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호주 일식 여행 13 - 아찔했던 밤운전

2023. 9. 25. 21:381. 별과 하늘의 이야기/2023 서호주 일식 여행기

2023년 4월 18일 화요일.
엑스머스(Exmouth) 일식을 이틀 앞둔 날이다. 

애초에 엑스머스에서 숙소를 구할 수 없었던 나는 
엑스머스에서 360킬로 남쪽에 있는 카나본(Carnarvon)에 숙소를 구해 놓은 상태였다.

카나본의 카라반 파크 역시 일식 특수를 맞아 최소 이틀 숙박을 조건으로 내걸었다. 

그래서 18일과 19일 밤, 그러니까 일식이 있는 날 아침까지 카나본에 있다가

여차하면 20일 이른 아침에 출발하여 엑스머스까지 360킬로를 내달려 올라갈 생각이었다. 

그러던 중 2023년 2월,

서호주 관광청에서 엑스머스에 임시 숙소를 개설한다는 소식이 왔다.

엑스머스 골프클럽 주차장을 일식 관광객을 위해 오픈한다는 얘기였다. 
전기를 제공해 줄 순 없지만 깨끗한 샤워실과 화장실을 쓸 수 있다는 설명이 함께 있었다. 

문제는 4박을 필수 조건으로 내걸었다는 것이다.

가격이 상당했다. (무려 42만원)

하지만 서호주는 물론 호주에 대한 경험과 정보가 전혀 없던 나로서는 마다할 이유가 없었다.
더더군다나 안쥔마님과 함께 움직이기  때문에 특히 화장실은 대단히 중요한 조건이었다.

그래서 18일부터 4월 22일까지 무려 4박 5일 간 엑스머스 골프클럽도 예약했다.

결국 4월 18일에는 곧바로 엑스머스로 올라갈 수도 있었고, 카나본에서 하루를 머물 수도 있었다.

제럴턴에서 이틀을 머물며 어떻게 할지 고민하다가 
카나본에서 18일 일박을 하고 엑스머스로 올라가기로 했다. 

제럴턴에서 카나본 사이에 있는 칼바리 국립공원을 둘러보기로 한 게 이유였다. 
그 덕에 엑스머스로 바로 올라가는 것보다 이동거리가 상당히 줄긴 했지만 그래도 호주답게 이동거리는 여전히 길었다. 

 

 

오늘의 경로, 총 591킬로미터를 이동해야 했다.

 

 

제럴턴을 떠나는 날(4월 18일), 아침식사


아침 식사와 뒷정리에 소요되는 시간을 최소화하기 위해 라면을 끓여 먹었다.
호주에 와서 처음으로 먹는 한식이었다. 

 

제럴턴 선셋 비치 홀리데이 파크를 떠나며

선셋비치 홀리데이 파크의 바다 풍경을 너무나 좋아했던 안쥔마님은 떠나는 걸 많이 아쉬워했다. 



우리의 첫번째 목적지는 핑크 호수로 유명한 헛 라군(Hutt Lagoon)이었다. 

호수가 핑크색이라니!

호수가 분홍빛을 띠는 것은 헤일로박테리아(halobacteria)라는 세균이

카로티노이드(carotenoids)라는 붉은 색소를 분비하기 때문이라고 한다. 
그런데 이 세균을 비롯해서 역시 호수의 분홍빛과 상관이 있는

두날리엘라 살리나(Dunaliella salina)라는 미세조류가 번성하는 조건이 일정하지 않아

그날그날 상황에 따라 호수가 분홍빛을 띨 수도 있고 아닐 수도 있다고 한다. 

 

즉, 핑크호수를 보는 것은 운의 영역이었던 것이다. 

헛 라군을 보기 위해서는 1번 도로를 벗어나 크게 우회해야 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핑크호수를 못 보면 얼마나 아쉽겠는가?

그러나 사실을 말하자면 분홍색 호수를 못 볼거라는 생각을 하지는 않았다.


당시에는 왜 호수가 분홍색인지를 조사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핑크 호수는 늘 핑크핑크할 거라고 생각하고 갔다.

 


1번 국도를 벗어나 달린 139번 국도, 포트 그레고리 로드(Port Gregory Rd) 주변 풍경은 꽤 목가적이었다.

