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 9. 4. 14:26ㆍ1. 별과 하늘의 이야기/하늘앓이 - 별지기의 이야기들
1. 울산바위 은하수
지난 3월.
네이버 밴드의 한 모임에서 울산바위 위로 피어오르는 미리내 사진을 봤습니다.
울산바위를 남쪽으로 바라볼 수 있다는 것.
그래서 울산바위 위로 피어오르는 미리내를 볼 수 있다는 것을 저로서는 이 사진을 보고 처음 알게 되었죠.
워낙 속초라는 도시를 좋아하고 울산바위도 너무너무 좋아하다보니 올해 반드시 울산바위 미리내 사진을 찍겠다고 마음을 먹었습니다.
2. 사전답사.
그래서 3월 31일, 사진이 촬영된 금강산 화암사 성인대라는 곳을 사전답사차 찾아가게 되었습니다.
때는 월령 보름이었고, 미세먼지가 극성을 부리고 있던 때였습니다.
별시즌이 아니었기 때문에 순전히 사전답사만을 목적으로 맘 편하게 가봤습니다.
금강산 화암사라는 멋진 사찰도 보게 되었고 그 곳에 차를 세우고 고작 1.2킬로미터, 하지만 저의 저질체력으로는 힘들기 그지없는 산길을 걸어올라 울산바위를 코앞에서 내려볼 수 있는 지점까지 갈 수 있었습니다.
그 멋진 울산바위를 거의 같은 높이에서 바라볼 수 있다는 것이 너무 황홀하기만 했습니다.
하지만 카메라를 열어 화각을 잡기 시작하자 8시 방향에 화각을 치고들어오는 바위들이 눈에 걸렸죠.
그 바위들이 없어야 사진이 근사할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하지만 저 바위들을 없애려면 제가 저 바위 뒤로 가는 수밖에 없었죠.
문제는 저 바위까지 가는 길이었습니다.
약간이라도 미끄러지면 추락할 것 같은 아찔한 낭떨어지가 오른쪽에 이어져 있었습니다.
심하지는 않지만 약간의 고소공포증도 있는 터라, 저 바위까지 갈 수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은 전혀 들지 않았습니다.
때마침 바람도 심하게 불고 있었습니다.
제가 서 있는 지점과 저 바위 사이가 미시령을 통과한 바람이 그대로 지나가는 바람골 같았습니다.
도저히 가볼 엄두를 내지 못할 때 까마귀 두마리가 앞으로 날아와 잠시 정지비행을 하는 듯 하더니 유유하게 미시령터널 쪽으로 내려갔습니다.
망설이기를 몇 번 하다가 까마귀를 보고 용기를 냈죠.
(제가 개인적으로 까마귀를 좋아합니다. 고구려의 기상을 상징하는 새죠. ^^)
지고간 가방을 다 내려놓고 카메라 하나 달랑 들고 엉금엉금...정말 엉금엉금 기어 바위 뒤까지 용케 걸어갔습니다.
어찌어찌 기어간 목표지점에서 바라본 울산바위는 황홀하기 그지없었습니다.
이 울산바위 위로 피어오를 미리내를 생각하니 생각만으로도 정말 행복했습니다.
이제 돌아오는 그믐때 카메라를 지고 올라오면 될 일이었죠.
그렇게 엉금엉금 다시 되돌아나와 성인대를 내려왔습니다.
3. 1차 촬영여행.
하지만 막상 그믐을 기다리는 맘은 편치 않았습니다.
몇가지 맘이 편치 않은 이유들이 있었죠.
우선 그 위험한 길을 다시 통과해야 하는 것에 대한 걱정이었습니다.
최대한 안전하게 통과하려면 밝을 때 들어가서 밝을 때 나와야 하고 그 얘기는 한밤중을 촬영지점에서 견뎌내야 한다는 얘기였습니다.
산 위의 한 밤 날씨는 한 겨울일게 뻔했습니다.
결국 촬영장비뿐만 아니라 추운 밤을 버텨낼 준비도 해야 한다는 것인데 과연 제 체력에 그 짐들을 짊어지고 올라갈 수 있을지도 걱정됐습니다.
