칠레일식여행 15. 뜻밖의 여정

2019. 11. 26. 14:021. 별과 하늘의 이야기/2019 칠레 일식 여행기

공항 근처에 있는 시티 익스프레스 호텔이라는 곳에 여장을 풀었습니다. 

오랜동안의 장거리 여행에, 복잡한 산티아고 관광에, 즐거운 건 즐거운 거지만 지치기도 상당히 지쳤습니다. 

 

귀국하기까지 총 두 번에 걸친 장거리 비행을 또다시 맞닥뜨려야 했기 때문에 푹 쉬는게 무엇보다도 중요한 일이었습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칠레에서의 마지막 밤을 그냥 보낼 수도 없었죠. ^^

무작정 근처에 마트가 있을까 하고 나가 보았지만 공항 근처 마을들은 무척이나 휑뎅그렁했고 적당한 가게 하나 보이지 않았습니다.

 

그렇다고 포기할쏘냐~ 

골목골목을 돌아다니다보니 외국에 나가면 으레 만날 수 있는 철창이 둘러처져 있는 술 판매점을 만날 수 있었습니다. 

 

 

 

사진 1> 사실 외국에서 술을 파는 곳이라고 하면 이렇게 철창이 둘러쳐져 있는 게 자연스러운 모습이죠. 

 

그리고 근처에 있는 작은 구멍가게에서 독특한 안주거리를 득템했는데요. 

우리나라로 치면 편육같은 고깃덩어리였습니다.

 

 

 

사진 2> 돼지고기를 피와 기름과 함께 묵혀 굳힌 듯한 음식입니다. 정말 너무너무 맛있었습니다. ^^

        

 

 

사진 3> 칠레에서의 마지막 밤 만찬. 

         디아블로 다크레드는 우리나라에서도 쉽게 구할 수 있는 와인이라는 사실을 알고 좀 실망하긴 했지만 맛은 훌륭했습니다. 

         짐속에 남아 있는 치즈, 소시지를 모두 탈탈 털어 칠레 마지막 만찬을 만들었습니다. 

        

그렇게 만찬을 즐기던 중에 메일 박스에 메일이 한통 도착했습니다. 

 

Important Information about Your BA250 Flight... 어쩌구저쩌구하는 메일 제목이 보이더군요.

메일을 열었더니 비행기 연착 소식이었습니다. 

제가 탑승하기로 예정되었던 비행기가 런던에서 이륙한 후 기술적 문제가 발생해서 런던으로 다시 회항했다고 하더군요.

그러면서 출발 예정 시간이 최소 14시간 이상 밀릴 거라는 글이 이어졌습니다. 

 

헉...

런던에 도착하면 서울행 비행기와의 간격은 두 시간에 지나지 않았습니다. 

즉, 서울행 비행기도 순연될 수밖에 없다는 얘기였죠. 

또한 예정대로 내일 점심시간에 체크아웃을 한다면 공항에서 그 다음날 새벽까지 무려 16시간 이상을 기다려야 하는 상황이 발생한 것입니다. 

서둘러 로비로 내려가 비행기 연착 소식을 설명하면서 체크아웃 시간을 연장할 수 있는지 물어 보았습니다. 

친절한 프론트 직원이 추가 요금 없이 내일 밤에 체크아웃할 수 있도록 해 주겠다고 하더군요.

 

칠레에서는 늘 그랬던 것 같습니다. 

뭔가 도전할만한 상황이 여러번 생겼지만 항상 친절한 누군가가 나타나 도움을 주었죠. 

 

이튿날 아침, 렌트카를 반납할 겸, 상황을 확인할 겸 공항으로 향했습니다. 

렌트카를 반납하고 영국항공 부스로 가서 연착 상황을 다시 한 번 확인했는데, 뜻밖의 제안을 하더군요.

비행기는 런던에서 기술적인 문제를 해결하고 다시 출발하여 칠레 산티아고로 오고 있다고 했습니다.

