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 별자리 이야기/BABYLONIAN STAR LORE

바빌로니아 별자리와 천문전승 - 입문 1. 표기체계

다락방별지기 2025. 4. 30. 16:26

메소포타미아를 다루는 여러 분야와 마찬가지로

점성술과 천문전승 역시

이를 기록하는데 사용된 쐐기문자의 특성과 표기 및 표현에 대한 지식이 필요합니다.

천문전승 및 점술의 여러 측면과 밀접하게 연결된 요소에 대해

무엇을 기록하였는지, 어떻게 기록하였는지와 같은 질문은

쐐기문자라는 표기체계에 대한 지식이 있어야 이해할 수 있습니다.

 

 

지구상에서 문자 체계가 처음으로 발명된 때는 기원전 3,400년 경입니다.

문자는 수메르인들에 의해 처음 발명된 것으로 추정됩니다.

하지만 수메르어와 관련된 언어로 현재까지 남아 있는 것은 없습니다.

 

수메르인들은 1,200개에서 1,500개 정도의 다중 표기 체계를 개발했습니다.

이 중 상당수는 상형문자 성격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상형문자로 모든 것을 표기하려면 표기를 계속 만들어내야 합니다.

따라서 수메르인들은 상형문자를 새로 만들어내는 대신 두 개 혹은 그 이상의 표기를 연결하는 방법을 개발했습니다.

 

예를 들어 상형문자로 표기하는데 그리 어렵지 않은 '써레'나 '전갈' 같은 대상은 그 본성을 표시하는 표기로 사용되기도 했습니다.

구체적으로 써레는 표기 자체가 들판을 갈아엎는 목조 농기구를 나타냅니다.

전갈은 독침을 가진 생명체라는 특징이 있죠.

여기서 독침은 칼을 표기하는데 사용되었습니다.

 

이와 같은 방법으로 수많은 객체가 고유 표기를 갖게 되었습니다.

하지만 이러한 접근방법도 한계는 있었죠.

특히 '집'이나 '쟁기', '점토판'과 같이 확정적인 의미를 갖는 대상은 상형문자로 표기될 수는 있었지만 활용에는 한계가 있었습니다.

 

'색채'와 같은 질적 개념들 또는 공간적, 일시적 관계로 그려지는 추상적인 개념들을 상형문자로 표시하기는 훨씬 더 어려웠습니다.

따라서 추상적이고 질적인 개념을 표시하기 위한 몇 가지 전략이 사용되었습니다.

 

예를들어 '수탉'은 다양한 색깔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다채로운이라는 의미를 전달하는데 사용될 수 있었습니다.

또한 하반신이나 두 다리는 엉덩이라는 개념을 분점하고 있음에 기반하여 나중에또는 뒤에와 같은 의미를 전달할 수 있었고, ‘엉덩이자체를 의미하는데도 사용될 수 있었습니다.

 

의미는 다른 의미인데 발음이 같다는 이유로 채택도 표기도 있습니다.

예를 들어 살다(to live)를 의미하는 수메르어는 (ti)로 발음됩니다.

하지만 이 의미는 상형문자로 표기하기 어렵기 때문에 '화살'을 뜻하는 '티'가 동일한 발음이라는 이유로 그대로 사용되었습니다.

 

이 모든 방법으로도 표기가 되지 않는 경우 음가를 차용하여 표기할 수도 있었습니다.

이 방법은 오늘날 우리가 사용하는 표기와 본질적으로 동일한 방법입니다.

, 기본 음가를 갖는 철자를 조합하여 표기를 만드는 것입니다. 

 

이러한 여러 방법과 아직은 그 원리를 밝히지 못한 여러 방법을 이용하여 수메르인들은 상당히 많은 이름을 기록할 수 있었습니다.

또한 이렇게 만들어진 단어는 직종이나 행성, 식료품이나 광물과 같은 다양한 주제로 묶여 방대한 목록으로 기록될 수 있었습니다.

