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호주 일식 여행 17 - 에코 리트리트(Eco Retreat)에 안착하다.

2023. 9. 30. 11:591. 별과 하늘의 이야기/2023 서호주 일식 여행기

톰 프라이스를 벗어나는데 거대한 차량의 통과를 알리는 호송차량이 지나갔다.

 


OVERSIZE 팻말을 부착한 호송차량이 지나가면 
길 한켠으로 벗어나 기다려야 한다는 것을 이미 사전에 알고 있었던 터였다. 

골든 아웃백(Golden Outback)이라 불리는 서호주 내륙은

대규모 탄광산업으로 인해 거대한 채굴용 장비들이 자주 왔다갔다 한다고 했다.   

길 한켠으로 벗어나 얼마나 큰 차가 지나가는지 기대하면서 기다렸다.

정말 어마어마한 차가 지나가더라는.

 

오늘의 숙소는 에코 리트리트(Eco Retreat).

 

카리지니 국립공원 내에 있는 친환경관광(Ecotourism)을 표방하는 숙소이다.
전기는 물론 물도 공급되지 않는 Unpowered Site에서 2박을 할 예정이었다.

그런데 우리는 에코 리트리트에 가기 전에 반드시 해야 하는 일이 있었다.
스페어 타이어가 없어 비포장도로는 반드시 피해가야 했고

그러려면 카리지니 국립공원의 도로망을 확실하게 알아두어야 했다. 

이를 위해 카리지니 국립공원 Visitor Center를 우선 방문해야 했다.

실제 서호주 관광청에서도 카리지니 국립공원을 방문할 경우 Visitor Center를 방문해 

그날그날의 제약사항이나 특이사항을 미리 챙길 것을 권하고 있었다.


카리지니 국립공원 Visitor Center까지는 톰 프라이스에서 100킬로미터, 약 한 시간 거리에 있었다. 

 

카리지니 국립공원 주변 도로에서는 언제나 이처럼 거대한 산을 볼 수 있었다.

 

그 산들이 하나같이 오랜동안의 퇴적을 말해주는 선명한 층상구조를 보여주는 것도 인상적이었다.

 


이윽고 카리지니 국립공원 Visitor Center로 들어가는 East Gate에 도착했다. 


카리지니 국립공원 게이트는 무인으로 운영되고 있었다.
확인할 사람도 없지만 우리는 국립공원 PASS가 있어 그냥 들어갔다. 


포장도로라고 하기에는 애매모호한 길을 10킬로미터 더 들어가자 Visitor Center가 나왔다.

카리지니 국립공원 방문자 센터 입구

 

방문자 센터 건물은 제법 세련되고 거대한 건물이었다.


하지만 외관과는 달리 내부는 별 특이한 점은 없었다.
기념품을 파는 공간과 작은 전시관이 있었다. 

물론 방문자 센터인만큼 중요한 시설이 몰려 있긴 했다.

 

핸드폰이 잘 터지지 않는 특성을 고려한 공중전화부스가 있었고
상수도가 절대 부족한 특성을 고려한 샤워시설과 급수시설이 있었으며 
유일하게 쓰레기통이 있는 곳이기도 했다.

안내 데스크에는 이미 상담을 받는 사람이 있었다. 
우리가 주위를 찬찬이 둘러보고 나올 때까지 계속 상담이 이어졌다.

 

안내 데스크 옆에 카리지니 지도가 구비되어 있었다.

그리고 그 지도에 카리지니 국립공원 도로망이 표시되어 있었다.

내가 얻고자 하는 바로 그 정보였다. 


앞 사람의 상담이 끝날 기미를 안 보여 지도만 챙기고 나왔다.

 

카리지니 국립공원 지도.

한국에서 카리지니 국립공원에 대한 정보를 찾아볼 때 

가장 답답했던 게 구체적인 동선이었다.

 

협곡 투어를 하는 건 알겠는데,

그 넓은 카리지니 국립공원에서 구체적으로 어떻게 접근이 가능한 건지에 대한 정보가 부족했던 것이다.

 

지도를 보니 그 모든 상황이 한 눈에 파악됐다.

(지도 파일 첨부하였음)

 

특히 어디까지가 포장도로이고 어디부터가 비포장도로인지도 한 눈에 식별할 수 있었다. 

우리가 어떻게 대응해야 할지 감이 왔다.

한 마디로 정리하자면

"에코 리트리트에 들어가면 나올 때까지 꼼짝하지 말자!" 였다. 

 

아쉽게도 왠만한 곳은 비포장 도로를 피해갈 수 없었던 것이다.

 

그나마 우회도로라도 있다면 다행이었다.

에코 리트리트가 딱 그 짝이었다. 

그나마 유일한 케이스이기도 했다. 

Visitor Center에서 에코 리트리트까지의 최단거리는 28킬로미터였다.
하지만 이 길은 완전 비포장 길이었다.
포장도로를 이용하려면 카리지니 국립공원 서쪽 게이트로 우회해야 했다.
총 72킬로미터의 짧지 않은 거리였다.
그렇게 우회하고 나서도 최종적으로 3킬로미터의 비포장도로를 이용해야 에코 리트리트로 들어갈 수 있었다.

사실 입구 3킬로미터가 비포장도로라는 건 이미 에코 리트리트에서 보내준 안내 문서에 적혀 있었다.

에코 리트리트에서 보내준 내용을 간추리면 다음과 같다.

