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호주 일식 여행 20 - 바다와 바다와 바다

2023. 10. 3. 20:411. 별과 하늘의 이야기/2023 서호주 일식 여행기

2023년 4월 25일, 
오늘은 호주와 뉴질랜드의 현충일인 앤잭데이(ANZAC, Australia New Zealand Army Corps)이다. 

작년 이맘 때 서호주에 오기로 마음 먹고 

호주라는 나라가 어떤 나라인지 궁금해서 abc 뉴스를 시청했었다. 
그날 본 뉴스가 앤잭데이 뉴스였다. 
일년 전에 영상에서 본 그 앤잭데이를 현장에서 맞게 되어 감개무량했다. 

 

울셰드에서 조촐한 추념식이 있었다.


오늘은 아침식사를 숙소에서 한 시간 거리에 있는 코랄 베이(Coral Bay)에 가서 하기로 했다. 

 

코랄 베이는 우리가 올라오는 길에 일식 특수로 너무 많은 사람이 몰려 들어가지 못했던 곳이다. 
어차피 내려가는 길에 있으니 그 유명한 코랄 베이에 들러 바다도 구경하고 아침식사도 하기로 했다. 

 

 

불라라 스테이션 스테이에서 나오는 길, 아침 햇살과 풍경이 퍽 잘 어울렸다.


한 시간도 되지 않아 코랄 베이에 도착했다.
코랄 베이는 명성답게 피크 시즌이 아닌데도 캠핑장마다 차들이 꽉 들어차 있었다. 

길이 끝나는 지점에 넓은 주차장이 나왔다. 
그곳에 호둥이를 주차하고 톰 프라이스에서 사온 신라면을 끓였다. 

 


신라면은 호주의 그 외딴 곳에 우리 나라 라면이 있는 것도 신기했고 
외국으로 수출되는 라면은 맛이 다르다고 하여 어떤 맛일지 궁금해서 산 것이다.

하지만 평소에 농심 라면을 먹지 않아서인지 너무 맵고 짜서 먹기가 쉽지 않았다.
나도 먹기 힘든 걸 호주 사람들이 먹는단 말야? 라는 생각이 들었을 정도이다. 

 

어쨌든 경치를 즐기며 천천히 다 먹긴 했다. 

식사를 하고 커피를 내려 텀블러에 담은 후 바다 구경을 나갔다.

 

이 바다 어쩔...


코랄 베이의 바다는 명성 그대로였다.
특히 짙은 코발트 블루와 투명한 바다가 갈려 다른 색이 나는게 너무나 신비로왔다.

 

코랄베이 바다 풍경

 

이 아름다운 바다와 커피 한 잔


코랄 베이 바다 구경을 마치고 다시 여정에 올랐다.
아침 식사도 하고 여유있게 해변산책까지 마쳤지만 아직 시간은 오전 9시가 되지 않았다.

오늘도 우리 앞에는 상당한 여정이 기다리고 있었다. 

 

오늘의 여정


오늘의 목적지는 샤크 베이(Shark Bay)에 있는 
덴험 씨사이드 홀리데이 파크(Denham Seaside Tasman Holiday Parks)라는 캠핑장이다.

원래는 올라오는 여정에 가고 싶었던 곳인데 당시에는 4박을 필수 조건을 걸어 예약할 수 없었다. 

반도 끝에 있는 몽키미아(Monkey Mia)가 야생 돌고래를 직접 볼 수 있는 곳으로 유명하거니와
가는 길에 있는 살아 있다는 스트로마톨라이트도 꼭 보고 싶었다.

방향이 벗어나는 길이어서 부담이 되긴 했지만 감수하고 일정에 넣었다. 

미닐야-엑스머스 로드(Minilya-Exmouth Rd.)를 벗어나 
1번 고속도로와 합류하는 지점에서 차를 세우고 내려 가볍게 몸을 풀었다. 
그 모습을 안쥔마님이 사진을 찍어주셨다. 

 

나를 옭아매고 있는 거라곤 아무것도 없는 것 같은 자유가 느껴진다.

