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대중 자서전 - 거인의 조건

2014. 3. 15. 15:144. 끄저기/끄저기

 

 

1997년 10월 대한민국은 망했다. 

대한민국의 경제주권이 IMF에게 넘어간 이 사건은 박정희로 대변되는 대한민국 개발독재사의 종언을 고하는 일대 사건이었다.

 

대한민국은 그 해 12월, 15대 대통령 선거를 앞두고 있었다. 

상식적으로 볼 때 대한민국을 망하게 만든 한나라당(새누리당 전신)은 필연적인 결과로 정권을 내주는 것이 자연스러운 상황이었다. 

물론 결과적으로 정권은 바뀌었고, 한반도 반만년 역사상 처음으로 피를 수반하지 않은 권력의 이동이 이루어졌다.

 

그런데 이 과정에서 간과하지 말아야 할 점이 하나 있다. 

나라를 망가뜨린 세력이 얻은 표가 15대 대통령 당선자인 김대중과 불과 38만표밖에 차이가 나지 않았다는 점이다.

정말 아슬아슬한 역사의 순간이 아닐 수 없다.

 

역사에 가정은 무의미하다지만 만약 그 때 한나라당이 정권을 계속 유지했으면 지금의 대한민국은 지도상에 남아 있지 않았을 것이다. 

경제주권을 빼앗긴 정권의 다음 차례는 주권의 완전 상실에 있을테니 말이다.

 

너무나도 생각하기 싫은 가정이긴 하지만 현재도 반복되는 경상도의 우리가 남이가 식 투표결과를 볼 때마다 망하는 대한민국이라는 가능성은 여전히 현재 진행 중이라 생각한다.

그런 측면에서 1998년 ~ 2007년까지 10년간의 민주정부는 동력을 상실한 대한민국에 위치에너지를 부여하는 천우신조와 같은 사건이었다. 

그리고 그 문이 열리던 그 자리에는 '김대중'이라는 거인이 서 있었다.

 

김대중의 자서전을 읽으며 한 시대의 위대한 거인이, 아니, 아마도 한반도에서 배출해낸 인물 중 처음으로 전세계적인 명성을 떨친 이 위대한 영혼이 어떤 분이었는지를 따라가 볼 수 있었다.

 

위대한 사람이 되고 싶은 사람이라면 위대한 사람이 어떤 자세로 살아왔는지를 반면 교사로 삼을 수 있을 것이다. 

우리에겐 그 거울로서 '김대중'이라는 분이 있다.

 

 

1. 현명함 

 

김대중은 현명한 지도자였다.

   

그가 소시적 전국적 명문이었던 목포상업학교에 수석입학을 했다는 점,

20대에 이미 회사를 설립하여 성공적으로 키워내고 목포일보의 사장으로 재임하는 등 성공한 청년실업가였다는 점과 독학으로 영어를 깨쳤다는 점 등은 김대중이 명석한 두뇌를 가진 인물이라는 점을 단적으로 말해주는 예가 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이보다도 더 중요한 것은 김대중은 평생 공부를 게을리 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김대중이 감옥에서, 망명과 연금 중에 끊임없이 독서에 열중한 독서광이라는 것은 이미 잘 알려진 사실이다.

 

독서를 통한 끊임없는 간접경험의 확산은 나이가 들어갈수록 경색될 수밖에 없는 사고의 제한을 예방하며, 계속 말랑말랑한 사고를 가능하게 해준다. 

김대중은 명석한 두뇌와 함께, 평생 새로운 정보습득을 게을리 하지 않은, 유연하고 말랑말랑한 사고를 계속 유지한 현명한 지도자였던 것이다. 

   

개인적으로 김대중의 최고 논리로 두 가지를 꼽고 있다. 

하나는 리콴유 전 싱가포르 수상의 아시아적 가치에 대한 반박이고, 또 하나는 공산주의 사회의 붕괴에 대한 김대중의 진단이다. 

 

첫째, 아시아적 가치 논쟁을 보자.

싱가포르의 수상 리콴유는 1994년 포린 어페어(Foreign Affairs)와의 인터뷰에서 민주주의를 서양의 가치로 규정하고 이를 아시아에 그대로 적용하는 것은 무리라고 주장했다. 

오히려 아시아는 서양보다도 유구한 문화적 전통을 가지고 있는데, 유교문명을 기반으로 한 아시아적 가치는 아버지와 같은 지도자와 자식과 같은 민중의 모델을 규정하고  지도자가 준수해야 할 아버지로서의 도덕성, 민중이 지녀야 할 자식으로서의 도덕성이 새로운 아시아의 가치모델이 되어야 한다고 주장한 것이다.

