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별자리의 이름은 고대 메소포타미아의 유명한 도시 에리두(Eridu)를 따서 지어진 것입니다.
에리두는 바레인만과 가까운 메소포타미아 남부 습지에 위치하고 있었습니다.
(번역자 주 : 원서에 기록된 바레인만은 페르시아만의 오기인 것으로 보입니다.)
수메르 전통에는 에리두는 인류의 첫 번째 도시로 간주됩니다.
이곳에 처음으로 하늘에서 왕권이 내려와 사람들 사이에 머물게 되었다고 하죠.
에리두는 물의 신 엔키(Enki)에게 봉헌된 도시였습니다.
엔키의 성역은 석호에 둘러싸인 작은 언덕에 위치하고 있었으며, 도시의 전반적 이미지는 원시 지구가 창조의 물에서 솟아올랐다는 사상을 반영하고 있었습니다.
밤하늘에서 에리두자리가 어디쯤에 자리를 잡고 있었을지는 지금까지 전하는 여러 참고자료를 통해 추정해 볼 수 있습니다.
첫 번째 단서는 이 별자리가 가장 남쪽 구역에 위치하고 있었을 것이라는 점입니다.
두 번째 단서는 이 별자리가 태양과 함께 떠오르는 시점은 가을이며, 여섯 번째 달(오늘날의 8~9월)의 첫 보름동안 까마귀자리(the Raven)와 함께 뜬다는 것입니다.
마지막 단서는 이 별자리가 사자자리(the Lion) 아래 어딘가에 위치한다는 것입니다.
이상의 단서를 짜맞춰보면 에리두자리의 위치는 오늘날 별자리 기준으로 아르고자리(Argo Navis)의 고물쪽에 위치한다고 결론 내릴 수 있습니다.
하지만 불행히도 바빌로니아의 자료에는 별자리로서 에리두자리의 모습에 대한 묘사는 전혀 존재하지 않습니다.
다만 덴데라 황도대를 통해 몇몇 중요한 정보를 얻을 수는 있죠.
원형 덴데라 황도대(the Circular Zodiac at Dendera)에서 에리두자리에 대한 설득력 있는 이미지를 찾을 수 있습니다.
'물'이라는 특성에 걸맞게도 이 별자리는 한 쌍의 물병을 높이 들고 왕좌에 앉아 있는 여신의 모습으로 그려집니다.(그림 1)
비슷한 머리 장식으로 인해 같은 여신으로 보이는 존재가 정방형 덴데라 황도대(the Square Zodiac at Dendera)에도 등장합니다.
여기서는 물병에서 흘러나오는 물줄기가 함께 그려져 있습니다.(그림 2)
![]() |
![]() |
| 그림 1 원형 덴데라 황도대에 그려진 에리두자리로 추정되는 그림 | 그림 2 정방형 덴데라 황도대에 그려진 에리두자리로 추정되는 그림 |
이 두 개 그림은 바빌로니아의 에리두자리를 잠정적으로 재구축하는데 충분한 정보를 제공합니다.
저는 그림 1을 기반으로 물병을 하나만 들고 있는 모습으로 바꾸어보았습니다.(그림 3)
두 개 물병을 들고 있는 모습은 이집트 특유의 전통이기 때문입니다.
또한 이와는 대조적으로 고대 메소포타미아의 별목록에는 '에리두의 양손'이라는 표현이 등장하는데, 이 표현은 여신의 두 손이 가까이 모아져 있는 것을 의미하기 때문입니다.
![]() |
| 그림 3 현대적으로 재구성해본 에리두자리 |
에리두자리를 둘러싼 전승은 물이라는 이미지에 걸맞게 대부분 물과 연관이 있습니다.
에리두자리가 뜬다는 것은 건조한 여름이 끝나고 가을의 우기가 시작된다는 것을 알리는 전조입니다.
위로 들어올려진 물병과 물병에서 흘러나오는 물줄기는 자연스럽게 하늘에서 쏟아져내리는 비와 함께 물이 충분히 들어찬 강을 의미합니다.