또 한가지.
관측지에서 혼자 밤을 새 본적은 많이 있습니다.
그 때마다 제 바로 옆에 또는 지근거리에 흰둥이(제 차 K5 이름입니다. ^^)가 같이 있었죠.
하지만 성인대에서는 완전히 혼자 밤을 새는 거라서 그것도 은근 스트레스가 되었습니다.
(그러고보니 자동차가 주는 심리적인 안정감도 상당하다는 것을 깨닳았습니다.)
더더군다나 함께 가면 어떻겠냐고 떠본 친구는 겨울 날씨일게 뻔한 설악산에서 대피소도 아닌 곳에서 밤을 새는 건 자살 행위라고 속을 긁어놓았습니다.
아니 그걸 누가 모르냐고.....
결국 혼자 가야 할 길이었죠.
그렇게 기대반, 걱정반으로 기다리고 기다리던 4월의 그믐이 왔습니다만, 날씨가 잔뜩 흐렸습니다.
기대는 아쉬움으로 걱정은 안도로 바뀌었죠.
그렇게 한 달을 더 보내야 했습니다.
그리고 5월의 그믐이 다가왔죠.
이번에는 날씨가 좋을 것으로 예보되었습니다.
5월 19일.
드디어 집을 나섰습니다.
다행히 한 달이 더 지나면서 추위에 대한 고민은 한결 덜어졌습니다.
금강산 화암사에 차를 주차하고 신발장에서 거의 10년만에 꺼낸 등산화를 질끈 동여매고
짐가방, 카메라가방, 삼각대를 메고 무엇보다 마음을 비장하게 먹고 성인대에 올랐습니다.
그런데 막상 도착한 성인대는 지난 3월 제가 사전답사를 왔을 때와는 완전히 다른 풍경이 펼쳐지고 있었습니다.
우선 헬기착륙장에 많은 텐트들이 있었죠.
아찔한 낭떠러지에 도무지 어떻게 건너야 할지 걱정태산이었던 그 길은 등산을 즐기는 남녀노소들이 왔다갔다왔다갔다 하고 있었습니다.
솔직히 말씀드리자면 저는 길을 나서면서 이곳에서 죽어도 좋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그만큼 출발하는 길이 비장(?)하기 이를데 없었죠.
그런데 정작 등산을 즐기시는 분들에게 이 길은 그냥 평범한 산길이었던 셈입니다.
너무나 허무해서 헛웃음이 나왔죠. ^^
결국 긴장이 많이 풀리긴 했지만 그래도 저는 여전히 엉금엉금 그 길을 건넜습니다.
그리고 그날 드디어 울산바위 위로 피어오르는 미리내를 만났습니다.
밤을 새며 느낀 이곳은 참 독특한 곳이었습니다.
우선 속초시내의 빛공해가 왠만한 도시 못지 않습니다.
그런데 그 빛공해가 울산바위의 음영을 명확하게 만들어주고 있었죠.
한편 그 빛공해에도 불구하고 하늘을 가로지르는 미리내는 선명하게 보였습니다.
성인대에서 제가 자리잡은 곳은 신선암이라는 곳이었습니다.
속초시는 물론 남쪽 울산바위까지 아무런 장애물이 없이 탁트인 공간을 제공해주는 저 앞쪽 넓직한 바위를 신선암이라고 하더군요.
바위 위에는 움푹 패인 곳들이 있었는데 그곳에 빗물이 고이고, 그 고인 빗물을 터전삼아 무당개구리들이 살고 있었습니다.
멀리 바다가 보이고, 속초시가 보이고, 별들이 피어오르고, 미리내가 가로지르고,
무당개구리들의 노랫소리가 추임새를 만들어내는 멋진 밤을 보내고 왔습니다.
4. 2차 촬영여행.
사실 울산바위를 바라보며 촬영한 사진은 인터넷에 넘쳐나는 사진 중 하나입니다.