새벽 4시에는 출발할 수 있으니 시간에 맞춰 나오라고 하면서 원한다면 힐튼 호텔 숙박권을 주겠다고 하더군요. 

 

와이 낫!!!

 

시티 익스프레스 호텔로 택시를 타고 돌아가 짐을 모두 챙겨들고 공항으로 다시 나와 런던항공이 마련해준 셔틀버스를 타고 힐튼 호텔로 향했습니다. 

 

 

 

사진 4> 힐튼 호텔 체크인.

         뜻밖의 5성급 호텔 힐튼호텔에서 또 한 번 칠레에서의 마지막 밤을 맞았습니다. 

         다른 것보다 럭셔리한 점심 식사와 저녁 식사를 대접 받은 게 가장 기억에 남습니다. 

        

새벽 2시, 

힐튼호텔에서 마련해 준 셔틀버스를 타고 공항으로 향했습니다. 

출국수속을 마치고 2019년 7월 7일 일요일 새벽 4시, 그 멋진 추억을 남겨준 칠레와 작별을 고했습니다. 

 

대서양을 날아오는 내내 낮이 찾아오고 다시 밤이 찾아왔습니다. 

런던에 도착했을 때 시간은 자정에 가까왔죠. 

비행기에서 내리자마자 영국항공 직원들이 나와 재편성된 연결편 항공권을 나눠주고 있었습니다. 

 

 

 

사진 5> 연결편 항공편을 받으려고 줄 선 사람들. 

 

다른 모든 사람들이 항공권을 받아들고 저마다 자리를 떴습니다. 

저와 안주인 마님 딱 둘만 남았죠. 

그런데 우리 항공권은 마련이 되어 있지 않았습니다. 

불안이 엄습하는 순간, 씩씩해보이는 영국항공 아주머니께서 항공권을 마련해 주겠다고 하며 일단 호텔로 가는 셔틀버스를 타는 곳으로 이동해 달라고 했습니다. 

셔틀버스를 타는 곳에서 다시 만난 영국항공 아주머니는 기다렸다는 듯이 항공권을 척 건네주시더군요. 

 

오잉?

새로 받은 항공권은 대한항공 항공권이었고 탑승시간은 이튿날 저녁인 7월 8일 저녁 7시였습니다. 

하루가 덤으로 주어지는 순간이었죠. 

 

 

 

사진 5> 런던에서 호텔 체크인, 

         영국항공이 런던에서 제공해준 숙소는 힐튼 가든 인 호텔이었습니다. 

 

 

 

사진 6> 맥주를 한 잔 사러 프론트에 내려간 김에 숙소에 물이 비치되어 있지 않아 컴플레인을 했더니 물과 함께 맥주 두 병을 서비스로 더 받았습니다. 

 

 

 

사진 7>영국항공이 준 연착대비용품. 

       연착이 있는 경우 공항에서 기다리는 사람들을 위해 주는 물품 같습니다. 

       그대로 칠레 여행 기념 굿스로 키핑했습니다. ^^

       

런던에서 뜻 밖에 하루가 생겼습니다. 

 

잔금이 빵빵하게 남은 런던대중교통 카드, 오이스터 카드도 있겠다, 서둘러 히드로 익스프레스를 다시 예약했죠. 

그렇게 선물로 주어진 하루를 어떻게 쓸지 고민하는데는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습니다. 

 

그리니치 천문대를 가기로 했죠. 

 

이튿날 아침 늦잠을 자고, 느긋하게 일어나 체크아웃을 하고 공항에 짐을 맡긴 후 히드로 익스프레스를 타고 이제는 너무나 익숙해진 페딩턴 역으로 향했습니다. 

 

 

 

사진 8> 너무나 익숙해진 히드로 익스프레스를 타고 역시 너무나 익숙한 패딩턴 역으로~

 

 

 

사진 9> 런던 지하철 역 노선도는 대한민국 서울 사람들에게는 아무것도 아닙니다. 

 

 

 

사진 10> 지하철 환승지점인 타워힐 풍경. 

           다시 만난 런던의 풍경 하나하나가 모두 선물이었습니다. 