그러다가 특이한 광경을 목격했다.
짙은 파란색을 칠한 나무가 종종 보였던 것이다.

 

파란색으로 칠해져 있는 나무


처음에는 원주민의 토템이나 무속과 연관된 거 아닐까 하는 생각을 했었다.

나중에 내용을 찾아보니 '블루트리 프로젝트(Blue Tree Project)'라는 내용을 찾을 수 있었다.
내용이 흥미로왔다.

나무를 파랗게 칠하는 건 29살에 자살로 생을 마감한 제이든 화이트(Jayden Whyte)라는 청년과 관련이 있었다.
정신건강에 이상이 있었던 그는 자기가 자기 스스로를 해칠지 모른다는 두려움에 병원응급실로 향했다고 한다.
하지만 겉보기에 멀쩡하다는 이유로 두 번이나 응급실 입원이 거부되었고 
결국 그날 제이든은 자살을 하고 말았다.

 

제이든은 스스로 위기를 극복하려는 의지가 있었고 실제 외부 사람들에게 도움을 청했음에도 자살을 피하지 못한 것이다.

제이든의 장래식에서 제이든의 유족들은

어릴 적 아버지를 놀래켜주기 위해 목장 한복판에 있는 나무에 파란색 페인트를 칠한 제이든의 장난을 회상했다.

이 이야기를 전해 들은 제이든의 친구 사이먼 커머포드(Simon Comerford)는 
죽은 나무에 파란색을 칠하고 이를 페이스북에 올렸고 
이 포스팅이 유명해지면서  '블루트리 프로젝트(Blue Tree Project)'로 발전하게 되었다. 

파란색 나무를 통해 전달하려는 메시지는 
정신질환을 앓는 사람을 기억해 줄 것, 
그리고 이들이 누구에게든 도움을 요청할 수 있고, 누구든 이들의 요청을 도와줄 수 있다는 것을 
마을 공동체에게 일깨우는 것이라 한다.

지금도 죽은 나무에 파란색을 칠하고 그 옆에 R U Okay? 라고 쓰거나 팻말을 거는 
블루트리 프로젝트가 계속되고 있다고 한다. 


참고자료 : 
호주 ABC 뉴스 보도문
사이먼 커머포드의 페이스북 포스팅


 

한적한 시골마을을 달려 허트 라군에 다가가자 정말 저 멀리 특이한 색깔의 호수가 나타나기 시작했다.

모습을 드러내기 시작하는 헛 라군

 

핑크호수가 드디어 모습을 드러냈다.

 

이 색깔 이거 실화임?

 

신기하게도 호수를 바라보는 각도에 따라 분홍색이 진해지기도 하고 옅어지기도 했다.

 

가까이서 본 핑크호수의 물빛은 더더욱 오묘하고 신비롭게 보였다.

 

분홍색 호수에 마냥 신난 안쥔마님



호수를 또다른 각도에서 볼 수 있지 않을까하여 차를 몰고 더 안쪽으로 들어가보았다.
하지만 더 이상의 길은 비포장이었다. 


대신 옆쪽으로 작은 마을이 있었다. 

바로 이 도로의 이름이 된 Port Gregory라는 작은 마을이었다. 
별 생각없이 바다나 한 번 볼 생각에 들어갔는데 바다 풍경이 기대 이상으로 아름다왔다.


작고 허름한 선창과 푸른 바다가 아주 인상적이었다.

 

포트 그레고리 풍경


낡은 나무 선창의 질감과 짙푸른 파란색 바다가 어우러진 느낌이 참 포근하게 느껴졌다.

 

어제 제럴턴 구제가게에서 산 1달러 짜리 옷으로 무장한 안쥔마님의 기념사진을 찍어드렸다.



헛 라군에서 되돌아나와 이번에는 354번 국도를 타고 칼바리 국립공원을 향했다.

도로폭이 확실히 좁은 게 시골길이라는 티가 났다.

 

한참을 달려가자 내리막길에 바다가 한 눈에 들어오는 멋진 풍광이 나타났다.