이 여신의 본성은 한 달을 구성하는 각 날짜의 의미를 다룬 <메놀로지Menologies>에도 등장합니다.
메놀로지에는 여섯 번째 달(오늘날의 8~9월)의 예식에 여러 여신을 위한 정화의식과 이 여신들의 신상을 축성하는 의식이 포함되어 있습니다.
여신들은 거룩한 강에서 정화된다.
그들은 해마다 정화의식을 갖는다.
![]() |
| 그림 4 비구름(?)과 수로, 바둑판 모양의 경작지로 장식된 토기 |
점성술에서 에리두자리와 관련있는 예언은 대부분 다가오는 추수와 관련된 내용입니다.
이는 의심의 여지없이 풍요로운 소출에는 충분한 물 공급이 필수적이라는 점을 전제한 것입니다.
에리두자리가 찬란하게 빛난다면
온 땅에 소출이 넘쳐날 것이다.
에리두자리가 갖는 물의 속성은 고대 그리스에도 이어졌습니다.
고대 그리스의 별자리인 에리다누스강자리(ERIDANUS)에 그 원형이 된 메소포타미아의 이름이 그대로 새겨진 것입니다.
비록 메소포타미아의 에리두자리와 고대 그리스의 에리다누스강자리는 오리온자리(ORION)를 기준으로 정 반대로 멀리 떨어져 있지만 에리두자리가 에리다누스강자리의 원형이라는 것은 충분히 가능성이 있는 일입니다.
하지만 남쪽 하늘에 대한 보다 충분한 이해가 없다면 가능한 관계는 추측에 불과합니다.
| 에리두자리는 '물 눈-키(Mul Nun-ki)'로 표기합니다. |
![]() |
| 도시 에리두는 '눈-키(Nun-ki)'로 표기합니다. 말 그대로 '왕자의 땅'이라는 뜻입니다. '눈(Nun)' 표기는 갈대로 만든 거룩한 대들보 또는 거룩한 기둥을 묘사한 것입니다. 이 표기는 '왕자' 또는 '귀공자'의 위치에 있는 신의 명칭에 주로 사용됩니다. 또한 이 표기는 단독으로 쓰여 '안내(guidance)'를 의미하는 '에리두(eridu)'를 의미할 수도 있습니다. '키(Ki)' 표기는 한 구획의 토지를 묘사한 것으로 추정됩니다. 이 표기는 '지구', '지역', '장소'와 같은 의미를 갖습니다. 여기서는 특정 장소의 끝에 쓰여 '도시' 또는 '지역'을 의미합니다. |
점성술 문서에서 에리두자리의 별칭으로 콩팥자리(the Kidney)가 쓰이기도 하는데 콩팥자리의 예언은 오늘날 물병자리(AQUARIUS)의 원형인 굴라자리(the Great One)에 적용할 수 있습니다.
이러한 적용은 에리두자리가 물병자리와 비슷한 형태로, 즉, 물이 흘러넘치는 물병을 쥐고 있는 모습으로 그려진다는 사실을 뒷받침해줍니다.
콩팥자리와 에리두자리 모두 압주에 거주하는 현명하고 자애로운 신 엔키에게 속하는 별자리입니다.
엔키는 종종 '위대한 왕자'를 의미하는 '눈-갈(Nun-gal)'로 불립니다.
현명한 신으로서의 엔키의 특성은 에리두자리 전승에 반영되어, 에리두자리는 '지혜를 가진' 별자리라는 주석이 붙기도 합니다.
마지막으로 주목할만한 가치가 있는 주제가 하나 더 있습니다.
바빌로니아 별지도에서 에리두자리는 아래 그림에서 볼 수 있는 바와 같이 활자리(the Bow)와 닌마흐자리(Ninmah) 사이에 위치합니다.
이 셋을 한꺼번에 보면 후대 그리스 로마 신화에서 익숙하게 등장하는 '세 여신'의 원형을 상상할 수 있습니다.
