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 별자리 이야기/BABYLONIAN STAR LORE

바빌로니아 별자리와 천문전승 - 별자리 상세 29. 별무리

다락방별지기 2025. 6. 29. 11:40
번역자 주석
고대 수메르어로 '물물(𒀯𒀯)'로 표기되는 이 별자리는 영어로 'the Star Cluster'로 번역되며 오늘날 '플레이아데스'를 말합니다. 
영어는 대소문자와 정관사를 활용하여 같은 단어라도 보통명사를 고유명사화하여 표현할 수 있음에 반해 이를 그대로 우리말로 직역하여 '별무리'로 표기할 경우 보통명사와 고유명사를 구분할 수 없는 문제가 있습니다. 

하여 본 문서에서는 이해의 편의를 위해 'the Star Cluster'를 모두 '플레이아데스'로 번역하였습니다. 
다만 예언 인용문구 등 '별무리'가 플레이아데스를 의미하는 것이 명확하고, 원어의 뉘앙스를 그대로 살려야 할 필요가 있는 경우에 한해  '별무리'라는 단어를 사용하였음을 밝힙니다.   

 

'별무리(the Star Cluster)'란 오늘날의 플레이아데스(Pleiades)를 부르는 바빌로니아식 이름입니다. 

 

오늘날의 망원경으로 플레이아데스를 관측하면 400여 개의 별을 볼 수 있다고 합니다. 

맨눈으로는 관측 조건이 좋으면 최대 12개를 볼 수 있으며 보통 조건에서는 7개 별을 볼 수 있다고 하죠. 

 

플레이아데스는 천문 전승으로 전하는 천체 중 가장 유명한 별무리일 것입니다. 

황도 12궁의 개념이 탄생하고 주변 지역으로 퍼져나가기 훨씬 전부터 아라비아와 페르시아, 인도의 점성술사들은 황도를 28개 구역으로 나누었으며 이를 달집(Lunar Mansion, 宿)이라 불렀습니다. 

 

각각의 달집은 대략 달이 하루동안 이동하는 거리와 대응됩니다.

비록 지역에 따라 다양한 변형이 존재하지만 플레이아데스만큼은 항상 여러 달집의 선두로 간주되어왔습니다.

 

달집을 구성하는 여러 별과 달과의 강력한 연관성은 후기 천문 전승에 명백하게 드러나며 그 기원은 상당히 오래 전까지 거슬러 올라가는 것으로 추정됩니다. 

 

바빌로니아 천문체계에서 달의 경로, 즉 '백도의 별'이라 불리는 달집에 대응되는 여러 별 중 가장 처음에 등장하는 천체가 바로 플레이아데스입니다.  

따라서 달집이라는 개념이 언제까지 거슬러 올라가는지는 플레이아데스를 천상의 리더로 간주한 사실에 입각하여 추정해 볼 수 있습니다.

 

우선 플레이아데스가 첫 번째 달(오늘날의 3~4월)에 태양과 함께 떠오른 때는 기원전 3천년 기입니다. 

이후 세차운동에 따라 별이 떠오르는 시간은 점점 늦어졌고 물아핀(Mul-Apin)이 작성되던 시기(기원전 10세기 경)에는 두 번째 달(오늘날의 4~5월)의 첫 번째 날에 떠오르는 것을 이상적인 별뜨기로 간주하였습니다. 

 

플레이아데스는 경계석이나 원통형 인장에 일곱 개 별로 자주 등장하였습니다. 

이 일곱 개 별은 종종 일곱 개 원으로 단순화되어 표현되었습니다. 

그림 1 경계석에 새겨진 플레이아데스

 

플레이아데스에 좌정한 신은 '일곱 신'이라 불린 호전적인 신들로 아카드어로는 '세베티(Sebetti)'라 불렸습니다. 

이들의 파괴적 속성은 에라(Erra)의 수행원이라는 데서 더더욱 극명하게 드러납니다. 

에라는 전쟁과 역병, 죽음의 신이었죠. 

 

그래서 플레이아데스와 관련된 많은 예언이 에라의 상징을 그려냅니다. 

이 예언은 대개 역병과 전염병에서부터 폭동과 죽음에 이르는 광범위한 재난의 도래를 담고 있습니다. 

 

별무리가 외따로 떨어져 있고 빛을 내지 않는다면

에라가 힘을 떨쳐 일어나겠지만

백성들을 쓰러뜨리지는 못할 것이다. 

