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 별자리 이야기/BABYLONIAN STAR LORE

바빌로니아 별자리와 천문전승 - 별자리 개관 2. 동지 별자리

다락방별지기 2025. 5. 11. 12:51

우리에게 익숙한 고대 메소포타미아의 달력은 춘분을 시작점으로 합니다. 

하지만 더 오랜 전통을 가진 별달력 주기가 시작과 끝으로 삼는 지점은 동지입니다. 

동지는 밤이 가장 긴 때입니다. 

즉, 태양의 힘이 가장 약한 때죠.

태양은 남쪽으로 가장 낮은 지점에 치우쳐 있습니다.

하지만 동시에 중요한 변화가 발생합니다. 

이때부터 하루하루 지날수록 태양의 힘이 증가하기 시작하는 것입니다. 

따라서 동지에 이어지는 기간은 혼돈의 물웅덩이로부터 태양이 재탄생하고, 암흑과 죽음의 왕국으로부터 모든 생명이 되살아나는 것을 축하하는 기간이 됩니다. 


그림 1 : 별달력의 첫 번째 부분으로서 동지 이후부터 태양과 함께 떠오르는 별자리입니다. 

 

오늘날의 페가수스자리 일부와 안드로메다자리를 차지하고 있던 말자리(the Horse)수사슴자리(the Stag)는 신화적으로 태양의 재탄생을 상징하는 별자리입니다. 

이러한 상징은 말과 관련된 신화에서 명확하게 드러납니다. 

신화적으로 말에게 부여된 주요 임무는 바로 태양마차를 끄는 것입니다.

 

신화에서 태양마차는 다음과 같은 3개 주요 시간 주기를 통제합니다. 

첫째, 태양마차의 출현은 여명을 상징합니다. 

둘째, 태양의 고도가 높아지기 시작한다는 것은 새로운 한 해가 시작된다는 것입니다. 

셋째, 총체적 창조 주기라는 관점에서 태양마차는 우주적 물웅덩이로부터 새로운 태양의 탄생을 기념하는 것입니다.  

 

이 고귀한 역할이 말에게 맡겨진 이유는 아마도 말의 빠른 속도와 갈기 때문인 것 같습니다. 

빠른 속도로 내달릴 때 휘날리는 말의 갈기가 태양으로 뻗어나오는 빛줄기를 연상시키기 때문이죠. 

 

수사슴자리 역시 여러 모로 말자리와 비슷한 상징을 갖습니다. 

수사슴자리도 천상의 물웅덩이 및 이로부터 탄생하는 태양과 오랜 연관관계를 가지며, 수사슴의 뿔은 말의 갈기처럼 태양으로부터 뿜어져나오는 빛줄기를 연상시키죠. 

특히 수사슴의 뿔은 해마다 재생되는 특성이 있는데 이러한 특성은 태양의 재탄생이라는 상징을 더 선명하게 갖고 있습니다. 

 

이 고대의 수사슴이 갖는 영광스러운 상징은 산타클로스의 썰매를 끄는 순록의 형태로 오늘날까지 남아 있습니다. 

동지에 썰매를 끌며 나타나는 순록은 동지를 통과하는 태양을 상징하는 것입니다. 

즉, 말자리와 수사슴자리는 별달력의 시작점으로 태양의 재탄생을 상징한다는 측면에서 참으로 적절한 상징이라 할 수 있습니다. 

 

수사슴자리와 말자리 옆에 있는 아누니툼자리(the Anunitum)제비자리(the Swallow), 들판자리(the Field) 역시 태양의 재탄생을 다른 형태로 표현하는 별자리입니다.

오늘날 별자리 기준으로 들판자리는 페가수스의 몸통부분에 해당하며, 아누니툼자리와 제비자리는 물고기자리에 해당합니다.

이 세 개 별자리는 시리아 여신 신화를 구성하는 별자리입니다. 

 

시리아 여신 신화는 동지 이야기로 간주되는 신화로서 그 내용은 다음과 같습니다.  

 

두 마리 물고기가 유프라테스강 깊은 곳에서 거대한 알을 찾았습니다.

물고기들은 이 알을 밀어올려 마른 땅에 올려놓았습니다.

이때 새가 나타나 알을 품기 시작했습니다.  

바로 이 알에서 시리아 여신이 탄생했습니다. 

이 신화 때문에 물고기와 새는 시리아 여신에게 헌정된 거룩한 짐승으로 여겨졌습니다. 

 

이 이야기에서 중요한 중심축을 차지하고 있는 것은 유프라테스강의 정체성입니다. 

땅위에 있는 유프라테스강과는 별도로 별달력에서 발견되는 유프라테스강은 제비자리로부터 흘러나오는 줄기로 형상화되어 있습니다. 

