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호주 일식 여행 18 - 협곡과 만찬과 미리내

2023. 10. 1. 00:041. 별과 하늘의 이야기/2023 서호주 일식 여행기


에코 리트리트의 아침이 밝았다.

호둥이를 몰고 들어온 길은 일방통행이었다. 
내일 퇴실할 때 호둥이가 지나가야 할 길을 미리 살펴볼 겸 

사이트 주변과 캠핑장 이곳저곳을 돌아봤다. 

에코 리트리트는 여러 유형의 숙박시설을 보유하고 있었다. 

 

우리가 자리잡은 Unpowered Site를 제외한 모든 숙소는 캐빈형인데 
가장 간단한 캐빈형 숙소가 1박당 약 15만원으로 비교적 비싼 축에 속했다. 

이에 반해 Unpowered Site는 4만원이 되지 않았다.


전기는 물론 물도 제공되지 않으니 당연한 가격이라 생각한다. 
오히려 더 싸야 하는거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 정도다. 

다만 사이트가 널찍널찍하고 서로 상당한 거리를 벌리고 있는 건 참 좋았다. 

 

곳곳에 숨겨진 듯 자리잡은 Unpowered Site 모습1

 

곳곳에 숨겨진 듯 자리잡은 Unpowered Site 모습2

 

이건 Delux Eco Tent 라는 유형의 숙소이다.
전기와 개별 화장실을 갖춘 이 숙소의 하루 숙박비는 25만원이 넘는다.


공용화장실과 샤워실 건물이다. 


카리지니 국립공원에서 방문자 센터에 있는 화장실을 제외하면 국립공원 내 유일한 수세식 공중화장실이다.

다만 문제가 하나 있는데 제법 멀다는 것이다.

가장 가까운 Unpowered Site에서조차 최소 200미터는 걸어와야 했다.

우리 사이트에서는 대략 500미터는 됐던 것 같다. 

 

사이트로 돌아와 아침식사를 했다. 

빵과 치폴라테와 커피로 아침식사를 했다.

 

오늘은 협곡투어를 하는 날이다. 
카리지니 국립공원에 왔으니 협곡투어를 해야지!
카리지니 하면 협곡투어 아니겠는가?

에코 리트리트에서 걸어갈만한 거리에 협곡이 하나 있다.
조프리라는 이름의 협곡이었다.(Joffre Gorge)

 

협곡 투어는 물에 잠기는 걸 각오해야 한다는 정보를 본 적이 있었다.
그래서 수영복을 안에 입고 길을 나섰다.

 

조프리 협곡 가는 길

 

가는 길의 풍경이 너무나 아름다웠다.

 

 

에코 리트리트에서 조프리 협곡(Joffre Gorge) 가는 길


카리지니 국립공원은 협곡의 난이도를 다섯 단계로 구분하고 있다. 
조프리 협곡은 가장 난이도가 높은 Class 5이다. 

하지만 실제 가보니 그렇게 어려운 코스는 아니었다.
조프리 협곡의 높은 난이도는 아마 중간중간에 있는 거의 수직에 가까운 층계 때문 아닌가 싶다.

 


협곡 바닥까지 가기 위해서는 이런 경사의 층계를 세네 개 통과해야 했다.
층계 하나하나의 높이도 상당했다. 
사람에 따라서는 고소공포증을 느낄만한 높이와 경사였다. 


협곡 아래로 내려가는 길의 벽은 정말 인상적이었다.

 


한 걸음 내려갈 때마다 1만 년이라는 말이 딱 어울리는 광경이었다.



드디어 바닥까지 내려왔다.

 

협곡은 마치 계곡처럼 물이 흐르고 있었다.


우리보다 먼저 온 팀이 나오는게 보였다.
남자 둘이 층층이 진 벽면에 조심조심 밟을 곳을 찾아가며 나오고 있었다.

인사를 했다.

말레이지아에서 온 청년들이었다. 

나는 벽을 타고 들어가는 대신 그 자리에서 바지를 벗어 수영복차림으로 바꿨다.
물이 깊어보이지 않아서 물에 잠긴 채 걸어가기로 한 것이다. 

 

깊은 협곡 물에 몸을 맡기고 걸어가는 사람들!
카리지니 사전조사에서 본 그 인상적인 장면을 그대로 재연하고 싶었다. 

