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 별자리 이야기/BABYLONIAN STAR LORE

바빌로니아 별자리와 천문전승 - 별자리 상세 45. 안주자리

다락방별지기 2025. 7. 19. 12:23

'안주(Anzu)'는 사자머리에 독수리 몸통을 가진 거대한 상상의 새입니다.

그 거대한 날개는 바람과 폭풍을 일으키고 온 세상을 안개로 뒤덮어버릴 수도 있었습니다. 

고대 메소포타미아에서 천둥새로 불리기도 한 안주의 영혼은 모든 바람에 깃들어 있었습니다. 

그림 1 현대적으로 재구성해 본 안주의 모습

 

계절적 상징으로서 안주자리(the Anzu-bird)는 겨울의 폭풍을 상징합니다. 

겨울의 폭풍이라는 상징은 안주의 별이 '추운 날씨'를 의미한다고 언급된 점성술 예언을 통해 명확히 알 수 있습니다. 

 

안주자리가 태양과 함께 떠오르는 때는 동지가 있는 때의 바로 직전 달이었습니다. 

그 위치로 봤을 때, 이 별자리는 하지 별자리와 함께 설정되었을 것입니다. 

참고로 안주자리의 정 반대편에 화살자리(the Arrow)가 있죠. 

 

이러한 이중상징은 몇몇 예언에서 그 모습을 드러냅니다. 

여름과 겨울의 극단적인 날씨를 예견하는 전조로 등장하는 것입니다. 

 

안주자리 가장 앞에 있는 별이 아주 붉게 빛난다면

그 해 겨울에는 모든 것이 얼어붙을 것이고

그 해 여름에는 모든 것이 열기에 시달리게 될 것이다.

 

안주자리는 그 이름에서부터 폭풍의 상징을 품고 있습니다. 

안주자리는 '물 딩기 임-두구드-무셴(Mul Dingir Im-Dugud-Mušen)'으로 표기됩니다.
임두구드(IM DUGUD)는 안주를 일컫는 수메르어입니다. 
비록 수메르어가 먼저 만들어지긴 했지만 아카드어 '안주(Anzu)'가 더 많이 쓰이기 때문에, 저 역시 책에서 '안주'를 사용하였습니다. 
'딩기(Dingir)' 표기는 별을 묘사한 것으로 '신'을 의미하는 단어로 사용되며 모든 신성을 가진 존재 이름 앞에 접두사처럼 항상 등장합니다. 

'임(Im)'은 '바람' 또는 '숨결'을 의미하는 표기입니다. 
이 표기는 아다드(Adad)나 이쉬쿠르(Iškur), 테쉬업(Tešup)과 같은 폭풍신의 이름으로 사용되곤 합니다. 

또한 이 표기는 동서남북, 네 개 방향에서 불어오는 바람의 이름 앞에 사용되기도 합니다. 

'두구드(Dugud)'는 '강력해지는', '중요해지는', '명예로워지는' 등의 의미를 가집니다. 
한편 군사적 의미로도 쓰여 군대의 '강력한 전투력' 또는 '주력부대'라는 의미를 가질수도 있습니다.  
그래서인지 이 표기는 전진하는 일단의 군대를 상형화한 것 같기도 합니다. 

'무셴(Mušen)'은 새, 즉 '조류'를 의미합니다. 
이 표기는 대개 특정 새의 명칭 다음에 위치합니다. 

따라서 이상의 표기를 그대로 해석하면 '강력한 천둥새'라고 할 수 있습니다. 

 

안주에 대한 가장 초기 자료는 안주를 자선을 베푸는 존재로 묘사하고 있습니다. 

즉 안주는 경건한 사람의 친구이며, 좋은 운명을 가져다 주는 존재죠. 

한편 안주는 광활한 동쪽 산악지대에 거주하며 동물 형상으로 나타나는 신이기도 합니다. 

 

<루갈반다(Lugalbanda)>라는 이름의 수메르 시에서 안주는 우주적 상징으로 등장합니다. 

