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호주 일식 여행 19 - 가장 독특했던 캠핑장, 불라라 스테이션 스테이

2023. 10. 2. 23:501. 별과 하늘의 이야기/2023 서호주 일식 여행기

2023년 4월 24일 월요일.
오늘부터 귀향길이 시작된다.

오늘은 카리지니에서 서부 해안으로 되돌아나오는 장거리 여정이 기다리고 있었다.

 

오늘의 경로


톰 프라이스에 들려 스페어 타이어를 확보해야 했기 때문에 새벽부터 서둘렀다.
아침 7시가 되지 않은 이른 시간에 에코 리트리트에서 출발했다.

시작하자마자 첫 번째 고비가 기다리고 있었다.
바로 에코 리트리트에서 빠져나가는 3킬로미터의 비포장도로였다.

들어올 때처럼 조마조마한 마음을 가지고 조심조심 빠져나왔다.

 

드디어 비포장도로가 끝나는 지점이 코앞에 있다.


포장도로에 들어서자마자 차에서 내려 타이어 이상여부를 확인했다. 
다행히 아무 이상이 없었다.
마음이 얼마나 편해졌는지 모른다. 
이젠 절대 비포장 도로에 들어가지 말아야지 라는 생각을 했다.

톰 프라이스를 향해 나오는 길에 철도 건널목에서 신호에 걸렸다.
대규모 광업 도시답게 끝이 보이지 않는 열차가 지나갔다.

 

끝없이 이어지는 기차.

 

마음을 졸이던 일이 없어져서인지 그 광경을 마음 편하게 즐길 수 있었다.

그런데 톰 프라이스로 향하던 중 한 가지 의문이 들었다. 
톰 프라이스 타이어 가게에 타이어 수리를 맡기면 시간이 얼마나 걸릴까 하는 것이었다. 
그 생각을 하자, 타이어 수리를 한다는 것에 회의감이 들었다.

난 호주사람들의 밝은 성격과 친절함에 감사한다. 
하지만 업무는 다른 얘기다.
호주에 와서 겪은 일하는 사람들의 자세는 전혀 믿음직스럽지 못했다.

스페어 타이어를 확보할 생각에 타이어 수리를 맡겼는데 세월아네월아 시간이 걸린다면 
8시간 이상을 달려가야 할 우리 여정에 직격타가 될 게 뻔했다. 

 

이런 고민을 하는 사이 문제의 그 타이어 가게에 도착했다. 

 

지난 토요일 냉큼 문을 닫고 사라졌던 문제의 그 타이어 가게, 다행히 오늘은 일찍부터 문을 열고 있었다.


주인인지 직원인지 모를 덩치 큰 아저씨와 이야기를 나눴다.
그리고 몇 마디 대화를 통해 
역시 내 시간을 아껴주기 위해 열심히 타이어를 고쳐주지는 않을 거라는 판단이 들었다. 

나는 요구사항을 바꿔 아예 새 타이어를 사겠다고 했다. 

아저씨 대답은 재고가 없다는 것이었다. 
알겠다고 말하고 미련없이 돌아섰다.

퍼스까지 매일매일 장거리 운전이 기다리고 있었다.
최선을 다했다고 생각한다.
최선을 다했으나 어쩔 수 없는 건 받아들여야 한다. 
스페어 타이어 없이 돌아가야 하는 길 역시 받아들여야 했다.

의외로 마음이 편해졌다.

 

2023년 4월 24일, 오늘의 출발 브리핑

마음이 편해져서인지 돌아오는 길의 풍광이 눈에 들어왔다.
들어올 때 보지못했던 또다른 풍경을 만끽할 수 있었다.

 

 

 

 

서호주 오지를 달릴 때의 분위기와 느낌이 이 동영상에 잘 담긴 것 같다.

 

그렇게 달리고 달려 오늘의 숙소인 불라라 스테이션 스테이(Bullara Station Stay)에 도착했다.

이곳은 정말 우연히 알게된 캠핑장이다.
대한민국에서는 전혀 검색이 되지 않다가 에코 리트리트에 머물던 일요일에 우연히 검색된 곳이다.
이게 검색되지 않았다면 한 시간을 더 달려 엑스머스로 들어갔을 것이다. 
그 한 시간을 아껴야 할만큼 서호주의 여정은 길고 길고 길기만 했다.

그런데 뜻하지 않은 낭패가 기다리고 있었다. 
바로 비포장 도로였다.

 

도로에서 캠핑장까지 1.2킬로미터의 비포장 구간을 지나야 했다.


에코 리트리트를 나오며 비포장도로는 절대 가지 않겠노라고 생각했는데
하루도 되지 않아 다시 비포장도로를 맞닥뜨린 것이다. 

 

이제와서 선택의 여지가 어디 있겠는가?
들아갈 수밖에.

에코 리트리트에 들어갈 때처럼 조마조마 조심조심 들어갔다.
다행히 비포장 구간은 에코 리트리트보다 훨씬 짧았고 도로 상태도 훨씬 평탄했다. 

불라라 스테이션 스테이 입구에 서 있는 빈티지 감성 가득한 장식품이 우리를 반겼다.

바람이 불때마다 피어오르는 붉은 먼지가 너무나 잘 어울리는 곳이었다. 

 

마치 서부 영화의 한 장면에 들어온 듯한 느낌이었다.

 

불라라 스테이션 스테이는 여러가지로 재미있는 오토 캠핑장이었다.

