욕망을 풀어내다 - 네루다의 우편배달부

2023. 7. 29. 13:294. 끄저기/끄저기

4년 전, 
칠레 일식여행을 준비하다가 읽었던 책 <네루다의 우편배달부>를 다시 한 번 읽었다.
역시 좋은 책답게 두 번째 읽으니 또다른 생각할 거리를 내준다.

이 책이 이번에 내게 던진 화두는 '욕망'이었다. 

나는 어렸을 때부터 욕망은 잘못되고 악한 것이라고 배우며 자랐다.

 

나이를 먹은 지금
아직도 나에게 솔직해 지지 못하고 
이런 저런 가식과 치장을 두르고 사는 삶이
아마도 그때부터 시작된 것이라 생각한다.

이 책을 읽으며 즐거웠던 것은
그렇게 힘들이지 않고 사는 사람들의 모습 때문이었다.

마리오의 아버지는 
그저 아버지가 살아온데로 살아가는 반면
마리오는 하기 싫은 일은 하지 않는다. 

'하기 싫은 일은 하지 않는다'는 것은 아주 중요하다.

대개 '하고 싶은 일을 한다'고 생각하는데 
하고 싶은 일이 무엇인지를 규정하는 것 역시 
대단히 인위적이고 산업사회의 기능주의가 물씬 묻어나기 때문이다.

사람이 하고 싶은 일이 뭐 그리 대단한 일이겠는가?
쉬고 싶을 때 쉬고, 
맛있는 걸 먹고, 
재미있는 걸 즐기며 사는 삶이지 않겠는가?

그래서 삶은 충분히 단순할 수 있고
행복은 복잡한 걸 싫어한다는 걸 알게 된다. 

마리오는 바다에 끌려나가지 않으려고 우체부 일을 선택했다.

그래서 네루다를 만나고 
메타포를 알게 되고 
뚜쟁이 네루다의 도움으로 
사랑을 하고 
결혼을 하고 아이를 얻는다. 

이 모든 이야기가 극기나 인내 따위
진정한 행복을 얻기 위해 갖추어야 할 덕목이라고 나를 세뇌시켜온 
쓸데 없는 노력없이 
자연스럽게 풀려나간다. 

바로 이 지점에서 
아옌데 정권의 붕괴라는 
칠레가 겪어야 했던 역사적 아픔은 
중요한 변곡점으로 작용한다. 

한적한 시골마을 이슬라네그라에 드리운 그림자는 
그저 있는 그대로의 욕망을 자연스럽게 풀어내고 살아온 사람들 때문이 아니었다.

그것은 
인내할 줄 알고 극기할 줄 아는 훈련을 받은 사람들이 가진
타인의 욕망을 뒤덮어 버릴 정도로 거대한 욕망 때문이었다. 

아옌데 정권은
미국의 노골적인 지원을 받은 피노체트의 군사쿠테타로 무너진다. 
그리고 피노체트 군부에 의해 수많은 사람들이 사라져버렸다. 

소설은 그 수많은 사람들 중의 하나로 마리오가 사라지면서 끝을 맺는다.

안타까운 칠레의 근대사를 이해하면
이 소설의 대부분을 장악하고 있는 행복을 좀더 제대로 느낄 수 있다. 

그 점에서 철저히 마리오 개인에 초점을 맞춰 이야기를 풀어낸 영화 '일포스티노'는 
이 책과는 완전히 다른 이야기가 되어 버렸고 나에게 실망을 안겨준 영화가 되고 말았다. 

소중한 것을 사라지게 만든 주체가 무엇인지를 명확히 규명하는 게 작가의 중요한 의도 중 하나이기 때문이다. 

어쨌든 우리 나라와 정 반대에 있는 
머나먼 나라 칠레를 알지 못해도 
이심전심으로 이해할 수 있는 것이 있다.

그것은 소중한 것이 더더욱 소중할 수 있는 것은
언젠간 이 모든 것이 사라져버리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이슬라네그라의 어부들이 몰려오는

과부의 식당 구석 조그만 탁자에 보일듯 말듯 앉아 있는 손님이 되고 싶다. 

 

그러기 위해 평생을 재갈에 묶여 살아온 나의 욕망을 자연스럽게 풀어주려 한다. 

그동안의 삶을 통해 
내 욕망의 크기를 줄이는 법을 알게 되었고
그 욕망 역시 언젠가 사라져 버릴 수밖에 없다는 것을 알게 되었기 때문이다. 

 

내 인생에서 가장 소중한 순간 중 하나로 남아 있는 이슬라네그라 종루 아래 서 있는 순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