꼭 별을 보는 사람이 아니라 하더라도 사진 촬영 자체를 즐기시는 분들에게도 이곳은 잘생긴 울산바위 위로 피어오르는 미리내를 촬영하는데
이미 핫스팟으로 소문이 자자한 곳이었습니다.
그래서 이왕 울산바위 은하수를 찍어보기로 한 거, 남들과는 다른 시선으로 바라본 나만의 울산바위 미리내를 찍고 싶은 생각이 간절했습니다.
때마침 꼭 찍고 싶은 화각이 생각났죠.
낙타바위에서 신선암으로 내려가는 사잇길에 움푹 패인 작은 골짜기가 있습니다.
그 곳에서 사진을 찍으면 울산바위에서 피어올라 바위골짜기를 가로지르며 피어오르는 미리내를 찍을 수 있을 것 같았습니다.
저 곳에 카메라를 두면 바위틈으로 나타난 울산바위와 하늘을 연출해 낼 수 있고 그 하늘을 따라 미리내가 피어오르는 사진을 찍을 수 있겠다 싶었죠.
6월 23일, 그 장면을 마음에 그리며 다시 성인대를 찾았습니다.
하지만 이 날 성인대에는 칼바람이 몰아치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이 날 알게 됐죠.
제가 카메라를 설치하고자 했던 그 작은 바위골을 만든 것이 바로 바람이라는 사실을 말입니다.
아늑하기만 할 것 같았던 그 틈이야말로 매서운 바람을 정통으로 맞는 곳이었습니다.
우겨들어온 바람들이 그 안에서 맴돌이까지 하고 있었죠.
그래서 바람에 최대한 영향을 덜 받도록 카메라를 낮게 설치했습니다.
6월 23일은 월령 9일이었습니다. 달은 새벽 2시에 질 예정이었죠.
달이 지면 그 모습을 드러낼 미리내에 초점을 맞춰 카메라를 설정한 후 릴리즈를 눌러 잠근 후 서둘러 그 자리를 벗어났습니다.
그리고 최대한 바람을 피할 수 있는 곳에 몸을 숨기고 그 밤을 보냈습니다.
밤새 바람이 어마어마하게 몰아쳤습니다.
제 생전 마른 하늘에 이렇게 바람이 몰아칠 수 있다는 것을 그곳에서 알게 됐죠.
하지만 모진 바람은 먼지가 쓸려나간 깨끗한 하늘을 보여줬고,
유난히 총총하게 빛나는 별들이 연출하는 그 은하수는 너무나 아름다왔습니다.
한여름의 동해바다는 해가 일찍 떠오릅니다.
이미 3시 10분부터 하늘 한켠에 붉은 물이 들기 시작했죠.
카메라를 챙기기 위해 다시 바위틈으로 기어들어갔습니다.
그런데 예상치 못한 일이 일어났습니다.
대충 삼각대에 묶어놨던 릴리즈가 풀려 바람에 이리 부딪히고 저리 부딪히고 있었습니다.
그 와중에 셔터 릴리즈가 풀려 사진을 몇 장 찍지도 못하고 카메라는 멈춰 있는 상태였습니다.
바람의 영향을 덜받기 위해 삼각대 다리를 최대한 벌려 카메라를 낮게 설치했는데 나중에 사진을 보니 그 상태에서도 카메라는 크게 흔들렸습니다.
결국 여기서 몇가지 배움을 얻었죠.
첫째. 삼각대를 세우고 센터컬럼에 돌덩이를 달아 안정시키는게 바람을 대비하는데는 더 효과적이라는 점.
둘째. 셔터릴리즈를 비롯해서 바람을 심할 때는 뭐 하나 흔들리는게 있어서는 안된다는 점.
즉, 확실하게 결박을 해 놓지 않으면 반드시 문제가 되다는 점이었습니다.
사진을 얻지 못해 마음도 크게 상하고 밤새 시달린 바람에 몸도 많이 헝클어진 거지꼴로 하산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5. 3차 촬영여행.
7월 14일.
어느덧 7월로 접어들었습니다.