 


그 지점에 독수리 협곡(Eagle Gorge)이라는 관광안내판이 눈에 들어왔다.
포장도로로 연결되어 있어 주저 없이 핸들을 틀었다.
비포장도로로 진입해야 하는 Lookout이 많아서 포장도로라면 마다할 이유가 없었던 것이다. 

 



독수리 협곡에는 장쾌한 바다와 협곡이 어우러진 멋진 풍경과 어마어마한 파리떼가 우리를 기다리고 있었다.
어느새 우리는 파리왕국에 들어와 있었던 것이다.

 

서호주에 파리가 들끓는다는 건 안쥔마님의 사전 조사 덕에 익히 알고 있었다.
그래서 이미 작년 9월에 경남 사천에 갔을 때 장터에서 양봉모자 두 개를 사서 구비해놓고 있었다. 

그 덕에 아랑곳 없이 덤벼드는 파리떼 걱정 없이 편안하게 풍경을 즐길 수 있었다.

 

양봉모자 덕을 톡톡히 봤다.

 

독수리 협곡 전망대 풍경

 

전망대에서 바라본 독수리 협곡과 바다 풍경


독수리 협곡 구경을 마치고 나와 얼마 안 가 작은 도시가 나왔다.
헛 라군을 보고 와서인지 이곳의 바다도 분홍빛처럼 보였다.

 

본홍색으로 보이는 칼바리 시 초입의 바다 풍경

 

여유와 고즈넉함이 넘치는 칼바리 시 해변 모습


여유롭고 한적한 해변 모습이 좋아 여기서 점심식사를 하기로 했다. 

햇살이 무척 뜨거웠는데 때마침 적절한 벤치가 보였다.
안쥔마님께서 후딱 만들어주신 샌드위치를 챙겨들고 벤치로 나갔다.

 

 

이 벤치는 펠리컨에서 먹이를 주는 행사를 하는 벤치였다.
옆에 안내판을 보니 매일 아침 8시 45분에서 30분 간 이곳에서 펠리칸에게 먹이를 준다고 한다.
뭐, 펠리칸은 칠레에서 실컷 봤으니까.

 

식사를 하며 바라본 여유 넘치는 해변 풍경


식사를 마치고 느긋하게 일어나 칼바리 국립공원으로 향했다.
이미 이곳은 칼바리 국립공원 경내라서 그런지 풍경에 야생의 느낌이 가득했다.

 

그때 길 저편에 에뮤가 나타났다.

에뮤 한마리가 마치 사람처럼 도로 양편을 살피더니 도로를 건너기 시작했다. 
그 뒤를 또 한 마리의 에뮤가 바짝 따라왔다. 
그 모습이 마치 사람 커플 같았다. 

 

도로를 건너는 에뮤 한 쌍을 카메라로 용케 잡아냈다.


조금을 더 가자 칼바리 국립공원 게이트로 진입하는 샛길이 나타났다. 

 

게이트는 금방 나타났지만 구경거리는 여기서 26킬로를 더 들어가야 만나볼 수 있었다.
들어가면 다시 되돌아나와야 하는 길이었다. 
아침에 예상한 거리에서 무려 52킬로가 더 늘어나는 셈이었다.  

하지만 그렇다고 그냥 지나칠 수는 없는 일이다. 
미련 없이 차를 몰아 들어갔다. 
카라반을 끌고 온 사람들은 게이트 옆 주차장에 카라반은 정박하고 차만 몰고 들어갈 수 있었다. 

게이트에서부터는 중앙분리선 없는 좁은 도로를 26킬로미터나 더 들어가야 한다.


드디어 길이 끝나고 우리의 목적지가 나타났다. 
바로 이거다. 

 

칼바리 국립공원, 스카이워크(Skywalk)의 장관


거대한 협곡 위로 돌출되어 나온 두 개의 스카이워크.
서호주를 보여주는 관광 프로그램이라면 빠지지 않고 등장하는 그 장면의 현장이다. 

 

 

스카이 워크 초입 기둥에 새겨진 카주 야트카(Kaju Yatka)는 '스카이워크(Skywalk)'를

현지 원주민 난다족의 언어로 쓴 것이라 한다.

