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0. 7. 7. 22:48ㆍ4. 끄저기/끄저기
프로파일링.
누구였는지는 모르지만 하여튼 연쇄 살인범 누구를 체포하는데 프로파일링 기법이 도입됐다는 기사를 읽었던 기억이 난다.
그 기사는 프로파일링 기법으로 범인을 잡았다는 사실 관계에 대한 보도보다는
최첨단 기법이 적용되었다는 데에 강조를 둔 기사였다.
그러나 이 책을 읽고나자 프로파일링이라는 것으로 범인을 잡았다기 보다는
여러 수사 기법중에 하나로서 프로파일링을 활용할 줄 알게 되었다는 것이
보다 사실에 가까운 이해일 것이라 생각하게 됐다.
어느 용어가 그렇듯이 같은 의미를 가지고 있어도
영어로 얘기하면 뭔가 세련되고, 첨단적이게 느껴지는 대신
사실에 대한 이해는 떨어지게 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프로파일링'이라는 용어 역시 그 한 예가 될 수 있을 것이며
따라서 좀더 이해가 쉬운 말로 바꾼다면 ,
'범죄자 심리 분석' 또는 '범죄자 행동 분석'이라는 말을 쓸 수 있겠다.
프로파일링이란
'미확인 범죄자의 특정한 행동을 분석함으로써
그의 성별이나 외모, 나이, 교육 정도, 사회적인 위치, 기타 요인을 추정하는 방법'
이를 통해 범죄자를 추정할 뿐 아니라, 수사선상에 오른 용의자
또는 피의자를 검증하는 수사 기법'을 말한다.
이 책은 서양에서 범죄형 인간을 가려내기 위한 고대의 직관론적 이론들과
근대 시대의 연구를 간단히 개관하는 것으로 시작하여
1800년대 후반 영국의 '살인광 잭' 사건이후 현재까지의
다양한 연쇄 살인 사건을 배경으로 이 과정에서 범죄자를 추정했던 역사적인 프로파일링 사례를 설명하고 있다.
사례 중심인만큼 이야기는 소설책 만큼이나 쉽게 읽히며,
사진에 등장하는 범죄자 및 피해자의 사진들을 통해 일반 매체를 통해 쉽게 접할 수 없었던
범죄 현장 및 사건에 대한 섬뜩함을 느낄 수도 있었다.
하지만 사례 중심의 개괄서이다보니
프로파일링이란 무엇이고 어떻게 활용한다는 등의 아카데믹한 내용은 다뤄지지 않는다.
물론 후반부에 가면 패턴에 대한 예시, 지리추정, 필체의 검증, 거짓말 탐지기, 대테러 협상 등의 내용에서
학습적 내용이 등장하기는 하나 이 역시 그리 중점을 두어 다뤄지지는 않는다.
따라서 프로파일링 자체에 대한 내용 이해를 목적으로 한다면 목적에는 부합하지 않을 것이지만
나 같은 일반인을 대상으로 쓰여진 책으로는 대단히 흥미있고 좋은 책이라고 할 수 있다.
이 책을 통해 프로파일링에 대해 인상깊었던 점은
프로파일링의 가능성 보다는 한계에 대한-그래서 이를 극복하기 위한-내용들이었다.
이 책에서도 강조되고 있지만 여전히 프로파일링에 의한 범인 추정은 성공보다는 실패가 더 많다고 한다.
구체적인 실체로서의 범인을 잡아야 하는 형사, 경찰의 입장에서
범인은 이러이러한 행동에 이러이러한 환경을 지닌 사람이고 어디 쯤 살고 있을 것이다라는 말은
아무런 도움도 되지 않을 것이다.
심지어는 이러한 추정에 얽매일 경우 진범을 놓칠 가능성을 더더욱 부풀리게 되며,
더더군다나 심리, 행동 패턴을 통한 추정을 한다고 해서
기본적인 현장의 검증, 증거의 수집과 같은 적통적인 물리적 과학수사를 등한시 할 수 없다는 것이다.
또한 대용량 데이터베이스와 네트워크의 발달로 범죄자에 대한 정보가 축적되고 공유되고 있는 지금
직관에 의한 통찰 보다는 데이터에 입각한 과학적, 경험적 분석을 통한 프로파일링을 발전시킬 과제 역시 여전히 남아 있는 과제로서 언급되고 있다.
이 책을 통해 미국, 캐나다, 영국 등에서는 이미 1970년대부터 이러한 체계를 가다듬는 노력이 지속되어 왔으며
실제 범죄 현장의 한 부분으로 활용되고 있음을 알 수 있었다.
아마도 1980년대 말과 90년대 초반의 대한민국을 뜨겁게 달군 화성 연쇄 살인 사건에서도
이러한 기법이 적용되었다면 분명 성과가 있었을 것이다.
공권력이 국민을 위해 쓰여졌다면 충분히 가능한 얘기였을 것이지만 그 때 대한민국은 불행히 그런 나라가 아니었다.
아.., 지금도 그런 나라는 아니구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