의도한 사진은 아닌데 자유가 느껴지는, 참 맘에 드는 사진이 나왔다. 

카나본에서 주유를 하고 
밤운전으로 고생고생하며 올라왔던 길을 맘편히 내달려 남으로, 남으로 내려갔다. 
그렇게 총 다섯 시간을 넘게 달려 샤크베이 분기점에 다다랐다. 

 

1번 고속도로와 샤크베이 로드 분기점 : 사진출처 - 구글 스트리트 뷰


이곳에서 다시 1번 도로를 벗어나 샤크베이 로드(Shark Bay Rd.)를 달렸다.

 

이 도로는 다른 도로와는 좀 다른 느낌이 들었다. 
지방도로답게 도로가 좁은 건 알겠는데 길 양편 모래가 유난히 검붉을 빛을 띠고 있었다.

 

샤크베이 로드 모습

 

게다가 로드킬당한 캥거루 사체도 다른 곳보다 훨씬 많았다. 
깊 옆으로는 빽빽하게 들어찬 낮은 관목숲 때문에 
막연한 느낌이긴 했지만 뭔가 다른 곳보다 때묻지 않은 자연을 품고 있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 

샤크 베이 분기점에서 30여 킬로미터 지점에서 하멜린 풀(Hamelin Pool)입간판을 볼 수 있었다. 
입간판을 따라 좁은 시골길을 따라 조금 더 들어가자 하멜린 스테이션 스테이라는 오토캠핑장이 나왔다.
공터에 차를 주차하고 사람들에게 물어물어 하멜린 풀을 찾아갔다.

 

하멜린 풀을 향해 가는 낮은 언덕

 

이윽고 티비에서 봐왔던 바로 그 장면이 눈앞에 펼쳐졌다.

 



저 난간길을 따라 들어가면 시아노박테리아(Cyanobacteria)가 내뿜는 산소가 부글부글 올라오는 바다를 볼 수 있었다.

 

그런데 안타깝게도 난간까지 갈 수가 없었다. 
2021년 4월에 있었던 사이클론 때문에 길이 파괴되어 출입을 통제하고 있었던 것이다.

 

출입금지를 알리는 간판


팻말에는 2022년 까지 고칠 예정이라고 되어 있었다.
하지만 지금은 2023년이지 않은가?
여기까지 와서 산소거품을 올라오는 바다를 볼 수 없다는 것이 너무 안타까왔다.

아쉬움에 애꿎은 셔터만 눌러댔다.

비록 멀리서 바라보는 것이긴 했지만 마치 내가 원시의 바다 앞에 서 있는 것 같았다. 
미생물들이 뒤엉켜 공생하다가 지구 대기에 처음으로 산소를 뿜어냈다는 자연의 역사가 경이롭게 느껴졌다.

아쉬움을 뒤로 하고 여정을 계속했다. 

 

끝이 보이지 않게 이어지는 길.

 

 

가도가도 끝이 없는 여정에 대한 푸념이 동영상에 남았다. 이 때는 내 마음도 안쥔마님과 마찬가지였다. 

 

대한민국에서는 가을에 태양은 남쪽으로 기울기 마련이다. 

하지만 남반구인 호주에서 태양은 북쪽으로 기운다. 

 

우리가 달려가는 방향이 북서쪽이다보니

뜨거운 태양빛이 운전석에 그대로 파고 들었고 그래서 더더욱 피곤하게 느껴졌는지도 모른다. 

 

그렇게 한 시간 반을 더 달려갔다. 

어쨌든 종점은 나타나는 법.

서쪽으로 바다가 아름답게 펼쳐져 있는 작은 도시 덴험이 나타났다.

 

 

덴험은 작은 도시였지만 갖춰질 건 다 갖춰져 있는 도시였다.

특히 바로 앞에 있는 바다 덕분에 훨씬 더 아름다와 보였다. 

 

덴험의 아름다운 바다 풍경

 

덴험 입구에 바로 마트와 주차장이 있었다.
그 동안 계속 오지 캠핑장을 달려온 터였다.
오랫만에 마트를 만나 먹거리를 넉넉히 챙긴 후 캠핑장에 도착했다.