 

목성을 제외한 다른 행성이 플레이아데스 인근에 머무르면 죽음의 전조로 작용합니다. 

 

화성이나 수성, 금성이나 토성이 별무리에 다다르면

죽음이 온땅을 뒤덮을 것이다. 

 

사악한 기운을 가진 행성 화성과 함께 '파괴'의 의미로 가장 많이 사용된 천체가 바로 플레이아데스입니다. 

 

플레이아데스의 속성은 주로 에라 또는 네르갈(Nergal)의 수행원인 세베티(Sebetti)로부터 파생된 것으로 점성술에서는 화성과 매우 밀접한 연관관계를 가지고 있습니다. 

같은 맥락에서, 일곱 신은 '소떼를 게걸스럽게 먹어치우는' 존재로 언급됩니다. 

이는 화성이 포함된 주문에서 되풀이 되어 나타나는 전형적인 특징입니다. 

 

불길한 기운의 화성은 플레이아데스와 같은 불길한 기운을 품은 별자리 근처에 머무르게 되면 위험은 더더욱 높아지고 인구의 변동까지 야기하는 파괴가 예측되었습니다. 

 

화성이 별무리에 접근하면

사람은 뿔뿔이 흩어지고

그 땅은 멸망하고 말 것이다. 

그림 2 교전 중인 아시리아 군인

 

예술 작품에 등장하는 일곱 신은 기다란 관복에 깃털로 장식한 높은 원형 모자를 쓴 것으로 묘사됩니다. (그림 3 참고)

그림 3 세베티 중 한 명

 

이들은 항상 다양한 무기를 갖춘 것으로 묘사됩니다. 

대개 도끼와 단검은 필수이고 종종 활을 든 모습으로도 묘사되죠. 

 

신아시리아(기원전 10세기~7세기) 시대의 저부조 작품은 세베티의 본성을 다음과 같이 전하고 있습니다. 

 

일곱 신,

호전적인 신들,

이들은 활과 화살을 나르며

이들이 일어서는 것은 전쟁을 의미한다.

 

별자리와 관련된 다른 속성이 그렇듯이 전쟁과 전투라는 속성 역시 계절 주기로부터 파생되었습니다. 

전쟁과 관련있는 별자리는 대개 봄과 여름에 집중되어 있습니다. 

이는 실제 군사작전이 시작되고 그 결과가 가시화되는 때와 일치합니다. 

 

세베티는 신이라기보다는 차라리 악마에 더 가깝습니다. 

이들은 하늘과 땅의 아이들로 다뤄지며 여러 악령의 진정한 주인으로서 이들을 성실히 양육하는 존재로 묘사됩니다. 

 

세베티의 출생은 <에라와 이슘 서사시(Epic of Erra and Išum)>에 간략하게 등장하는데 그 내용은 다음과 같습니다. 

 

이들의 탄생은 기괴하고 끔찍한 일의 전조로 가득찼다.

...

신들의 왕 아누(Anu)가 땅을 임신시키고

그녀는 일곱 신을 낳았다.

아누는 이들을 세베티라 이름지었다. 

 

아누는 이들의 운명을 정한 후 이들을 신의 전사인 에라(Erra)에게 주었습니다. 

그리고 이들이 에라 옆에 서서 행진하도록 선언하였죠. 

이들의 운명은 일련의 비인간적 형태를 드러냅니다. 

 

아누는 두 번째 악마는 반드시 불처럼 타올라야 하고, 세 번째 악마는 반드시 사자의 얼굴을 하고 있어 그를 보는 이는 누구든 공포에 떨어야 한다고 선언했습니다. 

또한 세 번째 악마는 살아 있는 모든 것을 부수라라는 명령을 받았으며 몸에 피 대신 용의 독을 가득 채웠습니다. 

 

세베티가 어떤 형태를 갖추고 있는지에 대한 보다 구체적인 생각이 신화에 등장하는데 우선 이들은 모두 월식을 일으킬 수 있는 권한을 가지고 있습니다. 

 

하나하나의 특징을 살펴보면 다음과 같습니다.

우선 첫 번째 세베티는 남풍입니다. 

두 번째 세베티는 위대한 용이며, 세 번째 세베티는 사납게 날뛰는 표범, 네 번째 세베티는 분노 가득한 뱀입니다. 

다섯 번째 세베티는 포악한 사자, 여섯 번째 세베티는 몰려오는 쓰나미이며, 일곱 번째 세베티는 악마의 폭풍우입니다. 

