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호주 일식여행 8 - 얀쳅 국립공원 : 본격적인 여행 시작

2023. 8. 31. 20:561. 별과 하늘의 이야기/2023 서호주 일식 여행기

간밤에 비가 많이 오고 바람도 많이 불었다.

하지만 모터홈 안은 제법 아늑했다.
이불 안에 핫팩을 넣고 자서 춥지도 않았다. 

파란 하늘과 햇살이 아침을 기다리고 있었다.

 

비가 내린 다음 날이라서 그런지 유독 맑아진 공기에 허파꽈리 하나하나가 다 느껴지는 듯 했다. 

 

우리 숙소 호둥이에 아침 햇살이 가득 들어왔다.

 

2023년 4월 14일. 본격적인 서호주 여행을 시작하는 금요일의 아침 식사.


어제 먹다 남은 양갈비에 구운빵과 햄으로 느긋하게 아침식사를 했다. 
배를 채우고 따뜻한 커피를 마시자 날씨도 더 이상 차갑게 느껴지지 않았다. 

오늘 밤 숙소는 레지 포인트 홀리데이 파크(Ledge Point Holiday Park).

총 이동 거리는 140킬로미터가 채 되지 않는다.


운전 미숙으로 프리맨틀 일정을 제외하고 보니 시간은 물론 마음도 여유로운 하루가 될 것 같았다. 

 

오늘의 이동경로

구글 지도를 열어 도심으로 들어가지 않도록 퍼스 외곽으로 돌아가는 경로로 네비게이션을 설정한 후 이동을 시작했다. 

오늘은 얀챕 국립공원(Yanchep National Park)을 가는 날이다.


퍼스 중심가에서 고작 50킬로미터 거리에 있어 퍼스 여행권이라 할 수 있는 이 국립공원은

야생 캥거루를 볼 수 있는 것으로 유명한 국립공원이다. 

하지만 캥거루는 야행성이라서 오후 4시가 지나야만 볼 수 있다고 한다. 

그래서 얀챕 국립공원은 주로 오후 늦게 방문하라는 가이드를 많이 봤다. 

 

하지만 우리는 일정 상 한낮에 얀챕을 들를 수 밖에 없었다. 

그냥 그러려니하고 얀챕으로 향했다. 

사실 아직 운전에 자신이 붙지 않아 야생 캥거루를 만나는 것은 내 마음에 고려 대상도 되지 못했다.

오직 안전운전, 안전운전에 대한 생각만 가득했다. 

 

퍼스 외곽 경로를 선택한 건 잘 한 일인것 같다.
차가 한산해서 운전하기 편했고

그나마 하루 잠깐 동안 운전을 해봤다고 차에 좀더 익숙해져 있었다. 

물론 왼쪽과 오른쪽이 바뀌어버린 도로는 여전히 어색했다.

 

여전히 적응되지 않는 차선. 중앙선은 오른쪽,중앙선은오른쪽...이란 말을 계속 되뇌며 운전했다.

 


퍼스를 완전히 벗어나 얀챕으로 가는 길은 키가 크고 무성한 나무들이 아름답게 장식하고 있었다. 

하지만 일반도로는 물론, 포장한지 얼마 안 된 것 같은 도로임에도 노면이 우둘두둘했다.
새삼 우리나라 도로가 매끈하게 잘 포장되어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역시 외국에 나가면 애국자가 된다는 말이 맞는 것 같다. 

 

 

새로 포장한 도로인 것 같은데도 우둘두둘 고르지 못한 승차감에 투덜대는 중.


얀챕 국립공원을 얼마 안 남겨두었을 때 
얀챕 라군(Yanchep Lagoon) 표지판이 보였다.

 

'앗! 라군이라면 바다가 있다는 얘긴데?'


아직 서호주에 와서 인도양을 못 만나본 상태였다. 
바다를 볼 수 있을 거라는 생각에 냉큼 핸들을 꺾었다. 

얀챕 국립공원 바로 옆에 있는 같은 이름(얀챕)의 도시로 접어들었다.
도시가 제법 크게 느껴졌고 상당한 규모의 울워스 마트도 보였다.

 

길 끝에 놀이 공원이 나타났다. 
Capricon Beach Playground라는 곳이었다.
그곳에 차를 세우고 해변을 향했다. 

