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호주 일식여행 10 - 레지포인트 : 서호주 밤하늘 맛보기

2023. 9. 3. 12:211. 별과 하늘의 이야기/2023 서호주 일식 여행기

얀챕 국립공원 탐방을 마치고 레지포인트로 가는 길은
서호주 고속도로를 본격적으로 접하는 길이기도 했다.

 

처음 본 휴게소 표지

이 사진은 휴게소 표지판이다. 
물론 우리나라와 같은 삐까번쩍한 휴게소는 아니다.

벤치와 탁자가 있는 빈터 정도로 보면 되고 
한 달에 한 번은 관리하지 않을까 싶은, 그렇지만 생각보다 그렇게 더럽지 않은 화장실이 있는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재미있는 건 그런 빈터에도 쓰레기통이 칼같이 놓여져 있었다는 것이다.

 

쓰레기통이 없는 나라에서 와서 그런지 
이 쓰레기는 누가 수거하지?
이래갖고 분리 수거는 할 수 있겠나?
얘네들 분리 수거를 하긴 하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캥거루 출몰주의 표지판


캥거루 출몰을 알리는 이 표지판을 봤을 때만 하더라도 
캥거루라곤 얀챕 국립공원에서 만난 캥거루가 전부였기 때문에 표지판이 재미있게 느껴졌다. 
하지만 나중에는 로드킬 당한 캥거루를 정말 무수히도 봐야했다.

 


얀챕 국립공원 영향권을 벗어나자 나무가 작아지고 시야가 넓어졌다.
그 길을 편안하게 달려 늦지 않게 레지 포인트에 도착했다.

레지포인트 입구 (사진출처 : 구글 스트리트 뷰)

서호주를 남북으로 관통하는 60번 도로에서 마을로 들어서는 길에는 꼭 사진처럼 마을 이름을 알리는 표시가 있었다. 

 

잠시 후 드디어 우리의 두 번째 캠핑장 레지포인트 Big4 Tasman Holiday Park에 도착했다. 

오늘부터 이틀동안 이곳에 머물러야 한다. 

 

레지포인트 홀리데이 파크 입구


리셉션에 들어가 예약을 확인하고 캠핑장 이용에 대한 간단한 설명을 들은 뒤 자리를 배정받고 나왔다.
이것도 한 번 해 봤다고 한결 수월했다.

 

캠핑장 안내도 - 캠핑장마다 받는 안내도도 각자 나름대로 특색이 있었던 것 같다. 기념품으로 죄다 챙겨두었다.

 

도착하자마자 늘상 하는 일, 전기를 연결하고 상하수도를 연결하는 일.

 

주방 둘러보는 중


도착하면 꼭 해야 하는 전기 배선, 상하수도 연결을 몸에 익도록 챙겨 한 후 주방을 둘러보았다. 

4구 인덕션 2개, 커피포트와 토스트기, 전자렌지가 각 하나씩 있었고
개수대가 2개, 피크닉 테이블 4개, 바베큐 피트가 하나 있었다.

주방규모나 시설은 전체 캠핑장 크기에 비해 그리 크지 않았는데 이건 그만한 이유가 있었던 것 같다.

캠핑장을 가만 보니 모터홈은 주로 나같은 외지인들이 사용하는 것 같았다.
호주 현지인들은 하나같이 거대한 픽업 트럭에 카라반을 끌고 다녔다.

 

현지 사람들의 어마어마한 캠핑장비들

 

현지 사람들의 어마어마한 캠핑장비들 - 이런 규모가 결코 특이한 게 아니었다.


하나같이 살림살이가 완비된 집 한 채를 끌고 다니는 수준들이었기 때문에
구태여 킴핑장의 주방을 사용할 일이 많지 않았던 것이다.


실제 주방을 사용하는 사람들이 생각보다 많지 않아 주방은 대개 한산했다. 

나중에 알고 보니 안쪽에도 동일한 주방이 하나 더 있었다. 

주방 시설도 넉넉했던 것이다. 

저녁 시간이 다 되었다. 

 

어제 미드랜드에서는 비가 계속 우후죽순 내렸지만 오늘은 날씨가 좋았다. 

그래서 우리 캠핑 사이트 호둥이 옆에 식탁을 차리고 식사를 하기로 했다. 


