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 8. 12. 01:03ㆍ4. 끄저기/끄저기
관람일시 : 2012년 8월 4일 18시
관람장소 : 대학로 열린극장
리얼리즘이 공연작품을 평가하는 절대요소도 아니고
더더군다나 일반적인 대학로 소극장의 연극에 리얼리즘을 들이대는것 만큼이나
맹랑한 짓은 없을 것이다.
하지만 나와 같은 아마추어 날라리 관객은 무의식적으로 그런 실수를 자주, 반복적으로 저지른다.
그것 때문에 나타나는 현상이 바로 뮤지컬에 대한 거부감이다.
대사를 노래로 표현하는 뮤지컬에 과연 리얼리즘의 찌꺼기라도 존재하겠는가?
거기다가 몇 번 관람한 소형 뮤지컬에 대한 부정적인 경험이 첨가된다면?
금상첨화의 반대말이 뭐야? 설상가상?
아마 이 작품이 뮤지컬이라는 걸 알았으면 안 보러갔을 거다.
그리고 설상가상을 향한 되먹임 고리는 좀체 멈춰지지 않았을 거다.
하지만 이 작품을 보고 소형 뮤지컬에 대한 부정적 인식의 기류가 금상첨화로 돌아선건 아니지만
최소한 더 이상 설상가상으로 향하는 방향은 딱 멈춰진 상태이다.
1. 잘해봐야 본전인 각색, 그.러.나.
원작 자체가 워낙 유명한 작품이다보니, 각색과 연출이 쉽지 않았을 것이라는 점은
쉽게 생각할 수 있을 것이다.
누구나 아는 얘기고 누구나 위대하다고 칭송하는 작품이다보니
자칫 소소한 부분이라도 삐끗했다가는 찬사보다는 비난 5분 대기조가 왕성하게 기다리고 있었을 작품이었다.
결론적으로 이 작품은 각색, 연출에 대해 최상의 찬사를 보낼만한 작품이다.
그리고 개인적인 생각이지만, 이 작품이 만약 대형뮤지컬로 기획됐다면 절대 이처럼 훌륭한 각색이 되지 않았을 것이다.
어찌보면 노인이 소년의 결핍에도 불구하고 물고기를 낚아냈듯이
소극장용 뮤지컬이 가질 수밖에 없는 자원의 결핍에도 불구하고 '노인과 바다'라는 대작을 훌륭하게 낚아낸 것이라고 생각한다.
특히 내용의 전개를 소년의 눈에서 풀어나간 것은 대단히 훌륭한 선택이었다.
이 작품을 관람하고, 관람평을 적기 위해 '노인과 바다'를 읽어보았다.
그리고 '노인과 바다'라는 '책'을 읽었기에 그에 대한 서평을 정리해봤는데, 서평을 정리하다보니 이야기의 나레이션을 소년이 담당했던 부분이
단순히 극적 효과를 위한 선택이 아닌 각색하신 분이 작품을 정확히 이해하고 있다는 것을 반영한다는 생각까지 하게 됐다.
이건 다분히 주관적인 판단이긴 하지만,
내 경우 이 소설에서 노인이 겪는 사건보다 오히려 종결 부분에 노인을 승리자로 평가하는 소년이 더 중요하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결국 소년에 의해서 나레이션 되고, 전체 이야기가 소년에 의해서 전개되는 선택을 한 것은
하드보일드의 원형이라 평가받는 단순담백한 원전을 시종일관 극적 장치가 넘실거려야 하는 뮤지컬로 전환하는데
이보다 더 좋을 수 없는 성공적인 방향이 되지 않았을까 싶다.
2. 배우의 샤우팅.
앞에서 잠깐 언급했지만,
소형 뮤지컬에 대한 부정적인 인식은 개인적으로 지금까지 본 소형 뮤지컬에서 그닥 훌륭한 '가수'를 만나지 못했기 때문이 주요 원인이다.
그러다보니, 소형 뮤지컬은 '싼게 비지떡'이라는 식의 생각을 하게 됐던것도 사실이다.
그러나 이 작품을 보니 결국 고백하지 않을 수 없게 됐다.
내가 지금까지 본 소형 뮤지컬은 이 작품을 합쳐봐야 고작 세편이 전부라는 것을....
어딘가에선 훌륭한 작품이 훌륭한 배우에 의해 지금 이 시간에도 공연되고 있을 것이다.
다만 나의 일천한 경험이 그런 작품을 겪지 못한 것이다.
이 작품에서 몇 년후 대형 뮤지컬에서 박은태 이상의 샤우팅을 구사할 배우를 봤다.
공연 후 아무도 볼 수 없었던 매표소로 인해 팜플렛을 살 수도 없었고,
별로 관리되지도 않는 것처럼 보이는 공식 블로그로 인해 지금까지도 그 배우가 누군지를 알 수가 없다.
(아마도 조정환 씨 아니면, 황윤선 씨 둘 중의 하나일 것이다.)
내가 관람한 시간의 작품은 전적으로 소년 역할을 한 그 배우에 의해 살아났고,
그 배우의 샤우팅 하나만으로도 충분히 가치있는 작품이 되었으며
그 배우 덕에 노래 하나하나가 생명력을 얻었다고 단언한다.
작품을 관람하고 일주일동안 언뜻 생각이 날때마다 이 배우가 정말 훌륭했던건지
내가 기대를 안했는데, 기대 이상의 샤우팅을 만나서 과대평가한건지를 생각해 보았는데 결론은 이 배우가 정말 훌륭했다는 것이다.
개인적으로 연극을 볼 때, 절대 맨앞자리에 앉지 않는다.
맨앞의 관객을 연극의 일부로 활용하는 연극이 많고, 어찌됐든 관객인 내가 그런것에 신경을 쓰면 작품 자체에 대한 몰입도가 깨지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 뮤지컬은 얼떨결에 맨 앞에 앉아서 봤고, 그 덕에 우스개 소리로 내가 대학로 연극에 데뷔...한 연극이 되고 말았다.
어쨌든 재미있는 경험으로 남게 되었지만, 새삼 절대 맨 앞자리에는 앉지 않겠노라는 다짐을 하게 만들었다.
코끼리를 냉장고에 넣는게 아마 이보다 쉬울 것이다.
멕시코만을 배경으로 펼쳐진 장대한 서사시와도 같은 이야기를
채 2시간도 안되는 소극장의 뮤지컬로 녹여낸 연출가와 배우들에게 극장에서 충분히 보내지 못한 박수를 더해 드린다.
'4. 끄저기 > 끄저기' 카테고리의 다른 글
아바이 마을 - 아바이께서 떠나 버린... (0) | 2012.08.20 |
---|---|
슬픈대호 - 끓는 주전자 뚜껑. (0) | 2012.08.12 |
노인과 바다 (0) | 2012.08.11 |
두개의 문 - 다크 나이트 라이즈의 리얼리티 논쟁 (0) | 2012.07.28 |
개를 산책시키는 남자 (0) | 2012.07.28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