그는 지구 위에 우뚝 서 있으며 한 손에는 하늘을 쥐고, 날개는 온 하늘을 가로지르며 펼쳐져 있는 것으로 묘사됩니다. 

안주는 자신의 아버지 엔릴(Enlil)로부터 이어받은 권능을 자랑하며, 스스로 '흐르는 강의 운명을 결정하는 왕자'로 선포합니다. 

 

하지만 기원전 2천년 대 초기부터 안주의 이러한 본성에는 중대한 변화가 일어납니다. 

<안주 서사시(Anzu Epic)>에 따르면 안주는 운명의 서판을 훔쳤으며, 이 때문에 다른 신들과 전쟁을 치르고 패하게 됩니다. 

 

운명의 서판을 소유하면 궁극의 권능을 얻을 수 있었다고 합니다. 

그 권능이란 신들 스스로의 운명을 부여할 수 있는 막강한 권능이었죠. 

후대에 기록된 내용에 따르면, 운명의 서판에는 각 신들이 가지는 권능과 직분이 기록되어 있었다고 합니다. 

바로 이 운명의 서판을 안주가 훔쳐 거친 산악지대로 달아나 버리고 만 것이죠.

 

운명의 서판이 사라지자 신들은 우주를 적절하게 유지하는 의식을 더 이상 치를 수 없었고, 우주의 질서가 붕괴되면서 대혼란에 빠지게 되었습니다. 

비도 더 이상 내리지 않고, 강물은 모두 말라버렸다고 하죠. 

 

운명의 서판을 소유하게 된 안주와 싸워 이길 수 있는 확률은 아주 낮았습니다. 

하지만 마냥 가만 있을 수 없었던 신들은 안주와 맞서싸울 신을 찾아나섰고, 이때 젊은 신 닌우르타(Ninurta)가 나섰습니다.  

 

닌우르타는 폭풍과 번개로 무장하고 신성한 활을 들었습니다. 

하지만 이런 무장도 아무 소용 없었죠. 

안주가 모든 자연을 조정할 수 있었기 때문입니다. 

닌우르타가 일으킨 모든 폭풍은 막히고 말았고, 닌우르타가 쏜 화살은 안주의 명령을 따라 되돌아가 버려 어떤 상처도 입히지 못했습니다. 

 

신들은 좀더 세밀한 전략을 짜야 했습니다. 

닌우르타는 엔키(Enki)의 조언에 따라 안주의 깃털을 잘라버렸습니다. 

안주가 깃털에게 다시 돌아오도록 명령을 내렸을 때, 닌우르타는 때를 놓치지 않고 화살을 쏘았습니다. 

방어에 잠시 소홀했던 안주는 결국 닌우르타의 화살을 맞고 말았습니다. 

 

안주가 죽자 비가 내리고 홍수가 지상을 휩쓸었습니다. 

운명의 서판이 돌아오자 세상이 모두 제 운명과 질서를 되찾을 수 있었습니다. 

그림 2 안주와 싸우는 무장한 두 신

 

안주와 비손처럼 살해된 신화적 존재는 별지도에 그대로 반영되었습니다. 

하지만 기원전 3천년 대 중후반에 바빌로니아 표준 별지도에서 두 별자리는 모두 사라졌습니다. 

그런데 이렇게 사라진 두 별자리는 고대 그리스 별자리로 다시 부활했습니다. 

 

저는 백조자리가 안주자리를 이어받은 별자리일 것으로 생각합니다.  

쭉 뻗은 양 날개와 늘어진 두 발이 고대 안주의 형상과 매우 비슷하기 때문에 두 별자리에 반드시 연관성이 있다고 확신합니다. 

그림 3 고대 그리스의 백조자리 형상

 

점성술 문서에서 안주는 이따금 킨구(Kingu) 또는 아사쿠(Asakku)로 여겨지기도 합니다.

킨구는 태초의 신 중 하나로 <창조서사시(Epic of Creation)>에서 티야마트의 군대를 이끄는 신입니다. 

