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의 정수 - 윤정모 단편소설집 '밤길'

2023. 7. 22. 20:354. 끄저기/끄저기

글을 쓰다보면 멋진 글이 나올 수도 있고 식상한 글이 나올 수도 있다.

뭐든 상관없다. 

중요한 건 글을 쓴다는 거니까.

 

고등학생 때 

성당친구의 권유로 ‘고삐’라는 소설을 통해 윤정모를 만났다.

 

그때 그 소설을 읽고 마음이 무척 아팠던 기억이 있다.

 

워딩이 정확히 기억나진 않는데 

표지에 이런 글이 있었던 거 같다.

 

“남자는 왜 배설하고 돈을 주고

여자는 왜 몸을 파는 역할을 하는가”

 

표지의 글이 도발적이었던 만큼 내용 역시 도발적이었다. 

 

내가 당시 이 소설을 보고 마음이 아팠던 이유는 단순히 책의 내용 때문만은 아니었다.

 

그때 우리 나라는 사람의 가치가 중요한 나라가 아니었다. 

 

영등포역 길건너 시외버스 정류장까지 가는 길에는 

몸을 파는 누나들이 지나가는 이 남자 저 남자를 잡아 채는 풍경이 일상적이었고

이 땅 어디선가에는 그런 여자를 공급하기 위한 인신매매가 일상적으로 행해졌다.

 

내가 마음이 아팠던 이유는 그런 거대한 세계에 갇혀 버렸다는 느낌 때문이었다.

 

시간이 흘러 

늙고 타락하고 나니

 

이젠 저 워딩이 그저 사람 사는 세상의 법칙을 묘사한 문구로 읽힌다. 

 

이 나이에 

어렸을 적 내게 고삐를 권해줬던 그 친구를 다시 만나 

그 친구가 나에게 다시 윤정모 소설집을 보내주었다.

 

책을 손에 드니 어렸을 적의 나를 만나는 것 같이 반가웠다.

 

 

책은 가볍게 읽을 수 있는 글들로 가득했다. 

특히 ‘바람벽의 딸들’이라는 소설은 참 재미있었는데 
장모님의 캐릭터가 너무나 매력적이었기 때문이다. 

마지막에 등장하는 작품 ‘어머니’, ‘신발’, ‘밤길’은 하나같이 진한 여운을 던져주는 글이었다.

삶의 정수를 느끼는데
긴 말은 필요없다.

짧은 글에도 얼마든지 우주가 담길 수 있다.


오랜 세월이 지나 글 좀 쓰고 있다고 자부하는 사람이 되었음에도
나는 아직도 짧은 글에는 세상은 커녕 내 생각조차 담지 못한다. 

그런 생각을 하고 보니 
나는 ‘삶의 정수’를 접해 보지 못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내게 물어 보았다.
‘삶의 정수’를 느끼고 싶어?

아니!

난 그저 지금처럼 뜨거운 여름에 아이스 아메리카노를 홀짝이며 컴터 앞에 앉아 

팔리지도 않을 글을 그저 내 흥에 써재끼는 사람으로 남고 싶어.


하지만 한편으로는 이런 생각도 든다. 

내가 원한다면 그 ‘정수’를 만날 수 있어.
그리고 아무 걱정하지마!
누구나 삶의 정수를 만나고
누구나 잘 버텨내고
누구나 잘 살고 있어.

삶의 정수라는게 사실 별거 있겠는가?

그저 어영부영 살아내다가 
상처를 받으면 아프다고 소리칠 줄 알고 
힘에 부치면 도와달라고 부탁하고 떼를 쓸 줄 아는 것,
하지만 그 모든 과정을 생생하게 기억하고 기록할 줄 아는 것.

그게 삶의 정수 아니겠는가?


삶은 선택의 연속이라고들 말한다.
수많은 선택의 갈림길을 지나왔음에도
나는 여전히 그 선택 앞에 주저주저하고 있다.

그래서 이런 딜레마를 
뿔 사이로 피해가기 논리학 기술을 어설프게 적용하여 회피하기로 했다.

그냥 생각은 탈탈 털어내고
커봤자 아무 소용없는 두뇌에서 한 조각을 뜯어내 손가락 끝에 넣고
손가락이 쓰고 싶은대로 써버리자.

삶의 정수 따위는 꿈도 꾸지 말고
그냥 내 그릇에서 나올 수 있는 그 수준.
그게 딱 지금의 내가 할 수 있는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