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두가 순수했던 시절 - 독일인의 사랑

2022. 3. 12. 16:284. 끄저기/끄저기

아무 생각 없이 맘 편하게 읽어볼 책을 고르기 위해 책꽂이를 살펴보았다. 

이 책은 '고도를 기다리며' 바로 옆에 꽂혀 있었다.

'고도를 기다리며'는 세 번을 읽고도 여전히 그 의미가 파악이 안 되는 책이다. 

때마침 그 책 옆에 꽂혀 있는데다가 두께도 엇비슷하고 무엇보다 달달한 사랑 이야기라고 하니

말 그대로 휴식에 충실한 책이 될 수 있을 것 같아 꺼내보았다. 

 

이 책은 기대대로 충실한 휴식을 안겨준 책이다. 

뿐만 아니라 사랑만으로 온 세상이 충만하던 시절, 

가슴 한가운데 설레임이 가득하던 시절의 기억도 떠오르게 해 주었다. 

 

그땐 그랬지. 

물론 사랑하는 여인이 불치병으로 죽어버리는 건 촌스럽게 느껴지는 시대에 도달했지만, 

그래도 부활전야미사만큼이나 길고, 복잡하고, 거룩한 밀당들은 있었지. 

독일인이라는 것과는 아무 상관없이, 

그저 사랑에 빠진 청춘남녀라면 그 자체만으로 이 우주에 빈틈이라곤 하나 없었지. 

 

그러고보니 요즘 젊은이들은 어떻게 사랑을 나눌까?

빠르게 변하는 세상만큼이나 그들도 많이 변했을텐데.

이제 더이상 사랑하는 연인에게 '일리아드'를 들려주거나

사랑이 괴로워서 배낭을 매고 훌쩍 무전여행을 떠나버리는 그런 일은 하지 않겠지?

 

하루하루가 시들어 가는 것에 대한 애도 투성이다. 

'오늘이 내 인생에서 가장 젊은 날'이라는 주문을 애써 외며 살아간다. 

 

하지만 이 책을 읽는 동안에는 잠시나마 

그 부질 없는 주문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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