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양계의 형제를 찾아서 - 4. Ecce Homo

2015. 9. 23. 10:531. 별과 하늘의 이야기/하늘 에세이

 

지금까지 생명을 보듬어 낼만한 태양계의 천체들,
그리고 그 천체들에 정말 생명체가 있다면 그 생명체들의 모습이 어떠할지를 한 번 상상해봤습니다.

 

그런데 이 태양계에 생명이 있다면 과연 그것은 우리에게 어떤 의미일까요?

 

혹자는 지구에서 기원하지 않는 생명체를 발견한다면 우리가 이곳 지구에서 지켜온 모든 가치체계가 붕괴될 거라 말합니다.

좀더 구체적으로 인류의 가장 오래된 가치체계 중 하나인 각 종교의 교리체계가 무너질 거라고도 얘기합니다.

 

글쎄요. 과연 그럴까요?

 

개인적으로 저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습니다.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 이유는 그 반대 상황을 고려하기 때문입니다.

 

설령 우주선이 유로파를 제집 드나들듯 드나들게 되고, 유로파의 바다에 지구에서처럼 잠수함들이 누비는 상황이 되었음에도 불구하고
아무런 생명체가 발견되지 않았다고 가정해보죠.

 

그럼 그게 과연 우리 지구가, 우리 인류가 우주에서 독보적인 장소이고 독보적인 존재라는 증거가 될까요?
제 생각에는 오히려 우리는 정말 홀로 남은 존재인가? 하는 고독감만이 더 짙어질 거라 생각합니다.


 

태양계 어딘가에서 생명체가 발견되었을 때 그 의미에 대해서는 칼 세이건의 사상이 가장 의미있고 아름다운 것 같습니다.

 

 

 

이 사진은 지난 5월 강원도 인제 어느 산골짜기에서 촬영한 것입니다.
오랜만에 많은 별지기들이 함께 너무나 청명한 하늘을 만끽한, 개인적으로 정말 좋은 기억으로 남은 하늘 중 하나였습니다.

어떤 별지기들은 부지런히 이런 하늘이 아니라면 볼 수 없는 희미한 NGC나 IC 목록상의 천체들을 찾아보고 있었고
어떤 별지기들은 선명한 사진을 얻기 위해 부지런히 가이드 시스템을 돌리고 있었죠.

 

그런데 태양계에서 생명이 발견된다면 이제 저 하늘의 의미는 또 달라질 것입니다.

바로 별빛만큼이나 가득한 생명을 바라보게 된다는 것이죠.

영겁의 공간이라 할 수 있는 우주는 어딘가에서 지구의 나를 바라보고 있을 또다른 생명체의 진동을 느끼는 순간
가슴속에 오로지 담겨질 수 있는 한정된 공간으로 바뀔 것입니다.

 

이제 우리는 별들을 보는 게 아니라, 이 우주에 가득한 생명의 빛을 보게 되는 것이죠.

더더군다나 그 생명체가 이른바 ‘생명체 서식 가능지역’이라 불리는 럭키 골드 지역에서 발견된 것이 아니라면 정말 별 하나당 생명체 하나라는 말을 아무렇지도 않게 할 수 있게 될 것입니다.


 

그런데 저는 여러분께 이러한 의미에 더해서 한 가지를 의미를 더 생각해 주십사 부탁드리고 싶습니다.

바로 이 분, 그저 암울했던 중세시대의 분위기를 이야기하기 위한 소품으로 잠깐 언급되고 지나가는 이 분을 기억해 달라는 것입니다.

 

 

 

아시다시피 브루노는 중세 카톨릭 교회에 의해 이단으로 몰리고 화형을 당했습니다.
그런데 사실 종교재판이라는게 조선시대 역모재판처럼 그렇게 가혹하기만 한 재판은 아니었습니다.

 

그 순간 짐짓 자신의 신념을 거둔다면, 그러니까 말로 ‘내가 잘못 생각했다.’라고 인정만 하면 사형까지는 당하지 않을 수 있었다는 것입니다.

갈릴레오는 그 종교재판에서 자신의 신념을 거두는 서약을 했습니다.
하지만 그렇다고 오늘날 갈릴레오가 자신의 신념을 배반했다고 비난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왜 브루노는 끝내 자신의 신념을 거두지 않았던 걸까요?

브루노가 감옥에 갇혀 있던 9년 동안 어떤 일들이 있었는지 자료는 거의 남아 있지 않습니다.
다만 근대 이탈리아의 역사가인 루이지 피포가 1940년 발견한 일부 자료를 통해 그의 여덟 가지 죄목이 전하고 있습니다.