 

 

 

사진 11> 타워 게이트웨이 역에서 그리니치까지 가는 열차는 서울의 1호선 열차처럼 계속 지상으로 이어져 있었습니다. 

           지하철을 타면 빠르긴 하지만 주변 풍경을 못 본다는게 너무 아쉬운 일인데 

           타워 게이트웨이에서 그리니치까지 이어진 선로는 계속 지상으로 이어져 너무나 좋았습니다. 

 

 

 

사진 12> 그리니치 역에서 그리니치 공원으로 이어진 길에 있는 아담한 런던의 거주지 풍경

 

 

 

사진 13> 그리니치 공원을 지나

 

 

 

사진 14> 드디어 그리니치 천문대에 도착했습니다. 

 

 

 

사진 15> 그리고 바로 이거!

           그리니치 천문대에 온 이유는 한 쪽 발은 동쪽에 한 쪽 발은 서쪽에 둬 보기 위함이죠. 

           바닥에 노란색 경계선이 경도 0도가 시작되는 본초 자오선입니다. 

           우리나라는 여기서 동쪽으로 127.5도 지점에 자리잡고 있습니다. 

 

 

 

사진 16> 윌리엄 허셜의 망원경.

           무려 475밀리미터 구경의 금속거울을 장착했던 윌리엄 허셜 망원경의 일부분입니다. 

           총 길이가 무려 12미터에 육박했던 그의 망원경은 1789년 제작당시 세계 최대의 망원경이었지만

           운용과 관리의 어려움으로 허셜이 직접 이 망원경을 사용한 것은 얼마 되지 않는다고 하더군요. 

           1840년 이후에는 더 이상 사용되지 않다가 1870년 망원경을 받치고 있었던 나무 가대들이 무너지면서 완전히 파괴되었다고 합니다. 

           어쨌든 윌리엄 허셜은 천왕성을 발견하기도 했으며 

           열정적인 관측으로 기록된 천체들은 훗날 신판일반천체목록, 즉 NGC 천체목록의 기반이 되었습니다. 

           그 열정적인 노력의 손길이 닿았을 망원경의 일부나마 접할 수 있어 얼마나 감격적이었는지 모릅니다. 

 

 

사진 17> 플램스티드 하우스 현판         

           존 플램스티드(John Flamsteed)는 영국 최초의 왕립천문학자이며 바로 그리니치 천문대를 세운 장본인입니다. 

           플램스티드는 별을 밝기 순이 아니라 적경이 커지는 순서대로 번호를 매겼고 그렇게 매겨진 번호가 지금도 일부 쓰이고 있습니다. 

 

 

 

사진 18> 그리니치 천문대에 남아 있는 여러 자오선의 흔적들, 

          2대, 3대, 7대 왕립천문학자를 역임한 에드몬드 핼리, 제임스 브래들리, 조지 비델리 에이리 등이 그은 자오선이 지금도 남아 있습니다.

 

 

 

사진 19> 그리니치 천문대 전경.

           뜻밖의 여정으로 런던 그리니치 천문대에 서 있다는 게 꿈만 같이 느껴졌습니다. 

 

 

 

사진 20> 그리니치 천문대 언덕에서 아름답게 펼쳐진 공원과 런던을 바라보았습니다.

           이곳에서 그 위대한 천문학자들이 밤하늘을 올려다 보았을 것입니다.

           모든 것을 다 이뤘다는 생각이 들더군요. 

           이제 여행을 마무리할 때가 된 것 같습니다. 

 

 

 

사진 21> 고즈넉하고 아름다운 런던의 풍경

           칠레를 오며 가며 잠깐 들렀던 런던이었지만 런던 역시 제게 깊은 인상을 남겨주었습니다. 

 

 

 

         

사진 22> 이제 대한민국으로.

           7월 8일 오후 19시, 대한민국 시간 7월 9일 새벽 2시, 12일간의 여정을 마치고 드디어 대한민국으로 향합니다. 

           모든 것이 감사한 순간의 연속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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