 

이 천상의 유프라테스강은 황도와 평행하게 흐릅니다.(그림 1의 점선 참고)

이를 기반으로 물고기가 어떤 역할을 수행하는지는 위에서 소개한 시리아 여신 신화를 통해 추측할 수 있습니다. 

우선 물고기는 동지에 가장 낮은 곳까지 추락한 태양을 보호합니다. 

즉, 신화의 알은 태양을 상징하는 것입니다. 

물고기는 이 태양이 '마른 땅'으로 올라갈 수 있도록 돕습니다. 

이때 '마른 땅'은 봄을 상징하는데, 이로서 들판자리가 봄을 상징한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시리아 여신 신화는 전반적으로 시간의 경과를 비유합니다. 

즉, 겨울의 암흑으로부터 봄의 시작으로 우리를 안내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어서 등장하는 별자리는 '물'과 관련된 별자리입니다. 

오늘날의 염소자리물병자리남쪽물고기자리에 대응되는 별자리로서 물염소자리(the Goatfish)굴라자리(the Great One)가 바로 그것입니다. 

 

우선, 물염소자리가 갖는 복합적 속성은 이 별자리가 갖는 상징성을 통해 이해할 수 있습니다. 

저는 이 별자리가 수사슴자리와 물고기자리의 상징을 혼합한 것이라 생각합니다. 

앞서 살펴본 바와 같이 수사슴자리는 동지로부터 재생을 시작하는 태양을 상징합니다. 

반면 물고기자리는 갓 재생을 시작한 태양의 수호자로서, 태양이 상승을 시작하는데 있어 그 첫걸음을 이끄는 별자리입니다. 

즉, 물염소자리는 이 두 개 별자리의 속성을 물염소라는 신화적 생명체에 모두 품고 있는 것입니다. 

 

이어서 물의 상징을 품고 있는 별자리는 굴라자리로 이어집니다. 

'굴라'는 '위대한 이'를 뜻하는 단어입니다. 

굴라와 그가 들고 있는 물병은 겨울에서 초봄 사이 비 내리는 횟수가 늘어나고 강물이 불어나는 것을 상징합니다. 

 

경작지를 상징하는 들판자리와 함께 보면, 굴라는 경작지에 물을 대주는 일, 즉, 관개경작을 관리하는 이로 생각할 수 있습니다. 

태양이 이 별자리에 머무는 때는 익어가는 보리에 물을 대야 하는 때죠. 

 

다음으로 살펴볼 별자리는 오늘날 조랑말자리돌고래자리가 위치하는 지점에 있는 멧돼지자리(the Swine)입니다.  

사실 멧돼지자리의 정확한 위치는 논쟁의 여지가 있습니다. 

하지만 이 별자리는 다무(Damu) 신의 속성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별달력에서 재생을 상징하는 부분에 위치하는 것이 타당할 것으로 생각됩니다. 

참고로 '다무'라는 이름은 '어린이'로 해석할 수 있습니다. 

 

메소포타미아 신화에서 다무는 죽음을 맞는 신 중 하나로 묘사됩니다. 

죽음을 맞는 신으로서 가장 유명한 신은 두무지(Dumuzi)입니다. 

'두무지'라는 이름은 '진정한 어린이'로 해석될 수도 있죠. 

두무지는 지상에서 저승으로 추방되며 어머니와 누이의 애도를 받는 신입니다. 

죽음을 맞는 신이라는 운명을 가진 다른 여러 신과 마찬가지로 다무도 결국 지상으로 돌아와 진정한 형체를 갖춥니다. 

메소포타미아 신화에서는 다무가 강을 거슬러 올라 저승세계를 탈출하는 것으로 설명합니다. 

 

전반적으로 동지 이후에 등장하는 별자리들은 겨울의 암흑으로부터 태양이 되살아나 하늘로 오르기 시작하는 시기를 상징합니다. 

이와 동일하게 서서히 삶의 주기를 펼쳐가기 시작하는 신 다무는 지하세계에서 탈출하여 이승으로 돌아오는 자신의 여정을 시작합니다. 

 

저승에서 탈출하는 아이의 이미지와 물속에서 새로운 생명을 시작하는 태양의 이미지를 인간의 모습으로 환원해본다면 자궁 속 양수에 잠겨 있는 태아의 모습으로 그려낼 수 있을 것입니다. 

이 다중적 이미지는 하나의 원초적 진실과 연결됩니다. 

서로 다른, 무수한 형상을 갖춘 다양한 생명체가 창조의 물 속에서 꼴을 갖추게 된다는 것이 그것입니다. 

 

번역자 주석
1. 이 글은 천문작가 Gavin White의 책으로  고대 메소포타미아의 별자리와 천문전승을 담은 에세이집 Babylonian Star Lore (ISBN-13 : 978-0955903748)를 번역한 것입니다. 
2. 본 글은 저자의 허락을 받아 포스팅한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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