우리에게 이러한 단어를 알려주는 점토판 중 상당수는 교습과정에 참여한 견습생들의 연습장입니다.

 

 

초기 수메르 문명의 문서는 점토판 위에 날카로운 도구를 이용하여 글을 새긴 것입니다.

그런데 이 방식으로 곡선을 정확하게 그려낼 수는 있었지만 점토 표면에 불필요한 자국을 만들어내기도 했습니다. 

 

점토판에 글을 새기기 시작하고 2~3백년이 더 흐른 후에야 날카롭게 다듬은 갈대로 글을 새기기 시작했습니다.

이로부터 독특한 쐐기 모양의 선이 만들어졌습니다.

때문에 서양 학자들은 이 표기를 쐐기문자(cuneiform)’라 불렀습니다.

‘cuneiform(쿠네이포름)’은 라틴어로 쐐기 모양을 의미합니다.

 

이런 과정을 거치며 더 빠르게 글을 새길 수 있게 되었습니다만 이로부터 중요한 결과가 하나 도출되었습니다.

바로 모든 표기가 직선으로만 구성됐다는 것입니다.

이로서 많은 표기들, 특히 곡선을 품고 있던 표기에 변화가 불가피하게 되었고 특정 표기가 원래 묘사하려던 것이 무엇인지 알아보기 어렵게 되었습니다.

 

이 책에서 저는 가능한한 초기 쐐기문자 표기를 사용했습니다.

좀 더 오래전 표기일수록 알아보기 더 쉽고 그 성격이 명확하게 드러나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이는 대단히 신경 쓰이는 일입니다.

곡선을 품은 오래전 표기가 남은 점성술 책이 있는 것도 아니고 별 이름이 발견된 것도 아니기 때문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곡선표기를 사용한 것은 전적으로 성격을 명확하게 하기 위해서입니다.


그림 1 : 석양의 인안나(축제)를 위해 기록된 초기 수메르의 비용출납문서

 

표기를 보다 엄격하게 정의하자면, 말로 표현한 것을 눈으로 볼 수 있게 하는 것이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이 정의는 아리스토텔레스(Aristotle)와 아우구스티누스(Augustine)로부터 유래하는 정의인데 한정된 철자만으로 모든 말을 표현할 수 있는 현대 유럽 어족에 충분히 적용될 수 있는 정의입니다.

 

하지만 이 정의는 상형기호를 나열하는 방식을 주로 사용했던 고대 메소포타미아에는 들어맞지 않습니다.

고대 메소포타미아 표기는 하나의 표기라도 여러 의미와 발음을 품고 있었습니다.

물론 각 의미가 상호 연관성이 있다는 점에서 '표의문자'로서의 성격을 지녔다고도 할 수 있습니다.

 

표의문자 성격을 가지고 있는 쐐기문자의 예로 아핀(Apin)이라는 표기를 들 수 있습니다.

 



아핀(APIN)
이 표기는 ‘씨뿌리는 쟁기(seed-plough)’의 형상을 묘사한 것으로 “아핀”으로 발음합니다. 

그런데 이 표기는 ‘농부’를 의미하기도 합니다. 
이때 발음은 “엔가르(Engar)”가 됩니다. 

이 표기는 동사로도 사용되어, ‘밭일을 하다’, ‘경작하다’라는 의미로도 쓰입니다. 
이때는 “우루(Uru)”로 발음됩니다.

후대에 음가만 독립적으로 떼어내어 “핀”이라는 음가를 나타내는데 사용되기도 했습니다.
예를 들어 아카드어에 ‘단추’를 의미하는 ‘피누(pinnu)’라는 단어가 있었는데 이 표기는 두 개 음가로 구분되어 “핀-누”로 표기되었습니다. 

 

따라서 실제 글을 읽는 사람은 상황에 따라 가장 적절한 의미와 발음을 선택해야 했습니다. 

물론 여러 의미를 품은 표기보다는 그렇지 않은 것들이 좀더 쉽게 사용되었을 것입니다.

