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 8. 20. 13:38ㆍ4. 끄저기/끄저기
2010년 어느날.
속초 아바이 마을은 완전히 망가져 있었다.
1.4 후퇴 때 남하했던 함경도 실향민들이 모여서 형성되었다는 그 마을은
조그만 도시 속초에서도 따로 격리된 외딴 섬이었고
그 위치만으로도 실향민들의 애환이 절절이 느껴지던 곳이었다.
청호대교 초입에서 샛길로 빠져가야만 들어갈 수 있었던 이곳에서
단촐한 갯배, 빛바랜 은서네집 슈퍼로 이어지는 골목길을 돌아,
단천 식당의 가자미회, 명태회냉면의 달큰한 맛을 보고
고즈넉한 청호의 해변에서 바닷바람을 맞다가 돌아오곤 했다.
하지만 1박2일이라는 유명 프로그램에 한 번 나오고 나서
고즈넉했던 청호바닷가는 주차로 몸살을 앓았고,
유명 연예인의 사진이 덕지덕지 달린 광고판으로 빛나는 음식점들이 빽빽이 몰려들었다.
그런 아바이 마을에서 돌아나오면서
언젠가 이 광풍이 사그라들면 다시 돌아오겠노라 생각하고
실로 오랜만에 아바이 마을을 다시 찾았다.
그리고,
인생에서 되돌릴 수 없는 그 많은 이야기와 순간들 속에
이곳 아바이 마을도 겸허히 포함시켜야 했다.
나는 그 TV 프로그램을 비난하고 싶은 생각은 없다.
심지어 '나의 문화유산 답사기'와 같은 책도 이와 유사한 부작용을 만들어낸다.
TV 프로그램이 더 대중적이고 그래서 더 상업적이고, 따라서 변화 역시 폭력적일수밖에 없음은 당연한 것이다.
그리고 아바이 마을의 거주민들께서도 부를 축적하실 당연한 권리가 있다.
하지만 이 모든 걸 머리로 인정한다고 해서
가슴의 원망까지 없다면 거짓말일 것이다.
이젠 더 이상 단천 식당 골목은 존재하지 않는다.
속초 안에 존재함에도 속초로부터 뜯겨져 있는 듯한 느낌의 아바이 마을은 더 이상 존재하지 않는다.
중앙로의 번화함이 갯배를 타고 건너다 일부가 청초 호에 빠져버린 듯한,
그래서 약간은 힘이 빠져버린 촌스런 중앙로의 뒷골목이 하나 더 늘어났을 뿐이다.
아마도 10년 정도의 시간이 흐른다면, 아바이 마을의 컨셉이 회복될 수 있을까?
부족했던 금전적 여유가 회복되면, 그 와중에 한켠으로 치워버렸던 가치가 되살아날 수 있을까?
그건 전적으로 속초의 시민들과 아바이마을의 주민분들에게 달린 문제이고
나는 이 분들이 너무 늦기 전에 그 가치를 되찾아오는 선택을 하시기를 기도드릴 뿐이다.
아마 5~6년 정도의 시간동안
청호대교를 다시 건널 일은 없을 것이다.
그곳에 아바이는 더이상 계시지 않기 때문이다.
변해버린 단천식당 골목의 모습,
나중에 단천 면옥에서 들은 얘기로는 작년 12월 단천 식당에 화재가 나서 어쩔 수 없이 기존 건물을 철거하고 새 건물을 지을 수 밖에 없었다고 하셨다.
(왼쪽 빨간색 지붕 건물)
모든게 아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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