- 되도록 4륜 구동을 타고 올 것.
- 그런데 우리 고객들 보면 2륜 구동도 많이 타고는 오더라.
- 벤지마 드라이브(Banjima Dr)를 이용하면 입구 앞 3킬로미터 지점까지는 포장도로를 이용할 수 있음.
- 3킬로미터 비포장 구간이 있긴 하지만 도로 상태가 나쁘지는 않을 것임.
- 그런데 사실 도로 상태는 우리 소관은 아님. 
- 캠핑카를 렌트해서 오는 사람은 렌트회사의 비포장도로 운행 지침을 반드시 확인할 것. 

 

이 내용을 보고 에코 리트리트에 들어가는 걸 주저주저하기도 했었다. 

게다가 우리 캠핑카 렌트회사의 비포장도로 운행 지침은 '가지 마!'였다.

 

그래도 가야지. 

에코 리트리트에서 밤하늘을 보겠다는 생각으로 여기까지 왔다. 

당연히 가야하고 말고. 

 

카리지니 국립공원 도로망 지도를 다시 찬찬히 봤다. 
Visitor Center에서 12킬로미터 떨어진 데일스 협곡(Dales Gorge)까지는 포장도로가 이어져 있었다. 

에코 리트리트로 출발하기 전에 데일스 협곡을 한 번 보고 가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약간의 시간 여유가 있었다. 

가뜩이나 죄다 비포장 도론데 이곳까지는 포장도로라지 않는가?

마다할 이유가 없었다. 

하지만 막상 데일스 협곡을 가니 

인근까지는 포장도로였고, 주차장까지 들어가는 짧지 않은 거리는 우둘두둘하기 그지없는 비포장도로였다. 

일방통행이어서 차를 돌릴 수도 없었다. 


카리지니의 모든 도로가 이런 식이었다.

데일스 협곡 전망대 가는 길

 

데일스 협곡의 장관

카리지니 국립공원은 결국 이런 협곡투어를 위해 오는 것이다.

 


비록 이곳에 오래 머물 시간은 없어 투어까지는 하지 못했지만

이렇게라도 와서 멋진 풍경을 볼 수 있었던 것만 해도 충분히 감사할 일이었다.  

주차장으로 돌아오는 길에 흰 몸통을 드러내고 있는 나무들이 인상적이었다.


이제 에코 리트리트로 들어가야 할 시간이다. 

 


장대한 풍경이 펼쳐진 길을 따라 카리지니 국립공원 서쪽 게이트를 통과하여 벤지마 드라이브에 접어들었다. 

 


반지마 드라이브는 중앙선이 없고 교행이 약간은 어려울 것 같은 좁은 도로였다. 
이 길을 따라 25킬로미터를 들어가자 드디어 우리 앞에 피할 수 없는 3킬로미터 비포장 도로가 나타났다.

 

때마침 SUV 한대가 붉은 모래 먼지를 풀풀 날리며 나오고 있었다.


꿀꺽 침 한 번 삼켰다.
빨리 가려하지 말자. 
천천히 가자. 
중요한 건 빨리 가는 게 아니라 타이어 손상 없이 가는 거다.

천천히 비포장 도로에 접어 들었다. 

 

아슬아슬 비포장 도로를 통과하는 중.

비포장 도로는 생각보다 빤빤한 구간도 있었지만
생각보다 아찔한 구간도 있었다.

 

드디어 에코 리트리트 입구가 나왔다. 얼마나 반가왔는지 모른다.

 

에코 리트리트 리셉션까지 성공적으로 잘 들어왔다.

제일 먼저 한 일은 차에서 내려 타이어를 살펴보는 것이었다.

다행히 아무런 문제가 없었다.

 

리셉션에 들어가 사이트를 배정받았다.

 



하지만 여기가 끝이 아니었다. 
우리가 머물 사이트를 배정받았는데 사이트까지도 여전히 비포장 도로가 이어졌다.

 

에코 리트리트 배치도

문제는 진입로와 달리 차가 비교적 적게 다니는 길이다보니 길이 훨씬 더 울퉁불퉁했다는 것이다. 
사이트까지 오는 짧은 길이 더더욱 긴장되는 길이었다. 

 

 

그렇게 사이트까지 무사히 도착했다.
우리 키를 훌쩍 넘는 거대한 개미집이 우리를 환영하듯 우뚝 서 있었다.

열기가 전혀 식지 않은 태양빛이 내리쬐고 있었지만

시간은 이미 17시를 넘어가고 있었다. 
어닝을 펴고 식탁을 펴고 저녁식사를 준비했다. 

 


여기 있는 동안에는 아예 전기를 쓸 수 없었다. 

이틀을 버텨야 했기 때문에 불필요한 전원을 내렸고, 냉장고도 꺼 버렸다. 

 

냉기가 식어가는 냉장고에서 식재료를 꺼내 아이스팩에 들어갈 수 있는 약간을 남기고 모두 구워버렸다. 
덕분에 저녁 식사가 아주 푸짐해졌다.

 



에코 리트리트에서의 첫 번째 저녁식사, 사바나에 온듯한 느낌이 물씬 풍겼다.


사이트 간격이 넓직넓직하고 가로등이 없어서
옆에 다른 차가 있는지 없는지 알 수가 없었다.

말 그대로 자연에 푹 파묻힌 것 같았다. 

그런 에코 리트리트에 저녁 노을이 졌다.

그냥 오면 되는 길이었지만, 오는 과정이 결코 순탄치 않았다.

그때의 감정이 동영상에 고스란히 남았다.

 

 

 

에코 리트리트의 하늘을 그 어느 때보다 아름다운 저녁 노을이 장식하고 있었다.

 

 

 

Karijini Road Map.jp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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