![]() |
| 그림 5 바빌로니아 별지도에 그려지는 세 여신의 별자리로서 활자리(the Bow), 에리두자리(the Star of Eridu), 닌마흐자리(Ninmah)의 모습 |
이 시점으로 세 여신을 그리스 신화의 여신과 연결지어 본다면 활자리는 사냥의 여신 아르테미스(Artemis)에 비교해 볼만한 '처녀 전사'로 생각해 볼 수 있습니다.
반면 닌마흐자리는 사랑하는 아이와 함게 있는 어머니 여신일 것입니다.
그리고 그 사이에 있는 에리두자리는 '풍요를 가져다주는 처녀'를 상징할 것입니다.
강이 '씨앗', '정액', '자손'이라는 개념과 자연적 유사성을 가지는 상징이듯, '물'을 표기할 때 사용되는 수메르어 표기 '아(A)' 역시 '아들' 또는 '씨앗'이라는 의미를 가집니다.
![]() |
| 그림 6 '물', '아들', '씨앗'을 의미하는 수메르어 '아(A)' 표기 |
사실, 이 별자리의 별칭인 콩팥자리는 '강물에 의해 임신한 에리두'라는 기본 명제를 확정해 주는 것 같습니다.
쐐기문자로 '콩팥'은 '비르(Bir)'로 표기되는데 이는 '콩팥'이라는 의미 뿐 아니라 '고환'이라는 의미도 가지고 있습니다.
'고환'은 글자그대로 '무릎의 신장'으로 알려져 있기도 하죠.
별지도를 놓고 봤을 때 이 세 여신의 위치는 시사하는 바가 있습니다.
이 부분은 다섯 번째 달과 여섯 번째 달에 떠오르는 별자리입니다.(오늘날의 7월~9월)
이 때는 조상의 영혼이 후손을 방문하여 함께 식사를 하는 때입니다.
따라서 여기 그려진 세 여신은, 새로 탄생하는 아이의 영혼은 조상의 영혼이 함께 깃들어 있는 연속체를 떠나 땅으로 내려오는 여정에 들고, 결국 사람들 사이에서 탄생하게 되는, 이상 인간 탄생의 일련의 과정을 압축적으로 표시한 것일 가능성이 큽니다.
참고 별자리 : 굴라자리(the Great One), 콩팥자리(the Kidney), 하늘의 강자리(the Rivers of Heaven), 하늘의 밧줄자리(the Ropes of Heaven)
바빌로니아 별자리 목록으로 돌아가기
번역자 주석
1. 이 글은 천문작가 Gavin White의 책으로 고대 메소포타미아의 별자리와 천문전승을 담은 에세이집 Babylonian Star Lore (ISBN-13 : 978-0955903748)를 번역한 것입니다.
2. 별자리 이름이 현대 별자리 이름과 혼동할 가능성이 있는 경우 고대 메소포타미아의 별자리는 '이탤릭체'로 표시하였습니다.
3. 본 글은 저자의 허락을 받아 포스팅한 글입니다.
원문과 번역문 모두 저작권법에 의하여 보호받는 저작물이므로 무단 복제 및 배포를 금합니다.
'2. 별자리 이야기 > BABYLONIAN STAR LORE' 카테고리의 다른 글
| 바빌로니아 별자리와 천문전승 - 별자리 상세 53. 엘라마툼의 별 (2) | 2025.08.01 |
|---|---|
| 바빌로니아 별자리와 천문전승 - 별자리 상세 52. 엔릴, 아누, 에아의 별 길 (3) | 2025.07.31 |
| 바빌로니아 별자리와 천문전승 - 별자리 상세 50. 야생돼지자리 (2) | 2025.07.26 |
| 바빌로니아 별자리와 천문전승 - 별자리 상세 49. 암염소자리 (3) | 2025.07.24 |
| 바빌로니아 별자리와 천문전승 - 별자리 상세 48. 암양자리 (1) | 2025.07.22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