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록 명시적으로 다뤄진 것은 아니지만 하늘의 밧줄자리(the Ropes of Heaven)는 고대 메소포타미아 별자리에서 중요한 비중을 차지했던 별자리입니다.
따라서 하늘의 밧줄자리는 자세하게 다룰만한 이유가 충분한 별자리입니다.
하늘의 밧줄은 천구의 극점 주위에 있는 여러 별자리와 남쪽 지평선 인근에 있는 별자리를 잇는 것으로 추정됩니다.
좀더 구체적으로, 신화적 언어로 풀이하자면 이 밧줄은 하늘과 땅과 심연을 함께 묶고 있습니다.
고대 메소포타미아 별지도에서 이 밧줄이 물리적 특성을 가졌다는 증거는 특히 북반구 극점 주위에 몰려 있습니다.
이곳에 하늘의 밧줄자리와 관련된 여러 개의 멍에와 밧줄이 존재한다는 것이 바로 그 증거입니다.
그 중에서 가장 눈에 띠는 것은 마차자리(the Wagon) 끌개 끝단에 있는 매어진 멍에자리(the Hitched Yoke)입니다.
한편 <물아핀(Mul-Apin)>에도 하늘의 마차자리(the Wagon of Heaven) 끌개에 밧줄이 있다는 내용이 등장합니다.
이 두 개 참고자료는 하늘의 밧줄자리에 등장하는 밧줄이 실제 천상에 자리 잡은 두 개 마차자리가 하는 일, 즉, 무언가를 끄는 일과 연결되어 있음을 시사합니다.
이 밧줄은 두 개 마차자리에서 시작되어 엔릴(Enlil)의 손으로 이어집니다.
엔릴은 수수께끼의 별자리인 슈파자리(Šupa)의 주재신입니다.
슈파자리에서 가장 눈에 띠는 밝은 별 역시 '멍에'라는 이름으로 불립니다.
엔릴은 메소포타미아 만신전의 최고신이며 땅의 운명을 결정하는 신입니다.
따라서 그가 밧줄을 쥐고 있다는 것은 엔릴과 이 밧줄이 고대 메소포타미아 사상체계에서 심오한 역할을 하고 있음을 말해줍니다.
엔릴의 손으로 이어진 밧줄은 이어서 '바다의 멍에'가 있는 남쪽 하늘로 내려갑니다.
'바다의 멍에'는 에리두자리(the Star of Eridu)를 일컫는 별칭입니다.
에리두자리는 남쪽 지평선 가까이에 위치한 별자리죠.
이렇게 여러 별자리를 잇고 있는 하늘의 밧줄자리는 처음에는 짐승을 말뚝에 매어 놓은 줄과 같은, 훨씬 단순한 형태에서 시작된 것으로 보입니다.
말뚝에 묶여 그 주위를 계속 돌게 되는 짐승의 모습에서 천구의 극점 주위를 도는 하늘의 모습을 상상할 수 있죠.
고대 그리스의 별자리인 큰곰자리(URSA MAJOR)는 이러한 사상에 영향을 받은 것으로 보입니다.
그래서 이 별자리는 종종 탈곡장에서 탈곡기를 끌며 도는 소떼의 모습으로 그려지기도 했습니다.
<물아핀>에서 표현된 개념은 이보다 조금 더 정교합니다만, 기본 사상은 결국 천구의 회전을 표현한 것으로서, 이를 역학적으로 묘사하기 위해 당시 농사를 위해 사용했던 농기구인 끌개나 멍에, 마구 등의 용어를 사용하였습니다.
이렇게 여러 개 밧줄과 멍에가 포함된 전체적 형상을 구성해보면 아래 그림과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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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림 1 천구의 극점 주변 별자리와 이를 한데 묶은 하늘의 밧줄자리를 구성한 그림 |
그림 1은 하늘의 밧줄자리의 형상을 묘사한 것입니다.
하지만 이는 형상일 뿐입니다.
이제 이 밧줄이 어떤 목적을 가진 별자리인지 이해하기 위해 고대 메소포타미아 신화를 통해 엿볼 수 있는 다양한 우주론적 연결체와 밧줄에 대해 살펴 보겠습니다.
하늘의 밧줄자리가 등장하는 가장 오래된 기록은 초기 왕조(BC 3,000 ~ 2,390)의 찬가에서 찾아볼 수 있습니다.
여기에 '하늘을 지지하고 있는 꼰 밧줄'이 등장하죠.
또한 기원전 2천 년대에 기록된 <창조서사시(Epic of Creation)>에는 우주를 지탱하는데 사용된 다양한 연결체와 밧줄에 대한 상세한 묘사가 등장합니다.
