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왼팔

2023. 7. 15. 13:364. 끄저기/끄저기

왼쪽 팔이 신경통으로 아프다.

그냥 아픈게 아니라 너무너무 아프다.

 

병원에 가서 엑스레이를 찍었다. 

의사말로는 경추에 이상이 있어 왼팔로 내려가는 신경을 건드리고 있다고 한다. 

 

약을 처방 받았다.

소염 진통제.

그냥 진통제로 아픔을 잊으며 평생 살아야 하는 건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마저도 약이 안맞아서 다른 병원을 예약했다. 

이제 이병원 저병원 찾아다닐 나이가 시작되었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어제 저녁 된장찌개를 만들 때였다. 

 

가만 보니

내 오른팔은 주로 정교한 일을 하고

내 왼팔은 주로 힘쓰는 일을 하고 있었다. 

 

평소엔 신경쓰지 않았던 거다.

아프니까 알게 되는, 경험이 알려주는 지식이었다. 

 

마늘을 수돗물에 씻은 후 물기를 털어내는데

한 두 알을 왼손에 담고

마치 손에 묻은 물기를 털어내듯 털어내고 있었다. 

물기를 털어내는 동작이 제법 무리가 있는 동작이라는 걸 처음 알았다. 

 

도마위 키친타올 위에 마늘을 놓아 물기를 닦아내고 

마늘을 다지기 위한 선작업으로 칼날을 눕혀 마늘 위에 대고

왼손으로 누르고 있었다. 

왼팔에 제법 힘이 들어가는 동작이라는 걸 처음 알았다. 

 

그렇게 한 번 눌려터진 마늘들을 가지런히 놓고 칼질을 시작했다. 

오른손으로는 칼질을, 

왼손으로는 마늘들이 가지런히 놓여 있을 수 있도록 잡았다. 

손가락 끝이 칼날에 닿지 않도록 최대한 예각으로 세우고 

마늘을 잘게잘게 저며냈다. 

 

하지만 손톱이 함께 썰려 나간 경험을 두 번 했었다. 

그렇게 왼손은 칼날에 노출되고 상처까지 받고 있었다. 

 

그렇게 음식을 만들고 설거지를 하는데 

오른손은 쑤세미를 잡고 있었지만 왼손은 그릇을 들고 있었다. 

그릇들 중에는 제법 무거운 솥도 있게 마련이다. 

 

설거지를 마친 식기를 건조대 위에 가지런히 놓았다.

물을 한 잔 따라 마셨다. 

오른손은 가벼운 컵을, 왼손은 무거운 물주전자를 들고 있었다. 

 

그렇게 왼손은 오른손보다 더 힘들고 어려운 일들을 하고 있었다. 

 

난 오른손잡이다. 

구태여 얘기할 일은 없지만 누가 묻는다면 오른손잡이라고 대답할 거다. 

그 생각을 하니

아픈 나의 왼팔에게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

 

 

치료후기.

 

한 달동안 병원에 다니며 '신플랙스세이프정500'이라는 소염제를 처방받아 먹었다.

차도는 전혀 없었고 나중에는 약을 먹으면 속이 불편하고 소화가 잘 안되기까지 했다.

 

한 달 후 MRI를 찍었다.

결과는 '아무이상 없음'이었다. 

 

결국 처방은 '오페릴50서방정'이라는 골격근이완제와 '동아가바펜틴캡슐'이라는 항전간제로 바뀌었다.  

소화가 안 된다고 얘기했음에도 무코스타정은 계속 처방되었다. 

 

어쨌든 그로부터 일주일 후, 통증이 가라앉기 시작했다.

 

하지만 약 때문이라기보다 그냥 시간이 흘러 통증이 가라앉았던 것 같다.약을 열심이 먹었던 이번이나, 약을 전혀 안 먹었던 반년 전이나 통증이 가라앉는 시간에 별 차이가 없었기 때문이다. 

 

이번에 아파보면서 두 가지 생각을 하게 됐다.

 

첫째는 몸이 슬슬 고장난다는 것을 받아들여야겠다는 점. 

둘째는 의사는 별 도움이 안 된다는 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