어쨌든 이러한 체계를 잘 알지 못하는 사람은 매번마다 각각의 의미를 차근차근 살펴봐야 했을 것입니다.

그리고 전체적인 맥락이 맞을 때에야 비로소 전체 뜻을 이해했을 것이고 이처럼 지난한 과정을 거쳐야 올바르게 읽는 것이 가능했을 것입니다. 

 

이런 상황이라면, 혹자는 어떻게 이렇게 복잡한 표기체계가 서로 다른 언어를 말하는 사람들이 모인 문화권에서 그토록 오랫동안 사용되어 왔는지 의아할 것입니다.

이에 대한 궁극적인 답변은 이 표기가 종교적이고 에언적인 기록에 사용되었다는 것입니다.

즉 이 표기체계는 거룩한 언어를 기록하는 표기였던 것입니다. 

 

거룩한 언어로서, 이 표기체계는 개별적임과 동시에 총체적으로, 일상적인 의미를 뛰어넘는 부가적이고 포괄적인 정보를 제공할 수 있었습니다.

거룩한 언어라는 사상은 대부분의 독자들에게는 생소할 것입니다.

이 사상은 기표와 의미 사이의 상호 연관성을 살펴봄으로써 가장 잘 설명될 수 있습니다. 


안(AN)
(AN)’이라는 표기는 여덟 줄기의 빛줄기를 뿜어내는 별을 묘사한 표기입니다. 
하지만 이 단어는 자체보다는 천국(안 An)신(딩기 Dingir)'이라는 의미를 가진 표기입니다.

천국을 나타내는데 별 모양이 사용된 것은 충분히 이해할만합니다.
별이 천국을 장식하는 것으로 이해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이 표기가 ’, ‘여신’, ‘신성한 존재까지 의미하는 것은 좀더 암시적인 의미확장입니다.
이는 신의 거처가 별과 관련된 높은 천국에 존재하기 때문입니다.
게다가 바빌로니아의 점성술사들은 별과 별자리를 신과 신의 신성한 상징, 신의 사자를 의미하는 것으로 간주했습니다.

 



물(MUL)
이 표기는 세 개의 별로 구성됩니다.
이 단어는 별무리’, ‘별자리’, ‘행성을 의미하며 모든 천체의 이름 앞에 표기됩니다.

 
이 단어에 대한 최상의 해석은 입니다.
때문에 이 단어는 영어에서 운명을 의미하는 ‘fate’와 본질적 연관성을 가집니다.
 
이 단어가 동사로 사용되면 빛나다’, ‘(빛을) 뿜어내다를 의미합니다.
 
이 표기는 세 개의 별이 뭉쳐 있는 모습 때문에 명의 신이 모여 있는 모습으로 해석되기도 합니다.
이때는 운명을 점지하기 위해 모인 신의 모임을 의미합니다.

 

여러 표기를 조합하여 대상의 이름을 쓰게 되면, 이로부터 또다른 의미가 만들어지는 경향이 증가합니다. 

 

많은 주문과 점성술 금언은 하나 이상의 다층적 의미를 갖습니다.

그래서 많은 주문이 만들어지기도 하고, 한 주문 내에서도 표기가 갖는 다중 의미 때문에 다양한 상황에서 선택가능한 비밀의 전승을 만들게 됩니다.

 

후기 바빌로니아 문서에서 가져온 두 가지 예를 들어보겠습니다.

이 예는 행성의 별칭에 대해 분석한 것인데, 점성술에서 각 별칭은 대상 행성이 가지는 본질적 성격을 묘사합니다. 

 

첫번째 예는 야생 양(Wild Sheep)’입니다. 

초기 문서에서 이 이름은 행성의 통칭으로 사용되었습니다. 

하지만 후대로 오면 악한 기운을 가진 행성만 지칭하는 것으로 한정되었습니다.

화성과 토성, 수성이 바로 그것입니다. 

쐐기문자에서 야생 양물 우두 이딤(Mul Udu Idim)’이라고 표기됩니다.

