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 별자리 이야기/BABYLONIAN STAR LORE

바빌로니아 별자리와 천문전승 - 별자리 상세 43. 아누의 신실한 목자자리

다락방별지기 2025. 7. 17. 14:10

아누의 신실한 목자자리(the True Shepherd of Anu)는 신의 전령을 상징하는 별자리입니다. 

그는 하늘과 땅, 지하세계를 종횡무진하며 신의 메시지를 모든 이들에게 전달하는 한편, 사람들의 기도와 탄원을 신에게 전달하기도 하죠.  

그런데 이 전령이 세상에 전하는 메시지는 특히 왕에게 중요한 것입니다. 

그래서인지 왕에게 부여된 여러 별칭 중 하나가 바로 '신실한 목자(the True Shepherd)'였습니다. 

 

이 별자리와 관련 있는 예언의 대부분은 전쟁과 반란, 지배계급의 포악한 통치와 관련하여 끔찍한 미래를 예보하는 행성을 포함합니다. 

 

이슈타르(Ištar, 금성)가 아누의 신실한 목자자리에 서 있다면

그 땅의 왕은 반란을 맞닥뜨리게 될 것이다. 

 

반면 이 별자리에 달이 등장한다면 별자리의 자비로운 기운이 펼쳐집니다. 

 

아누의 신실한 목자자리가 달 바로 앞에 있다면

그 왕조는 계속 유지될 것이다. 

 

하지만 모든 규칙에는 예외가 있는 법이어서 아누의 신실한 목자자리가 달에 의해 가려진다면 '외국의 왕이 지배권을 행사하게 될 것'이라는 예언을 들어야 했습니다. 

 

아누의 신실한 목자자리는 오늘날 오리온자리에 대응되는 별자리입니다. 

 

아누의 신실한 목자자리가 어떤 배치를 가지고 있었는가 하는 점은 '오른손', '뒷바퀴', '왕관'과 같은 이름을 가진 별의 상대적인 위치를 기반으로 가늠해볼 수 있습니다. 

이를 기반으로 보건대 아누의 신실한 목자자리는 한쪽 다리와 팔을 앞쪽으로 쭉 뻗어 걷는 모습을 한 별자리라고 추정됩니다. 

여기에 걷는 새가 뒤따르고 있는 그림이 덴데라 황도대에 그려져 있습니다. (그림 1)

그림 1 덴데라 황도대, 오리온자리 위치에 그려진 그림

 

아누의 신실한 목자자리는 '물 시파-지-안-나(Mul Sipa-zi-an-na)'로 표기됩니다.
아카드어로는 '쉬타드다루(Šitaddaru)' 또는 '쉬타드달루(Šitaddalu)'로 알려져 있습니다. 
'시파(Sipa)' 표기는 두 개의 단독 표기를 합친 것입니다.
아래에 있는 사분할된 원 표기는 ''을 의미하는 '우두(Udu)' 표기입니다.
위 표기는 두 개의 나뭇가지를 묘사한 것으로 '파(Pa)'라고 읽는 표기입니다. 
'파(Pa)' 표기는 대개 '왕홀' 또는 '왕의 지팡이'를 의미합니다. 
여기서는 '양' 표기와 함께 쓰였으므로 '목자의 지팡이'로 보는 게 좀더 자연스러울 것 같습니다. 
이렇게 두 개 표기를 조합하여 만든 '시파(Sipa)' 가 '목자'를 의미하기 때문입니다. 

'지(Zi)' 표기는 갈대를 묘사한 것으로 '믿을만한', '진실한', '충실한', '정직한' 등을 의미합니다. 

'안(An)' 표기는 '하늘'과 '하늘의 신 '아누'를 모두 의미하는 표기입니다. 

마지막으로 쓰인 '나(Na)' 표기는 소유격을 나타내는 문법표기입니다. 

따라서 전체 의미는 '아누의 신실한 목자자리' 또는 '하늘의 신실한 목자자리'로 번역될 수 있습니다. 

 

간혹 아누의 신실한 목자자리에 '쉬타드다루(Šitaddaru), 무기로 얻어맞은 이'라는 주석이 달린 점성술 문서를 볼 수 있습니다. 

 

하지만 이 별자리의 주인공이 어떤 운명을 가진 신인지 알려진 것은 없습니다.

다만 <길가메시 서사시>에서 이슈타르(Ištar) 여신의 사랑을 받은 목동을 이 별자리의 주인공으로 보는 경우가 있습니다. 

이 부분은 고대 그리스 신화의 아르테미스(Artemis) 이야기를 떠올리게 만드는 부분이기도 합니다. 

 

<길가메시 서사시>에서는 자신에게 구애하는 이슈타르를 향해 이전 연인들이 어떤 고통을 받았는지 열거하며 이슈타르를 비웃는 길가메시의 이야기가 등장합니다. 

 

당신은 어떤 목자를 사랑해지...

그는 항상 불붙은 장작을 쌓아 올렸고

당신에게 매일 암양을 잡아 바쳤지.

 

하지만 당신은 그를 때리고 

늑대로 만들어 버렸지.

 

그 목자는 자신이 돌보던 양떼로부터 쫓겨나는 신세가 됐고

자기가 기르던 개들로부터 엉덩이를 물어뜯기는 신세가 됐지.

 

한편, 아누의 신실한 목자자리에 좌정한 신으로 '파프슉칼(Papšukkal)'이나 '닌슈부르(Ninšubur)'를 꼽는 경우도 있습니다. 

두 신 모두 신의 전령으로 간주되는 신으로서 '전령'이라는 의미를 가진 '숙칼(sukkal)'이라 불립니다. 