 

오늘의 숙소 덴험 씨사이드 홀리데이 파크

 

덴험 씨사이드 홀리데이 파크 배치도, 오른쪽 보라색 딱지는 데시보드에 올려놓아야 했다.

리셉션에서 우락부락해 보이는 금발 아주머니가 호쾌하게 나를 맞아주었다.

다른 데에서는 항상 필요했던 화장실 키 또는 비밀번호를 알려주지 않아 내가 물었다. 

 

"여긴 화장실 가는데 키 필요 없나요?"

 

"우린 고객에게 최고의 서비스를 제공하는 카라반 파크야. 그런 거 따위는 없어.

 캠핑장 내 시설은 마음껏 쓰면 돼.

 너 자리가 씨사이드뷰네!

 경치가 멋질거야. 

 있는 동안 마음껏 즐기다 가라고!"

 

아주머니가 얘기하는 영어가 그대로 내 귀에 꽂혀들어왔다.

어찌나 발음이 정확하던지.

시원시원해 보이는 외모만큼이나 시원시원한 발음에 내 마음이 다 시원해졌다. 

 

사실 오늘 숙소가 오션뷰라는 걸 안쥔마님께는 일부러 얘기하지 않았었다. 

나름 준비한 서프라이즈였다. 

기대하지 않았던 풍경에 안쥔마님이 피곤이 풀린다며 좋아했다.
역시 바다는 그런 힘이 있는 것 같다.

 

덴험 씨사이드 캠핑장의 싸사이드뷰 사이트

덴험 씨사이드 홀리데이 파크는 
서호주의 여느 캠핑장 못지않은 깨끗하고 좋은 시설을 가지고 있었다.

주방과 샤워실이 가까워 오가기에도 편했다.

 

세탁실에 가서 옷을 빨아 널고, 느긋하게 샤워를 했다.
마트에 다녀온 덕에 먹을 것도 많았다.

다만 바람이 너무나 강하게 불어 밖에 식탁을 차리기가 어려웠다.
차 안에 들어가 차창으로 보이는 노을을 바라보며 저녁 식사를 했다.

 

차안에서 즐기는 오션뷰 저녁식사


밤새 차가 흔들릴 정도로 강한 바람이 불었다.

 

하지만 아침이 되자 바람이 잦아들었다.
그 덕에 식탁을 펴 바다를 한 눈에 내려다보며 아침식사를 할 수 있었다. 


하늘에 구름이 늘어섰다.

 


호주에서는 하늘에 강한 난기류가 생기면서 모닝글로리 구름이 종종 생긴다는 얘기를 들었다.

(호주의 모닝글로리 구름 참고 링크)
모닝글로리 구름이 만들어지지 않을까 은근 기대했지만 바람이 잦아들면서 구름이 말리지는 않았다. 

조금만 더 바람이 불었으면 모닝글로리 구름을 볼 수 있었을 텐데... 약간 아쉬운 마음이 들었다. 

 

아침이 되자 주변 차들이 우리보다 부지런히 캠핑장을 빠져나갔다.
역시 우리만 장거리 운전을 하는 건 아니라는 생각을 했다.
우리도 뒷정리를 마치고 출발했다.

 

샤크 베이에서 더 들어가면 야생 돌고래를 만날 수 있는 것으로 유명한 몽키미아가 나온다.
몽키미아에는 오토캠핑장이 딱 하나 있다. 

그런데 몽키미아가 워낙 인기있는 관광지여서 그런지 올라갈 때는 물론

내려갈 때도 예약이 꽉차 있어 숙소를 잡을 수 없었다. 


하지만 그렇다고 몽키미아를 거를 수는 없는 노릇이다. 

 

몽키미아를 향해 달려가는 길

 

몽키미아까지는 20여 분밖에 걸리지 않았다.

 

 

그런데 몽키미아에서는 뜻밖에 입장료를 받았다. 