 

- 카톨릭의 교리와 성직자들의 가르침을 따르지 않음.
- 삼위일체와 예수 그리스도의 신성, 그리고 죽음으로부터의 부활을 믿지 않음.
- 예수가 그리스도임을 인정하지 않음.
- 성모마리아의 원죄없는 잉태를 인정하지 않음.
- 미사와 성체성사의 신비를 인정하지 않음.
- 여러 개의 세상이 존재하며 각각의 세상이 영원함을 주장함.
- 윤회를 믿으며 인간의 영혼이 동물에게 주입될 수 있음을 주장함.
- 마술을 행하며 점을 침.

 

첫번째부터 다섯번째까지는 카톨릭의 핵심 교리를 부정한다는 내용의 죄목입니다.
제가 개인적으로 천주교 신자이기 때문에 여기 나열된 교리가 천주교에서 얼마나 핵심에 해당하는 내용인지를 잘 알고 있습니다.

 

여섯번째 죄목이 바로 우리가 일반적으로 예로 드는 바로 그 그 내용이죠 .
무한한 우주에 생명이 존재하는 세계는 무한이 많다는 것.

 

그리고 나머지 두 개 죄목이 더 있습니다. 이른바 윤회론을 이야기하고 마술을 부린다는 거죠.

 

 

혹자는 브루노의 무한 우주론이 그저 사변적인 개념이라서 과학적으로 평가해 줄 수 없다고 말하곤 합니다.
하지만 그런 기준이라면 코페르니쿠스도 마찬가지죠.
코페르니쿠스의 지동설 역시 사변적 결과물이지 결코 과학적 탐구의 결과는 아니었습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우리가 코페르니쿠스를 그저 몽상가로 치부하지는 않습니다.

 

로마 카톨릭은 갈릴레오의 재판에 대해 이미 유감을 표명했습니다.
그러나 여기 죄목을 보시면 아시겠지만 브루노에 대해서는 절대 그와 같은 조치를 취하지 않을 겁니다.
왜냐하면 브루노에 대해 잘못했다고 얘기하면 교회의 핵심 교리를 부정하는 꼴이 되어 버리기 때문입니다.

분명한 것은 브루노 역시 이 점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을 것이라는 점입니다.


그렇습니다.

 

브루노는 자신의 신념을 무섭도록 지켜낸 사람입니다.
그 신념을 위해서도 죽음도 마다하지 않은 사람이었죠.

 

브루노의 일생이 그렇습니다.

그는 비록 천주교의 수도사였지만 그 테두리에 만족하지 않았죠.
그는 끊임없이 기존의 권위에 도전했고, 으레 사람들이 그러려니 생각하는 것에 의심을 거두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그의 인생도 평탄하지 못했죠.

그는 제네바에서 칼뱅파와 맞서야 했고, 옥스퍼드에서 옥스퍼드 대학교수들의 기득권과 맞서야 했습니다.
독일에서는 다시 루터파에게 추방되어야 했죠.

 

그 고단한 삶 속에서 그는 현실과 타협하는 대신, 자신의 신념에서 위안처를 찾았습니다.
그리고 결국 그 신념의 재단에 자신의 목숨을 바치게 되죠.

 

 

NASA의 수석 과학자 엘렌 스토판의 이야기처럼 바로 우리 세대에 이 태양계에 또다른 생명체가 있음이 밝혀지기를 바랍니다.

그리고 새로운 생명체가 발견되었다는 그 소식이 뉴스를 가득 채울 때 저는 여러분이 아주 잠깐이나마 이걸 기억해 주시기를 바랍니다.

 

그것이 사실인지 아닌지는 증명할 방법이 없지만, 

어쨌든 모든 사람들이 그렇다고 생각하는 것을 반대했다는 죄로 

처형당해야 했던 한 사상가가 있었다는 사실을 말입니다.
그리고 그 사람이 조르다노 브루노라는 사람이었다는 사실을 말입니다.

 

 

감사합니다.

 

 

- 끝 -



본 내용은 2015년 9월 19일 대구에서 개최된 2015 대한민국 별축제의 첫번재 천문강연 프로그램으로 강연된 내용입니다.

총 4회에 걸쳐 나누어 개재합니다.

 

 

태양계의 형제를 찾아서 
1. 현재의 태양계 탐사 개괄 https://big-crunch.tistory.com/12348222
2. 물의 세계 https://big-crunch.tistory.com/12348223
3. 생명의 가능성 https://big-crunch.tistory.com/12348226
4. Ecce Homo : 현재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