안쥔마님은 주방에 바베큐 거리를 들고 가 저녁 식사를 준비했고
나는 차량 내부를 정리하고 탁자와 의자를 놓았다. 

그런데 의자를 펴는데 문제가 있었다. 
하나는 문제 없이 펴지는데 나머지 하나는 도무지 완전히 펴지지가 않았다.

 

안펴지는 의자 - 차를 랜트할 때 의자를 펴보지 않았던 게 이렇게 문제가 될 줄 몰랐다.

 

결국 의자 하나는 끝내 반만 펴진 상태에서 사용해야 했다.

어제 미드랜드에서 의자를 펴 봤다면 
회사에 가서 교환을 했을 텐데
이미 이곳은 달랑 의자 하나 때문에 퍼스로 돌아가기에는 너무 먼 거리였다.

다행히 반쯤 펴진 의자도 한 사람이 앉을만한 공간은 나왔고
다소 높게 느껴지는 탁자에 오히려 높이가 맞아 그런대로 사용할 수 있었다.

 

안쥔마님이 차려주신 레지포인트의 첫 번째 저녁식사, 감사합니다!

 

느긋하게 앉아 레지포인트의 첫 저녁식사를 즐겼다.

 

레지포인트의 아름다운 노을 풍경


레지포인트는 퍼스 사람들이 주말을 즐기는 캠핑장이었던 것 같다.

실제 퍼스 북부의 유명한 관광지인 얀챕 국립공원과 란셀린 모래언덕, 
피터클 사막이 모두 레지 포인트를 중심으로 배치되어 있었다. 

특히 피너클 사막이 은하수 촬영으로 유명해지면서
야간 운전을 금기시 하는 서호주에서도 

피너클 사막에서 은하수를 촬영한 후 살살 운전하여 레지 포인트까지 돌아오는 게 일상화되었다고 한다. 

식사를 거의 마쳤을 때 비가 오기 시작했다. 
밤에는 비가 내리고 낮에는 활짝 개이는 날씨가 퍼스에서부터 이어지는 것을 보니
이곳의 기후 특성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설거지를 마치고 오늘 있었던 일을 간단하게 정리한 후 잠자리에 들었다. 


다음날 아침.


안쥔마님은 나보다도 훨씬 일찍 일어나 캠핑장을 구경하고 아침 식사를 준비했다.
그 덕에 편하게 아침식사를 했다.

 

이튿날 아침식사, 한국에서 가져간 가베커피드립 세트에 커피를 내려 맛나게 먹었다.


주방에서 한국인 교포가족을 만났다. 

내가 커피를 내리는 모습을 보시고는
커피를 좋아하는 것 같은데 호주 커피 플랫화이트가 아주 맛있으니 마셔보라고 추천해 주셨다.
가게마다 맛이 다 다르고 독특하다고 말씀해 주셨다. 

교포분의 설명 덕분에 이후에는 곳곳에서 플랫화이트를 마시곤 했고 실제 커피맛도 아주 좋았다. 

아침 식사와 느긋한 모닝 커피를 마시고 레지포인트 마을을 구경했다. 

 

고즈넉한 레지포인트 골목길 풍경

 

해변으로 이어진 공원에서 기념사진 한 장 남겼다.

 

레지포인트 비치 풍경, 어디가나 여유가 느껴지는 풍경이 참 좋았다.


레지포인트 마을 구경을 마치고 란셀린으로 가 쿼드 바이크 및 샌드보딩 여행을 즐겼다.

( 서호주 일식여행 9 - 란셀린 쿼드 바이크 투어 )

 

프로그램을 마치고 란셀린에서 바로 돌아오기 아쉬워 약간 더 북쪽으로 차를 몰았다.

예정된 여정은 아니었기에 멀리까지 가진 않았고 

중간에 닐전 룩아웃(Nilgen Lookout)이라는 표지가 있길래 그곳에 들어가 풍광을 구경했다.

 

닐전 룩아웃에서 바라본 인도양


언제부턴가 바다도 바로 앞에서 보는 것보다 멀리서 바라보는 게 더 좋아졌다.
잠깐 들른 곳이었지만 닐전 룩아웃에서 바라본 울창한 수풀과 바다 풍경은 그대로 내 기억에 새겨졌다. 

함께 들렀던 현지인 가족이 있었는데 

아주머니가 우리에게 보라며 손가락으로 무언가를 가리켰다. 

