칠레일식여행 16. 에필로그

2019. 11. 26. 16:321. 별과 하늘의 이야기/2019 칠레 일식 여행기

1. 

 

칠레 여행을 다녀온 후 안주인마님께서는 3일동안 크게 앓으셨습니다. 

 

나중에 스스로 진단을 내리시더군요. 

꿈에서 깨어나기 싫어서 그랬던 거라구요. 

 

저는 아예 꿈속으로 걸어들어가기로 작정했습니다. 

회사에 사표를 냈죠.

 

생업을 유지하며 어마어마한 스트레스를 받고

그 댓가로 어마어마한 돈을 벌고

스트레스를 삭여내기 위해 돈을 펑펑 쓰고

 

이상의 과정을 쳇바퀴 돌듯 돌고 있었던 것이 그 동안의 제 삶이었습니다. 

하지만 꿈을 꾸는 것만으로 행복한 인생은 이제 그만두기로 했습니다. 

목표를 향해 절차를 정해 움직이며 그 꿈을 이루기로 했죠. 

꿈을 이루려면 움직여야 합니다. 

 

아무런 설레임 없었던 삶을 뒤로하고 가슴이 시키는대로 살기로 했습니다. 

 

 

2. 

 

칠레 여행을 떠나기 일주일 전이었던 2019년 6월 말, 출판사로부터 연락이 왔습니다. 

 

올해 9월 딥스카이 원더스를 출간하기로 했다는 소식이었습니다. 

지난 2월 번역서 출간 계약을 맺긴 했지만 그 동안 아무런 소식이 없어 이대로 출판이 엎어지는 건 아닌가 싶었습니다. 

다행이다 싶었고 칠레 여행을 다녀온 후 성심껏 돕겠다고 말씀 드렸죠. 

 

칠레 여행을 다녀온 후 딥스카이 원더스 출간을 위해 번역 원고를 검토하고 검토하고 또 검토해야 했습니다. 

회사에서는 퇴사 전 마지막으로 프로젝트를 하나 해 달라는 부탁이 있어 출퇴근 거리가 꽤 걸리는 광화문으로 출퇴근을 해야 했습니다. 

한국아마추어천문학회에서는 학회원 전부가 일년에 한 번 모이는 천문축제한마당을 준비해야 했습니다. 

 

생활 속에 쉼표 하나 찍을 수 없는 빡빡한 하루하루가 이어졌습니다. 

그 시간을 어떻게 보냈는지 지금 돌아보면 저 자신이 대견하게 느껴질 정도입니다. 

 

어쨌든 그 모든 것을 다 견뎌내고 해냈습니다. 

 

2019년 9월 27일 딥스카이 원더스 한국어판이 세상의 빛을 보게 되었고, 

다행히 많은 분들께서 사랑해 주시는 책이 되었습니다. 

 

 

 

사진 1> 교보문고 교양과학도서 코너 매대에 자리잡고 있는 딥스카이 원더스 한국어판

 

3. 

 

라실라 천문대에서 있었던 일입니다. 

 

프로그램에는 분명히 NTT 망원경과 3.6미터 망원경 투어 프로그램이 있었음에도 

아무리 기다려도 그 투어 프로그램에 참여할 수가 없었습니다. 

 

그 날 칠레 대통령이 예정에 없이 라실라 천문대를 방문면서

방문객 프로그램이 모두 취소되고 주요 시설의 출입이 금지된 것이라는 사실을 나중에 알 수 있었습니다. 

 

지금 칠레는 격렬한 시위에 휩싸여 있습니다. 

곪을데로 곪은 양극화와 불공정이 지하철 요금 인상을 계기로 터져나온 것이라고 합니다. 

 

지극히 당연한 현상입니다. 

 

칠레는 라틴 아메리카에서, 아니 어쩌면 전 세계에서 정치적으로 가장 역동적이고 선진적인 체질을 가진 시민들이 있는 나라입니다. 

 

투쟁에서 승리하는 위대한 칠레 시민들의 모습을 볼 수 있기를 희망합니다. 

 

 

4. 

 

 

사진 2> 앞마당천문대 : 경남 산청 간디숲속마을 내에 다섯평 남짓한 작은 임대주택을 얻어 '채울집'이라는 이름을 붙였습니다. 

         이곳에서 틈틈이 하늘을 공부하면서 한없이 모자란 제 자신을 조금씩 채워나가겠습니다. 

 

지금 저는 경남 산청에 내려와 있습니다. 

이곳에 1년 동안 있으며 그 동안 만나지 못한 하늘을 만나고 시골에서 사는 법을 익힐 생각입니다. 

 

그 시간이 지나면 대한민국에서 내 몸 하나 누일 수 있는 곳을 찾아 또 움직여볼 생각입니다. 

어디선가에 자리가 정해지면 그곳에 천문인마을을 세우려고 합니다.

 

그 천문인마을은 한분한분 보석처럼 영롱하게 빛나는 대한민국 아마추어 별지기들의 노력과 성과를 세상에 알리는 한편,  

대한민국의 밤하늘을 옹호하고 지켜내는 굳건한 디딤돌이 될 것입니다. 

 

읽고 싶은 책이 많습니다. 

하고 싶은 것도 많습니다. 

 

제게 허락된 아주 짧은 시간동안 과연 제가 하고 싶은 것을 얼마나 할 수 있을지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분명한 건 이겁니다. 

저는 지구에서 허락된 그 짧은 시간동안 가슴이 시키는 대로 살다가 갈 것이라는 사실 말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