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호주 일식여행 6 - 내 인생 첫 캠핑카 호둥이.

2023. 6. 2. 00:091. 별과 하늘의 이야기/2023 서호주 일식 여행기

아침 8시에 일어나 남은 소시지와 치폴라테, 분다버그로 아침을 챙겨먹었다. 

오늘은 드디어 호주 로드트립을 함께할 캠핑카를 만나러 가는 날이다. 
어제 저녁에 이미 짐을 다 챙겨놓은 터라 아침은 한결 여유로웠다. 

9시 40분에 체크아웃 하고 
호텔에서 불러준 택시를 타고 공항 인근, 16 Aitken Way에 있는 렛츠고 모터홈 렌트카 회사로 향했다. 

 

Aitken Way 가장 끝에 있는 Letsgo 회사, Aitken Way에는 캠핑카 대여업체 회사가 줄줄이 위치하고 있었다.

 

사무실 풍경
사무실에서 발견한 서호주 지도 브로슈어. 한국에서 미리 구하고 싶었는데 못 구했었다. 냉큼 챙겼다.(무려 3개 ^^)


잠시 후 할머니 한 분이 나와 우리 앞에 도착한 한 팀과 이야기를 나누고 렌트를 진행했다. 
관련하여 이런 저런 이야기를 화기애애하게 나눈 후 
직원 할머니는 서류를 챙겨들고 손님들은 베낭을 챙겨들고 사무실을 나섰다. 

이제 내 차례였다. 

 

잠시 후 또다른 직원이 한 분 들어왔다. 
역시 할머니 직원이었다. 

서호주에서 본 독특한 모습 중 하나는 일을 하는 할머니들이 많았다는 것이다. 

국립공원 게이트나 기념품 샵, 심지어는 도로 통제하는 분 중에도 할머니가 있었다. 

내가 간 렌트카 회사는 당연히 개인회사였다. 

내부 사정이야 어떤지 모르겠지만 젊은 사람들이 아닌 할머니들이 일을 하는게 좋아보였다. 

직원 할머니 분과 본격적으로 자동차 렌탈과 관련한 얘기를 했다. 


그런데 앞서 팀과 달리 꽤 많은 시간이 걸렸다. 
가장 큰 원인은 내가 할머니의 영어를 잘 못알아 들었기 때문이다.
정말 말을 알아듣기가 쉽지 않았다.

영어 공부를 게을리 한 건 사실이지만 이렇게까지 안 들리진 않았었던 것 같다. 

내가 나이가 들어 그런가 하는 생각까지 했다. 


그런 상황에서 보험조건 변경과 관련된 얘기들도 해야 했다. 
그래서 더 많은 시간이 걸렸다. 

이야기 중에 또다른 난관도 있었다.

"연락처 어떻게 되냐?"
"연락처 없어요."

"그럼 어떻게 연락하냐?"

"연락할 일 있으면 메일로 주세요."
"여긴 호주야. 땅덩이가 넓고 사람 없는 곳 천지란 말이야. 어쩔려고 그래?"

 

한국에서 출발할 때 와이파이 도시락을 빌렸을 뿐

사실 난 로밍의 필요도 유심칩의 필요도 못 느꼈다. 


가족이라고는 와이프가 전분데 와이프가 바로 옆에 있으니 누구하고 연락할 필요가 있으랴 싶었던 것이다.

 

물론 준비라는 측면에서는 충분치 못했던 건 사실이다. 

하지만 정말 서호주가 상시 연락체계를 유지해야 하는 곳인지는 현지에서 판단하자고 생각했고

그때 로밍을 하든 유심을 사든 해도 상관없을 거라 생각했다. 

 

그러니 렌트카를 받는 시점에는 딱히 연락처라고 말할 게 없었던 것이다. 

그런데 나의 이런 대답이 할머니에게는 신뢰못할 사람처럼 보였나보다. 

그 이후부터 할머니의 설명이 무척 깐깐해졌다. 
서류에 있는 주의사항, 특히 나와 회사간의 귀책과 관련된 부분은 꼼꼼하게 체크하기 시작했다. 

비포장 도로에서 사고나면 책임지지 않는다부터 시작해서 
휘발유 절대 넣어서는 안 된다는 아주 기본적인 것까지 하나하나 꼼꼼하게 그리고 단호한 어투로 설명하기 시작했다. 

 

화기애애했던 앞의 팀과 달리 나의 렌탈 서류 점검과정은 무척 깐깐하게 이루어졌다.
계약서 : 그래도 꼼꼼한 체크 덕분에 귀로는 안 들리던 내용을 직접 읽고 이해할 수 있었다.


사무실에서 그렇게 설명을 듣고 보험조건을 바꾸고 보증금을 걸고 나오기까지 30분이 넘게 걸렸다. 

