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0. 12. 22. 00:02ㆍ4. 끄저기/끄저기
꼭 읽어야겠다고 생각했던 박노자 교수의 책을 처음으로 접하게 되었다.
그리고 이 책의 마지막 장을 덮었을 때 내가 속한 사상의 스팩트럼은 '보수'임을 뼈져리게 느끼게 되었다.
물론 내 사상의 '보수'라는 것보다 더 뼈져린 현실은
내가 마치 '진보'인 것처럼 느껴지게 만드는 대한민국의 일그러진 사상 스팩트럼이다.
상식, 법, 질서, 절차라고는 깡그리 무시하는 양아치들이 아직도 정권을 잡고 있으니
스팩트럼이라는 게 나올 수가 있겠나.
제발 우리나라도 '사상'이라는 것으로 좌부터 우까지 나열할 수 있는 세상이 빨리 왔으면 좋겠다.
내가 스스로를 보수라고 생각하게 된 이유는 아주 간단하다.
이 책의 내용들이 하나하나 모두 내 귀를 건들고 들어왔기 때문이다.
그만큼 그 내용들이 익숙치 못했을 뿐 아니라,
심지어는 기회가 될 수 있다면 박노자 교수님께
이러이러한 것에는 동의하지 않는다고 얘기하고 싶었기 때문이다.
아니, 변명하고 싶었기 때문이다.
자~ 박노자 교수의 말들 중 틀리지 않은 것이 단 하나라도 있을까?
하나, 대한민국은 전근대적이고 극단적인 우상숭배가 횡행하고 있다.
둘, 대한민국은 사대주의와 멸시가 공존하는 사회이다.
셋, 대한민국은 패거리 문화에 입각한 사회이다.
넷, 대한민국은 아직도 폭력이 충만한 사회이다.
다섯, 대한민국의 진보 속에는 전근대성이 상존하고 있다.
여섯, 대한민국에서 대학, 각종 교육재단은
또 하나의 특권집단에 지나지 않는다.
일곱, 대한민국은 극렬한 인종주의 국가이다.
각 패러다임 속에서 박노자 교수는
그 자신이 처음 대한민국을 생소하게 겪어야 했던 그 시절부터
논리적인 학술적 근거만이 아닌, 소소한 일상의 생활사들의 영역에 이르기까지
그 증거를 척척들이대고 있다.
그리고 그 증거들에서 때로는 무심했고, 안주했으며
심지어는 그 공고한 구조에 공헌하기까지 한 나의 모습을 발견할 수밖에 없었다.
그러니 그 다음에 나올 수 있는 얘기가 변명밖에 더 있겠는가...
나는 보수주의자다.
보수주의자는 한나라당같은 꼴통집단을 지지하는 사람들이 아니다.
꼴통집단을 지지하는 사람들은 꼴통이라 부르면 되고 나이드신 분들은 존대를 붙여 꼰대라 하면 된다.
내가 보수주의자인 이유는 내가 속한 이 나라가 너무나 약해빠진 나라이기 때문이다.
한 번 떨쳐일어나 줬으며... 마치 김연아나 박태환이 금메달을 딸때처럼,
한 번이라도 남들 다 해보는 강대국으로서 주위 사람들의 부러움을 받았으면 하는 소망 때문이고,
그렇기 때문에 대한민국을 강하게 만들어줄 사람들이 집권하길 바라기 때문이다.
즉 나의 '조국'이라는 개념이 머릿속에 남아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이러한 생각을 깨려 들어오는 이 책의 글들에 대한 본능적인 거부감 또는 변명이 자동적으로 의식속에 떠올랐던 것이다.
박노자 교수의 책은 앞으로도 계속 사서 틈틈이 읽어볼 생각이다.
하지만 이 분의 생각대로 생각을 바꿔보는 것은 좀 너무나도 불쌍한 우리나라도 한 번 충분히 뜨고 나서부터이다.
요즘 우리나라...얼매나 불쌍하냐...
국격이 높아졌는데 대포나 맞고 있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