물(MUL)    우두(UDU)   이딤(IDIM)
우두(UDU)는 '양'을 의미합니다.
그런데 이 표기는 양과 아무런 관련이 없는 의미를 가지기도 합니다.
행성의 의미를 가진 용례는 원을 사분할함으로써, 지점(하지, 동지)과 분점(춘분, 추분)에 의해 한 해가 사분할된 천문학적 상징체계에 기인한 것으로 추정됩니다.
 
수메르어에서 이딤은 야생’, ‘미쳐 날뛰는’, ‘과격한등을 상징합니다.
이러한 의미를 기반으로 죽음이나 전염병’, ‘오염등으로 의미가 확장되었고, 이로부터 전염병을 가져오는 야생 양이라는 의미가 파생되었습니다.
 
이 표기는 또한 동사로는 죽다’, ‘끝마치다를 의미합니다.
이는 점성술 문서에서 발견되는 야생 양은 소를 죽게 만든다는 문구에서 파생된 의미입니다.

 

좀더 복잡한 파생 역시 가능합니다.

파생의미는 하나의 표기를 한 번 이상 사용함으로써 표기될 수도 있고, 유사한 발음을 가진 표기를 서로 바꿔가면서 표현할 수도 있습니다. 

 

규칙은 거의 관계가 없거나 관계가 먼 의미를 표현하는 수준에까지 활용될 수 있으며, 심지어는 수메르어 표기를 다른 언어로 읽어버리는 것과 같은 완전히 다른 수준에까지 존재합니다.

 

더 먼 과거로 올라가 찾을 수 있는 예가 이 원칙을 활용하고 있습니다.

점성술 문서에서 목성은 사그메가르(Sagmegar)’로 불리곤 합니다.

물(MUL)   사그(SAG)   메(ME)   가르(GAR)
이 명칭이 어디서 유래되었는지는 불분명하지만 대개 인간이 사는 세계에 징조를 전달하는 자로 해석됩니다.
 
전령또는 전달자'라는 개념은 사발 모양의 가르(GAR)가 담당합니다.
이 표기가 동사로 사용되면 지위를 내리다’, ‘소식을 전달하다’, ‘소식을 나르다라는 의미로 사용됩니다.
 
메(ME)징조를 뜻합니다.
이 표기는 상징화된 권력’, ‘문명세계의 상징을 의미하며, 신호’, ‘상징’, ‘전조’, ‘거룩한 상징등, 여러가지 의미를 갖습니다. 
 
마지막으로 인간이 사는 세계라는 개념은 수메르어 사그 미(Sag-mi)’로부터 유래한 것으로 추정됩니다.
이 단어는 검은 머리를 의미하는데 검은 머리’란 수메르인이 '인간'을 부를 때 사용한 말입니다.

 

이처럼 이미 사용되는 표기에 또다른 의미가 담기는 것은 쐐기문자가 쓰이던 시기에는 일반적인 일이었습니다. 

이렇게 만들어진 의미를 분석하는 것은 별과 행성 이름 분석에 자주 활용되었으며, 모든 유형의 점성술 문서에서 일관되게 볼 수 있는 현상입니다. 

 

따라서 바빌로니아 인의 의식 속에 각인된 객체의 이름은 그 객체가 가지고 있는 고유 속성 뿐 아니라 그 객체의 운명도 함께 담고 있습니다.

 

마지막 예로 '창조서사시'로부터 전하는 다음의 표기도 살펴볼 가치가 있습니다.

 

이 표기의 의미는 마르둑을 일컫는 두 개 이름에 자세하게 설명되어 있습니다.

마르둑이 이 이름을 얻은 것은 그가 바빌로니아 만신전에서 좌장이 되었을 때입니다.

 

마르둑은 리마이다.

그는 전우주에서 신들 간의 계약을 세우고

이를 영원하게 만든 이다.

모든 신을 모두 아우르는 고리로서

마르둑은 좋은 것들을 준비했다.

마르둑은 아리마이다.

그는 고결한 신이며

악을 물리치고 왕관을 썼으며

물 위에 지구를 세우셨다.