실제로 리콴유는 1965년부터 1990년까지 싱가포르의 총리로 장기집권하면서 권위주의적 통치 및  개발독제를 실행한 인물로서 유명하다.

그러나 이에 대해 김대중은 같은 잡지 1994년 11~12월호 '문화란 운명인가?(is Culture Destiny?)'라는 기고를 통해 이를 명쾌하게 반박한다.

아시아의 유교야말로 민주주의의 가치를 서양보다도 먼저 설파하고 있다는 논리였다.  

맹자는 이미 백성이 첫째이고, 국가(사직)가 둘째, 왕은 그 다음이라고 설파했으며 명(命)을 잃은 왕은 백성이 바꿀 수 있다(革命)고 얘기했던 것이다. 

또한 중국 민본 철학의 '민심이 천심이며, 백성이 곧 하늘이다.'라는 사상과 한국 동학의 '인간이 곧 하늘(인내천)'이라는 가르침을 예로 들며, 민주주의 구현을 위한 수단 - 3권 분립, 선거제도 - 는 서양의 산물일지 몰라도,   이러한 수단을 통해 이룩하고자 하는 민주주의라는 본질은 이미 아시아에도 차고 넘친다는 논리를 들어 리콴유의 견해를 반박했다.

김대중의 반박은 자신들의 개발독재를 합리화하기 위해 '아시아적 가치'를 차용하는 아시아 독재세력들의 의중을 그대로 꿰뚫어본 것이며 리콴유의 논리가 얼마나 피상적인지를 여실히 증명해내었다. 

 

둘째, 공산주의는 왜 몰락했을까?

1991년 9월 17일, 소련의 연방 해체가 한참이던 때, 모스크바 대학에서 이루어진 김대중의 강연은 동구권의 몰락이 곧 자본주의에 대한 공산주의의 패배라고 생각하던 일반인들의 인식이 얼마나 잘못된 것인지를 깨닫게 해 주었다.

   

"많은 사람들은 자본주의가 승리하고 사회주의가 패배했다고 말하고 싶어합니다.

그러나 나의 생각은 다릅니다. 

오늘날 많은 공산 국가들이 몰락한 것은, 그 나라들이 사회주의를 했기 때문이 아니라 민주주의를 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사회주의가 패배한 것이 아니라 민주주의를 하지 않은 독재적 사회주의가 패배한 것입니다.

문제는 민주주의입니다. 

민주주의를 하고 있는 나라는 자본주의든 사회주의든 다 같이 성공했습니다.

서구 사회의 자본주의와 민주적 사회주의가 이를 증명합니다.

그려면 왜 민주주의를 하는 나라는 승리하고, 민주주의를 하지 않는 나라는 몰락하는 것일까요?

그 이유는 명백합니다.

민주주의를 하면 국민들의 비판과 요구가 정부에 전달됩니다.

그리고 그 비판이 정당하게 수용되지 못하고, 요구가 실현되지 않으면 국민은 선거를 통해서 정권을 바꾸어 버립니다.

요새 흔히 말하는 정치의 피드백 작용이 원활하게 이루어진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독재 하에서는 의사가 위에서 밑으로 내려올 뿐 밑에서 위로 올라가지 못하고 정권을 바꿀 길도 없습니다."

 

이 두 가지 사례는 김대중이 얼마나 탁월한 혜안과 식견을 지닌 현명한 인물이었는지를 잘 알려주고 있다. 

 

지도자의 자질로서 요구되는 것으로 '현명함'은 너무나 당연한 요소일 것이다. 

현명한 사람은 스스로도 냉철한 판단을 할 수 있지만, 그것보다 더더욱 중요한 것은 다른 사람의 말에서 취할 것과 취하지 말아야 할 것을 분별해 낼 수 있다는 것이다. 

 

이러한 능력은 타인의 조언을 자신의 권위에 대한 도전으로 오독하는 오류를 범하지 않아 자연스럽게 상하간 의사소통이 활발해지는 결과가 나타난다. 

   

또한 현명한 사람의 말은 사람들에게 대부분 수긍되고 인정되기 때문에 사람들은 그 사람과의 이야기를 즐기게 되어 스스로 개방적이 되고 거리낌이 없으며 대화와 토론을 즐기게 된다.