 

이들은 또한 한 낮을 어둡게 만드는 폭풍 구름이며 먼지구름의 소용돌이로 여겨집니다.

이들은 달을 둘러싸 달을 어둡게 만드는 월식을 만들어냅니다.

 

플레이아데스의 역사는 수메르 시대까지 거슬러 올라갑니다.

수메르 시대에 이와 유사한 파괴적 속성을 가진 악마 무리가 있었습니다.

이들 역시 별로 다루어지는데 <길가메시 서사시(Epic of Gilgamesh)>를 기반으로 만들어진 수메르 시에 그 존재가 나타납니다.

 

태양의 신은 동쪽을 향해 가는 길가메시가 산맥을 넘을 때 길가메시를 보호하기 위해 이들을 보냅니다.

 

태양의 신은

한 어머니에게서 태어난 일곱 전사를 길가메시에게 보냈다.

가장 연장자는 사자의 발에 독수리의 발톱을 가졌다.

둘째는 입을 벌린 독사이다.

셋째는 ...를 토해내는 용이다.

넷째는 ...하는 불을 토해낸다.

다섯째는 뱀으로 그의 혀는 고지대에 ....를 한다.

여섯째는 쏟아져나오는 홍수로 산악지대를 평평하게 만든다.

일곱째는 아무도 피할 수 없는 번개처럼 번쩍인다.

하늘에서 빛나는 이들은

땅의 길을 알고 있다.

이들은 하늘 높은 곳에서 빛을 뿜어내는 별이다.

 

월식을 만드는 악마와 길가메시에게 길을 안내하는 일곱 별의 유사성은 매우 인상적입니다.

일곱 별의 안내자들이 플레이아데스의 일곱별과 동일하다는 점을 말해주기 때문입니다. 

이 안내자들이 길가메시를 동쪽으로 안내한다는 점도 이러한 추정에 힘을 실어주는데  고대의 플레이아데스는 천구의 적도와 아주 가까웠으며 정동에서 떠서 정서에서 졌기 때문입니다.

 

이 서사시에서 길가메시와 그의 동료 엔키두는 플레이아데스의 도움을 받아 동쪽으로 여행했습니다.

이들은 결국 광활한 삼나무 숲에 도착했고 엔릴(Enlil)이 임명한 산나무 숲의 수호자인 훔바바(Humbaba)를 죽였습니다.

훔바바를 죽이는 영웅들의 모습은 여러 형태로 남아 있습니다.

여기서 훔바바의 머리 위에 일곱 별이 그려져 있죠. (그림 4 참고)

그림 4 훔바바를 처치하는 길가메시와 엔키두

 

이 장면에서 플레이아데스에 포함되어 있는 가장 흥미로운 수수께끼의 별은 '훔바의 별'로 알려진 별입니다.

이 별은 이른바 엔릴의 일곱 별 중 하나로 기록되어 있는데 '훔바'라는 이름은 '훔바바'에서 유래했을 가능성이 높습니다. 

 

플레이아데스는 수메르어로 '물 물(MUL MUL)'로 표기합니다.
이 표기는 아카드어로는 '자뿌(zappu)'라 읽습니다.
이는 '터럭', '곤두선 털', ''을 의미합니다.
이 이름은 하늘의 황소의 어깨 위에 곤두서 있는 털을 묘사한데서 파생되었습니다.
'물(Mul)' 표기는 세 개의 별을 그린 것으로 별이나 별자리, 유성이나 행성과 같은 '천체'를 의미합니다.
그래서 이 표기는 모든 천체 이름 앞에 나타납니다.

''은 여덟 개의 삐침선을 가진 단 하나의 별(𒀭)로 표기되기 때문에 이 표기는 이 땅에 축복이나 저주를 내리는 신들의 모임으로 해석할 수도 있습니다.

만약 별무리가 적절한 시간에 떠오르면
위대한 신들이 모여 선한 결정을 내릴 것이고
미풍이 불어오게 될 것이다
.

 

플레이아데스는 호전적 성격 외에도 농사력 상에서 도움을 주는 기능도 있습니다.

플레이아데스가 해를 안고 떠오르는 때는 소가 새끼를 낳는 봄철이기 때문에 이따금 인장 디자인에 봄의 기호로 사용되기도 합니다. (그림 5 참고)

그림 5 봄의 목장 풍경

 

봄은 또한 보리 수확이 시작되는 계절입니다. 

그래서 플레이아데스는 보리 가격과 연관관계를 갖기도 하여 플레이아데스에 '곡물 가격에 유리하다'라는 설명을 달은 아스트롤라베가 발견되기도 했습니다.  

