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 3. 15. 17:12ㆍ4. 끄저기/끄저기
대학교 1학년을 중심으로 한 전후 2년, 약 4~5년의 기간은 내겐 암흑의 영역으로 남아 있다.
그냥 흘러가는 시간에 몸뚱이가 굴러다니던 시절이었다.
그때의 나를 돌아보건대 내게 유일하게 의미가 있었던 시간은 김소진의 소설을 만나는 시간이었다.
이젠 기억도 가물가물한 그 시절을 추억하면서
실로 오랜만에 그의 단편 소설집을 다시 들여다보았다.
무능한 남자.
그의 소설을 관통하는 하나의 주제이다.
그 주제는 당시의 나와 너무나 잘 맞아 떨어졌다.
당시 나는 아마도 김소진의 소설에서 내 모습을 찾고 위로를 받았던 것 같다.
이 세상에 무능한 게 나 혼자만도 아니고
이 세상에 추악한 게 나 혼자만도 아니라고
그렇게 나 자신을 합리화 할 수 있는 유일한 도피처였다.
대학 1학년을 마치고 군대를 갔다.
그리고 군대에서 별 지랄같은 경험을 하면서 계속 무능하기만 해서는 안 되겠다는 생각을 했다.
그렇다고 뭐 대단한 결심을 한 것도 아니고 그냥 언제나 무능했던 나 자신의 테마에 맞게
"한 번 꿈틀은 해보고 죽어야 될거 아냐 썅!"
그 정도의 생각을 했던 것 같다.
군대를 제대한 후 내 삶은 딱 그 정도로 풀렸다.
오랜 세월이 지난 지금 나를 다시 평가해본다.
나는 과연 꿈틀은 했는가?
생각해보니 '꿈틀'은 한 것 같다.
비록 순탄하지는 않지만
남들 다 편하다는 길을 벗어나는데 성공했고
여전히 내가 잡은 방향타대로 나아가고 있기 때문이다.
더 나아가보자. 더, 더, 더 말이다.
그리고 중간중간 매듭이 지어지는 지점에서 한 번 더 김소진을 만나보자.
그러고보니
대학교 1학년을 중심으로 한 전후 2년, 약 4~5년의 기간은
단 하나 '김소진'을 만날 수 있었던 것만으로
내겐 충분한 시간이었던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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