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 9. 13. 22:58ㆍ4. 끄저기/끄저기
오늘은 아버지 산소에 가기로 한 날이다.
어머니와 삼형제가 함께 가기로 했고
내가 흰둥이를 몰고 가기로 했다.
아침에 일어나
하늘이 식전 약을 먹이고,
주차장에 내려가 흰둥이에게 실려 있는 노브랜드 물통 4꾸러미를 꺼내 올렸다.
그리고 다시 내려가 왁스를 꺼내 차를 닦았다.
차를 다 닦아내는데 35분 정도가 걸렸다.
흰둥이가 다시 새하얘졌다.
그사이 안쥔마님께서 하늘이 밥을 먹였다.
하늘이가 밥을 잘 먹었다고 한다.
덥수룩한 수염을 깎고 샤워를 하고 옷을 챙겨 입은 후 하늘이 식후 약을 먹였다.
그리고 집을 나섰다.
어머니 댁에 큰형이 이미 와 있었다.
가족이 함께 한 차에 타기는 또 오랜만이다.
예전에는 이렇게 차를 몰고 갈 때,
큰형과 작은형이 하는 얘기들이 그닥 탐탁치 않게 느껴졌다.
하지만 오늘은 전혀 그렇지 않았다.
그 사이 큰형과 작은형도 바뀌었고, 나도 바뀌었다.
그래서 그런지 오늘은 가족끼리 나누는 모든 이야기들이 재미있었다.
그렇게 길을 나서 11시경 용인천주교 공원묘지에 도착했다.
언제나처럼 먼저 할머니 산소에 들러 기도를 올렸고,
그 후 아버지가 계신 참사랑 묘역에 들렀다.
참사랑묘역은 의학연구를 위해 시신을 기증한 분들을 모아 놓은 묘역이다.
나는 참사랑묘역에 올때마다 기분이 좋다.
여기에 오는 날은 항상 햇살이 넘쳐났다.
마지막 순간에 자신의 모든 것을 인류를 위해 넘기신 분들의 후손들이 찾는 곳이다.
그래서 이곳에서 울리는 자그마한 기도소리와 성가소리는
그 어떤 성당에서 듣는 기도나 성가가 범접하지 못하는
거룩함이 있다.
참사랑묘역에 계신 분들은 하나같이 너무나 작은 공간에 모셔져 계시지만
이 무덤은 그 어떤 왕의, 그 어떤 거대한 무덤보다도 위대하다.
나의 아버지는 이곳에 계신다.
아버지는 비석 아래 눕지 않으셨다.
봉분 아래 눕지도 않으셨다.
아버지는 사람들 아래 누우셨다.
사람들이 그 위에서 일어설 수 있도록 누우셨다.
나는 그런 아버지가 자랑스럽다.
아버지가 계신 4호라인
노란색 하트 꽃다발이 맘에 들지는 않았지만
아버지의 임자는 어머니다.
어머니의 선택에 토를 달지 않기로 했다.
성묘를 마치고 큰형이 밥을 사겠다고 했다.
우리를 어디로 데려가나 했더니 여의나루에 있는 에슐리라는 프렌차이즈 뷔페집이었다.
큰형 덕에 맛난것도 많이 먹고, 재미난 이야기도 많이 나눴다.
청명한 날씨가 모든 것을 완벽하게 만들어주었다.
식사를 마친 후 큰형은 지하철을 타고 가고, 어머니와 작은형을 집에 바래다 드린 후 돌아왔다.
안쥔마님의 방송작가협회에서 보낸 쌀이 와 있었다.
잠시 한숨 돌리며 피곤을 풀었다.
이내 저녁이 찾아왔다.
하늘이 약을 먹이고 밥을 먹였다.
독한 약을 먹고 있는 하늘이의 입 주위 털에 함께 먹인 꿀이 말라붙어 뻣뻣해져 있었다.
약해질대로 약해진 상태다보니 함부로 건드리기가 부담스러워 계속 미용을 미루고 있다.
하지만 오늘은 맘 크게 먹고 미용과 목욕을 시켜주기로 했다.
바리깡을 꺼내, 입주위와 발바닥, 똥꼬 주변을 조심조심 깔끔하게 정리했다.
목욕도 신경을 곤두세우고 시켜주었다.
드라이와 발톱 정리까지 다행히 잘 마쳤다.
그 덕에 하늘이가 이뻐졌다.
하지만 너무나 이뻐진 하늘이의 모습에 가슴이 아팠다.
진통제와 심장약을 조심스레 먹이고 입주위를 깨끗하게 닦아 주었다.
소중했던 하루가 이렇게 저물고 있다.
'4. 끄저기 > 끄저기' 카테고리의 다른 글
아바이 마을은 지구상 어디에도 존재하지 않는다 (0) | 2021.09.21 |
---|---|
사람은 모두 자기가 떠나온 별이 있다. (0) | 2021.09.21 |
식탁 (0) | 2021.08.18 |
이별 2. - 2021년 8월 10일. 사랑하는 하나. (0) | 2021.08.18 |
중도 (0) | 2021.08.04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