 

스카이워크에서 내려다본 머치슨(Murchison) 강과 협곡의 장관

 



스카이 워크를 걷는 느낌을 이 사진이 그나마 가장 잘 살린 것 같다. 
스카이 워크 바닥은 사진에서처럼 숭숭 뚫려있어 스릴이 더 크다.

 

안쪽 스카이워크에서 바라본 바깥쪽 스카이워크 풍경.


스카이워크를 나와 호둥이를 몰고 바로 옆, 2킬로미터 거리에 있는 네이처 윈도우(Nature's Window)로 이동했다.
말 그대로 자연이 빚은 창문이라는 뜻이다. 

네이처 윈도우를 향해 걸어들어가는 길, 이곳은 주차장에서 내려 800여 미터 정도를 걸어 들어가야 한다.

 

자 우리도 한 번 가 봅시다.



네이처 윈도우를 향해 걸어가는 길에 바라본 머치슨 강 풍경도 일품이었다.

 

가는 길에 한국인 가족을 한 팀 만났다.

어린 두 딸이 사진 촬영에 정신 없는 젊은 아빠와 엄마에게 빨리 가자고 보채고 있었다.

 

"얘! 이렇게 멀리까지 왔는데 사진 많이 찍구 가야지."

 

나의 말에 젊은 부부와 우리 모두 한 판 웃어재꼈다.

하긴 아직 어린애들은 자연이 만든 풍광을 느끼기 힘들지. 나도 그랬으니까.

 

어쨌든 어린 나이부터 지구의 이곳 저곳을 여행할 수 있다니 

너희들은 참 멋진 부모를 만난거다! 

맘 속으로 얘기하고 지나갔다. 

 

어느덧 네이처 윈도우에 도착했다.

 



네이처 윈도우 앞에는 이미 많은 사람이 모여 사진을 찍고 있었다.
사진을 찍으려면 좀 기다려야 했다.
다행히 우리가 도착했을 때는 사람들이 거의 빠져 제법 느긋하게 사진을 찍을 수 있었다.

 

네이처 윈도우의 모습

 

오랜 세월 바람이 깎아 만든, 말 그대로 창문이다.

 

안쥔마님께서 멋진 사진을 찍어주셨다. 인물 빼고 다 좋은 거 같다.

 

이곳은 네이처 윈도우 뿐 아니라 판상으로 깍여나간 지형이 만들어낸 풍경이 모두 멋있었다.

 

 

사진을 추리다보니 제법 마음에 드는 사진을 발견했다.

 

구경을 마치고 주차장으로 돌아오니 시간은 어느덧 14시 30분을 지나고 있었다.

카나본 숙소까지는 우회를 하는 길밖에 없어서 450킬로미터를 더 이동해야 하는 상황이었다. 

 

약간 늦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걱정은 되지 않았다. 

숙소야 제럴턴에서 그랬던 것처럼 모두 퇴근하고 들어가도 문제될 게 없었고
열심히 달리면 4시간 반 정도 걸려 들어갈 수 있을것 같았다.

설령 길이 지체되어 어두워지더라도 밤운전은 대한민국 시골에서도 어지간히 해 봤고
캥거루 로드킬이 위험하다는 얘기를 많이 듣긴 했지만 그런 일이 자주 일어나는 일도 아닐테니 

지레 겁먹을 일은 아니었다. 

어쨌든 그래도 서둘러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칼바리 국립공원게이트까지 26킬로를 되짚어 나와 목적지로 향했다. 

숙소를 향해 열심히 달려가는 중.

 

하지만 여전히 오래 남은 운전길에 피곤이 밀려왔다.

그렇게 오래 걸었다 생각하지 않았는데 강렬한 햇살을 맞고 땀을 한소끔 흘려가며 돌아다닌게 
여지없이 피로가 되어 몰려오는 것 같았다. 

졸음이 몰려왔다.

간신히 정신을 차려가며 운전하다가 때마침 나타난 로드 하우스에 들렸다.
가벼운 몸풀기 운동으로 긴장을 풀고, 탄산 음료를 사 마시며 피곤을 풀었다. 

 


아직 카나본까지는 200킬로미터를 더 가야 한다.

해 그림자는 이미 길어질대로 길어져 있었다. 