 

내가 수영복을 가지고 온 이유는 바다가 아니라 카리지니 협곡 때문이었다.


벽으로 바짝 붙어가니 물은 허리 이상 올라오지 않았다.

건너편 뭍으로 올라가 좁은 협곡을 통과했다.

그곳에 놀라운 광경이 펼쳐져 있었다.

 

조프리 폭포(Joffre Waterfall)의 장관


하늘이 둥그렇게 열려 있고 폭포가 흘러 작은 호수가 형성되어 있었다.

 

와! 이 얼마나 아름다운 풍경인가!

조프리 폭포와 작은 호수, 수백 만년의 세월을 품은 협곡이 만들어낸 장엄한 풍경



걸어온 길을 되돌아봐도 장관이었다.


호숫가에 앉아 경치를 만끽하다가 이번에는 온 길을 되돌아와 반대쪽으로 가봤다.

 


폭포에서 내려온 물이 폭좁은 협곡을 가득 채우고 있었다. 

이쪽은 지나다니는 사람은 없었다.
혹시 물의 깊이를 가늠해 볼수 있을까 하여 가까이 내려가봤다.

 

얕은 산도 못 타는 인간이 무슨 깡으로 내려갔나 싶다.


가까이 가서 바라본 물은 위쪽과는 달리 바닥이 보이지 않았다. 
협곡 벽이 가파르게 형성되어 있어 벽을 밟고 전진하기도 쉽지 않아 보였다. 
이쪽으로는 더 이상 내려가지 않기로 하고 돌아왔다.


햇볕이 좁은 협곡 바닥까지 내리쬘만큼 높아졌다.
그에 따라 기온도 높아졌다. 
한여름처럼 뜨거운 열기가 협곡을 가득 채웠다.

 

아예 가방과 옷은 밖에 벗어놓고 수영을 즐겼다.

 

 

내가 수영을 하자 거기 있던 사람들, 그리고 협곡으로 내려오는 사람들이 내려오는 족족 물로 뛰어들었다.
안쥔마님은 한국인답게 레쉬가드를 입고 물에 뛰어들었다.

 

그렇게 모두가 신나는 한 낮을 보냈다.

한참을 그렇게 놀다가 옷을 챙겨입고 협곡 위로 돌아왔다.
전망대에서 내려다 본 협곡은 다시 봐도 장관이었다.

 

 


지도 상으로는 저쪽으로 계속 가면 녹스 협곡(Knox Gorge)으로 갈 수 있었다.
녹스 협곡은 카나본에서 만나뵌 정의완 선생님께서 추천한 곳이었다.
녹스 협곡에 가보고 싶은 생각이 간절했지만 그곳까지 가려면 6킬로미터 이상을 더 걸어가야 했다.

 

고작 협곡 위로 다시 올라온 것 뿐인데 옷이 싹 다 말라버릴만큼 햇살이 뜨거웠다. 
이런 날씨에 6킬로를 걸어갈 순 없었다.
물론 비포장 도로여서 호둥이를 몰고 갈 수도 없었다.
아쉬웠지만 녹스 협곡 투어는 포기해야 했다.

조프리 협곡의 아름다운 자연과 즐거움을 만끽한 것에 만족하기로 했다. 

차로 돌아와 세면도구를 챙긴 후 다시 리셉션으로 돌아가 공용샤워실에서 샤워와 손빨래를 했다.

 

캠핑카와 빨랫줄은 언제봐도 어울리는 풍경인 것 같다.


협곡 투어에 흠뻑 젖은 신발도 말렸다.

 



샤워실 앞 공터에 카리지니 국립공원에 딱 걸맞는 차가 서 있었다. 

사륜구동에 스페어타이어 두 개! 참 든든하겠다 싶었다.

 

아이스 팩에서 아직 냉기를 잃지 않은 맥주 두 병을 꺼내 대친 치폴라떼와 먹으며 피곤과 시장기를 달랬다.

 

우리 옆으로 커다란 개 한 마리가 지나갔다. 
딩고(Dingo)였다.
딩고란 호주에서 야생화 된 개이다.
늑대라 해도 이상하지 않을만큼 사나와 보였다.

안그래도 리셉션에 딩고에게 밥을 주지 말라는 안내문이 써져 있었다.