 

불라라 스테이션 스테이 리셉션 풍경


리셉션에서 다양한 기념품을 팔고 있었다.
티셔츠를 비롯한 이런 저런 건 그냥 그러려니 했는데 칼이 눈에 띠었다.

정말 빈티지 감성이 찰찰 넘치는 칼이었다. 
결국 사지는 않았지만 그때 샀으면 괜찮은 기념품이 됐을텐데 하는 생각이 든다.

리셉션에서는 으레 사이트를 할당해주고, 화장실 등 주변시설의 위치를 간단하게 설명하게 마련이다. 
그런데 이곳 리셉션에서는 그런 얘기 없이 

저녁 5시에 사람들 모임이 있으니 생각이 있으면 참석하라는 얘기를 했다.

모임이 있다고요?

네 친목 모임이요. 뎀퍼 빵을 나눠줄거에요.

모임이 있다는 것도 신기했지만 사이트 안내는 더 신기했다. 

밖에 우리를 사이트로 안내해 줄 할머니가 대기하고 있었던 것이다. 
마치 호텔 벨보이가 방을 안내해 주듯이 말이다. 

 

불라라 스테이션 스테이 배치도, 초록색 종이는 차 데시보드에 놓는 표지이다.

 

사이트로 안내해 주는 할머니.


할머니는 우리를 사이트까지 안내해 주고
가까운 화장실, 샤워실 등을 설명한 후 돌아갔다. 

사이트에 자리를 잡는 과정이 참 독특하고 재미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런데 건물 모양과 인테리어는 더더욱 재미있고 특이했다. 

 

불라라 스테이션 스테이의 독특한 모습이 안쥔마님이 담으신 동영상에 잘 담겼다.

 

 

카페 겸 식당으로 쓰이는 건물, 울셰드(Woolshed, 양털을 모아두는 헛간)라는 이름이 붙어 있었다.

 

 

울셰드 앞에 있는 칠판을 보니 오늘은 피자를 주문할 수 있는 날이었다!

피자는 울셰드 바로 옆에서 팔고 있었다.
푸드 트럭처럼 이동식 화로 장치를 갖추고 있었다.

 

푸드 트럭?

 

이 피자 가게는 불라라 스테이션 스테이에 상주하는 게 아니라  돌아다니며 장사를 한단다.
호주에서 뜻하지 않게 화덕 피자를 먹게 되다니!
냉큼 마르가리따 피자 하나를 주문했다. 
한 시간 후에 직접 찾으러 오기로 했다. 

시간이 어느덧 오후 5시를 향해 가고 있었다.
사람들이 친목 모임을 갖는다는 주방 뒤로 갔다.

이미 많은 사람들이 모여 있었다.

 

사람이 별로 없는 것 같았는데, 모이고 보니 이렇게나 많은 사람이 있었다.


우선 서로 어디에서 왔는지 얘기하는 것으로 아이스 브리킹을 했다.
대부분 호주 사람들이었고, 유럽에서 온 사람들이 두 팀 정도 있었다. 

아시아에서 온 사람은 우리 부부가 전부였다. 

캠프 호스트로 보이는 아저씨의 이런저런 얘기가 이어졌다.
무슨 말을 하는지 잘 알아 들을 수는 없었다.
아마도 이런 황량한 곳에 자리를 잡고 캠핑장을 열기까지의 이야기를 하는 것 같았다. 

잠시 후 뎀퍼 빵을 잘라 돌렸다. 

 


맛은 그냥 평범했다. 

뎀퍼 빵은 밀가루와 물, 약간의 소금 등 최소한의 재료만 들어가고 석탄불을 피워 구운 빵이라고 한다. 
호주를 개척한 사람들이 만든 빵이라고 하니 나름 호주의 역사와 애환이 있는 빵이었던 것이다. 

뎀퍼 빵을 나눠 먹고 나와 캠핑장을 한 바퀴 둘러봤다.

입구에 있는 양 우리, 양이라곤 딸랑 이렇게 두 마리만 보였다.


캠핑장 곳곳에는 황량함에 어울리는 소품들이 널려 있었다.

 

 


어느덧 밤이 내리기 시작했다. 

 


캠핑장을 돌아다니다 보니 이곳에서 서호주의 밤하늘을 만끽해도 괜찮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물론 카리지니에 비할 바는 아니지만 
도시와 바다로부터 어느 정도 떨어져 있는 외딴 벌판이었기 때문이다.

돌아오는 길에 피자 트럭에 들러 우리 피자를 받아왔다.
먼지 때문에 밖에 식탁을 차릴 수 없어 호둥이 안에 들어가 먹었다. 

 

이동식 화덕 피자! 맛은 그냥저냥 했다. 호주에서는 음식에 기대는 하지 않는 걸로~



식사를 하고 샤워장에 가 하루의 피로와 먼지를 깨끗이 씻어냈다.
이곳 사람들 말로 '알프레스코(Alfresco)'샤워를 만끽했다. 
구태여 해석하면 노천 샤워?
하지만 엄밀히 말해 노천 샤워는 아니고 깡통에 물을 내려 그 기분을 내는 것이다.
나름 재미있었다. 

밤에 나오니 역시 하늘에 별이 가득했다.
바람이 많이 불어 투명도도 아주 좋았다.

이곳의 밤하늘을 사진으로 남기지 못한 것이 아직도 아쉬움으로 남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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