 

기원전 1천 년기의 예술 작품에서 플레이아데스는 주로 쟁기질 하는 장면에 함께 등장합니다.

이 그림은 별달력이라는 관점에서 설명할 수 있는데, 플레이아데스가 해와 함께 지는 때가 쟁기질과 파종이 이루어지는 가을과 일치하기 때문입니다. 

그림 6 기원전 1천년 기에 만들어진 아시리아 인장

 

플레이아데스의 계절적 상징이 가지는 이 두 가지 측면 즉, 봄의 수확과 가을의 파종이 고대 그리스로 고스란히 전해졌다는 사실은 

헤시오도스(Hesiod)의 <노동의 나날(Works and Days)>을 통해 엿볼 수 있습니다. 

 

아틀라스의 딸, 플레이아데스가 뜰 때

수확이 시작되고

플레이아데스가 질 때

쟁기질을 한다.

 

앞서 살펴보았듯이 플레이아데스는 달과 오랜 연관관계를 가지고 있습니다. 

이러한 관계는 바빌로니아 천문 전승에 다양한 형태로 등장하죠. 

 

우선 일시적이면서 공간적 관계를 갖는 측면은 달력에 열세 번째 달, 즉, 윤달을 끼워넣을 적절한 시기를 결정하는데 활용됩니다.  

가장 잘 알려진 방법은 그 해의 첫 번째 날에 플레이아데스와 달이 '합'에 있었지만, 그 '합'이 세 번째 날에 해제된다면 그 해는 여분의 해로 간주되어 달을 추가해야 했습니다. 

 

이 계산 방법은 비록 '표준'이라 불린 방식이긴 하지만 다소 거칠고 성급한 방식이고, 그래서 매우 많은 변수를 가지고 있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양력과 음력을 보정하는 기본 목적에는 충분히 대응할 수 있었죠. 

 

달과 플레이아데스와의 밀접성은 점성술에서도 나타납니다. 

대략 10여 개의 천문 예언이 달과 플레이아데스의 관계를 기본 축으로 만들어졌습니다. 

 

이 예언은 주로 왕과 왕국의 관계를 다루며 특히 왕의 즉위와 관련됩니다. 

이러한 예언이 등장한 시기는 의심할 바 없이 플레이아데스가 첫 번째 달(오늘날의 3~4월)에 떠오르던 때까지 거슬러 올라갈 수 있습니다.  

 

별무리가 달의 꼭대기에 서게 되면

왕은 사해를 다스리는 주권을 실행하여

그의 영토가 넓어질것이다.  

 

전반적으로 플레이아데스가 달에 접근하는 것은 긍정적으로 해석됩니다. 

하지만 달이 플레이아데스를 가리게 되면 부정적 예언이 등장합니다. 

 

별무리가 달 속으로 들어가면

왕에게 반역하는 이들이 일어설 것이다.

 

이처럼 고대로부터 유래하는 달과 플레이아데스의 밀접한 관계는 4,000년 동안 유지되어 오늘날의 점성술에도 등장합니다. 

즉, 황소자리가 달의 최고성위(Exaltation)로 간주되는 것입니다. 

 

오늘날의 황소자리는 황도 12궁이 개념화되던 바빌로니아 시대에는 플레이아데스와 하늘의 황소자리(the Bull of Heaven)가 합쳐진 복합 별자리로 간주되었습니다. 

이는 아카드어로 플레이아데스를 일컫는 이름인 '자뿌(zappu)'라는 단어에 반영되어 있습니다. 

이 이름은 황소의 불룩한 등에 있는 곤두선 터럭을 부르는 이름이었습니다. 

달에까지 닿은 혹을 가진 황소를 그린 그림 7의 인장 문양은 이러한 생각을 적절하게 표현하고 있습니다. 

그림 7 등에 혹을 가진 황소 

 

참고 별자리 : 곤두선 털자리(the Bris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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번역자 주석
1. 이 글은 천문작가 Gavin White의 책으로  고대 메소포타미아의 별자리와 천문전승을 담은 에세이집 Babylonian Star Lore (ISBN-13 : 978-0955903748)를 번역한 것입니다. 
2. 별자리 이름이 현대 별자리 이름과 혼동할 가능성이 있는 경우 고대 메소포타미아의 별자리는 '이탤릭체'로 표시하였습니다.
3. 본 글은 저자의 허락을 받아 포스팅한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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