성인 1인 기준 15AUD(약 14,000원)을 내야 했다.

우리 뿐만 아니라 이곳 리조트에 묵는 사람들도 무조건 내야 하는 돈이란다. 

 

우리가 도착했을 때는 이른 시간이어서 그런지 직원은 없었다.
그래서 방문자 카드를 뽑아 입장료를 계산할 신용카드 정보를 기록하고 박스에 넣어야 했다. 

해변에서 이 방문자 카드를 검사할 수도 있다고 한다. 

 

몽키미아 해변 풍경

몽키미아 해변은 서호주의 모든 해변이 그런 것처럼 아름다왔다. 

하지만 이 해변을 특별하게 만들어주는 건 바로 돌고래이다.

 

돌고래는 언제 오지?

녀석들이 사람처럼 약속을 하고 움직이는 건 아닐테고

마냥 기다려야 하나?

 

고즈넉한 해변에 고즈넉한 기다림이 이어졌다. 

사실 우리는 돌고래가 나타나기만을 마냥 기다릴 수는 없었다.
오늘도 동가라(Dongara)까지 500킬로미터가 넘는 거리를 움직여야 했기 때문이다.

멀리 대한민국에서 왔는데 
돌고래야 모습좀 보여주지 않으련...
마음 속으로 빌고 또 빌었다. 

시간은 10시를 향해가고 있었다.
이제 출발해야 할 것 같다는 생각을 할 때였다.

포구에 슥 다가서는 두 개 그림자가 보였다.
기다리던 돌고래였다!

 

드디어 돌고래가 나타났다.

 

돌고래를 이렇게 직접 보게 되다니

 

그것도 이렇게 가까이서 말이다!


돌고래가 나타나자 어디서 왔는지 냉큼 안내하는 사람이 나타났다.

 



약 10여 분간 돌고래 소개와 돌고래의 생태에 대한 설명이 이어졌다.

예전에는 관람객들, 특히 어린이들이 직접 돌고래에게 먹이를 주도록 했다는데
지금은 일반인들이 야생동물과 접촉하는게 금지되었다고 한다.
그래서 먹이도 정해진 사람들이 조심조심 주었다. 

 

돌고래에게 먹이를 주는 모습, 정어리나 고등어 비슷한 죽은 물고기를 통째로 주는 것 같았다.


먹이를 얻어먹은 돌고래들이 유유이 사라졌다. 

 

이렇게 나타나줘서 고마워!


이제 우리도 우리 길을 가야지!

우리도 오늘의 여정을 시작했다.

 

나오는 길에 덴험을 얼마 지나지 않아 오션 파크 아쿠아리움이라는 입간판이 보였다. 
깔끔하게 포장된 도로가 연결되어 있었다.

시간이 어정쩡했지만 후딱 보고 가자는 생각에 들어가보았다. 

 

오션파크 아쿠아리움 건물 풍경

 

내부 풍경, 카페와 기념품 샵이 있었다.


알고 보니 이곳은 상어에게 먹이를 주는 체험을 할 수 있는 수족관이었다. 
한 사람당 입장료는 30AUD(약 27,000원)이었다.

 

돌고래를 보고 와서인지 그다지 구미가 당기지 않아 수족관에는 들어가지 않았다.

물론 여기서 예상치 못한 시간을 지체할 수 없는게 가장 큰 이유였다.

 

다만 경치가 너무 멋진 카페가 있었다. 

이게 진정 오션뷰 카페 아니겠는가?


원래는 그냥 슥 둘러보고 갈 계획이었는데 

카페에서 바라보는 바다 풍경이 너무 좋아서 결국 커피 한 잔 마시고 가기로 했다. 

 

커피 맛을 기대한 건 아닌데 뜻밖에 플랫화이트 맛이 참 훌륭했다.

이런게 망중유한이지. 
바다는 정말 진리다.

 

 

 

이전 이야기 : 서호주 일식 여행 19 - 가장 독특했던 캠핑장, 불라라 스테이션 스테이

 

다음 이야기 : 서호주 일식 여행 21 - 대자연의 끝자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