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랜만에 잡게 된 교양과학 서적.
이 책은 허블 우주망원경이 담아낸 먼 은하의 사진인 허블 딥필드(HDF : Huble Deep Field)를 화두로 삼아
현재까지 우주론에 대한 다양한 담론들을 수필 형식으로 담아낸 과학자의 글이 아닌 저널리스트의 글이다.
따라서 전반적으로 무난하게 읽힐 것이라 생각했지만,
생각만큼 이야기를 따라가기가 쉽지가 않았다.
저널리스트의 글이라 하기에는 다분히 밑줄치면서 따라가야 할 것 같은
딱딱한 내용들이 가득했고,
그렇다고 본격적인 깊이는 없이 많은 의견을 모아놓다보니
저널도 아니고 리포트도 아닌 엉뚱한 글이 된 것 같은 느낌을 지울 수가 없었다.
아무래도 전문적인 이야기를 따라잡고자 했던 저널리스트의 욕심 때문이지 않을까 싶다.
제목 '허블의 그림자'는 허블 딥 필드에 담겨진 수많은 은하들 중
딥 필드에서마저도 흐릿하게 나타나고 있는
광대한 공간 저 너머의 은하들에 대해 작자가 나름대로 붙인 명칭이다.
작가는 플라네타륨을 통해 북두칠성의 국자 부문에만 4백개 이상의 은하가 담겨져 있다는 인상적인 설명을 들었던 1968년의 기억을 떠올린다.
그리고 1996년 허블 우주망원경으로 통해 공개된 허블 울트라 딥필드(HUDF, Hubble Ultra Deep Field)에서는
북두칠성 국자 부분의 천분의 일에 해당하는 영역에 최소 1만개 이상의 은하가 몰려 있었다는 사실 대비로 이야기를 시작한다.
즉, 30년도 안되는 사이에 북두칠성 국자부분에서만 50만배 이상의 은하를 추가로 볼 수 있게 된 것이다.
지구 대기로 인한 관측의 한계를 피해 우주로 쏘아올린 지름 2.5미터의 망원경이 가져다 준 신천지에서
우주론은 바야흐로 그 꽃을 활짝 피우고 있다.
아직 우주의 광활함에 비하면 최근 20년내 이룩한 이 업적은 여전히 미미할 수 있겠지만,
지금은 그 어느때보다도 우주를 왕성하게 개척하고 있다는 사실은 변하지 않을 것이다.
책을 넘겨가면서 과거 이런 저런 내용을 번역하면서 접했던 여러 프로젝트들의 실제 내용을 접할 수 있었던 것이 큰 수확이었다.
프로젝트들이 목표로 하는 것이 무엇인지, 그리고 거기에 어떤 의미와 한계가 있는지 등,
좀 더 쉽게 설명이 되었다면 하는 아쉬움이 있었지만, 짧은 내용에 워낙 전문적인 내용이 담기다보니 어쩔 수 없는 점도 있었을 듯 하다.
정량적으로 표시된 적색편이라는 하나의 기준과
그 기준에 의거하여 분석한 우주의 역사와 은하의 특성들 역시 값진 내용들 중 하나였다.
두 번 정도 더 읽을 수 있다면 나름 많은 도움이 될 듯 하다.
한편 6장에서 테그마크라는 우주론 학자가 밝힌 세 가지 악몽은 나름 인상깊어 여기 원문 그대로 소개한다.
악몽 1.
천체물리학자들이 암흑물질에 대한 단서를 더 이상 발견하지 못하는 악몽
"직접적인 탐지 결과도 나오지 않고, 선형가속기에서도 암흑물질을 만들어내지 못하고 천체물리학적 증거도 찾아내지 못하는 상황입니다."
이런 상황이라면 매우 곤란해진다.
암흑물질은 정상물질이 급속하게 은하와 은하단과 블랙홀을 형성한 현상을 설명하기 위해 도입되었다.
물론 앞으로 암흑물질을 탐지해내지 못한다고 해서 반드시 그 존재가 부정되는 것은 아니지만,
그 존재에 대한 과학자들의 믿음은 물리학보다는 신앙의 영역에 속하게 될 것이다.
악몽 2.
인플레이션에 대한 추가의 단서와 원시 중력파에 대한 추가의 단서가 나오지 않는 악몽이다.
사람들은 인플레이션이 우주배경복사에서 명확하게 나타나는 밀도 섭동 같은 중력요동을 발생시켰다고 믿고 있다.
이들 요동의 파장은 눈에 보이는 우주만큼 클 터이지만 지금까지 발견된 것은 없다.
중력파도 없고, 인플레이션도 없고, 우주의 크기와 엄청난 규모의 구조와 규질성에 대한 설명도 없다.
우주론 학자들은 미래의 탐사위성이 중력파를 탐지할 것이라는 희망을 갖고 있다.
하지만 그 희망이 좌절된다면 인플레이션 이론은 붕괴하고 만다.
악몽 3.
암흑에너지에 대한 단서가 더 이상 나오지 않는 악몽이다.
테그마크는 우려를 감추지 못하며 이렇게 말했다.
"암흑에너지 관측 연구는 끝장이 나겠지요. 암흑에너지의 속성과 정량적 단서는 더 이상 나오지 않게 됩니다."
시간의 경과에 따른 암흑에너지의 밀도를 정밀하게 측정할 때 밋밋한 수평선(테그마크의 말을 빌리면 '사망한 우주론 학자의 심전도')이
나올지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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