<창조서사시>에는 마르둑(Marduk)이 티야마트(Tiamat)의 사체로부터 우주를 빚어내는 모습이 상세하게 기록되어 있습니다.
마르둑은 우선 티야마트의 사체를 두 부분으로 나누어 하늘과 땅을 창조합니다.
그리고 티야마트의 허벅지를 이용하여 하늘과 땅을 지탱하는 기둥으로 사용합니다.
그리고는 하늘과 땅이 서로 떨어지는 것을 막기 위해 위대한 연결체인 두르마후(durmahu)로 하늘과 땅을 묶어 놓았습니다.
두르마후는 티야마트의 꼬리를 꼬아서 만든 밧줄입니다.
마르둑은 이렇게 적절한 질서 하에 우주의 주요 뼈대를 구축했습니다.
이러한 기록으로부터 우리는 '위대한 연결체'가 우주의 공간적 질서를 정의하고 있으며, 우주의 세 개 층위, 즉, 하늘과 땅과 심연을 서로 묶어내고 있다는 점을 알 수 있습니다.
'연결'이라는 관점에서 다음의 질문을 제기할 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이렇게 연결된 '하늘', '땅', '심연'이 실제 언급하는 것은 무엇인가 하는 것입니다.
이에 대해서는 명쾌한 답을 내릴 수 있습니다.
신화적 의미의 '하늘', '땅', '심연'은 실제 물리적 의미의 '하늘', '땅', '지하수'에 그대로 대응시킬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여기에는 또다른 해석도 가능합니다.
신화적 이야기라는 측면에서 좀더 설득력 있고 좀더 합리적으로 느껴지는 해석입니다.
이에 대해 살펴보면 다음과 같습니다.
하늘의 밧줄이 연결하고 있는 '하늘', '땅', '심연'은 기본적으로 천상의 왕국을 의미합니다.
앞서 언급한 대로 물리적으로 이들은 각각 '하늘', '땅', '지하수'를 상징하지만 신화적으로는 각각 '북반구의 별자리', '적도대의 별자리', '남반구의 별자리'를 의미합니다.
이렇게 상상해 볼 수 있는 가장 강력한 근거는 메소포타미아 별자리의 전반적인 구조를 봤을 때, 남반구에 위치한 별자리들이 배, 물고기, 하늘의 강과 같이 '물'과 관련된 상징을 가진 별자리라는 점입니다.
마찬가지로, 적도대 별자리에는 티그리스강과 유프라테스강에 둘러싸인 바빌로니아를 상징하는 들판자리(the Field)가 있죠.
여기서 <창조서사시>를 다시 한 번 살펴보겠습니다.
마르둑은 자신이 창조한 세계를 살펴본 후 제례의식과 절차를 정합니다.
그리고 세레투(serretu)라는 이름의 밧줄을 던져 심연에 있는 엔키로 하여금 이 밧줄을 한쪽을 붙잡고 있도록 명령하였습니다.
그런데 세레투라는 밧줄은 위대한 연결체인 두르마후와는 다른 성격의 밧줄입니다.
세레투는 두르마후와 달리 항상 복수형으로 표시되는 명사입니다.
그 의미 또한 단순한 밧줄이라는 의미가 아니라 짐승을 끌기 위한 '고삐' 또는 무언가를 묶어놓기 위한 '포승줄'의 의미로 쓰입니다.
따라서 세레투는 하나의 고정체를 의미하는 위대한 연결체 두르마후와 달리, 움직임의 개념을 포함하기 때문에 앞서 살펴본 말뚝에 묶어 놓은 밧줄과 좀더 밀접한 연관관계를 갖습니다.
비슷한 의미를 갖는 밧줄이 하나 더 있습니다.
아카드어로 마르카수(markasu)라는 이름의 밧줄입니다.
마르카수는 배를 정박시키기 위해 묶어 놓는 홋줄을 의미합니다.
마르카수는 배가 특정 지점에 안전하게 머물러 있는 것을 보장하기는 하지만 조류에 따라 배가 흔들리는 현상은 얼마든지 나타나기도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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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림 2 무기로 쓰이는 폭풍과 밧줄을 쥐고 있는 마르둑 |
세레투의 핵심적 의미에 좀더 밀접한 내용이 <인안나에 대한 신화적 이야기(A Mythic Narrative about Inanna)>라는 제목의 수메르 시에 등장합니다.
이 시에는 인안나 여신이 하늘의 신 아누(Anu)로부터 어떻게 '천상의 집'에 대한 통제권을 부여 받았는지에 대한 내용이 담겨 있습니다.
시의 시작 부분은 복원이 불가능할 정도로 부서져 내용을 알 수 없지만 전체 내용을 충분히 짐작할 수 있을만한 내용으로 마무리됩니다.
아누의 목동 슐라지다(Šul-a-zida)는
마르카수를 쥐었다.