   

활발한 의사소통, 대화와 토론 그리고 이를 통한 타협은 민주주의 의사결정 과정의 진수라 할 수 있거니와 지도자가 현명하지 못한 경우 얼토당토 않은 자존심를 부리며, 이러한 과정들이 싸그리 무시된다는 점에서 그 폐해가 얼마나 클지를 충분히 짐작할 수-현재 대한민국의 경우 눈으로 볼 수- 있을 것이다. 

   

 

2. 단순명료함.

 

김대중 자서전을 읽으면서 정말 인상깊었던 것이 바로 김대중의 '단순명료함'이었다. 

 

가장 인상깊었던 장면은 이 부분이었다.

1954년과 58년, 59년 김대중은 세 번의 선거에서 계속 낙선하게 되고, 이로 인해 살림은 크게 곤궁해지게 된다. 

당시 자유당 정권은 생활고를 견디지 못한 야당 정치인들을 포섭했는데, 김대중에게도 역시 구체적인 액수와 의원급 대접을 조건으로 자유당에서 함께 일하자는 권유가 제시되었다.

 

그러나 김대중은 이를 거절하게 된다.

이러한 거절의 장면은 5.16쿠테타 후에도 등장한다.

쿠테타 세력이 만든 공화당에 함께 할 것인지, 아니면 8년간 정치활동 금지를 당할 것인지의 선택지에서도 김대중은 8년간의 정치 활동 금지를 선택한다.

   

그는 왜 편안한 생활을 놔두고 거절을 택했을까?

누구 말마따나 호랑이를 잡기 위해 호랑이 굴로 들어가는 선택도 가능했을 것이고 '조선민중들을 위해 일단 일제에 협력하지만 마음만은 일본에 주지 않았다.'는 식의 화려한 언변을 못할 사람도 아닌데 말이다.

   

"나는 당신들이 쿠테타로 쓰러뜨린 민주당의 대변인을 지냈소. 

당신들은 장면 정권이 부정부패하고 나쁘기 때문에 일어났다고 말하고 있는데, 

나는 장면 정권이 역사상 가장 좋은 정권이니까 국민들에게 지지해 달라고 말하고 다녔소.

이제는 거꾸로 당신네가 제일 좋은 사람들이라고 말한다면 국민들이 나를 뭘로 보겠습니까.

당신네 편에 서서 민주당은 안된다. 공화당이 제일이다 말하면 사람들은 나를 변절자라고 손가락질할 것 아니오.

변절자를 영입해서 당신네가 득 볼 게 뭐가 있겠소. 오히려 손해만 끼칠 것이오."   

    

변절자가 될 수 없고, 변절자가 되면 당신들에게도 도움이 되지 않을 거라는 말.

그의 논리는 이처럼 단순 명료하다. 

그리고 그 판단을 내릴 때, 주변적인 요소 - 선택의 결과 내가 힘들어지거나 경제적으로 어려워질 수 있다 등등-는 일체 고려사항이 되지 않는다. 

 

나는 이러한 단순명료함이 거인 김대중을 만든 핵심적인 요소라고 생각한다. 

 

내 경우 어떤 행동을 하게 되는 의도와 동기에는 항상 일정부분 계산이 반영된다.(다른 사람들도 대부분 그렇지 않을까?)

그런데 내가 원하는 계산 결과를 만들다 보면 의도치 않게 현실에 대한 분석 중 어느 한 부분이 과장 또는 축소되게 된다.

그 과장 또는 축소 부분을 일컬어 '자기합리화'라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김대중에게는 이 과장 또는 축소되는 '자기합리화'의 부분이 존재하지 않았던 것이다. 

그저 사리에 맞게 행동하고 아닌 건 아닌 것이라고 얘기하는 것.

나에게 이것은 너무나 어려운 행동이지만, 거인에게 이것은 너무다 당연하고 쉬운 행동이었던 것이다. 

   

그래서 김대중의 모든 논리는 일반인들이 보기에는 너무나 어렵고 복잡해 보이는 상황마저도 쉽게 풀이하는 마법과 같은 힘을 가지고 있다. 

국가의 살림이 거덜 났으니 해외에 돈을 꾸러 다니고(세일즈 외교의 시작),

북한과의 긴장 관계로 인해 국민도 불안하고 외국 투자도 잘 안되니 북한과의 관계를 개선하고(햇볕정책),

민주주의 국가니까 민주주의를 실시하고(정보와 문화의 개방, 각종 규제 철폐) 등등.

 

그의 행동은 거침이 없고, 주저함이 없었으며, 아직까지 대한민국은 그가 시작점을 이룬 모든 그 지점 이상의 새로운 것이 나온 바 없다. 