설명과 카드 결재가 끝나고 함께 나와 드디어 나와 여행을 함께 할 캠핑카를 만났다.

 

보름간의 서호주 여행을 함께할 캠핑카를 만나는 순간


할머니의 깐깐한 설명은 밖으로 나와 캠핑카의 이부분 저부분을 설명하는데에도 이어졌다.
자동변속기도 'D'외에는 다른 건 건들 생각하지도 말라는 설명을 시작으로 
초보자에게 설명하는 것처럼, 그러나 정말 혼내는 투로 이야기했다. 

군대 제대 이후 처음으로 조교를 만나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전기를 연결하고 통제하는 법, 
화장실, 에어컨, TV, 냉장고, 전자렌지, 가스렌지를 다루는 법,
상수도와 하수도를 연결하는 법, 
가스밸브를 열고 잠그는 법,
어닝을 폈다 접는 법, 

화장실 오물을 처리하는 법 등 
렌트카의 각 부분에 대한 설명이 이어졌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차에 시동을 걸기 전에 반드시 확인해야 하는 것 두 가지를 직접 해보라고 했다. 

다행히 그건 설명을 잘 들었다. 

전기충전선을 뽑고, 가스통 밸브를 잠궜다. 

할머니는 그제서야 내 앞에 차키를 들어보였다. 

나는 두 손을 공손하게 모아 올리며 말씀드렸다. 
"상세하게 해주신 설명 정말 감사합니다. 제가 참 멍청하죠?"
진심으로 한 얘기였다. 
듣는 내가 다 힘들었다. 
설명하는 사람은 오죽했겠는가?
특히 잘 못 알아듣는 사람이라면 말이다. 

내가 그렇게 얘기하자 할머니가 빙그레 미소를 지으며 차키를 내 손바닥에 놓아주었다. 

"4월 28일에 뵙겠습니다!"

아무 사고가 없기를 바라는 마음을 담아 할머니께 인사 드렸다. 

 

이제 드디어 캠핑카가 온전히 우리 것이 되었다. 

할머니가 들어간 후 차의 곳곳을 다시 찬찬히 살피고 할머니가 설명해 준 것을 천천히 복기했다. 
그리고 운전대에 앉았다. 

 

핸드폰 거치대를 어디에 놓을 수 없다는 문제가 있었다. 
뭐 그거야 천천히 해결하면 될 문제고, 이제 움직여야 한다. 

첫 번째 목적지는 코스트코이다. 
그곳에서 여행에 필요한 물품들을 조달해야 했다.

 

렌트카 회사에서 코스트코까지 거리는 약 5킬로, 
처음 몰아보는 큰 차에 처음 몰아보는 우측 운전석에,

잘 해 낼 수 있을까?
아니 잘 해 내야지.

 

출발직전 기념사진 한 장 촬영!

 

드디어 차를 몰고 살살 나와 생판 처음 좌회전인 우회전을 하고 속도를 조금씩 올렸다. 
문제가 생겼다. 
뒤에서 덜컹덜컹 거리는 소리가 크게 들렸다. 

수납함이나 서랍의 문을 닫긴 했지만 잠그지는 않았던 것이다. 

차가 우회전하거나 좌회전할때마다 싱크대 서랍문이 열렸다 닫혔다를 반복하며 내는 소리였다. 

헐...완전 캠핑카 초보...


모든 서랍과 수납함의 문을 닫는 것은 물론 꼭 버튼을 눌러 잠가야 한다는 걸 알게 됐다. 
왜 모든 수납함에 동그란 단추가 달려 있는지 그제서야 알았다. 

어쩔 수 없다. 
일단 코스트코까지 갈 수밖에. 

코스트코까지 가는 5킬로가 정말 길게 느껴졌다. 

 

코스트코 퍼스공항 점에 간신히 도착!

 

주차 힘들더라... 주차선 밟음...^^;;;

카트가 빠지지 않아 애를 먹었다. 
이 카트도 그렇고 저 카트도 그렇고,  왜 안 빠지지?
고민하고 있는데 어떤 남자가 픽 웃으며 다가와 동전을 넣어 카트를 빼 주었다. 
그제서야 생각났다. 
우리나라도 예전에는 100원짜리 동전을 넣어서 카트를 빼야 했다는 사실을 말이다. 
워낙 오래 전이라서 동전을 넣어서 빼야 한다는 걸 생각도 못하고 있었다. 
고맙다는 말보다 먼저 나 역시 피식 웃음이 나왔다. 

호주의 코스트코는 어떤 물건들이 있을지 궁금했다.

하지만 기대와 달리 그닥 신기한 물건은 없었다. 


코스트코에서 장을 보며 새삼 든 감회가 있었다. 