그런데 '숙칼(sukkal)'은 '대리인'으로 해석하는게 좀 더 정확한 것 같습니다. 

'숙칼'은 신을 대리할 수 있는 권한이 있으며, 왕좌가 있는 방으로의 접근을 통제함으로써, 신에게 접근하는 이를 통제하는 권한을 갖기 때문입니다. 

 

닌슈부르(Ninšubur)는 남성성과 여성성을 모두 가진 신입니다. 

이 이름은 '동쪽의 주인' 또는 '동쪽의 여주인'으로 번역될 수 있죠.

 

남성성을 가진 신으로서 닌슈부르는 대개 아누(Anu)의 전령으로 간주됩니다.

나중에는 모든 신의 메시지를 전달할 역할을 맡은  '파프슉칼(Papšukkal)'과 동일한 신으로 간주되었죠. 

이때 닌슈부르는 기다란 옷을 입고 신성을 상징하는 뿔달린 머리장식을 쓴 모습으로 묘사됩니다. 

또한 자신의 상징인 기다란 막대기를 앞으로 짚고 있죠. 

 

후기에 닌슈부르를 상징하는 작은 신상들이 신전 중심 재단 바로 아래에 있는 벽돌 상자에 넣어져 묻히곤 했습니다. 

신과 인간 사이에서 소식을 전하는 그의 역할 때문이었습니다. 

 

반면 여성성을 가진 신으로서 닌슈부르는 인안나(Inanna)의 시종상 신입니다. 

인안나가 지하세계로 내려갔을 때, 닌슈부르는 인안나를 위해 비탄을 담은 전통적인 제의를 수행했습니다. 

그녀는 상복을 입고 몸과 얼굴을 쥐어뜯으며 통곡하면서 지성소의 문을 두드렸습니다. 

하지만 이런 예식으로는 저승으로 내려간 인안나를 구할 수 없었습니다. 

 

닌슈부르는 저승으로 떠나기 전 인안나가 조언해 준 대로 엔키(Enki)를 찾아가 도움을 청했습니다. 

엔키는 인안나가 죽은이들의 왕국에서 풀려날 수 있도록 방법을 가르쳐 주었죠. 

그림 2 신실한 목자와 그를 따르는 거룩한 새를 현대적으로 재구성한 그림

 

저승으로의 여정, 그리고 이에 수반되는 장례의식은 신의 전령이라면 반드시 갖추어야 할 상징적 속성인 것 같습니다. 

닌슈부르를 둘러싼 신화 전승에 이러한 특징이 잘 드러나죠. 

 

닌슈부르가 인안나를 위해 수행한 탄원 제의 때문에 닌슈부르의 신전은 '비탄의 집'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그리고 인안나를 저승에서 탈출시키기 위해 닌슈부르가 개입했던 일로 인해 닌슈부르는 아눈나 신과 흥정을 벌일 수 있는 신으로 알려지게 되었습니다. 

참고로 아눈나 신(the Anunna-gods)이란 인안나에게 죽음을 선포한 지하세계의 여러 신을 총체적으로 부르는 이름입니다.

 

여기서 더 나아가 몇몇 기록에서는 닌슈부르에게  '아눈나 신의 신실한 대리자', '위대한 집의 대사'라는 호칭을 부여하고 있습니다. 

여기서 '위대한 집'이란 저승을 완곡하게 표현한 것으로 두 호칭 모두 닌슈부르가 저승의 일에 관여한 것에 방점을 두고 있습니다. 

 

바빌로니아 전체 별지도의 일부로서 아누의 신실한 목자자리를 바라보면 이 별자리의 위치가 바빌로니아 천문전승에서 저승으로 통하는 두 개 입구 중 하나에 가까이 위치한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이 입구는 게자리(the Crab)에 자리잡고 있으며, 위대한 쌍둥이자리(the Great Twins)가 지키고 있습니다. 

아누의 신실한 목자자리는 바로 이 위대한 쌍둥이자리 아래 위치합니다. 

 

바빌로니아 천문전승에서 저승으로 이어지는 길은 여러 신화와 계절적 의식에 영향을 미치는 것으로 보입니다. 

우선 이 통로는 늦여름, 위대한 조상을 기리는 축제 때 후손을 방문하는 죽은 조상의 영혼이 이용하는 통로입니다. 

물론 인안나가 저승에서 생활할 때도 이 통로를 이용했을 것이며, 인안나의 남편 두무지가 저승사자에게 끌려간 길도 이 통로였을 것입니다. 

 

또한 여기에 더해 아누의 신실한 목자자리의 주인공 중 하나로 간주되는 쉬타드다루(Šitaddaru)가 곤봉에 맞아죽은 후 저승을 향해 걸어간 길일 것이라는 사실도 잊어서는 안됩니다. 

전설에 따르면 자고새는 '시파지안나(Sipazianna)가 사라진' 들판에서 그의 죽음을 기억하며 영원히 울음을 멈추지 않고 있다고 합니다. 

 

참고 별자리 : 수탉자리(the Roost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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번역자 주석
1. 이 글은 천문작가 Gavin White의 책으로  고대 메소포타미아의 별자리와 천문전승을 담은 에세이집 Babylonian Star Lore (ISBN-13 : 978-0955903748)를 번역한 것입니다. 
2. 별자리 이름이 현대 별자리 이름과 혼동할 가능성이 있는 경우 고대 메소포타미아의 별자리는 '이탤릭체'로 표시하였습니다.
3. 본 글은 저자의 허락을 받아 포스팅한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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