 마을을 찾아가곤 했다.
속초 동명항이나 대포항에서 회 한접시에 소주 한잔 하고
허름한 아바이마을 단천식당에서 회냉면으로 해장을 한 후
청초해변 모래톱에 널부러져 바다바람을 맞으며 한숨 자고 오곤 했다.
그때까지만 해도 아바이 마을을 아는 사람은 거의 없었다.
속초 코앞인데도 찾아가기가 쉽지 않았기 때문이다.
속초가 청초호를 끼고 안쪽에 형성된 마을인데
피난민들은 그 쪽으로 들어갈 수가 없었다.
그래서 청초호와 바다 사이에 만들어진 모래톱에 판자집을 만들어 정착해야 했고
그것이 곧 아바이 마을의 시작이 되었다.
이렇게 만들어진 아바이 마을은 난바다에 그대로 노출되어 있었다.
때문에 너울성 파도에 자주 피해를 입어야 했다.
그런 열악한 곳에서 아바이 순대가 만들어지고 명태회냉면이 만들어지고 속초로 들어가는 갯배가 만들어졌다.
오늘날 이것들은 모두 속초 문화관광의 핵심요소들이 되었다.
아바이 마을은 그만큼 멋진 곳이었다!
하지만 이제 나는 속초에 들러도 더 이상 아바이 마을을 찾지 않는다.
한 5~6년 전쯤 아바이 마을이 1박 2일이라는 오락 프로그램에 나왔다.
그 이후 아바이 마을은 철저히 상업화 되었다.
그때 고즈넉하고 아름다운 마을을 철저하게 파괴해 놓는 공중파 예능방송의 만행에 분노를 금치 못했었다.
하지만 가만 생각하면 웃기는 일이다.
내가 뭐라구...
아바이마을 주민들 입장에서는
조용히 분위기만 즐기다 가는 나같은 소수의 관광객보다
편의시설과 카페를 찾는 다수의 관광객이 더 절실히 필요했을 것이다.
어쨌든 그 이후 아바이마을은 찾는 사람이 넘쳐나는 곳이 됐다.
아담했던 단천 식당은 3층짜리 식당이 되었고
너울성 파도 몰아치던 모래톱엔 커피숍도 많이 들어섰으며
튼튼하고 거대한 방파제가 바다를 막고 들어섰다.
하지만 나에게 아바이 마을은
지구 상 어디에도 존재하지 않는 것이 되었다.
2018년 4월 2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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