어릴적 우리나라는 모든 게 부족한 나라였다.
미군과 연줄이 있는 반 친구의 집에 찾아갔을 때 
친구 어머니가 꺼낸 커다란 양철 코코아통이 얼마나 부러웠는지 모른다.
또 그 맛은 얼마나 달콤했던가?

그런데 지금 ,
호주 코스트코에 있는 건 대한민국에 다 있고, 
아니 대한민국이 물건이 훨씬 더 많고,
가격도 훨씬 더 저렴했다. 
심지어는 메이드인 오스트레일리아인데도 더 저렴한 게 있었다. 

이젠 다른 나라 물건 따위는 신기하지도, 부럽지도 않은 그런 나라가 됐구나 하는 생각이 들며 감회가 새로웠던 것이다. 

물론 그래도 부러운 건 하나 있었다. 
푸드 코트의 다진양파가 바로 그것이다. 
아니 아무리 사람들이 챙겨가도 그렇지 그렇다고 그걸 없애버리냐???
오직 하나, 다진양파 때문에 구태여 코스트코 푸드코트에 앉아 핫도그를 사 먹었다. 

 

코스트코에서 산 식량 - 안쥔마님이나 나나 해외에 나오면 밥은 거들떠 보지 않는 스타일이다보니 구성이 이렇게 되어 버렸다.

 

포즈는 취했지만 이 많은 짐을 생각보다 작은 공간에 어떻게 정리해 놓을지 고민 중...



카트 한 가득 든 짐을 캠핑카 이곳저곳에 일케일케 저케저케 넣었다.
생각만큼 공간이 넓지 않아 부피를 많이 차지하는 물은 화장실에 넣었다.

물건들을 정리한 후 수납함 문을 닫고 잠금 버튼을 눌러 
아까처럼 덜컹덜컹거릴 일이 없도록 만반의 준비를 했다. 

이제 드디어 첫 번째 캠핑장으로 가야 할 시간.

 

운전이 익숙하지 않을 것임이 너무나 뻔하게 예상되어 
첫번째 캠핑장은 퍼스 인근에 있는 미드랜드 투어리스트 파크라는 캠핑장으로 예약했다. 

거리는 고작 12킬로. 
하지만 잔뜩 긴장한채 출발했다. 

출발부터 어려움이 있었다. 
서호주의 도로가 차의 회전반경대비 지나치게 좁아서, 아니 지나치게 좁게 느껴져 주차장을 벗어나는 것도 쉽지 않았다.

설상가상으로 간신히 다가간 주차장 출구의 차단막이 열리지 않았다.

 

결국 차에서 내려, 차단막이 왜 안 올라갔는지 살펴야 했다.

하지만 이유를 알 수는 없었다.

그런 상태에서 우리 차가 주차장 출구를 막는 꼴이 되어버렸다. 

계속 시간을 끌 수도 후진을 할 수도 없었다.

결국 신용카드로 주차비를 정산하고 나서야 차단막이 올라갔다. 

 

다른 차들은 그냥 나가던데, 왜 나만 주차비 정산을 해야 했는지 이유는 지금도 모르겠다.
그저 코스트코에서 지나치게 오래 있어 주차비가 나온 것 같다는 추정만 할 뿐이다. 


그렇게 나와 엉금엉금 움직이기 시작했다.
갑자기 뒤에서 우당탕 소리가 들렸다. 
또 뭔가 싶었다. 
냉장고 문이 열렸단다. 

그렇구나!

냉장고에는 잠그는 버튼이 없다.
그러니까 냉장고의 문이 열리지 않도록 문짝 칸에는 무게가 나가는 걸 둬서는 안되는 거였다. 
역시 경험하지 않으면 모를 일이다. 

비까지 주룩주룩 내리기 시작했다. 

선택의 여지가 없었다. 
어디 차를 세울 수도 없고 무조건 무사히 캠핑장까지 가야했다. 

 

엉금엉금 가는 내 차 뒤로 차들이 줄줄이 이어졌다. 
그래도 누구하나 경적을 울리는 사람은 없었다. 

길이 넓어지면서 내 뒤에 늘어서 있던 차들이 없어졌다. 
마음이 편해졌다. 
그렇게 천천히 천천히, 그리고 무사히,

내 인생 첫번째 오토캠핑장인 미드랜드 투어리스트 파크에 무사히 도착할 수 있었다. 

오토캠핑장에서 앞으로 보름을 함께할 캠핑카의 이름을 짓자는 생각이 들었다.
안쥔마님이 '호둥이'라는 이름을 제안했다. 
대한민국에 있는 우리차 K5가 '흰둥이'이니 이 차를 '호주 흰둥이'라는 뜻에서 '호둥이'로 짓자는 것이다. 

 

마음에 들었다.

"호둥아! 서호주 여행 잘 부탁해!"

 

내 인생 첫번째 오토 캠핑장에 잘 안착한, 내 인생 첫번째 캠핑카 호둥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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