 

킨구 역시 운명의 서판을 가진 신이었습니다. 

하지만 전쟁에 패한 킨구는 처형되고 말죠. 

마르둑(Marduk)은 킨구의 피를 이용해 인간을 만들었습니다. 

 

아사쿠(Asakku)는 고대의 악마이며 하늘과 땅의 후손입니다. 

그는 끔찍한 괴물로 묘사되죠.

아사쿠는 산악지대에 살았으며 질병을 몰고 다녔습니다. 

 

닌우르타는 그의 유명한 산악 정벌에서 아사쿠와 악령들린 바위들의 공격을 물리쳤습니다. 

닌우르타의 성공 덕분에 메소파타미아 인들은 그들에게 소중한 자원인 바위를 얻을 수 있었죠. 

 

고대 메소포타미아의 닌우르타 신화는 고대 그리스의 영웅 헤르쿨레스 신화처럼 전설상의 다양한 괴물과 겪는 전쟁이 등장합니다. 

 

이러한 전쟁은 원시시대부터 존재하던 괴기스러운 관습을 새로운 종교적 공간에 흡수하려는 신세대 신들의 도전을 상징하는 것으로 해석되곤 합니다. 

그 연장선 상에서 안주나 비손이 처단되는 것은 각각의 별자리가 삭제된다는 것을 의미하며, 새로운 천상 상징이 고대의 별자리를 대신하게 되었을 것이라고 추정해 볼 수 있습니다. 

 

안주 이야기와 킨구 이야기, 아사쿠 이야기는 모두 공통점이 있습니다. 

이들은 모두 우주의 질서를 뒤엎으려는 고대의 신들이며, 이러한 시도로 인해 죽음을 맞게 된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액면 그대로 보자면, 위대한 신이 혼란을 야기하는 괴물을 죽이고 신성한 질서를 재구축한 이야기가 됩니다.  

하지만 이것은 모두 승자에 의해 쓰인 역사일 뿐이죠. 

그림 4 수메르의 철퇴 머리에 새겨진 안주의 모습

 

좀더 중립적인 분석에 따르면 이 이야기들은 동물 형상의 자연신이 구축한 오래된 질서와 권능이 신세대 인격신들에 의해 무너지는 과정을 담은 것으로 해석됩니다. 

 

원전을 살펴보면 안주는 닌우르타가 태어나기 훨씬 전부터 오랫동안 하늘의 지배자로 군림했습니다. 

또한 원조 운명의 석판에는 신들의 직분이나 권한보다는 티야마트의 권능이 열거되어 있었다고 합니다. 

하지만 변화된 종교적 이데올로기가 이 모든 혼동의 뿌리가 되고 말았죠. 

 

신세대 신들은 예로부터 이어져오던 자연신으로서의 특성을 거부하고 '초인간'이라는 형태로 재탄생했습니다. 

이들은 모든 면에서 신의 특성에 내재해 있던 야수의 속성을 제거하였고, 오직 자신들이 휘두를 수 있는 권능의 상징으로만 남게 되었습니다. 

 

즉, 신을 바라보는 기본 개념에서 자연적 힘을 상징하는 야수라는 개념은 사라지고 오히려 자연을 통제하는 초인간의 개념으로 변화하였습니다. 

이 새로운 세대의 신들은 인류의 왕이라는 새로운 이미지로 탈바꿈했습니다. 

 

참고 별자리 : 말자리(the Horse), 독수리자리(the Eagle), 시체자리(the Dead Man), 살해당한 영웅들(the Slain Hero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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번역자 주석
1. 이 글은 천문작가 Gavin White의 책으로  고대 메소포타미아의 별자리와 천문전승을 담은 에세이집 Babylonian Star Lore (ISBN-13 : 978-0955903748)를 번역한 것입니다. 
2. 별자리 이름이 현대 별자리 이름과 혼동할 가능성이 있는 경우 고대 메소포타미아의 별자리는 '이탤릭체'로 표시하였습니다.
3. 본 글은 저자의 허락을 받아 포스팅한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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