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 8. 18. 00:16ㆍ4. 끄저기/끄저기
모든 일정을 마치고 집으로 향했다.
도착 예정 시간은 오후 2시.
원래는 12시 이전에 도착해서 동생 강아지들에게 늦은 아침 식사를 챙겨줄 생각이었지만
오전 일정이 달라지면서 시간이 늦어졌다.
그렇게 예정보다 늦게 집에 도착했다.
현관문을 열면 언제나처럼 꼬리를 흔들며 우리를 반겨주는 동생 강아지들이 있었다.
하지만 오늘은 그 모습이 달랐다.
불안한 마음에 빨리 중간문을 열었다.
그리고 싱크대 앞에 누워 움직이지 않는 하나를 발견했다.
하나가 무지개 다리를 건넌 것이다.
안쥔마님이 오열하는 가운데
나는 하나를 안아 올려 자리를 정돈했다.
그리고 하나를 내방으로 데리고 와 몸 구석구석을 닦아 주었다.
하나는 '림포마' 진단을 받았다.
사람으로 치면 '림프종'이라는 종양혈액질환, 즉 암이었다.
림포마는 진단 후 치료를 받지 않으면 2개월, 길어야 4개월 밖에 살 수 없는 무서운 병이었다.
동물병원에서는 항암치료를 권했다.
총 16번으로 프로토콜화 되어 있다는 그 치료는, 강아지가 치료를 잘 버텨준다면 매주에 한 번씩 해서 총 16주가 걸리는 과정이라고 했다.
애초에 완치를 바라보기는 어려운 병이고, 항암치료를 하면 연명이 잘 되고, 예후도 좋다고 설명했다.
물론 안 그런 경우도 있지만 말이다.
하지만 나는 항암치료를 선택하지 않았다.
항암치료를 하지 않은 이유는 간단하다.
사람도 견디기 힘든게 항암치료다.
그런데 그걸 하나에게도 시작한다면 하나는 매주마다 금식과 채혈, 항암주사를 반복해야 한다.
디테일로 들어가면 의사가 설명해 주지 않은 상황도 많을 것이다. 으레 그러니까 말이다.
과연, 끊임없이 몸에 꽂히는 주사바늘과 몸속으로 들어가는 독과 다름없는 항암제를 하나가 감당할 수 있을까?
사람이라면 자기가 왜 그런 치료를 받아야 하는지를 인지할 수 있다.
따라서 그에 따른 고통을 감내해야 한다는 각오를 할 수 있다.
하지만 강아지는 그렇지 않다.
왜 자신에게 끊임없이 주사바늘이 들어오는지 이해하지 못할 것이다.
즉, 그 모든 게 고통으로 받아들여질 것이다.
우리 하나는 세상에 그림자란 없이 살아온 아이다.
삶의 마지막을 그렇게 약물과 주사바늘에 시달리며 살게 하고 싶지 않았다.
결국 내 선택은 항암치료가 아닌 하루 두 번 진통제와 항염제를 먹이는, 호스피스 치료였다.
하나가 림포마 증세로 처음 병원을 찾은게 올해 1월 3일이었다.
그리고 8월 10일, 하나는 우리 곁을 떠났다.
하나는 총 8개월을 살았다.
그 기간 동안 밥도 잘 먹고 산책도 많이 했다.
지금 생각해 보니 정말 다행이라는 생각이 든다.
하나를 그렇게 떠나 보낼 수 있어서 말이다.
회사를 그만 두기 전의 나는 사람이 아니었다.
나는 회사를 그만둔 후 진정한 인생을 배우고 있다.
그 중 가장 큰 배움을 하늘이와 하나, 이 여리고 여린 생명체들로부터 배웠다.
하늘이, 하나와 함께 산청에 내려간 후 나는 강아지들이 오직 주인만 보고 산다는 걸 알게 됐다.
아담한 공간에서 함께 하루종일 붙어 있다보니, 하늘이와 하나가 전적으로 내게 의지하고 있다는 것을 깨닫게 된 것이다.
그 전까지 나에게 이 아이들은 오직 내 즐거움만을 위한 존재였다.
내가 밥을 주고 싶으면 주고, 장난을 치고 싶으면 치고, 그러다가 내 할 일을 하면 그만이었던 것이다.