그는 물 위의 세상을 확립하셨다

 

문장 전체에 등장하는 찬사가 '길(Gil)' 표기가 갖는 여러 의미로부터 파생되었음을 알면 더 큰 의미를 읽어낼 수 있습니다. 



길(GIL)
이 표기는 두 개의 갈대가 서로 교차하는 모양입니다. 
의미는 여러가지가 있는데 그 중 주요 의미를 살펴보면 다음과 같습니다.
 
- ‘(감아)묶기’, ‘(끈으로) 묶기’, ‘매기’, ‘(배를 묶어)정박하기
   이 의미는 '우주적 뼈대' 및 '우주의 안정성'이라는 관념과 연관됩니다.
 
- ‘’, ‘고리’, ‘반지’, ‘둘레
 
- ‘화관’, ‘머리장식’' - , ‘왕관을 의미
 
- ‘삐뚤어지다’, ‘어려워지다’ - , ‘악함을 의미
 
- ‘가로질러 놓이다’ - 이는 지상을 감싸는 하늘의 의미와 통합니다.

- 아길리마(Agilima)에서 '아'는 '물'의 의미로 많이 쓰입니다. 이때 사용되는 '아'는 '물'을 의미하는 표기이기도 합니다. 

 

이렇게 수메르어 표기체계의 특징을 살펴보았습니다. 

 

기원전 3천년 대 메소포타미아에는완전히 다른 언어를 가진 아카드인이 출현했습니다.

이들은 샘어 계열의 아카드어를 사용했습니다.

아카드어의 단어와 문장형성방식, 동사구조는 수메르어와는 근복적으로 달랐습니다.

 

기원전 3천년 대가 지나는 동안 아카드어는 메소포타미아 지역의 공용어가 되었고 기원전 3천년 대 말에 이르러 수메르어는 거의 사라졌습니다.

하지만 수메르어를 기반으로 한 표기 체계와 필경사 학교의 교습법은 그대로 이어졌습니다.

 

수메르어는 기원전 2천년 대가 시작될 무렵 필경사 학교에서 교습을 위해서만 사용되는 언어가 되었습니다여전히 특별한 지위를 유지했습니다.

주로 신화와 종교, 왕의 포고문을 기록하는 언어로서 명맥을 유지한 것입니다. 

, 이때의 수메르어는 중세시대 라틴어와 같은 위치라고 볼 수 있습니다. 위치에 있게 된 것입니다.

 

아카드인은 수메르 단어를 그대로 받아들였고, 여기에 유사한 의미의 아카드어 단어를 추가하면서 최초의 언어 사전을 만들었습니다. 

또한 대부분의 경우 수메르어에서 확립된 표기가 유지되었지만 그 표기를 읽을 때는 아카드어로 읽혀졌습니다. 

예를 들어 '천국', '별자리'를 일컫는 수메르어 표기는 그대로 사용되었지만, 수메르어 발음인 '안'이나 '물'로 읽혀지는 대신 아카드어 '샤무'와 '카카부'로 읽혀진 것입니다. 

게다가 수메르 관용구와 복잡한 구문들이 초기 아카드어 명문에 통째로 삽입되면서 명문만 보면 어떤 언어를 새긴 것인지 구분하는 것도 아주 어려워졌습니다.

 

적절한 이름에서 새로운 별칭을 만들어내는 것은 오랜 동안의 훈련을 필요로 하는 작업입니다. 

그런데 이 작업은 여전히 쐐기문자를 사용하면서 여기에 아카드어가 더해지면서 새로운 방향으로 확장되었습니다. 

 

수메르어 명사가 가진 원래 음가에 또다른 음가를 추가하여 아카드어 단어나 문구가 만들어지기도 했습니다. 

이에 해당하는 가장 적절한 예가 '늑대'를 지칭하는 '우르 바르 라(Ur-bar-ra)'입니다.

수메르어에서 이 단어는 대개 '외국인', '이국의 육식동물'을 의미했었습니다. 