그는 하늘로부터 ... 을 가져온 후
여러 수호신을 압도하였다.
그는 ...
그리고 ... 지평선 아래 붙잡아 두었다.
신화는 기묘한 방법으로 계속됩니다.
인안나는 강물에서 순수한 물을 떠 마신 후 독침을 떼어 버렸습니다.
아누는 이러한 공적을 기리기 위해 자신의 딸 인안나가 자신보다 더 위대한 신이 되었다고 선언하였습니다.
이제부터
낮의 길이는 짧아지고
낮과 밤이 뒤바뀐다.
오늘부터
낮의 길이가 세 개 마디에 이르는 때에
낮은 밤과 같다.
그리고 지금
낮이 시작되는 때
참으로 그렇게 되었다.
낮과 밤의 길이에 대한 내용으로 추분점이 설정되는 이야기처럼 보이는 이 내용에서는 하늘의 밧줄과 별달력과의 관계는 등장하지 않습니다.
하지만 고대의 천문학자들이 낮과 밤의 상대적 길이를 측정하는 목적으로는 딱 한가지 간결한 목적을 들 수 있죠.
바로 동지나 하지, 춘분과 추분 때 음력과 양력을 조율한다는 것입니다.
<물아핀>에는 이보다 더 기술적인 내용이 실려 있습니다.
천문학자들은 그 내용을 기반으로 물시계를 활용하여 밤과 낮의 길이를 측정하였으며 이로써, 분점과 지점을 설정할 수 있었습니다.
이와 비슷한 방법이 이후 수세기 동안 사용되어, 아시리아 출토문서(SAA)를 기록한 사람들에 의해서도 사용되었습니다.
그들은 왕에게 정확한 춘분일을 보고해야 할 의무가 있었던 사람들입니다.
첫 번째 달, 여섯 번째 날에
낮과 밤은 평형을 이루었다.
두 개의 여섯 시간 동안이 낮,
두 개의 여선 시간 동안 밤이다.
나부(Nabu)와 마르둑께서
우리의 주인이신 왕을 축복하시기를.
우주의 공간적 질서를 묶어낸 위대한 연결체 두르마후(durmahu)와는 달리, 세레투(serretu)는 우주의 일시적 질서를 통제하는 것처럼 보입니다.
즉, 세레투는 하늘의 움직임을 통제하거나 제어하는 수단으로 활용됩니다.
즉, 양력과 음력을 재설정하고 우주의 질서를 재정립하는 과정으로서 윤달을 집어넣을 올바른 시점을 측정하는 것과 같은 작업을 할 때 세레투가 동원되는 것입니다.
영구적이고 공간적인 성격을 갖는 두르마후와 일시적이고 시간적인 성격을 갖는 세레투의 차이가 분명하지만 저는 이 두 개 밧줄이 별지도에서는 하나의 밧줄로 묘사되는 것 같다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이러한 천상 밧줄의 전통은 고대 메소포타미아에서 이집트로 전달된 것이 확실합니다.
하늘의 밧줄자리와 비슷한 그림이 페다메노프(Pedamenope)의 무덤에서 발견되었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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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림 3 북반구의 여러 별자리를 묶어낸 밧줄, 페다메노프 무덤 출토(기원전 8C 경). |
대부분의 이집트 별자리 그림과 마찬가지로, 이 그림 역시 틀에 얽매이지 않고 자유롭게 그려져 있습니다.
그림을 충분히 이해할 수 있도록 각 그림에 오늘날 기준의 별자리 이름을 추가하였습니다.
비록 별자리의 배치나 방향이 일관적이지는 않지만 밧줄의 형상은 고대 메소포타미아의 모델을 따르고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하늘의 밧줄자리 말고도 밧줄과 비슷한 끈의 이미지를 가진 별자리들이 더 있습니다.
이에 대해서는 물고기꼬리자리(the Tails), 굴레자리(the Bridle), 화살자리(the Arrow) 내용을 참고하십시오.
참고 별자리 : 슈파자리(Šupa), 멍에자리(the Yoke), 매어진 멍에자리(the Hitched Yoke), 여우자리(the Fox), 고귀한 신전의 상속자자리(the Inheritor of the Exalted Temple), 마구자리(the Harnes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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번역자 주석
1. 이 글은 천문작가 Gavin White의 책으로 고대 메소포타미아의 별자리와 천문전승을 담은 에세이집 Babylonian Star Lore (ISBN-13 : 978-0955903748)를 번역한 것입니다.
2. 별자리 이름이 현대 별자리 이름과 혼동할 가능성이 있는 경우 고대 메소포타미아의 별자리는 '이탤릭체'로 표시하였습니다.
3. 본 글은 저자의 허락을 받아 포스팅한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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