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실이와의 짧은 만남.

2023. 3. 31. 21:564. 끄저기/끄저기

아침 산책 중,

똥꼬발랄 넘치는 강아지 한 마리가 내 옆을 쓩~ 지나갔다. 

난 그냥 내 갈 길을 계속 갔다.

 

그런데, 문제가 있었다.

 

강아지가 지나갔는데 

주인이 전혀 보이지 않았던 것이다. 

 

나는 뒤로 돌아 

강아지 뒤를 밟았다. 

 

주인이 나타날지도 모른다고 생각했지만

주인은 끝내 나타나지 않았고 

나는 공원 운동장에서 결국 녀석을 잡아야 했다.

 

"아가야~"하고 불렀을 뿐인데

내게 달려와서 폭 안겼다.

 

엉겁결에 내 품에 안긴 똥꼬발랄이

 

녀석을 안고 집에 들어가면 

안쥔마님이 너무 놀랄 거 같았다. 

 

그래서 바로 가까운 동물 병원으로 향했다. 

 

보드라운 털과 깨끗한 옷, 사람을 무척 잘 따르는 발랄한 성격으로 보아

당연히 인식칩이 있을 거라 생각했고

인식칩만 확인되면 바로 주인에게 인계가 가능할 거라 생각했던 것이다. 

 

하지만 아쉽게도 인식칩이 없었다.

 

녀석의 사진을 아파트 카페, 단톡방, 네이버 이웃소식에 올리고 

관리 사무소에 전화를 걸어 유기견을 데리고 있다고 알렸다. 

동물 병원에서 알려준 번호로 구청에도 전화를 걸었다. 

잠시 후 구청을 통해 연결된 동물구조협회에서 연락이 와서 강아지를 인수해 가겠다고 했다. 

 

 

나는 녀석을 데리고 결국 집에 들어왔다. 

울집 강아지 하니가 엄한 애를 데리고 왔다고 아주 싫어했다. 

그럼에도 녀석은 신경도 안 쓰고 

하니 장난감을 가지고 신나게 놀더니 

나와 안쥔 마님이 아침 식사를 할 때는 기특하게도 햇살이 들어오는 마루에 얌전하게 누워 있기도 했다. 

(마킹도 두 군데 했음 - 안쥔마님은 모르심 ^^;;;)

 

우리 집 풍경에 대번 녹아 들어온 똥꼬발랄 강아지 녀석.

 

오후에나 온다던 동물구조협회에서 

두 시간도 채 되지 않아 왔다. 

 

나는 녀석을 안고 나가 동물구조협회에서 온 사람을 만났다. 

 

간단한 서류를 작성하고 아이를 차에 태웠다. 

뒤 트렁크를 열자 우울한 기운이 가득한 빈 캔넬이 가득했다.

그 중 하나에 녀석을 집어 넣어야 했다. 

녀석이 '낑낑' 소리를 냈다.

트렁크를 닫는데 너무 가여웠다. 

 

'차라리 주인이 나타날 때까지 내가 더 데리고 있을 걸 그랬나...'

 

집에 돌아오니 

녀석의 모습이 자꾸 눈에 밟혔다. 

저 똥꼬발랄한 녀석이 좁은 뜬장에 갇혀 있을 거라 생각하니 

차라리 넓은 공원에서 계속 돌아다니게 놔둘 걸 그랬나 하는 생각까지 들었다. 

 

관건은 주인을 빨리 찾는 것이었다. 

 

주인이 할아버지나 할머니라면 온라인에 올린 글은 못 볼 거란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녀석 사진을 이용해서 전단지를 만들어 

아파트 곳곳에 붙였다.

 

예전에 우리집 강아지 하니를 잃어버렸을 때도

다시 찾는데 공을 세운 건 전단지였다.

아무리 디지털 세상이라도 아날로그가 유용할 때가 있는 법이다. 

 

 

 

하지만 전화는 오지 않았다.

마음 졸이는 하루가 저녁이 다 되어 갔다. 

 

그때 전화가 왔다. 

 

강아지 주인이었다. 

유기견이 모이는 동물병원에서 녀석을 찾았다면서 나에게 고마움을 전했다. 

인식칩도 바로 심었다고 했다. 

 

마음이 편해졌다. 

내 생각보다 훨씬 더 편해지면서 

행복이 밀려왔다. 

 

녀석 이름이 뭐에요?

토실이에요.

그렇군요. 토실이가 너무 귀엽고 이뻤어요. 앞으로 산책할 때 보게 되면 아는 척 하겠습니다. 

 

2023년 3월 31일.

그렇게 토실이와의 짧고 즐거운 인연이 마무리됐다. 

 

토실아 

오늘 내게 큰 행복을 줘서 정말 고마와!

'4. 끄저기 > 끄저기' 카테고리의 다른 글

여름엔 모히또  (0) 2023.07.08
20230531 - 경계경보  (0) 2023.06.01
장미의 이름  (0) 2023.03.19
불을 찾아서 : 제대로 된 상상  (0) 2023.03.19
글인연 - 선생님, 요즘은 어떠하십니까  (0) 2023.02.2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