 

기원전 2천년기 중반에 '바르(bar)'를 나타내는 표기는 '마슈'로 발음되는 표기와 구분이 불가능해졌습니다. 

그래서 약간의 시적허용과 같은 성격으로 '늑대''우르-마슈-(Ur-maš-ra)'라고 읽게 되었습니다.

이 단어는 아카드어로 '재물' 또는 '부자'와 같은 의미인 '부를 상징하는 포식동물'로 이해될 수 있었습니다.

 

이 지점에서 쐐기문자는 이중언어 표기체계로 간주될 수 있습니다.

모든 표기가 사실상, 수메르어 발음과 아카드어 발음을 동시에 가지게 되었기 때문입니다.

 

오늘날 학자들은 일반적으로 아카드어 쐐기문자는 이탤릭체로, 수메르어 쐐기문자는 볼드체나, 대문자로 표기함으로써 이 둘을 구분하고 있습니다.

 

기원천 2천년 기 중후반에 아카드어는 메소포타미아 지역의 공용어가 되었으며 그 지위는 거의 천년 간 유지되었습니다.

외교문서를 작성하기 위해 시리아, 레반트 지역, 이집트 등지에 아카드어와 쐐기문자를 가르치는 학교가 개설되었습니다.

 

특히 흥미로운 것은 악명 높은 일신교도 파라오였던 이그나톤의 수도 아마르나(Amarna)에서 발견된 기록 보관소입니다.

대체로 이집트와 봉신관계를 맺고 있던 팔레스타인 및 레반트 지역 국가들과의 거래관계가 기록된 이 보관소에서 300개 이상의 점토판이 발견되었는데 이중 오래된 것은 기원전 14세기까지 거슬러올라갑니다.

이중 대부분은 행정문서지만 메소포타미아 신화를 기록한 점토판도 극소수 발견되었습니다.

 

신화를 필사하는 것은 필경사 수련 과정에서 가장 마지막 단계였습니다.

이는 고대 세계 전체에 메소포타미아 학습체계가 어떻게 전달되었는지를 보여주는 단적인 예입니다.

 

학자나 필경사가 공부해야 했던 수메르어는 그리스도교 시대가 도래한 후 다른 언어들과 함께 사라졌습니다. 

이보다 수천 년 전에 아시리아에서 사용되기 시작한 아람어는 양피지나 가죽 위에 단순한 철자로 기록되었으며 마침내 쐐기문자를 밀어내고 메소포타미아에서 가장 많이 쓰이는 표기가 되었습니다.

 

수메르어를 담아내는 수단으로서 발명된 쐐기문자는 3500년 동안 사용되며 아카드어를 비롯한 메소포타미아 지역 약 10 여개 언어에 적용되었었습니다.

19세기 중반, 수메르어가 재발견될때까지 국제적 통용어로서의 쐐기문자가 가지는 문화적 유산은 성경에 등장하는 바벨탑 이야기에서만 유일하게 등장하였습니다.

 

이 이야기는 전설적인 탑을 짓던 사람들이 하나의 언어를 사용했다고 전합니다. 

하지만 신이 머물고 있는 천상에 가 닿으려는 시도는 수많은 언어의 난립과 그로 인한 혼란 때문에 좌절되고 말죠.

물론, 성경에 등장하는 이 탑은 바빌론의 심장부에서 도시를 밝혀주고 있던 그 유명한 마르둑의 지구라트를 배경으로 합니다.

하늘에 닿고 싶었던 인간의 이상은 그 이름에 남아있습니다.

이 지구라트의 이름은 테멘안키아(Temen-an-ki-a)입니다.

이는 '하늘과 땅의 기반'이라는 뜻입니다.

 

번역자 주석

1. 이 글은 천문작가 Gavin White의 책으로  고대 메소포타미아의 별자리와 천문전승을 담은 에세이집 Babylonian Star Lore (ISBN-13 : 978-0955903748)를 번역한 것입니다. 

2. 본 글은 저자의 허락을 받아 포스팅한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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