   

2008년 이명박 정부가 시작된 이래 대한민국의 민주주의는 후퇴를 거듭하고 있다. 

   

노무현 전 대통령의 서거에 따라 국민의 분노가 들끓고 있을 때 '행동하는 양심'이 어떠해야 하는지를, 그리고 그것이 어려운 것이 결코 아니라는 점을 설명한 김대중의 말은  대한민국 국민들에게 얘기하는 그의 마지막 단순명료한 지침이 되었다고 생각한다. 

   

"여러분께 간곡히 피맺힌 마음으로 말씀드립니다. 

'행동하는 양심'이 됩시다. 

행동하지 않는 양심은 악의 편입니다. 

독재정권이 과거에 얼마나 많은 사람들을 죽였습니까.

그분들의 죽음에 보답하기 위해, 우리 국민이 피땀으로 이룬 민주주의를 지키기 위해서, 우리가 할 일을 다해야 합니다.

 

사람들의 마음속에는 누구든지 양심이 있습니다.

그것이 옳은 일인 줄을 알면서도 행동하면 무서우니까, 시끄러우니까, 손해 보니까 회피하는 일도 많습니다.

그런 국민의 태도 때문에 의롭게 싸운 사람들이 죄 없이 세상을 뜨고 여러가지 수난을 받아야 합니다.

그러면서 의롭게 싸운 사람들이 이룩한 민주주의를 우리는 누리고 있습니다.

이것이 과연 우리 양심에 합당한 일입니까.

 

자유로운 나라가 되려면 양심을 지키십시오.

진정 평화롭고 정의롭게 사는 나라가 되려면 행동하는 양심이 되어야 합니다.

방관하는 것도 악의 편입니다.

독재자에게 고개 숙이고, 아부하고, 벼슬하고 이런 것은 말할 필요도 없습니다.

우리나라가 자유로운 민주주의, 정의로운 경제, 남북 간 화해 협력을 이룩하는 모든 조건은

우리의 마음에 있는 양심의 소리에 순종해서 표현하고 행동하는 것입니다.

 

선거 때는 나쁜 정당 말고, 좋은 정당에 투표해야 하고, 여론조사도 그렇게 해야 합니다.

 

우리 모두 행동하는 양심으로 자유와 서민 경제를 지키고, 평화로운 남북 관계를 지키는 일에 모두 들고 일어나서 

안심하고 살 수 있는 나라, 희망이 있는 나라를 만듭시다."

   

 

김대중은 대한민국 최초로 노벨상(노벨 평화상)을 수상받은 분이다. 

김대중이 살아온 삶이 인류에게 가치가 있는 삶이라는 것이 전세계적으로 인정받은 것이다. 

 

실제 외환위기로 인해 나락에 떨어진 대한민국에 외국의 많은 투자가 있었다. 

엄밀하게 말해 그 투자는 '대한민국'에 투자된 것이 아니라 '김대중이 대통령으로 있는 대한민국'에 투자된 것이다. 

김대중이라는 명품 브랜드가 대한민국이라는 불량제품을 회생시킨 것이다. 

 

그런 측면에서 정치적으로 그를 지지하든 지지하지 않든, 대한민국의 모든 사람들은 김대중에게 빚을 지고 있다고 할 수 있다. 

 

과연 김대중과 같은 인물이 대한민국에 다시 나올 수 있을까?

 

물론 나는 다시 나올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다만 그런 훌륭한 인물이 목숨을 걸고 한 시대를 버텨내야 하는 그런 세상 만큼은 다시 오지 않길 바란다. 

 

김대중 자서전을 접했던 시간들은 나에게도 행복한 시간이었다.

 

특히 내가 신문을 읽기 시작하고 대한민국 '사회'라는 것을 인식하기 시작했던 1985년 이후 김대중의 행적은, 그 당시 내가 그를 어떻게 바라보고 평가했는지에 대한 기억과 맞물렸고, 기억나는 굵직굵직한 사건들에 대해 나의 느낌은 이랬는데,  김대중의 평가는 어떠했는지를 쫓아가면서 위대한 거인의 발자취를 따라가는 듯한 느낌이 드는 뿌듯한 경험을 했다. 

 

물론 눈물도 많이 났다.

그 눈물이 날 때마다 그저 소심한 소시민의 삶을 사는 내가 한심하게 느껴지기도 했다. 

 

김대중 대통령님께 이 말씀을 드리고 싶다.

 

"대한민국에 태어나 주셔서, 그 힘든 삶을 버텨내 주셔서, 그리고 대통령이 되어 주셔서 너무나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