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호주 일식여행 4 - 지도로 뛰어들기

2023. 5. 23. 17:181. 별과 하늘의 이야기/2023 서호주 일식 여행기

지도로만 보던 곳을 실제로 보게 되었을 때 갖는 특별한 감정이 있다. 지도로 뛰어들기에 성공했다는, 생각을 현실로 바꾸어냈다는 성취감이다.

 

2023년 4월 3일.

출발을 일주일 앞둔 월요일.

아파트 단지 내 산책로를 걷다가 문득 올려다 본 하늘에 보름달이 어여쁘게 걸려 있었다. 

'달이 꽉 찼으니 이제 곧 그믐을 향해 달려갈 것이다. 
 그믐이 된 달은 해를 만나게 되겠지. 
 해와 달이 만나는 그곳에 나도 있을 것이다.'
 
마치 내가 해와 달의 가족이 된 것처럼 뿌듯했다. 

 

 

 

2023년 4월 10일 19시. 

두 개의 케리어 가방과 소형 망원경 가방 하나, 촬영장비가 든 배낭 하나, 여권과 지갑을 넣은 밸트을 매고 

인천공항으로 출발했다. 

얼마만에 타보는 공항 리무진인지! 그런데 가격이 많이 올랐다. 무려 16,000원.

 

비행기는 예고된 23시 45분에 출발했다. 

 

반갑다 기내식! , 요즘 트랜드에 맞게 음료는 위스키로~

 

서비스로 붕어 싸만코가 나옴!

 

호주로 가는 노선에 난기류가 많다는 얘기를 들은적이 있다. 

그것 때문인지 모르겠지만 퍼스로 가는 비행기는 제법 많이 흔들렸다.

또 그것 때문인지 모르겠지만 

당연히 안전벨트 표시등이 들어올 흔들림 속에서도 승무원들이 아랑곳하지 않고 기내식을 나눠주었다.

 

인천공항에서 싱가폴 창이공항까지 6시간, 창이공항에서 4시간을 기다렸고 창이공항에서 퍼스까지 5시간이 걸렸다. 

총 35시간이 소요된 2019년 칠레 여행에 비하면 정말 깔끔하기 이를데 없는 짧은 시간이었던 것 같다.
게다가 시차는 한 시간밖에 되지 않으니 시차 문제도 없는 셈이다. 

 

그렇게 피곤할 요소가 거의 없었음에도 퍼스에 도착하자 피곤이 밀려왔다. 
내가 그 사이 더 늙었기 때문이리라. 

여행은 한 살이라도 더 젊었을 때 해야한다는 말이 새삼스럽게 생각났다. 

 

싱가폴 창이공항 : 남아시아의 허브공항답게 거대한 규모를 자랑하는 공항이었다.

 

퍼스공항 입국신고장 벽에는 전자입국신고가 가능한 나라의 국기들이 걸려 있었다.

그런데 뜻밖에도 태극기가 없었다.

맘속으로 실망을 하며 대면 입국신고장으로 향하는데

그 앞에 서 있던 호주 공무원 할머니가 싱글벙글 웃으며 어디서 왔냐고 물었다.
사우스 코리아에서 왔다고 하자 전자입국신고장으로 가면 된다고 알려주었다. 

그럼 그렇지.
다시 전자입국신고장으로 갔다.

줄서는 곳 작은 입간판에 그제서야 태극기가 보였다. 

영사관에 민원을 써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세관을 통과할 때는 세관신고서에 체크 하나를 누락해 짐 검사칸으로 이동해야 했다. 
친절한 호주 공무원 아저씨가 나직한 목소리로 "빨리 체크해"라고 했다. 
체크박스를 채우자 짐 검사 없이 쿨하게 내보내 주었다.

마치 우리나라를 입국하는 것처럼 입국절차가 금방 끝났다.  

퍼스국제공항은 김포공항 국내선청사보다 작은 아담한 크기였다.

입국장 벽에 있는 오리온자리 장식이 인상적이었다. 
다만 왜 남십자자리가 아니라 오리온자리일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소박한 퍼스국제공항 풍경 : 맞은편 벽에 오리온자리를 모티브로 한 장식이 보인다.

 

노스브리지에 있는 아티카 호텔에 여장을 풀었다. 

 

체크인을 하며 곤란을 겪었다. 
도대체 얘네들이 하는 영어를 알아들을 수 없었던 것이다. 
앞으로의 호주 여행이 뭔가 만만치 않을 것 같다는 불안한 생각이 들었다. 

 

뭐 그건 그거고.

 

호텔에서 바라본 바깥 풍경, 저렴한 호텔이라서 뷰를 기대하진 않았지만 그래도 고맙게도 창이 덜 가려진 방을 주었다.


여장을 풀고 나와 동네 구경을 했다. 

 

스튜어트 스트리트 리저브,  첫만남부터 인상적이었던 거대한 나무들


서호주에는 콜스와 울워스라는 마트가 있다고 한다. 
구글 지도를 보니 가까운 곳에 콜스가 있었다. 
하지만 그 콜스는 마트가 아니라 콜스 익스프레스, 즉 이마트가 아니라 이마트 익스프레스에 해당하는 편의점이었다.
정 반대 방향에 콜스마트가 있었다.

윌리엄 스트리트를 따라 그곳으로 향했다.

윌리엄 스트리트에는 재밌게도 아시아 음식점과 아시아 식재료 가게들이 많았다. 

이거 뭐야.
퍼스는 아시아인들이 장악한 동넨가봐. 
하는 생각을 했다. 

윌리엄 스트리트와 웰링턴 스트리트가 교차하는 곳에 콜스 슈퍼마켓이 있었다.
그곳에서 서호주 첫 장을 봤다.

가장 먼저 내 눈길을 끈 건 소시지 종류였다.
각종 부속이 그득그득하고 피뚝뚝이 살아 있는 정말 서양소시지 말이다.
칠레에서 그런 소시지들을 맛본 후 한국에서는 만날 수 없는 그런 소시지들이 얼마나 먹고 싶었는지 모른다.

1+1 행사를 하고 있었다.
동일 종류만 1+1을 하는건지 섞어서 1+1이 되는지 안내가 없었다. 

나중에 셀프 계산대에서 계산을 해보니 섞어서 1+1이 됐다.

그래서 소고기 치폴라떼 한 개, 돼지고기 소시지 한 개를 샀다.

채소와 과일류는 대체로 비쌌다. 

그냥 서호주에 있는 동안은 양심의 가책 없이 불량 식품을 맘껏 먹는 걸로. ^^;;;
그 외에 이런저런 소스와 분다버거를 샀다.

난 분다버거를 잘 모르는데 안쥔마님에 따르면 우리나라에서 유명하다고 한다.
이런 건 안쥔마님이 정보가 빠르다.
난 그대로 따르면 될 일이었다. 

장을 보고 온 후 저녁을 차려 먹었다. 

 

콜스에서 사온 이런저런 식재료로 호주 첫 저녁식사


분다버거는...음... 내 입에는 안 맞더라.
어쨌든 다 맛있게 먹었다. 

피로가 많이 쌓였다. 

저녁이 될수록 구름이 모여들더니 비가 내리기 시작했다. 

늦가을에 접어드는 듯 기온도 살짝 한기가 느껴졌다. 
샤워를 하고 아직 이른 저녁임에도 그대로 누워버렸다. 

 

지도에 들어오는데 성공했다. 

 

이제 내일부터 그 지도의 경로들을 쫓아다니며 죄다 현실로 만들어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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