저렇게 사납고 위압적으로 보이는 개가 그냥 돌아다녀도 괜찮은 건가 싶었지만
정말 신기하리만큼 아무도 신경쓰지 않았다.

 

리셉션 옆 식당 입구에 있는 콘센트에는 사람들이 줄줄이 보조배터리를 충전하고 있었다.

나도 질세라 보조 배터리와 카메라 배터리를 충전했다. 
저녁에 은하수 촬영을 하려면 꼭 필요한 배터리였다.

 


사이트 마당에 작은 망원경을 설치했다.
오늘을 위해 대한민국에서부터 메고 온 66밀리 소형 망원경이다. 

 

 



오늘은 특별한 의미가 있는 날이다.
오늘 밤이 지나고 아침이 밝으면 이제부터 우리의 여정은 귀환하는 여정이 된다. 
즉, 오늘은 이번 여행의 반환점이 찍히는 날이었던 것이다. 

그래서 저녁식사는 에코 리트리트 리셉션 옆에 있는 식당에서 하기로 했다.


원래 캐빈형 숙소를 사용하는 사람들이 우선적으로 쓸 수 있는 식당인데 
다행히 자리가 남아서 한 켠에 자리를 잡을 수 있었다. 

메뉴를 보고 깜짝 놀랐다.

 

에코 리트리트 레스토랑 메뉴판


그냥 피쉬앤칩스나 있으려니 했는데 
폐어(barramundi)고기, 악어고기, 캥거루고기, 에뮤고기, 닭고기가 적혀 있었던 것이다. 

이런데 와서 특별한 걸 먹어야 한다는 생각이 들긴 했지만 차마 악어는 못 먹겠더라. 
캥거루는 사전 정보와 달리 호주 어느 마트에서도 파는 걸 보지 못했다.
딱 한 번 Dog meat 코너에서 본 게 전부였다.
그래서 왠지 믿음이 가지 않았다.

결국 난 폐어고기를 시켰다.

안쥔마님께 에뮤고기를 시도해 보라 했는데 
안쥔마님은 도로에서 만난 에뮤 가족이 생각난다며 못 먹겠다고 했다. 

 

안쥔마님 말대로 에뮤는 도로 갓길에서 여러 번 만난 터였다. 

결국 안쥔마님은 닭고기를 시켰다.

나는 폐어고기도 나름 용기를 내서 시킨거였다.
동물의 왕국에서나 볼 수 있었던 아가미호흡에서 허파호흡으로의 전환 단계를 보여준다는 그 물고기를

이곳에서 보게되다니, 그것도 접시 위에서 말이다.

드디어 음식이 나왔다.

 

위에 있는 게 내 접시, 즉 폐어고기이다.


마치 장어를 구운 것처럼 생겼다. 
겉보기에 특이사항이 없어 천만 다행이다. 

 

비록 배불리 먹지도, 맛있게 먹지도 못했지만

그래도 분위기만으로 충분히 즐거운 만찬이었다. 

 

 

투덜투덜 만찬 중

 

식사를 마치고 나오자 
달과 금성이 에코 리트리트의 밤하늘을 아름답게 장식하고 있었다.

 

 


그날 밤 어여쁜 달과 금성은 물론
대마젤란 은하, 소마젤란 은하, 용골자리 에타별, 켄타우로스자리 오메가 구상성단 등
남반구 하늘에서 꼭 보고 싶었던 천체를 관측했다.
특히 대마젤란 은하를 볼 때는 마치 우주를 유영하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

하지만 머리로는 하늘을 바라볼지언정 땅을 딛고 선 다리를 가진 인간이기 때문에 
생리현상도 해결해야 했다.


에코 리트리트에서 화장실 가는 법

 

이래저래 참 재미있고 행복한 밤이었다.
그날 에코 리트리트에서 담아낸 밤하늘이 그대로 카메라에 담겼다.

 

에코 리트리트의 밤하늘1

 

에코 리트리트의 밤하늘 2


나중에 대한민국으로 돌아와 
에코 리트리트에서 담아낸 밤하늘과 톰 프라이스에서 담아낸 밤하늘로 짧은 동영상을 만들었다.

지금 봐도 너무나도 행복했던 그 때의 그 하늘 아래가 생각난다.

 

동영상 : 개미왕국의 밤하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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