춘분이 지나며 빛은 어둠에 승리를 거둡니다.
낮이 밤보다 길어지고 끝나지 않을 것 같았던 겨울의 영향이 사라지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이때는 새로운 생명의 탄생을 축하하는 시기입니다.
봄의 풍요는 들판에서, 목장에서 그 모습을 드러내고 모든 생명이 자연을 만끽합니다.
이때 대부분의 동물은 새끼를 낳고, 모든 샘에 생명이 가득 들어찹니다.
인간세계에서는 드디어 추수가 시작됩니다.
춘분 즈음에 뜨는 초승달은 새로의 한 해의 시작점이 됩니다.
또한 이 시기는 왕과 밀접한 연관성을 가진 거룩한 시기이기도 합니다.
신으로부터 새로운 한 해를 통치할 수 있는 권력을 부여받음으로써 왕은 새로운 즉위를 연출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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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 1 : 별달력의 두 번째 부분 - 춘분에 태양과 함께 떠오르는 별자리 |
삯꾼자리(the Hired Man)는 우리에게 양자리로 익숙한 양 또는 새끼양을 상징하는 별자리입니다.
봄의 상징으로서 새끼양은 갓 태어난 양과 송아지를 반영하는데, 여기에는 인간 아기도 포함됩니다.
한편으로 이 별자리는 이름에 걸맞게, 보리 추수기에 고용된 일꾼을 의미하기도 합니다.
이 별자리의 전승은 보리 농사를 짓는 농사꾼과, 가축을 기르는 목자와의 관계를 반영하려는 목적의식에 의해 설계되어 왔습니다.
새끼양의 상징적 의미는 고대 그리스 전통에 가장 잘 보존되었습니다.
고대 그리스에서 새끼양은 황금가죽을 두르고 뿔을 가진 양으로 묘사되는데 이는 왕권을 의미합니다.
황금양털에서 뿜어내는 찬란한 광채는 태양을 상징합니다.
같은 이치로 송아지와 새끼염소 역시 동지를 지나 새로 탄생한 태양을 상징합니다.
오늘날의 마차부자리에 대응되는 지팡이자리(the Crook)는 양떼를 돌보는 목자로 묘사됩니다.
여기서 목자는 목가적 상징을 뛰어넘는 상징을 갖는데 바로 왕을 상징한다는 것이 그것입니다.
왕은 목자가 자신의 양떼를 돌보듯 백성과 나라를 이끌어가는 주체인 것입니다.
따라서 목동은 자연스럽게 왕권은 물론, 주권자로서 부여받은 신권을 상징합니다.
하늘의 목자가 한 해가 시작되는 첫 번째 달에 왕권을 부여받은 왕의 상징으로 떠오른다는 것은 시의적절한 의미라 할 수 있습니다.
양을 돌보는 왕이라는 상징은 자연스럽게 두무지(Dumuzi)와 연관됩니다.
고대 메소포타신화에서 이 계절의 두무지는 여신과의 거룩한 결혼식을 앞둔 젊은 청년으로 성장하죠.
두무지로 대변되는 왕은 여신과의 거룩한 결혼을 통해 왕권을 구축하고, 왕국에 풍요가 도래할 것임을 보증합니다.
하늘의 황소자리(Bull of Heaven)는 아마도 '목자로서의 왕'을 상징하는 가장 오래된 원형일 겁니다.
이 별자리는 봄철을 대표하는 가장 강력한 별자리로서, 오늘날의 별자리인 황소자리의 원형입니다.
황소는 세상을 비옥하게 만드는 힘을 기본 상징으로 합니다.
전세계 신화에서 황소나 암소, 송아지는 비를 뿌리는 구름, 새로 탄생하는 태양 및 태양의 빛줄기를 포함하여 천상의 여러 현상과의 연관성을 갖습니다.
그런데 수메르 신화에 등장하는 하늘의 황소는 파괴적인 맹수로 그려집니다.
하늘의 황소가 하늘에서 내려와 강물을 모두 마셔버리고 땅을 바싹 마르게 만들죠.
이는 의심할 바 없이 계절적 속성을 상징하는 것으로 하늘의 황소가 한 해의 두 번째 달 말에 떠오른다는 사실로부터 파생된 것입니다.
이때부터 기온이 오르기 시작하고 강수량은 줄어들기 시작합니다.
춘분 별자리의 마지막 그룹을 장식하는 별자리는 별달력으로서의 중요성을 갖고 있습니다.
그것은 이 별자리들이 지난해와 올해의 접합지점이라는 강력한 목적하에 배치되었다는 것입니다.
이 시기에 풍요로움의 근원인 어머니 대지는 선심을 베풀기 위해 스스로를 '열어 젖히는' 것으로 생각되었습니다.
그런데 고대인의 의식속에 이러한 선의에는 반드시 위험이 수반되었습니다.
그 위험이란 세상의 여러 층위를 쉽게 왔다갔다 할 수 있는 죽은 이들에 의해 이 세상이 오염될 수 있다는 것이었습니다.
저는 장로자리(Old man)가 이러한 신념 체계 속에서 차지하는 역할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 역할이란 장로가 지팡이와 머리를 들고 있다는 것인데 이것은 모두 예방적 기능을 가진 소품으로 지난해로부터 온 악령을 물리치고 그들을 지하세계로 되돌려보낸다는 것입니다.
쉽게 상상할 수 있듯이 장로자리는 오늘날 페르세우스자리의 원형이 되는 별자리입니다.
이러한 일련의 사상체계가 사자머리를 한 루랄과 라타라크자리(Lulal & Latarak)에 대한 정보를 줄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루랄과 라타라크자리는 오늘날의 별자리 기준으로 고래자리와 에리다누스강자리의 일부를 차지하고 있던 별자리입니다.
포악한 성격의 '악마성'을 가진 대부분의 신령한 존재들과 같이 루랄과 라타라크의 영향력 역시 악마나 사악한 존재를 쫓는데 활용될 수 있었습니다.
별자리 상세 항목에서 저는 이 별자리가 새로운 한 해의 수호자로 기능한다는 주장을 실었습니다.
즉 이 별자리는 지난 해로부터 이어지는 영향력을 제거하고 새로운 한 해의 시작점을 정화하는 역할을 수행했던 것입니다.
번역자 주석
1. 이 글은 천문작가 Gavin White의 책으로 고대 메소포타미아의 별자리와 천문전승을 담은 에세이집 Babylonian Star Lore (ISBN-13 : 978-0955903748)를 번역한 것입니다.
2. 본 글은 저자의 허락을 받아 포스팅한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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