 

 

어느덧 해가 지며 땅거미가 지기 시작했다.

 

 

해가 지고 노을이 짙어지며 밤운전이 시작되었다.

 



아무것도 안 보이는 깜깜한 곳에서 
오로지 별과 전조등이 비치는 내 앞 약간의 공간만을 보며 달려가고 있으려니 
마치 우주공간을 날아다니는 듯 했다.

 

 

 


막상 서호주에서 밤운전을 하면서 느낀 점은 다음과 같다. 

우선 도로가 거의 휘어짐 없이 펼쳐져 있는 건 좋았다.
노견이 의외로 잘 식별되지 않아 곡선 구간이 많았다면 속도를 올리기가 쉽지 않았을 것이다. 

로드킬에 대한 긴장감은 생각보다 크지 않았다.

물론 카나본을 10킬로미터 정도 남겨 놓은 지점에서 길섶에 서 있던 캥거루 때문에 식겁하기는 했다. 

도로로 뛰어들지 않고 길섶에 얼어붙어 있었던 캥거루가 지금도 고마울 뿐이다. 

가장 힘들었던 것은 맞은 편에서 달려오는 거대한 트럭들이었다. 


가뜩이나 폭좁은 도로의 차선 하나를 꽉채우고 달려오는 트럭들은 심리적으로 엄청난 위압감을 주었다. 
특히 어떤 차들은 아랑곳 없이 전조등을 켜고 달려왔다.
규모가 큰 차일수록 전조등 밝기가 어마어마해서 순간 앞이 안 보일 때도 있었다. 

 


카나본 숙소를 2킬로미터 남겨둔 지점에서야 가로등이 나타났다.
가로등을 보니 그제서야 안도감이 들었다. 

카나본 숙소인 Big4 Plantation Caravan Park에 도착한 건 19시 40분이었다. 
당연히 카라반 파크 리셉션은 닫혀 있었다.


그런데 이곳은 메일이 온 것도 없었다.
지칠대로 지쳐서 가뜩이나 머리가 돌지 않는데 어딘가에 숨겨져 있을 우리 키를 순전히 감으로 찾아야 했다. 

그때 어떤 아저씨가 
"키 여기있어요" 하며 다가왔다.

앗! 한국말이다. 
한국말이 이렇게 반가울수가!

먼저 도착하신 한국인 한 분이 키박스에 놓여진 봉투 중에 한국 사람임이 분명한 이름을 보고 
한국인 팀이 또 오겠구나 생각하고 있었단다.

마침 이곳 카라반 파크는 리셉션과 주방 공간이 가까웠다.
아저씨께서 가족분들과 식사를 하시다가 한국인인 우리가 도착한 것을 보고 도와주러 오신 것이다.

그나저나 4월에 서호주 카나본에 한국인이 있다는 것은 
나처럼 일식 때문에 온게 분명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대한민국 아마추어 천문인이라면 얼굴은 모르더라도 닉네임이나 이름은 알 수 있지 않을까 하여 대뜸 성함을 여쭤보았다. 

이름을 말씀해 주시는데 뜻밖에 내가 아는 분이었다.
내가 별자리 강연을 했던 세종과학예술영재학교의 정의완 선생님이셨다.

나로서는 그게 첫 강연이었기 때문에 그때 학교는 물론 과정 진행자셨던 정의완 선생님의 이름도 기억에 남아 있었다. 

머나먼 타국에서 뜻하지 않은 시간에 과거 인연이 있던 분을 만나뵙게 되다니.
너무나 신기하고 반가와 피곤이 다 씻겨 나가는 것 같았다.
이 역시 일식이 주는 선물이리라.

 

안쥔마님께서 푸짐한 저녁 식사를 마련해 주셨다.


식당에서 역시 일식을 보기 위해 대만에서 왔다는 젊은 부부도 만났다.
일식에 대해 신나게 수다를 떨었다. 

어려운 밤운전을 무사히 잘 마쳐서인지, 

그리고 나와 같은 관심사를 가진 사람들을 만나서인지 
몸은 피곤해도 마음은 어느때보다 훨씬 가벼웠다. 

식사를 마치고 어떻게 잠든지도 모르게 잠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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