새벽에 더 이상 속옷까지 껴입을 필요까진 없어졌고, 그 덕에 배낭이 조금은 더 가벼워 졌습니다.
다시 성인대에 올라 지난번 촬영을 실패한 바위틈으로 들어갔습니다.
바람이 없지는 않았지만, 몸까지 날아가버릴것만 같았던 지난번의 칼바람은 불지 않았습니다.
삼각대 센터컬럼에 돌덩이를 매달아 안정시키고 셔터릴리즈의 버튼에도 테이프를 달고 릴리즈 자체도 삼각대에 테이프로 말아
지난번과 같은 문제가 발생하지 않도록 만반의 준비를 갖췄죠.
그렇게 제가 원하던 그 화각의 그 미리내를 담을 수 있었습니다.
저는 지금까지 제가 찍은 은하수 사진이 마음에 들었던 적은 한 번도 없었습니다.
그냥 제 실력이 딱 거기까지라고 생각하고 있었죠.
그런데 이 사진은 처음으로 '제 마음에 든다.'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이 앵글을 얻기 위해서 성인대를 그렇게 찾아왔던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 정도였습니다.
영광스럽게도 이 사진은 EarthSky라는 팔로워 120만의 미국 비영리과학문화재단에도 소개가 되었습니다.
출처 : https://www.facebook.com/EarthSky/photos/a.61619521852/10155271224481853/?type=3&theater
페이스북 하시는 분들 중 따봉충 - '좋아요'를 좋아하는 사람들 ^^;;; - 아니신 분 없으실 텐데요.
무려 705개의 좋아요를 얻었습니다.
가문의 영광입니다. ^^;;;;
해가 떠오르기전 이른 아침,
백두대간을 넘어온 바람과 동해바다에서 불어온 바람이 설악산 하늘에서 부딪히면서 그리고 동해바다 저 너머에서 태양이 올라오면서 오색찬란한 구름들이 하늘을 장식하고 있었습니다.
그 구름들을 바라보며, 그리고 떠오르는 태양을 바라보며 얼마나 행복했는지 모릅니다.
사진 17> 밤새 별을 보고 맞는 아침은 항상 특별합니다.
영혼이 하늘을 향해 한뼘 즈음은 자라난 느낌을 받죠.
때때로 하늘은 평소 볼 수 없는 멋진 모습을 연출하며 한밤을 새워낸 별지기들을 위로해 주곤 합니다.
지난 7월 15일 새벽, 성인대에서 맞은 하늘도 그랬습니다.
6. 성인대와 함께 했던 행복했던 봄, 여름
올해의 미리내 시즌도 저물어가고 있습니다.
성인대의 은하수 시즌은 더 빨리 저물죠.
성인대에서는 울산바위 위로 피어오르는 은하수가 제격입니다.
미리내가 보이기 시작하는데 이미 울산바위를 지나간 상태라면 뭔가 이빨이 빠진듯한 느낌을 받게 되죠.
사진 15>에서처럼 바위틈에서 찍는 미리내라면 울산바위에서 좀 벗어나도 균형감이 있어 괜찮습니다만
이 장면도 사실 빛공해가 잦아든 새벽에 담을 수 있었다면 더 괜찮았을 겁니다.
한편 지난 8월에는 이곳 설악산 성인대에 페르세우스 별비를 담으러 가기도 했습니다.
역시 너무나 행복한 기억으로 남아 있습니다.
참고 : https://big-crunch.tistory.com/12349612
일단 올해 미리내 촬영은 여기서 접고 내년 봄까지는 또 안시관측에 열중할 생각입니다.
성인대에는 여전히 담고 싶은 앵글이 남아 있습니다.
어마어마하게 몰아치는 바람과 미리내를 함께 담아내는 앵글이죠.
아마 내년에는 하늘과 설악산께서 허락해 주시지 않을까 싶습니다.
올해 저는 성인대에서 울산바위 위로 바라보는 미리내를 볼 수 있다는 걸 알게 되었고
그 미리내를 담으러 다니면서 행복한 봄과 여름을 보낸 것 같습니다.
별지기가 된다는 건 참으로 멋진 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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