이곳에서 드디어 서호주의 바다를 만났다. 

 

서호주에서 처음 만나는 바다



바다로 향하는 길 곳곳에는 어린 나무를 식재하는 작업이 한창이었다.
바닷바람이 워낙 강해서인지 나무를 보호하는 방풍막(초록색)이 일일히 덧씌워져 있었다. 

 

얀챕 라군 해변가


바람이 강하게 불고 파도가 요란스럽게 치고 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바다 풍경은 푸근하게 느껴졌다.

예전에 회사 생활을 할 때, 이곳저곳 출장을 많이 다녔었다.
그 와중에 폴란드 그단스크에서 발트해에 발을 담궈 보기도 했고
미국의 사우스 파드레 아일랜드에서 멕시코만에 발을 담궈 보기도 했다. 

 

신혼여행을 비롯해서 이런저런 여행을 다니면서 
북태평양은 물론 필리핀 솔루해, 이탈리아 아드리아 해에도 발을 담궈볼 수 있었고
팬데믹 전에 다녀온 칠레에서는 장대한 남태평양 바다를 온몸으로 느껴볼 수도 있었다.

그런데 그 모든 여행 중 제일 첫 번째 출장이었던 인도에서는 무려 반 년 이상을 머물면서 인도양을 만나지 못했다. 
그게 내내 아쉬웠는데 이번에 드디어 인도양 바다를 몸으로 느낄 수 있었다.

역시 살아 있다면, 그리고 의지만 있다면 만날 기회가 주어진다는 생각을 했다. 

 

에너지가 넘치는 서호주 바다를 보며 이곳에 오길 참 잘했다는 생각을 했다.

 

바다 풍경을 담기에 여념 없는 안쥔마님




그 덕에 서호주 바다의 에너지가 담긴 동영상이 남았다. 

 

 

얀챕 라군을 뒤로하고 
오늘의 목적지 얀챕 국립공원으로 향했다.

 

이방인을 환영하는 이름 모를 새들

 

얀챕 국립공원 방문자 센터(Visitor Center)

 


얀챕 국립공원은 드넓은 부지에 펼쳐진 푸른 잔디밭과 거대한 나무들도 인상적이었지만 
그것보다 더 인상적이었던 것은 잔디밭 곳곳이 온통 야생동물의 똥밭이었다는 것이다. 

 

그림같은 얀챕 국립공원 풍경, 하지만 잔디밭에 보이는 검은 점은 모두 야생동물의 똥이다.


아무리 국립공원이라도 우리 나라에서 이 정도라면 민원이 들끓었을텐데 하는 생각에 피식 웃음이 나왔다.
그러고보면 잔디밭에 이렇게 똥이 많은데  더럽다는 생각이 그다지 들지 않은 것도 독특한 경험이었다.
아마 확트인 경관에 가까운 바다에서 불어오는 바람으로 냄새가 거의 없는 게 원인이 아닐까 하는 생각을 했다.



공원 한켠에 야트막한 철조망으로 둘러싸인 공간이 있었다. 
출입문에 캥거루가 밖으로 나오지 않도록 문을 잘 닫아 달라는 안내문이 있는 것으로 보아
아마 이 공간이 캥거루가 돌아다니는 공간이 아닌가 싶었다.



시간은 오후 2시
캥거루를 만나기에는 아직 한참 이른 시간이었지만 
그래도 혹시나 하는 기대를 안고 들어갔다. 



길을 따라 걷다 보니 코알라 보드워크(Koala Boardwalk)라는 구역으로 들어갔다. 

인공산책로처럼 인공목재로 바닥을 만든, 지표에서 1미터 정도 떠 있는 길이 이어졌다. 

 

 

그곳에서 먼저 구경을 하고 나오던 현지 가족이 우리에게 손가락으로 나무 위를 가리켰다.
그곳에 동그란 생명체가 매달려 있었다. 

 

 

코알라였다!

 

이 사진은 코알라를 찾기 어려운 현장의 느낌을 가장 잘 보여주는 것이라 선택했다. 물론 이 사진에는 코알라가 있다.