 

작고 앙증맞은 도마뱀이었다. 

란셀린 아일랜드 스킹크(Lancellin island Skink)라고 한단다.


표지판의 사진으로는 제법 몸집이 큰 도마뱀인줄 알았는데 
내 새끼손가락 정도밖에 되지 않는 걸 보니 웃음이 나왔다. 



그렇게 란셀린과 닐전 룩아웃 구경을 마치고 레지 포인트로 돌아왔다.

일단 레지 포인트에서 할 건 다 했다는 생각에 술을 한 잔 따라
안쥔마님께서 차려주신 저녁 식사와 함께 맛나게 먹었다.

 

긴장 풀린 식탁에는 술이 따라나오게 마련이다.

 

그날 밤은 비가 내리지 않았다.

 

그 대신 밤이 되자 별이 총총 나타나기 시작했다. 

그 별이 끝없이 계속 나타났다. 

캠핑장이 환하게 불을 밝히고 있음에도 별빛이 전혀 줄어들지 않더니 
이윽고 대마젤란 은하, 심지어는 소마젤란 은하까지 보였다.

 

호둥이 위에 뜬 별들.


레지포인트에서 이렇게 멋진 밤하늘을 볼거라고는 생각하지 못했다.

 

특히 우리 은하 미리내의 위성은하인 

165,000 광년 거리의 대마젤란 은하와 소마젤란 은하는 오늘 처음 만나는 것이었다. 

이렇게 맨눈에도 선명하게 보일 거라고는 상상도 하지 못했다. 

서둘러 카메라를 삼각대에 연결하고 사진을 찍었다.

 

하늘을 가로지르는 미리내의 남쪽 팔

 

우리 나라에서는 볼 수 없는 미리내 남쪽 팔도 선명히 보였다.
그 팔을 따라 '에타 카리네'라 불리는 용골자리 에타별 주변의 자글자글한 거품들이 선명하게 보였다.

대한민국에서는 한여름 남쪽에서나 볼 수 있어

보기만 하면 장수한다는 노인성, 즉 캐노푸스도 하늘 한 복판에 떠 있었다. 

사진을 찍고 있자니 뛰어놀던 호주 아이들이 몰려왔다.

카메라에 담긴 은하수 띠를 보여주었다.
그런데 뜻밖에 아이들은 그게 은하수라는 걸 몰랐다.
아이들과 함께 온 어른들도 몰랐다. 

"이거 우리 은하야! 너희들은 좋겠다 이런거 볼 수 있어서. 
 아저씨가 온 한국에서는 볼 수 없는 장면이야!"

어떤 호주 아저씨가 한국에선 왜 못 보냐며 미세먼지 때문이냐고 물었다. 

대한민국의 미세먼지가 여기까지 유명세를 떨치고 있다니!

 순간 어질했지만 정신을 차리고 대답했다. 

"아냐아냐 미세 먼지 때문이 아니라 위도 때문이야.
 울 나라에서는 이 부분은 지평선 아래 있어서 볼 수가 없어."

얘기를 나누다보니 
이 사람들은 다음 주에 엑스머스에 개기일식이 지나간다는 것도 모르고 있었다.

그랬다. 

사람은 모두 저마다의 관심 분야가 있게 마련이다. 

 

그래서 나같은 별쟁이가 하염없이 부러워하는 남반구 서호주에 살더라도
관심이 없으면 

이 좋은 하늘도 아무 의미가 없는 것이다.

 

결국 어디에 있든 

관심가는 만큼 보게 되고, 느끼게 되고, 알게 되는 것이다.

그래서 하늘을 바라보는 일은 참 좋은 일인것 같다.

고개를 들어 하늘을 보겠다는 의지만 있으면 볼 수 있기 때문이다.
비록 빛공해가 있어도 그렇게 올려다보고 있으면 눈이 어둠에 적응하면서 더 많은 별이 나타난다. 

쉽게 바라볼 수 있으면서 
쉽게 바라볼 수 없기 때문에
그래서 하늘을 바라본다는 것은, 별지기가 된다는 것은 참으로 멋진 일인 것 같다.

레지포인트의 마지막 밤이 그렇게 깊어갔다. 

강력한 지상 조명에도 빛을 잃지 않는 레지포인트의 미리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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