하지만 그것이 잘못된 것이라는 것을 알게 됐다.
나는 이 생명들을 책임져야 할 의무가 있는 '사람'이었다.
'사람'이기 때문에 군림하는 것이 아니라, 이 여린 생명체가 세상을 살아갈 수 있도록 도와야 했던 것이다.
난 사람이라면 당연히 알고 있어야 할 바로 이 '생명에 대한 책임'을 전혀 모르고 살았던 것이다.
산청에서부터 나는 변하기 시작했다.
그 변화는 하늘이와 하나를 돌보는 것에서 시작했다.
그리고 그 변화로부터 행복이 찾아왔다.
산청에서 따사로운 햇살을 맞으며 잠든 하나의 사랑스러운 모습.
산청 채울집에서 항상 아침 6시에 일어나 같이 아침 산책을 했다.
아침 산책 후 아침을 먹이고 나 역시 아침을 챙겨 먹었다.
그리고 하루 종일 번역과 창작 작업을 했다.
그러면 어느덧 해가 기울기 시작했다.
사랑스러운 동생들은 데크에 나가 자거나 내 무릎에서 잠을 잤다.
이따금씩 사람이나 차들이 지나가거나 새가 들어와 앉으면 데크에 나가 짖곤 했다.
그러다가 저녁 5시가 되면 또 다시 같이 산책을 즐겼고, 산책 후 저녁 식사를 했다.
나 역시 저녁 식사를 챙겨 먹고 저녁 작업을 하다가 불을 끄고 함께 이불 속에 파고들어 잠을 잤다.
이 단조로운 생활 속에서 동생 강아지들이 모두 건강해졌다.
원래부터 건강했던 하나는 더더욱 건강해졌고
하늘이는 몸 여기 저기에서 잡히던 지방종이 모두 사라졌다.
하나는 산책을 무척 좋아했다.
내가 회사 생활을 하며 인생을 낭비할 때는 뭐가 그리 바쁜게 많은지 동생들 산책 따위는 신경도 안 썼다.
하지만 산청에서부터는 매일 동생들과 함께 산책을 했다.
내가 하나를 떠나보내고 그나마 가슴을 쥐어뜯지 않게 만들어 준것이 바로 이것이다.
하나와 많은 곳을 돌아다녔고, 그 와중에 하나가 그토록 좋아하는 산책을 실컷 하게 해준 것이다.
하늘이, 하나와 함께 제주도 여행.
배를 타고 여름에 한 번, 겨울에 한 번 해서, 제주도 여행을 총 두 번 같이 했다.
강원도 여행도 두 번 같이 했다.
하나는 바닷물을 무서워 하지 않았다.
어디든 즐겁게 앞서 나갔고, 산책의 순간을 만끽했다.
산청 황매산에도 함께 올라 따사로운 햇빛과 별빛도 만끽했다.
황매산에는 여러 번 함께 갔다.
8월 7일 아침, 서울 신정동 필마루에서 같이 경창시장을 간 것이 하나와 함께 한 마지막 산책이 되었다.
이 사진은 사진으로 남겨진 마지막 산책 사진이 되었다.
2021년 8월 3일, 목동 7단지에서 찍은 것이다.
하나는 떠나는 마지막까지 장거리 산책을 했다. 걸어다니는데 아무런 문제도 없었고, 꺼리낄 것도 없었다.
하나는 산책도 고고하게 했다.
법 때문에 어쩔 수 없이 목줄을 하긴 했지만 하나에겐 목줄도 필요 없었다.
목줄이 있든 없든 항상 내 옆에 붙어 걸었다.
다른 강아지가 다가와도 신경쓰지 않고 무시하며 지나갔다.
그 덕에 강아지를 통제하기 위해 어쩔 줄 몰라하는 다른 강아지 주인들과는 달리 나 역시 고고하게 산책할 수 있었다.
편안하게 낮잠을 즐기는 하나.
하나는 바로 이 모습으로 우리 곁을 떠나갔다.
사랑하는 하나야.
편히 쉬렴.
꼭 다시 만날거야 우리.
이 오빠가 하나 많이 사랑해.
바닷가를 함께 걷던 하나.
언젠가 때가 되면 하나와 같이 푸른 바닷가를 다시 걸을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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