코알라를 한 번 눈에 익히고 나니 그 다음에는 코알라를 찾기가 더 쉬워졌다.

 

하지만 코알라도 낮잠을 자는 시간인지 움직이는 코알라는 없었다. 
게다가 사람이 다니는 길 쪽으로는 등을 보이는 자세로 낮잠을 자는지라 

나무가지 사이로 동그란 덩어리만 보이는 경우가 많았다. 

물론 그럼에도 불구하고 동그란 코알라의 뒷모습은 너무나 귀여웠다. 

그러다가 두둥!

부지런히 나무위를 이동하고 있는 코알라를 발견했다.

 

선명하게 보이는 코알라 자태, 얼마나 귀여웠는지 모른다.

 

 

엉금엉금 이동하는 코알라 모습


그렇게 코알라를 실컷 만나볼 수 있었다.

하지만 캥거루는 보이지 않았다.

우리 뿐 아니라 그곳에 있었던 관광객들도 캥거루를 찾아 두리번 거렸지만 캥거루는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다.
그런데 우리는 운좋게도 전혀 예상치 못한 곳에서 캥거루를 만날 수 있었다. 

공원 한켠에서 휴식을 취하고 있는 캥거루들



편하게 휴식을 취하던 캥거루에게서 귀찮아 하는 표정이 확실하게 느껴졌다. 

캥거루를 찾아 너무 반가웠고, 이렇게 야생 캥거루를 눈앞에서 볼 수 있다는 것이 신기하기도 했지만
휴식을 방해한 것은 너무 미안했다. 

그래서 멀찍이서 사진만 찍고 자리를 비켜주었다. 

뛰어다니는 캥거루를 봤으면 더 좋았겠지만
저녁에나 만날 수 있다는 캥거루까지 봤으니 
얀챕 공원에서 볼 건 다 봤다는 생각이 들었다.

얀챕 공원을 넓게 한 바퀴 돌며 아름다운 풍경을 만끽했다. 

 

여유와 고즈넉함이 어우러진 얀챕 국립공원 풍경

 

한켠에는 원주민 문화 체험공간도 있었지만 따로 관리되지는 않는 것 같았다.

 

여유로운 시간을 보내는 호주 관광객들 모습

 

아름다운 호수 풍경 1

 

아름다운 호수 풍경 2

 

지금도 서호주 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것은 크고 울창한 나무들이다.


우리 캠핑카 호둥이가 있는 주차장으로 돌아왔다.

주차장도 거대한 나무들로 넉넉한 그늘이 있었다.
호둥이의 뒷문을 모두 열어젖히고 침대에 누워 시원한 바람을 만끽했다.

여유가 있으니 참 좋았다.

 

충분히 휴식을 취하고 얀챕 국립공원을 나와 바로 옆 얀챕 시 안에 있는 울워스로 향했다.
식사 거리는 충분히 마련되어 있었지만 혹시 색다른 것이 있을까 해서 들려 본 것이다. 

얀챕 울워스 풍경, 구글 스트리트 뷰

얀챕 울워스는 복합 쇼핑몰처럼 거대한 건물에 이런저런 로컬 가게가 함께 입점해 있었다. 

울워스에서 구경을 하다가 매대 한 켠을 차지하고 있는 우리나라 라면을 보았다.
예전에 한참 출장 다닐 때 우리나라 라면 하나 사려고 한참을 돌아다닌 생각이 났다.
그야말로 상전벽해라는 생각이 들었다.
이제 이런 시골마을 매대에까지 우리나라 라면이 들어와 있다니 말이다.

주류 판매장에 들어가서 호주 위스키가 있냐고 물었다. 
점원이 잘 모르는건지, 아니면 정말 호주에서 내놓을만한 위스키가 없는 건지 모르겠는데
점원은 미안한 표정으로 아쉽게도 호주 위스키는 없다고 대답했다. 

주류 판매장에서 나와 반대쪽에 있는 잡화점으로 들어갔다.

떨어진 소형망원경 박스의 손잡이를 고칠 생각에 드라이버 세트와 강력 접착제를 샀다.
으레 그렇듯 모두 메이드인 차이나였다.

그렇게 간단하게 쇼핑을 마치고 
오늘의 숙소가 있는 레지 포인트로 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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